하나님의 돌보심에도 우리는 왜 불안해 하는가
한나 W. 스미스 지음, 김진선 옮김 / 두란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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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릴 때부터 암송해왔던 시편 23편 말씀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신데, 그런데 내 생활에는 왜 이렇게 부족한 것 투성이인지 모르겠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온통 없고, 없고, 없고, 내게 없는 것들만, 부족한 것들만 잔뜩 머릿속에 차오른다.

"맑고 깊은 영성으로 '19세기 잔느 귀용'이라 불리는 신실한 여인"이라고 소개되는 저자 한나 W. 스미스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룬다. <하나님의 돌보심에도 우리는 왜 불안해하는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의문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주는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울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정작 그의 자녀들의 영적 삶은 왜 그토록 괴롭고 힘든가? 끝없는 의심에 시달라고 불안과 염려에 짓눌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지켜 내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10).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과감하게 도전하다. 명쾌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가 컸다. 요즘 "장관 딸 특혜 파문"이 확대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장관 딸로 태어나지 못해 억울하다"는 성토가 터져나오고 있는데, 나의 형편을 돌아보면 신의 딸로 살아가는 내가 장관 딸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그토록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님을 불신하는 데 있다"(39).

우리의 평안의 근거를 하나님의 이름에서 찾고 있는 저자는 우리의 불안을 철저히 믿음의 문제로 풀이한다. "하나님의 돌보심에도 우리는 왜 불안해하는가", 저자는 한마디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불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복잡할 게 아무것도 없다. 단순하게 믿고 믿음대로 살면 된다.

"목자의 보호하심을 가로막을 수 있는 방해물은 두 가지밖에 없다. 양이 자기를 신뢰하지 않거나 그분의 보호를 거부하는 경우다. (...) 사실 양 중에는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할 녀석이 한 마리도 없다. 하지만 양보다 훨씬 똑똑한 인간은 끊임없이 이런 행동을 한다"(70).

내가 저자의 대답을 듣고 느낀 감정은, 그녀가 직접 경험했던 한 일화와 닮은 것이었다. 그녀는 신앙 여정에서 심각한 의심에 빠져 극심한 혼란을 겪을 때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우연히 깊은 신앙심으로 명망 옾은 한 부인과 몇 주간 가까운 곳에 살게 되어, 용기를 내서 그 부인을 만나러 갔단다. 깊은 관심을 가져 주며 자신을 돕기 위해 진정으로 애를 써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 속의 어려움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깊이 공감해주며 위로해주길 기다리는데, 그녀는 간단히 이렇게만 말했다고 한다. "그래요, 자매님이 한 모든 말이 정말 맞을 수도 있겠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계시잖아요"(277). 그녀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필요한 말을 다 했다는 듯 앉아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한나 스미스가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그렇겠지만 하나님이 계시답니다"가 전부였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대답이요, 결론이다. 하나님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궁극적이며 가장 중요한 교훈은 오직 하나님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270).

저자의 삶의 이야기를 몰랐다면, 어쩌면 이러한 대답은 공허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한나 스미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일곱 명의 자녀들 중 네 명이 요절했고, 남편의 사역 실패와 사고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고, 노년에는 재정난과 건강 문제가 그녀를 괴롭혔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영적 통찰과 권면은 고난의 샘에서 길어올려진 은혜의 단비이며, 그녀가 부른 평안의 찬송은 고난의 한가운데서 선포된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한나 스미스는 불안에서 평안으로 가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일러준다. 그녀에게 배운 평안의 비결 중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가르침은 바로 "자기 반성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아란 '나'라는 거대한 존재 중심에 위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156). 우리는 자주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하고 있는가? 충분히 회개했는가? 내가 가진 감정이 타당한 것인가? 종교적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가? 영적인 일에 대해 마땅히 쏟아야 할 관심을 갖고 있는가?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다른 것에서 못지않게 성경에서 기쁨을 얻는가?"(156)

그러나 한나 스미스는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비참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만다고 경고한다. "성경에 자기 점검을 요구하는 명령이 많다는 생각이 팽배한 나머지 이 작업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참으로 진정 어린 경건한 행위라고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자기 점검 작업은 우리를 비참한 상태로 떨어뜨린다"(157).

