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알마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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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世界圖)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지도로의 변화
지도가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지도에 관한 특별한 관심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공자들이 읽어야 할 책인 듯 하다. 대중적 교양도서로는 내용이 다소 어렵다. 사실 지도에 관한 가벼운 인문적 지식 정도를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가 '지도를 독해하는' 전문적인 설명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지도를 읽어내는 데는 재능도 없고, 흥미도 없기 때문이다. 각종 기호와 수치로 축소된 지도만 보아도 현기증이 나는데, 그것을 '글'로 읽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세계 지도의 탄생>이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世界圖)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지도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과학성, 실용성, 사상성, 예술성이 원래 지도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요소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도의 역사를 크게 보면, 지도는 현대에 가까워지면서 그 이야기나 표현이 사상성, 예술성에서 과학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천해왔다고 한다. 현대 지도에서는 과학성과 실용성이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지도의 탄생>은 "지도가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러한 지도 변천사를 고찰한다. 먼저는 유렵과 아시아의 비교를 위해 불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일본의 '오천축도', 현존 최고의 '헤리퍼드 세계지도', 세계 최오의 인쇄 지도인 중국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 근대를 선취한 중세의 '이드리시 세계지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대표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세계 지도' 등 각 문명과 문화를 대표하는 중세 세계도를 비교한다.

다음으로 관심있게 살펴보는 지도는 1502년에 제작된 '칸티노 세계지도'이다. <세계의 지도의 탄생>이 '칸티노 세계지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지도를 기초로 세계관을 묘출하는 세계도에서 세계지도로의 변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에서 세계지도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칸티노 세계지도'에는 사상성과 예술성, 과학성과 실용성이라는 지도의 네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지도의 탄생>이 보여주는 지도의 네 가지(사상성, 예술성, 과학성, 실용성) 요소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사상성'이다. 지도는 집단이 공유하는 경험 세계뿐만 아니라, 경험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까지 이야기하고 그려낸다. "특히 전근대에 가상 세계를 이야기하고 그리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세계에 대한 관념, 즉 세계관이나 우주관이었다"(29). 세계관이나 우주관이라는 '관념'과 '가상'을 틀로 하여 '경험'과 '현실'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지도의 구도와 작도라는 관점에서 표현한다면 '관념'과 '가상'이라는 구도 안에 '경험'과 '현실'을 작도해나가는 것이다(54).

개인적으로는 종교적인 관심 때문인지 현존하는 최고의 지도라는 '헤리퍼드 세계지도'의 독해가 가장 흥미로웠다. '천상에 대한 동경'으로 수직성을 강조한 고딕 건축과 마찬가지로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과 들보, 스테인드클라스로 구성된 지도의 모습이 재밌다(93). 창세기 2장 8절을 근거로 동쪽을 성스러운 방위로 여기는 방위관, 예루살렘이 원향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 등 기독교 신앙(신학)이 반영된 모습이다. 지도의 여백에 담긴 독해의 실마리 또한 신학적 지식이 없으면 정확하게 읽어내기 어려운 요소이다. 기독교 신앙(신학)을 반영하고 있는 '헤리퍼드 세계지도'는 역으로 중세 기독교 신앙(신학)을 이해하는 '지도' 역할까지 담당한다. 지도를 연구하여 중세 기독교 신앙(신학)의 특징을 밝히는 연구 논문이 나와도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다.

과학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며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의 실제'를 반영하는 현대의 지도보다, 오히려 사상성과 예술성이 반영된 근대 이전의 지도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현대의 것에 비해 실용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귀한 자료이면서 예술품의 하나라고 생각되어진다. <세계 지도의 탄생>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가 "지도도 회화와 마찬가지로 걸작이나 명작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312)고 밝힌다. 지도의 예술성이 명화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지 몰라도, 명화와 마찬가지로 축소된 현실 세계는 물론 보이지 않는 사상까지 표현하는 예술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문자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는 지도(의 역사)에 숨어 있는 연구 가치가 새삼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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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00배 즐기기 (2011~2012년 최신판) 100배 즐기기
홍연주.홍수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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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 파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흥이 나시면 자주 외워주셨던 시이다. 들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지만, 어린 마음에도 이 시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금은 흘러가버린 시간이지만, 달빛이 밝은 밤이면 그때의 기억이 아련하다. 더운 여름 날, 우리 가족은 자주 옥상으로 올라갔고, 그곳에 놓여 있는 커다란 평상에 앉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야기 하기를 즐기셨던 아버지는, 자주 시를 외워주셨다. 특히 별빛이 아름다운 밤이면 언제나 아버지는 이 시를 외우셨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나는 도대체 '파리'라는 도시에 왜 이토록 가고 싶은 것일까, 생각해보니 미라보 다리가 있는 파리는 그 어떤 곳보다 내게 낭만적인 도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파리에 가려면 꼭 '짝'이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함께 떠날 짝을 찾는 동안 야속하게도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파리 100배 즐기기>를 만나기 전, 더 늦기 전에 파리 땅을 한 번 밟아보자 결심을 하고 있던 터였다. 이제라도, 혼자라도 떠나볼 용기를 내자고 스스로 다독였는데, 아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겠다. 왜 이제야 이 생각이 드는 것인지. 아버지와 함께 미라보 다리 위에 올라 흐르는 세느 강을 보아야겠다! 물론 어머니도 함께. 파리에 먼저 다녀온 친구들이 미라보 다리 생각보다 별로라고, 기대하면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자꾸 훼방을 놓지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꼭 미라보 다리에 오르리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 정보!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도 왜 우리는 쉽게 여행을 떠나지 못할까? 처음에는 그 이유가 비용과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떠나보니 그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물론 비용과 시간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우리를 일상에 눌러 앉히는 주범이었다. 물론, 나와 같은 서민들에게 여행을 위한 경비가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비용에 부담도 더 커지고, 시간을 빼서 여행 일정을 계획할 염두도 나지 않고, 막상 떠날 용기도 쉽게 생기지 않는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쓰고 남는' 돈으로 여행을 하려 했는데, 여행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니 여행을 위해 돈을 모은다. 정확한 정보가 있으니 목표가 분명하고 계획이 구체적이니 실행력도 그만큼 커진다. 더구나 해외 여행처럼, 경비가 만만치 않고 쉽게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데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까지 작용하는 여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보가 우선이다. 짧은 시간에 저예산으로 여행지를 100배 즐기고 오려면 더욱!!!

