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의 하느님께 아름다운 일
맬컴 머거리지 지음, 이정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의인 열 명이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만일 우리 사회에 마터 테레사와 같은 분이 열 분만 더 계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인류의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의 삶에, 우리의 기억 속에 마더 테레사와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절실해진다.

시그마북스의 <마더 테레사의 하느님께 아름다운 일>은 '마더 테레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발간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맬컴 머거리지는 캘커다 뒷골목의 마더 테레사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라고 한다. 1971년 처음 출간되었다는 이 책은 마더 테레사가 처음으로 국제 사회에 알려지는 과정과 그 내용을 담았다. 마더 테레사가 한 일을 바라보는 제3자의 증언도 있고, 마더 테레사의 가르침도 있고, 마더 테레사와의 첫 인터뷰도 읽어볼 수 있다.

그동안 읽었던 마더 테레사에 관한 내용은 그녀의 기도문과 명언과 같은 가르침들뿐이었기 때문에 그녀에 세상에 알려지는 '초기'의 분위기와 그 과정을 읽을 수 있어 신선했다. 특히 저자 맬컴 머거리지는 성공한 방송이자 논객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영국의 저널리스트라고 하는데, 군더더기 없으면서 깊이 있는 그의 글 덕분에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알바니아 출신의 이 수녀는 "가나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부르심을 받고 세상에서 가장 궁핍한 곳으로 알려진 곳으로 갔다. 종교에 회의적이었던 저자는 마더 테라사가 하는 일을 지켜본 후 이렇게 증언한다. "수녀인 그녀는 체격도 왜소한 편인데다 수중에 가진 돈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출하게 영특하거나 설득의 기술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는 그녀의 가슴과 입술에서 반짝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섬기는 주님의 뜻에 따라 거리에서 죽어가는 모든 부랑자들을 자신으로 여기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행할 준비가 돼 있었을 뿐이다. 또한 모든 버려진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물론 버림받은 태아들이 내는 작고 미약한 소리에서도 베들레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준비가 돼 있었다"(33).

마더 테레사, 그녀는 자신의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에게 품고 있는 사랑의 표현일 뿐이죠.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퍼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거니까요"(133). 이보다 더 절절하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밖으로 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낮은 곳을 향하는 마음, 낮은 자를 섬기는 그녀의 손길은 다름 아닌, 신을 향한 예배요, 신께 드리는 경배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은 사람 사랑으로 이어지고, 사람 사랑은 다시 하나님 사랑으로 이어지며, 그 둘은 그렇게 맞닿아 있었다.

 



마더 테레사는 가난 때문에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사회에서 버림받는 존재가 됐다는 점이라고 말한다(33-34).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20년 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확실히 알게 된 점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질병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135). 버림받고 굶주리며 자신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라고 느끼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다가가 기꺼이 섬기는 손길이 되어주었다.

맬컴 머거리지는 "통계적으로 따져보면 그녀가 성취가 것은 미미하다 못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보잘것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40)고 말한다. 그렇다. 어쩌면 어느 한 시대, 지구촌 한 귀퉁이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그 많은 사람 중 그중에 몇몇을 섬기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았을 때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해서, 그들이 좀더 존엄하게 죽어갈 수 있도록 돌본다고 해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그러나 맬컴 머거리지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게 또 아닌 것이 기독교는 삶을 통계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고.

'편리'를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교회까지 침투하여 교회가 성장하려면 주차장 시설이 좋아야 한다, 위치가 좋아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맬컴 머거리지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려는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서 금욕적인 요소들을 완화시키고 위험요소를 줄이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결국 성 프란체스코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시대에 가장 탐욕스러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 중 일부를 그의 주변으로 불러 모으게 한 그 유쾌함은 바로 나병환자의 흉측하게 짓무른 상처에 입을 맞추는 행위에서 나왔다"(71-72).

<마터 테레사의 하느님께 아름다운 일>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내 가슴에 무거운 돌이 되어 내려앉았다. 그녀의 삶은 내 믿음과 내 삶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거운 과제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런 '특별한' 일을 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마더 테레사의 일을 돕는 앤드루 신부의 대답 한마디가 계속해서 마음을 때리고 있다. "필요한 일인 게 너무 명백하니까요"(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걷기사전 - 서울에서 제주까지 걷고 싶은 길 200
김병훈 외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걷기 + 여행 = 삶의 여백 같은 여행