자기 점검의 함정에 빠져 무력감과 절망감에 삼킴을 당하지 않으려면, 시선의 방향을 전환하라고 권면한다. 그것은 '나'가 아니라 '그', 즉 주님 바라보기이다! 우리가 할 일은 나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옛사람"(자아)은 개선시키고 훈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벗어 버려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자기 점검에 대한 성경적 법칙은 자아를 살피고 점검해서 더 나아지라고 하지 않고 아예 자아를 벗어 버리라고 권한다"(161-162).

"천성으로 가는 데는 오직 즐겁고 확신에 찬 믿음만 있으면 된다"(165).

자기 반성의 결과로 오는 자기 비하라는 늪에 나는 얼마나 자주 빠져들었던가. 한나 스미스는 "자기 반성에 집착하는 것은 식품을 구입하러 시장을 가지 않고 텅 빈 냉장고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과 같다"(164)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자기 비하의 늪에서 건짐을 받고 보니, 그동안 나를 불안하게 했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아졌다. 자아를 벗어버리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리라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내 영혼은 말할 수 없는 평안과 자유를 느낀다.

한나 스미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도, 가는 곳마다 침울함과 불안함을 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묻는다. 이 책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뜻을 우리의 가슴에 새겨준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선포할 수 있는 믿음의 내공을 기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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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다윈의 시대 - 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 지음 / 세계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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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신에 의해 유도되었다?
과학이 신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진화론이 발표된 지 150년이 되는 2009년, 다윈 탄생을 기념한 여론 조사가 미국에서 실시되었는데, 미국 국민의 39퍼센트만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17).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8퍼센트만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신과 다윈의 시대>를 준비하며 EBS 다큐프라임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에는 응답자 중 60펴센트 정도가 진화론을 믿는다고 응답했다(18-19).

그런데 이 설문의 질문과 응답자의 대답이 재미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진화론' 또한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진화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라는 물음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 있지 않은가? 검증을 통해 법칙을 발견해내는 과학 이론이 '믿음의 영역'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바로 여기에 <신과 다윈의 시대>가 조명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신과 다윈의 시대>에서 지적하듯이,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과학 이론인 진화론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다윈 이후 진화론과 창조론은 신과 다윈의 대결로 귀결될 만큼 끊임없는 논쟁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논쟁이 더욱 치열한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신의 과학'이라 일컬어지는 '지적설계론'의 등장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법정 싸움으로 번질 만큼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신과 다윈의 시대>는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이 2008년 봄부터 시작해 만든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은 생명을 탄생을 둘러싸고 세계 석학들이 벌이고 있는 치열한 공방전과 그것에 담긴 함의를 집중 조명했다. 무엇보다 생명의 탄생을 둘러싸고 벌이는 석학들의 논쟁의 쟁점이 무엇인지 핵심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다윈의 이론만으로 생명의 탄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선택론을 내세우는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진화론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생명체는 확률과 우연만으로 만들어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112).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내세우는 지적설계론자들은 생명체는 너무 복잡하여,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한 상태로 진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적인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정보도 진화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하고, 진화론을 믿지 못하는 학자들은 생명의 정보가 절대로 진화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115).

진화론자들은 지금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언젠가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이것을 진화론자들의 '실체를 바라보는 잘려진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진화론자들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틈새에 하나님, 절대자, 아니면 설계자를 집어넣는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을 '틈새의 신'이라고 비판한다.

<신과 다윈의 시대>는 이러한 석학들의 치열한 공방 뒤에 숨어 있는 문제를 하나 더 끄집어낸다. 진화론이 특별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진화론이 주장하는 것들이 사람들의 세계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힌다. "개신교는 철저한 유신론을 따른다. 태초에 지혜와 능력의 신이 우주의 만물을 창조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의하면 모든 생물이 오랜 시간과 함께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데, 이는 무신론과도 같다. 개신교와 진화론이 불꽃 튀며 부딪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타협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정 반대되는 신념 체계이기 때문이다"(194).