랜덤하우스의 '100배 즐기기' 시리즈는 소장 욕구를 불태우는 책이다. 요즘 이 책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00배 즐기기>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적이고, 따끈한 최신 정보가 꼼꼼하고 알뜰하게 들어있다는 데 있다. 이번에 개정된 <파리 100배 즐기기>는 2010년 6월을 기준으로 한 최신 여행 정보이다! 게다가, "여러분의 초행길 내내 옆에서 의지가 되어줄 책을 쓰는 일은 '취미삼아' 혹은 '여행이 좋아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할 것은 절대 아닌 듯 합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얼마나 든든하고 고맙게 와닿는지 모른다.

<파리 100배 즐기기>는 파리를 집중 분석하는 시티 가이드북답게 '파리 여행의 모든 것'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하고 세심한 정보가 가득하다. <프롤로그>만 읽어도 파리의 매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파리의 사계에서 만날 수 있는 축제나 행사를 스케줄 다이어리 형식으로 담아낸 '파리 여행 아젠다', 개선문, 에펠 탑,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센 강 등 '파리 명소 Best 7', '오감만족 파리 먹을거리'에 '센 강을 따라가는 로맨틱 데이트' 등등 파리 여행 초보자를 위한 완벽 가이드에 도전한다. 무엇보다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편하게, 파리 여행의 노른자를 경험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해주는 세심함이 고맙다.

몇 년 전, 자칭 해외 여행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후배 한 녀석이 출국하는 공항 입구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당당하게 여권을 내밀 때까지 여권 만료일이 지난 것을 깜빡한 것이다. 1년 예정으로 여행을 준비하며 두루두루 인사까지 부지런히 해둔 터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고, 우리는 아직까지 그때의 일을 놀린다. <파리 100배 즐기기>는 파리 여행에 필요한 여행 준비편에서 여권 만료일은 물론 여권 발급 기관의 전화번호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여러 모로 참 든든한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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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철학 - 오스왈드 챔버스의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14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황 스데반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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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시리즈 중 가장 읽기 어려웠던 책입니다. 내용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죄의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이 '전혀' 달라 당황스러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죄의 철학>에 내게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는 각론보다 죄의 문제에 대한 통찰, 다시 말해 각론을 담고 있는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죄의 철학>은 '부분'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보통 '죄의 문제'를 구원받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삶이 죄인의 삶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후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구원 이후의 삶은 이제 죄와 상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죄의 철학>에서 오히려 '믿는 자'(정확하게 표현하면 복음을 접한 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교인)의 죄의 문제를 더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총 10개의 목차 중에 1장 '죄의 철학' 이후 2장 '구속에 대한 교육적 통찰'부터 10장 '조화'에 이르기까지 9/10가 믿는 자의 입장에서 고찰되어야 할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치된 이후의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정말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149).

언제나 그렇듯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는 철저하게 '성경적'입니다. 제목은 <죄의 철학>이지만 이 책 역시 '온전히'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죄의 철학>은 관련 성구를 주석하고, 그 논지를 다시 성경 말씀으로 입증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이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해냅니다. 문제는 그 간과하게 쉬운 지점이 주변부가 아니라, 성경의 핵심 메시지라는 데에 있습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또 하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믿는 자들을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믿는 자가 들어야 할 복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착각 속에,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착각 속에, 거듭났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착각에서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파고들면, '딴 생각'에 젖어 있던 영혼에 전기파 같은 충격이 전해집니다. 그것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치 벼랑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긴장감과 같은 것입니다.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혹을 통해 우리를 잘못된 행동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생을 통해 우리 안에 넣으신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134).