어릴 때부터 차 멀리가 심했던 나는 어디든 걸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중학교 때 조선일보 사옥으로 현장학습을 갔는데, 그곳 세종로사거리에서부터 서울대 부근 신림동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다. 길을 몰라 버스 노선을 따라 걸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내가 걸었던 최장 기록이 아닌가 싶다. 의기투합했던 친구 둘과 차비까지 탈탈 털어 떡볶기도 사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면서, 걸어걸어 집에 도착해서 보니, 발바닥에 온통 물집이 잡혀 있었다. 다리가 아파 그만 포기할까 하는 유혹도 컸지만, 결국 끝까지 걸었고,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있다. 걸어서 한강을 건너던, 그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 왜 이리 걷기 여행이 열풍일까? 걷기 여행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일까. 걸으면 운동도 되고, 사색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느리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바라보고,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쫓기듯 내몰리는 인생 길에서 잠시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여백 같은 공간이 ’걷기 여행’이 아닐까.

<대한민국 걷기사전>에서 선정한 ’서울에서 제주까지 걷고 싶은 길 200’은 삶의 여백 같은 길이다. 주로 자연과 유적를 중심으로 한 고요한 길이 선정되었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멀찍이 물러선 깊숙한 산길, 파도 소리 들으며 거니는 해변길, 지친 몸에 신선한 산소와 피톤치드를 채우며 걷는 숲길, 역사와 문화를 더듬어가는 답사길, 사람 사는 온기가 그래도 전해지는 작은 동네길, 큰맘 먹고 나서는 일주일까지, 그동안 필자들이 걸었던 수많은 길 중에서 정말로 걷기 좋은 길과 멀고 힘들더라도 한 번쯤 걸어 보면 좋은 길들을 엄선하여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8-9).

무엇보다 <대한민국 걷기사전>은 ’걷기’를 작정한 책이다. 대한민국의 걷기 좋은 길, 걷고 싶은 길 선정은 물론, 걷기 여행을 위해 걷기 좋은 옷차림, 도움 되는 준비물, 좋은 걷기 습관 들이기, 장거리 걷기 준비물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걷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단, 코스마다 교통편이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어릴 때, 나는 틈만 나면 남가좌동에 있는 모래네 시장과 노점상이 즐비한 신촌 일대를 탐험하듯 헤집고 다녔었다. 아직은 세상이 두려웠던 것인지 동네밖으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산처럼 쌓여 있던 먹거리, 신기한 물건들, 열정적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 정답고 유쾌한 흥정이 가득한 그 열기가 좋아서 나도 덩달아 신이 났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곳은 나의 첫 번째 걷기 여행 장소였던 셈이다. <대한민국 걷기사전> 2가 제작된다면, 이렇게 요란한 곳도 포함시켜 보면 어떨까 싶다.

<대한민국 걷기사전>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를 비롯하여 걷기 여행 열풍이 거세지면서 국토가 재정비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걷기 여행 열풍 덕분에 더 아름다워질 국토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도 섬길여행 - 도보여행가 유혜준 기자가 배낭에 담아온 섬 여행기
유혜준 지음 / 미래의창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섬 사람들, 그들 사이를 걷다.

 
몇 년 전부터 국토 종단을 외치고 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세상이 무서울 것 없는 지금 나이에, 어서 떠나야 한다는 재촉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들쑤신다. 그런데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홀로 걷게 될 '한적한 길'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상상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걸어서 국토를 종단한다면, 분명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야 할텐데, 그땐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아직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내 발목을 붙잡는 문제는, 예정되지 않은 낯선 곳에서 그날의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막막함이다. 솔직히 굳이 국토 종단을 부르짖은 이유도 낯선 외국보다는 그래도 내 나라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는데, 국토 종단에서도 그 두려움이란 녀석이 여전한 복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저히 극복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두려움을 이유로 나는 내 마음과 타협을 했다. 국토 종단이 어렵다면, '테마 여행'을 계획해보자고 말이다. 일정한 장소까지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동을 하고, 숙소를 거점으로 하루를 걷는 여행이라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꽉찬 내 눈앞에 <남도 섬길여행>이 보였다.