실제로 유전자에 토대를 두고 생명의 진화를 탐구하는 리처드 도킨슨은 <만들어진 신>과 같은 책을 출간하는 등 진화론의 이름으로 종교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을 설립하여 무신론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고 한다. 김상복 목사님의 지적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진화 대 창조의 대결이 아니라, 유신론적 과학자들과 무신론적 과학자들의 논쟁이며, 철학적 대결이고 신념의 대결이라는 생각이 든다(207).

오늘 이런 기사가 떴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7일 출간될 '위대한 설계'(원제: Grand Design)에서 우주가 창조주의 위대한 디자인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났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개했다." 이 기사에 대한 덧글을 보니, 무신론자를 자청하는 많은 네티즌들이 (다분히 감정적으로) 기독교를 비난하며 신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과 종교의 전쟁은 힘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게 끝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결코 아니다. 

지석설계론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인 월리엄 뎀스키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세계는 지적인 존재의 설계에 의해 탄생한 것일까요? 아니면 생존을 위해 자연에 적응한 결과일까요?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사회와 문화의 모습이 달라지고, 또한 그 속에서의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125).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사회와 문화의 모습"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영혼(영원)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이 벌이고 있는 공방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공방이며, 이것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 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무신론적 과학자들이 생명의 탄생이 '우연'이었음을 증명해내기 전까지는, '신과 다윈'의 논쟁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과 다윈의 시대>,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대로' 알려는 노력(탐구)을 한 번쯤은 시도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알려는 노력과 함께 진지한 성찰을 도와주는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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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후지와라 신야 글 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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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순간들. 그 단편적인 기억이 그를 말한다.

후지와라 신야라는 여행 작가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더 의미가 깊은 책이 아닐까 싶다. 조각보 같은 여행의 시간대와 이야기의 무대가 특정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형(심정)의 틀에서 이탈해 유형(즉물)을 묘사했기 때문인지 '나그네 차림'에 가까운 나의 실체가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확인된 적은 없다"(211)는 저자의 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은 '후지와라 신야'가 도드라져 보인다.

영화 감독판 같기도 하고, 메이킹필름 같기도 하고, 편집으로 잘려나간 촬영분을 다시 편집해보여주는 스페셜 방송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는 이 책의 콘셉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이번 여행기에서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미처 꺼내지 못한 원석들을 닦거나 형태를 정돈하지 않고 독자 앞에 그냥 내던지는 것이었다"(211). 메시지를 담아내려 하지 않고, 여행하며 겪은 '에피소드' 자체를 그저 즐거이 이야기하려 한 책. 재밌는 것은, 그의 독특하고 특별한 '사유'를 읽을 수 있었던 다른 여행책에서 보다, 그저 '경험'을 이야기한 이 책에서 '후지와라 신야'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째서일까.

 
결국 이 모든 것이 흘러가는 삶이었다. 삶은 여행이니까.

후지와라 신야,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사유는 무엇인가를 뽐내려는 겉멋이 전혀 없었고, 무거울 정도로 진지했으며, 생에 대한 열기가 가득했지만 이상하게 음산하리마치 어두웠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후지와라 신야는 이전의 책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귀여운' 구석이 있다. 산탄총을 들고 인도 사창가에서 허세를 부리고, (가장 씁쓸한 이야기였지만) 한국 여행이 지루해질 무렵, 부산 외곽의 한 식당에서 그냥 돔을 돌돔이라고 속여 파는 주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순발력, 젊은 에너지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코브라의 독을 마실 만큼 새로운 경험을 '함부로' 좇았던 무모함, 무시당한 기분을 참지 못해 가던 길을 돌려 텍사스의 도넛 가게로 돌진했던 용기까지, 귀여울 정도로 '겁 없는 여행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겁 없이 낯선 여행지를 이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그의 이야기에서 숨겨진 절박함이 느껴지도 한다. 무엇이 이 청년을 이렇게 겁 없는 여행자로 만들었을까. 후지와라 신야의 책을 네 권이나 번역한 역자는 그를 가리켜 "물질문명과 부조리한 사회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웃사이더 청년"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청년 시절 일본을 생각하니, 오쿠다 히데오의 책 <올림픽의 몸값>에서 보았던 도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비웃을 테지만) 어쩐지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서로가 짓밟고 짓밟히며 미친듯이 성장을 향해 달려가던 시절, 치열했던 시절, 그 미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드넓은 세상을 향해 겂도 없이 나아갔던 것일까. 여행은, 질식할 것 같은 세상에서 그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으리라.