<남도 섬길여행>의 지은이 소개를 보니 그녀(!)는 일단 걷기의 달인이고, 다음으로 걷기 여행의 달인인가 보다. 처음에는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영역을 넓혀 수도권 인근을 걷다가 걷기에 재미를 들여 전국 팔도와 섬들을 차례로 섭렵하였단다. <남도 섬길여행>에서는 첫 번째로 진도를 걷고, 소록도, 거금도, 거문도를 걷고, 청산도를 걷고, 노화도, 보길도를 걸었다. 어떤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그녀의 이야기는 곧장 '진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진도에 와 있다"(10). 무엇보다도 그렇게 선뜻 나설 수 있는, 언제라도 원하는 곳에 가 볼 수 있는 저자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내가 상상으로 두려움만 키우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구나 생각하니 잔뜩 의기소침해진다. 저자의 경험이 나를 자극하는 동력이 되고, 책을 통해서라도 자유로운 여행가의 용기를 나눠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남도 섬길여행>은 여인 홀로 떠난 섬 여행기이다. 섬이 간직한 역사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조용하고 한가롭기 그지 없는 마을과, 순박한 섬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진도에서 개 한마리를 보고 순종인지 잡종인지 구별하려는 저자에게 "진도에 있는 개는 죄다 진돗개여"라는 아주머니의 대답이 재밌다. 진도에 있어서 특별한 그 개처럼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 그 낯선 삶의 자리가 별다를 것 없는 사람도, 그들의 삶의 이야기도, 풍경도, 끊없이 이어지는 길조차도 특별한 무엇으로 마주하게 해주는 것이리라.

"섬 도보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섬이 거기서 거기지, 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섬마다 특생이 있고, 사는 모습이 달랐다.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모습이 다른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모습이 보이는 건, 섬도 마찬가지였으니까"(353).
<남도 섬길여행>은 섬마다의 특징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모습을 편안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서인지 일정한 템포로 이어지는 독백 같은 설명이 참 차분하다. 서두르지 않는 그녀의 발걸음은 섬을 닮은 듯했다.

"섬을 만나고자 떠난 여행이었는데 정작 걷다보니 섬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섬이 곧 사람이었고, 길이 곧 사람이었던 것이지요"(에필로그 中에서)
<남도 섬길여행>은 사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여행기이다. 그녀의 도보여행은 무작정 길만 걷는 여행이 아니라,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이었다. 일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그 무엇이 여행에서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처럼, 여행은 같은 길을 스쳐지나는 사람들까지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이 세상의 나그네로 사는 나는 오늘 걸었던 인생 길에서 누구를 만났는가 생각해본다. 누구와도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오늘 나의 삶도 나만의 여행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참 엉뚱하게도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것은, 낯선 여행자들에게는 얼마든지 넉넉해질 수 있는 마음이 왜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친절을 베풀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 것처럼 살지 않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아무튼 같은 국토이지만, 익숙한 이곳이 아니라 한 번도 디뎌보지 못한 그 섬에, 가고 싶다. 남도, 그곳을 미지의 땅으로 남겨두지 않으리라 다짐도 해본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두 갈래 길에 서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안고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인생이 저무는 시간이 오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도 나의 또다른 여행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리 퍼즐 스페셜 - IQ 148을 위한 IQ 148을 위한 멘사 퍼즐
데스 맥헤일.폴 슬로언 지음, 권태은 옮김, 조형석 그림 / 보누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상상력을 자극하라!

 
일본의 유명 추리 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의 책 <명탐정의 규칙>에서 추리 소설을 읽는 독자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했다. "추리 따윈 하지 않아. 주인공이 추리해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지. 그래서 지치지 않는 거야. 마지막 단계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해하고 만족하는 거야."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다뤄지는 추리극은 '숨은 트릭'을 찾아내는 두뇌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말처럼, 짐작으로 대충 때려맞추거나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정도이지 실제로 작가(또는 범죄자)와 두뇌 게임을 펼치는 독자(시청자나 관객)이 얼마나 될까 싶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설득력 있는' 설정에 감탄하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즐기는 것이리라. 내가 예측한 대로 '숨은 트릭'이 풀리게 된다면, 트릭이 너무 쉽다고 생각하여  오히려 시시하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추리극은 트릭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결말을 예측하며 반전을 즐기는 묘미가 있다면, <추리 퍼즐 스페셜>은 출제자와 벌이는 진짜 두뇌 게임이다. 아니, 진짜 두뇌 게임을 기대했다. 그동안 추리극을 보며 갈고 닦았던 추리력을 검증해보리라 하는 기대가 있었다. 추리극처럼 마지막 단계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해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추는 탐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추리 퍼즐 스페셜>의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수평적 사고 퍼즐들은 창조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은 물론이고 문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끈기와 탐구심을 기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4)고 자신한다.

<추리 퍼즐 스페셜>이 제시하는 총 160개의 추리 문제에 도전하고 난 나의 첫 소감은, 추리 퍼즐이라기보다는 상상 퍼즐을 즐긴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단서에 맞게 이야기를 완성하는 작가가 된 심정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단서'는 있는데 현장은 없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구체적인 '현장'이 없다면, 문제의 정답이 하나가 아닐 수 있다. '현장'을 예측하는 추리는 날카로운 논리보다 무한한 상상력을 더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가장 허무한 추리 중에 하나였던 4번 문제를 보자. 별 4개 중 별 1개의 난이도를 가진 <남편의 추리 실력>이라는 제목의 문제는 이것이다. "아내가 외도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서 며칠 출장을 다녀오겠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가서는 한 시간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예상대로 아내는 이미 외출한 뒤였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만나는 남자의 이름과 주소를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단서>는 이것이다. 1. 남자의 이름과 주소는 집 안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2. 남자의 신원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적힌 글도 없었다. 3. 남편은 아내를 미행하지 않았다. 4. 남편은 자신이 집을 비우면 아내가 틀림없이 그 남자를 만나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정답을 '추리'해보시라!

이 책이 제시하는 정답은 "남편은 자신이 집을 나가면 아내는 곧바로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예상대로 아내는 전화를 전 뒤에 외출을 했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전화기의 재다이얼 버튼을 눌러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전화를 받은 남자에게 "경품에 당첨되었으니 경품을 보낼 주소를 알려달라고"고 해서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다!" 이 문제의 정답을 맞추려면, 추리가 아니라 작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추리 퍼즐 스페셜>이 제시하는 정답은 웬만한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 상상이 지나쳐서 어떤 문제는 허무하고, 어떤 문제는 화가 날 지경이다. 별 4개의 난이도를 가진 <살아남기 위해>라는 문제는 "한 남자가 살아남기 위해 신문을 부둥켜안고 있다. 왜 어찌 된 일일까?" <단서>는 1. 신문을 들고 있는 남자는 위험에 처해 있다. 2. 신문이 타인의 공격이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직접적인 보호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 3. 남자는 당일 발행된 신문을 들고 있다. 4. 남자가 들고 있는 신문에는 남자를 살릴 수 있는 정보가 실려 있다. 정답을 '추리'해보시라.

이 책이 제시하는 정답은 "인질극"이라는 설정 속에 있다. "납치범이 인질의 가족들에게 몸값을 요구하자, 가족들은 남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다. 납치범은 당일 날짜의 신문을 들고 있는 인질의 사진을 찍어서 가족들에게 보냈고, 몸값을 받은 납치범은 인질을 풀어주었다." 이 문제의 정답을 추리로 맞추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덕분에 "(논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추리는 상상과 통하고, 추리력은 상상력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곧장 정답을 확인하고 싶은 성급한 마음을 눌러야 했지만, 그래도 문제를 추론하고 정답을 확인하는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단서를 조합하여 현장을 그려내는 재미가 있고,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정답 덕분에 자극도 된다. 단서를 바탕으로 논리의 뼈대를 세우고,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완성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도전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대역 (영문판 + 한글판 + MP3 CD)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고, 반달곰의 비명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를 찾아주는 책입니다.


천박한 문명은 폭력이다. 며칠 전, 경기도 고양시의 아파트 밀집지역 부근의 한 사슴 농장에서 멸종위기인 반달가슴곰이 보신용으로 사육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곰의 쓸개즙을 사러왔다고 하니 농장주인은 반달곰이 갇혀 있는 좁은 철장 안으로 마취주사기가 담긴 긴 대롱을 밀어넣었고, 마취총을 맞은 반달곰은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반달곰이 쓰러지자, 농장 주인은 초음파 검사기로 쓸개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주사바늘을 꽂아 그대로 살아있는 반달곰의 쓸개즙을 채취했다. 우리가 이처럼 잔혹할 수 있는 것은 '반달곰의 비명'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리라. '문명'이라는 옷을 입은 인간은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아예 잊은 듯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디언의 삶의 방식과 지혜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천박한 문화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을 '야만'이라 부르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연 누가 더 야만적인가'라는 물음을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 살난 꼬마이다. 아빠가 세상을 뜨신 지 1년 만에 엄마까지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고아가 된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가 함께 살게 된다. 할아버지는 체로키족(인디언)의 피가 반 섞인 혼혈이고, 할어머니는 순수 체로키족이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산(山) 사람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며 인디언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작은 나무'의 이야기이다. 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지더라도, 나는 '작은 나무'에게서 배운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누고 싶다.
 