여행에 경계가 없었던 이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가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이 따위는 상관 없이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글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전진에서 얻을 수 없는 더 큰 지혜가 노년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을 붙들었다. 그의 여행기는 내게 교차점과 같은 것이었다. 문화와 문화가 교차하고, 쾌락과 구도가 교차하고, 물질과 정신이 교차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후지와라 신야라는 한 청년 안에서 들끊었던 회의와 호기심과 방황과 깨달음이 하나의 커다란 용광로가 되어 이 모든 것을 그 안에서 녹여내었다. 특별히 이 책에서는 과거와 오늘이 교차하고, 그때 그 시절과 그것을 회상하는 노년이 교차한다. 그가 지나온 여행의 순간들은 저항하는 꿈이었고, 찾아가는 꿈이었고, 그의 삶을 채워가는 인연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결국 흘러가는 삶이었다. 

 
여행은 '오늘'도 계속된다.

후지와라 신야는 "세이셸 제도의 마에 섬 변두리인 얼친 만 모서리에 개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이름이 해피인 이 개는 형제처럼 자신을 귀여워 했던 주인의 아들 오조가 보트를 타고 떠난 그 다음 날부터, 언제나 같은 시간에 바닷가로 나간다고 한다. 보트가 떠난 바로 그 시간에. 정확하게 284일째 바닷가로 나가 오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해피가 불쌍하다고 말하는 엠레에게, 후지와라 신야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했다.

"엠레, 해피가 사람처럼 숫자를 세면서 오조를 짊어지고 있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오조가 떠난 바닷가에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 내일과 똑같은 내일모레가 있을 뿐이야, 머리 위의 태양처럼. 해피는 오늘밖에 몰라. 오늘의 몇 시간을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올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살고 있는 것뿐이야"(126).
 
낯선 풍경 속을 홀로 걸으며 지구촌의 나그네로 살아온 후지와라 신야. 하루는 분노하고, 하루는 감사하고, 하루는 아파하고, 하루는 즐거하고, 하루는 쓸쓸해 하고, 하루는 만족하며, 그렇게 '오늘'을 살았을까. 숫자를 헤아리며 흘러가는 삶을 쓸쓸해 하는 내게, 자신은 "오늘밖에 모른다"고 대답하는 듯하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의 여행을 떠나자고. 삶이 계속되는 한 여행은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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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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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공화국 토목특별자치도에서 길쟁이로 산다는 건 미친 짓이다.  
토목공화국의 미친 속도에 맞서서 걷는 길을 내려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그러나 이 미친 짓이 즐거운 걸 어쩌랴(252).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수첩에 이런 기도제목을 적어넣었다. "하나님, 나도 제주올레 같은 미친 꿈을 꾸고 싶습니다!"

올 여름 나는 처음으로 제주도 땅을 밟았고, 제주올레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7코스를 걷는 행운을 누렸다. 많은 분이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길이 없다 하셨다.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하여 비교우위를 논할 수 있는 안목은 내게 없었지만,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평화로운 길인지 절대 가치는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제주올레길이 자연이 만들어준 천연의 길이라 생각했던 나는 <꼬닥꼬닥 걸아가는 이 길처럼>이라는 책을 읽고 두 가지 사실에 크게 놀랐다.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길을 내는 중'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랬다.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은 길을 내는 사람들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꿈의 이야기이며, 이미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꿈에 미친 사람들의 미친 꿈 이야기이다.