사람들은 '인디언식'으로 생각하는 그들을 '너무 순진하다'고 말한다(383).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작은 나무' 가족이 모르는 것은 백인의 문명이었지,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산이 깨어나는 시간,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함께 매 한마리가 메추라기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울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작은 나무'에게 할아버지는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주신다.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다. 매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리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35-37). '작은 나무'는 이렇게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며, 삶의 방식을 배워나간다. 그렇지만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마 그 사람들은 야생 칠면조 열두 마리를 보았을 때, 왜 열두 마리 모두 죽이면 안 되는지 절대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75).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는 말의 뜻보다는 소리, 즉 말투를 더 마음에 새겨들으셨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가 개척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자 두 사람과 남자 두 사람이 탄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그들 앞에 섰다. 그 차는 문짝 속으로 똑바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유리창을 가지고 있었고, 손가락에 반지를 몇 개씩 낀 그 부인은 멋진 옷을 입고 귀에는 커다란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그들은 길을 물었다.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커피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책들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그 위에다 내려놓았다. '작은 나무'도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왔을 때, 나름의 예의를 표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새겨들으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아버지가 누누이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107). 그러나 할아버지의 이러한 예의는 갈 길 바쁜 사람들의 화나 돋구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든 인디언 할아버지는 야만적인 세상을 배우지 못해 세상의 야만이 된 것이다.

자연의 하나로 살아가는 인디언들에게 백인의 문명은 배울 수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었다. 순진했던 그들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문명의 폭력에 휘둘렸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우리가 문명의 이름으로 인디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여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작은 나무'에게 지난 일들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하셨다.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 해낼 수 없다.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법"이라고 하시면서(129).

할아버지, 할어머니가 기억하는 '과거'는 잔혹한 것이었다. 정부군이 인디언들을 강제이주 시킨 이야기는 이렇다. 무장한 병사들은 종잇조각 하나를 들고와서, 체로키인들의 골짜기와 집과 산을 포기하고, 백인들은 눈곱만치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땅으로 이주하라 명령했다. 그들은 해가 지는 곳으로 가야 했다. 결국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체로키들이 행진 중에 숨을 거두었다. 죽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자 병사들은 3일에 한 번씩만 매장할 시간을 주겠노라 했다. 아직 아기인 죽은 여동생을 안고 조그만 남자아이는 밤이 되면 죽은 동생 옆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그 아이는 다시 여동생을 안고 걸었다. 남편은 죽은 아내를, 아들은 죽은 부모를, 어미는 죽은 자식을 안은 채 하염없이 걸었다(133-135). 사람들은 이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불렀다. 사람들은 그 말이 낭만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또 그 행렬을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슬픔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죽음의 행진은 절대 낭만적일 수가 없다. "과연 누가 어미의 팔에 안긴 채 뻣뻣하게 죽어 있는 아기, 어미가 걸어가는 동안 감기지 않은 눈으로 흔들거리는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 아기를 소재로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 과연 누가 밤이 되면 아내의 주검을 내려놓고 온밤 내내 그 옆에 누워 있다가 아침이 되면 일어나 그 주검을 옮겨가야 하는 남편과, 장남에게 막내의 시신을 안고 가라고 말해야 하는 아버지, 그리고 쳐다보지도...... 말하지도...... 울지도...... 고향 산을 떠올리지도 않는 이들을 소재로 노래할 수 있겠는가?"(135) 반달곰의 비명처럼, 소리 없는 인디언의 비명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하다.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살아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 비친 문명의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었다. '작은 꼬마'의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는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191).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고, 반달곰의 비명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를 찾아주는 책이다. 체로키인들에게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527). 이 책은 그런 가을 같은 책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통해 인생의 가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생명은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죽음은 딱딱하고 차갑다. 매서운 겨울 칼바람이 우리의 영혼을 완전히 삼켜버리기 전에, 영혼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가을 햇볕 같은 이 책을 읽자. 딱딱하고 차갑게 죽어버린 우리의 문명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보자.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에서 2년을 함께 보낸 '작은 나무'는 남겨진 시간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남은 시간 동안 충실히 살았다.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오셨다. 그들은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우리는 가을이면 가장 새빨간 단풍잎을 찾아냈고, 또 봄이면 가장 푸른 제비꽃을 가리키며 서로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느낌을 함께 맛보고 서로 나누었던 것이다"(653). 아직 늦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지혜서이다. 진짜 지혜가 이곳에 있다. 그 지혜 안에는 꾀를 내는 여우와 함께하는 그들만의 놀이가 있고, 필요한 것만큼만 쓰고 누리며 남겨두고, 살려두는 넉넉함이 있고, 약한 사람을 위해 힘든 일을 떠맡으려는 배려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사랑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존중이 있다. 그 빛나는 지혜는 우리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고,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아름다운 글을 읽으며 행복했고, 이해받지 못한 그들의 지혜가 슬펐고, 그들의 삶을 짓밟았던 천박한 문명이 부끄러웠고,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자락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이치를 깨달으며, 벅찬 가슴으로 한참을 울었다. 책을 손에 들고 한참을 울었다. 마음을 나누고픈 사람에게 나는 한동안 이 책을 선물하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