2010년 6월 26일 추자도 올레가 개장되면서 제주올레길은 스물한 개 코스, 340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252). 오랜 기자 생활을 접고, 홀로 산티아고 길 순례에 나섰다가 문득 피어난 꿈, 고향 제주도에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만들겠다는 그녀의 꿈이 지금 대한민국에 '올레' 열풍을 일으키고 있고, 세계인의 관심과 찬사를 이끌어내고 있다. 제주 천혜의 해안 코스에 스위스-올레 우정의 길이 생겼다는 소식과 함께, 제주올레의 매력이 산악트레킹의 나라 스위스도 흔들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제주도 땅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슴이 얼마나 뻐근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꿈' 이야기에는 늘 '레퍼토리' 처럼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시각과 반대 의견이 존재한다. '제주올레'의 꿈도 마찬가지였다. 서명숙 이사장은 "벅찬 꿈을 안고 고향 제주에 내려왔지만, 사람들을 만날수록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풀이 죽어가던 시절"(160)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비싼 비행기 타고 제주까지 걸으러 오겠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부끄럽지만, 국내여행지를 소개하는 어떤 유명한 책에서 같은 말을 읽고 그럴 듯한 평이라고 공감하기도 했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길은 때로 사람 사이의 길도 낸다"(330).

시시때때로 마음을 짓누르는 회의와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내고, '사람이 사람답게 걸을 수 있는 길'을 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삼년 만에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사람 인연' 때문이었다. "탐사대원을 일일이 호명하노라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감사하고 소중하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4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삼년 만에 어떻게 낼 수 있었을까. 그들의 소금기와 굳은살이 아니었더라면 그 많은 올레꾼이 어찌 안전사고 한 번 없이 이 평화로운 길을 즐길 수 있었을까. 그들은 뛰어난 식견을 가진 생태 전문가도, 경험 많은 환경 운동가도 아니다.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첨예한 사회의식으로 무장한 이들은 더더욱 아니다. 시절 인연이 올레를 만나게 했고 사람 인연으로 올레와 엮였을 뿐. 그러나 그들은 청정 제주의 자연과 생태를 지켜야 한다는 소명을 길 위에서 온몸으로 체득했다. 위대한 교사인 자연과 다정한 벗인 길로부터 '한 소식' 깨우친 것이다"(97).


"아름다운 길을 내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고단한 발품, 순정한 땀방울이다"(97).

제주올레는 돈으로 낸 길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걸을 수 있는 길을 내겠다는 꿈이 꿈과 만나고, 마음이 마음과 만나, "끊어진 길을 잇고, 잊힌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한 코스 한 코스 제주올레가 되었다." 재능을 기부한 사람들, 편안함을 포기한 사람들, 미친 꿈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의 소금기와 굳은살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평화로운 길, 치유의 길, 꼬닥꼬닥 걸어가는 인생의 길을 열어주었고,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방문해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꿈이 담기고, 마음이 담기고, 정성이 담기니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제 제주올레의 꿈은 그녀만의 미친 꿈이 아니다. "꼬닥꼬닥(천천히) 걸어가라"는 책 제목과는 달리, 제주올레라는 푸른 꿈 하나를 가슴에 품고 미친 듯이 달려 서명숙 이사장은 올레길을 열고, 올레꾼을 불러오고, 올레지기를 세우고, 올레 주민들을 품었다. 올레길은 그들과 함께 살아움직이고 있다. "도로포장만 장땡으로 여기던 마을 사람들이 옛길을 복원해 내고, 아스팔트라서 미안하다고 '모다들엉' 바닷가로 돌길을 내고, 탐사대원들이 도로 확장에 맞서서 새로운 흙길을 찾아내면서 올레길은 끊임없이 올레스럽게 진화한다. 올레길은 고정불변의 닫힌 길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열린 길이기에. 완성된 길이 아닌 현재진행 중인 길이기에"(370).

 
"그대, 떠나기를 두려워 말라. 바람에 걸리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떠나라. 바람이 그대의 친구가 되고, 들꽃이 그대의 인연이 되어주리니.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르는 법이다"(175).

저자의 이 말은 '제주올레'로의 초청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미친 꿈을 꾸어본 사람만이, 두렵지만 길을 떠나본 사람만이, 홀로 바람을 맞아본 사람만이, 들꽃의 위로를 받아본 사람만이, 그리하여 불가능한 꿈이 현실이 되는 벅찬 감동을 누려본 사람만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초청이리라. 제주올레라는 미친 꿈을 꿈이 아닌 현실로 개척해낸 이 책의 주인공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하루를 살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 신이 내게도 이러한 인생 길을 허락해주시기를.

길이 있는 한, 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 한, 올레의 푸른 꿈은 "지금도 ing-! 언제나 ing-! 영원히 ing-!"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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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펼쳐보는 인체 크로스 섹션 - 인체 속을 살펴보는 특별한 탐험 한눈에 펼쳐보는 크로스 섹션
리처드 플라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스티븐 비스티 그림, 홍인표 감수 / 진선아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인체 속을 살펴보는 특별한 탐험 이야기!

 
우리 몸은 알면 알수록 정말 신비하고 오묘합니다. 우리 몸이 얼마나 정교하고 놀라운 창조물인지 내게 알게 해준 글이 있습니다. 음주운전자가 낸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고, 의사들마저 치료를 포기했던 '이지선 씨'가 쓴 책 <지선아 사랑해>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 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 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의 책 <아불류 시불류>에 보면, "코딱지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먼지나 이물질, 또는 거기에 붙어 있는 세균들에 의해 잦은 호흡기 질환을 알게 되고 심하면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코딱지에게도 경배하라"는 글이 있습니다. 

손톱, 엄지 손가락, 눈썹, 관절, 귓바퀴, 피부, 심지어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코딱지까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정말 알면 알수록 우리의 몸은 신비요,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한눈에 펼쳐보는 인체 크로스 섹션>은 '해부학적으로' 우리 몸이 얼마나 정교하게 짜여져 있고 세밀하게 기능하는지 탐험해보는 책입니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우리의 몸을 한눈에 펼쳐볼 수 있도록 한 해부학적 일러스트가 세밀하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두 명의 특별 탐험대가 "미지의 세계인 인체를 구석구석 탐험하여 지도에 표시하는" 임무를 띠고 인체 속으로 탐험을 떠납니다. 탐험 대상은 '스티븐 비스티', 그의 성별은 '남', 직업은 '예술가'입니다.

"아무리 좁은 핏줄 속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이 탐험대는, 원래 스티브의 입속으로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스티브의 얼굴을 타고 올라가다 태풍 같은 바람에 휩쓸려 그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뒤이어 나오는 재채기에 날려 좁고 어두운 길 속으로 내동이쳐졌다"(8). 그들은 스티브의 눈물길(누관)을 따라 눈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스티브의 눈을 시작으로, 귀, 뇌, 척수와 신경, 뼈대, 피부와 근육, 입과 창자, 림프와 혈액, 콩팥, 방광 및 생식기 계통, 심장, 코와 허파까지 무사히 탐험하며 그들의 임무를 완수합니다. 우리 인체는 전담반(흰색), 근육반(주황색), 신경반(파란색), 혈액반(빨간색), 호르몬반(연두색), 면역반(핑크색) 등으로 나누어진 인체의 일꾼들이 쉬지 않고 일하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 같습니다.  

<한눈에 펼쳐보는 인체 크로스 섹션>은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뼈대 하나도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뼈대가 어찌나 기막히고 영리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우리는 놀라고 말았다. 스티브의 뼈대에는 뼈가 206개나 있어서 굉장히 무겁겠구나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독특한 벌집 구조 덕분에 아주 가볍다. 그런데도 스티브의 살과 장기의 무게를 받쳐 주고 뇌처럼 연약한 부분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16). 이 모든 것이 '우연한' 진화의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하고 섬세하고 정교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책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흥미롭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어른인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우리 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처럼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내 자신이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인지 새삼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본다는 것, 소리를 듣는다는 것,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걷고, 느끼고, 말하고,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심장이 뛰고 숨을 내시고 들이킬 수 있다는 것,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오묘하고 신비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은 각 기관이 쉴 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피부와 근육을 탐험할 때는 손가락을 쥐였다 펴보기도 하고, 심장을 탐험할 때는 가만히 맥박을 느껴보기도 해보세요! 그 사실에 얼마나 감사하게 되는지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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