<죄의 철학>은 자연인이 처한 죄의 문제와 구원받은 사람이 처한 죄의 문제를 나눕니다. 성도는 "선하게 보이는 것들조차 영적인 차원에서 시험할 수 있어야"(133) 합니다. "죄의 성향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시는 것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반란"(125)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해도, 선한 것이라 해도,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아', 다시 말해 내 뜻, 내 욕구를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살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자기애의 성향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권을 부추기는 모든 유혹에 굴복한다"(127).

 
"맛을 잃은 소금이 물질 세계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영향을 주듯이, 거룩을 잃은 성도는 영적인 세계 속에서 전염병 같은 악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눈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성도의 모습을 잃는다"(115).

<죄의 철학> 뒷 표지에 보면, 이런 물음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죄인에 멈출 것인가? 거룩과 의의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것인가?" 저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치된 삶"이란 구절에서 발견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 대한 권리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오, 성도의 저주는 세상적인 잘남인 것을 깨닫는가!"(41) 죄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장소는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의 내면이었습니다. 그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는 바로 은밀한 나의 내면이었던 것입니다.

'거룩을 잃은' 우리의 삶 때문에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교회 공동체가 모욕 당하는 것을 생각하니 괴롭습니다. <죄의 철학>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나의 모든 자랑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높아지려는 나의 모든 시도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나의 모든 기도들, 그 모든 것들이 낱낱이 파괴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자주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 내가 얼마나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증명하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신체에는 휴식이 필요하지만 영적인 삶에서는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107).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메시지는 이제껏 우리를 깊은 좌절과 철저한 절망으로 인도하지만, 그 완전한 절망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철저한 절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자유와 기쁨을 선물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철학>에서는 그러한 해방감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책의 끝장을 다 덮을 때까지 제 마음은 팽팽한 긴장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 참된 거룩과 의의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 긴장은 계속 될 것입니다. <죄의 철학>을 통해 깨달은 것은 '죄의 문제'는 어떤 상태나 외부적인 행위가 아니라, 곧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죄의 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해방의 선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라는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철저히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오직 주께 굴복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거룩한 삶으로 들어오는 즉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거듭나서 거룩하게 된 것은 시작일 뿐이다"(187).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나기"(엡 4:15)까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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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포 1
라파엘 아발로스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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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만일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더 빨리 깨닫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내 삶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1,2권으로 구성된 <그림포>는 악당을 물리쳐 지구를 구하거나, 악당의 손에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흔한 레파토리와 달리, 주인공이 악당의 손에서 구해내려 하는 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그림포>는 변호사이자 법학 교수로 활동했던 스페인 작가 '라파엘 아발로스'의 판타지 모험 소설입니다. 성장 소설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있겠는데, 이 책의 띠지는 "역사 어트벤처"라고 이름 붙여놓았네요. 저는 이런 소설을 한마디로 '착한 소설'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지만 재미있게 잘 읽히면서, 감동적인 교훈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착한' 책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좀 더 세분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림포>는 감동적인 교훈보다는 재밌게 잘 읽히는 소설 쪽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열대야의 더운 열기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을 좋아하는 탐구심 가득한 사람만이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2권, 216).

<그림포>의 배경은 "14세기가 밝아 올 무렵"입니다. 작가가 밝히듯이 "암흑시대에서 벗어나 계몽주의의 빛 속으로 한 걸음씩 다다가기 시작"(1권, 13)한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1313년 음산한 겨울, 프랑스의 한 산악지대에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덜립 아저씨와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림포는 어느 날, 짙은 안개 사이로 눈 속에 파묻힌 시체를 발견합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죽은 남자의 오른손이 마치 죽은 후에도 내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감추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히 주먹을 쥐고 있었던 것"(1권, 21)입니다. 그것은 아몬드 크기의 반짝반짝 빛나는 둥근 돌이었는데, 덜립 아저씨는 그것을 그림포에게 주며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부터 그 돌이 네 운명을 결정짓게 될 거다"(1권, 22). 마치 예언처럼 말이죠. 덜립 아저씨의 예언대로(!) 그 돌은 그림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습니다. 그림포는 운명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림포>는 수수께끼로 가득차 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쏟아지고, '암호'가 등장하고, '수수께끼'를 풀어야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장치들이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암호를 풀어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아낼 때마다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서서히 전체 그림이 완성되어갑니다. 

그림포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돌(철학자의 돌)의 정체는 무엇일까?
유령처럼 눈 속으로 사라져 버린 죽은 기사는 과연 누구일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여,

죽은 기사의 봉인된 서신에 적힌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서신의 수신자인 '아이도르 빌비쿰'이 누구인지,
그리고 교황과 프랑스의 왕이 그토록 탐내는 현자의 비밀이 이 철학자의 돌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그림포는 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가야 합니다.


"진정한 연금술사는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이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법이니까. 그렇게 때문에 연금술사는 언제나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안에 살고 있는 훌륭하고 지혜로운 존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1권, 145).

'우연히' 그림포의 손에 들어오게 된 돌은 그림포의 손에 있을 때에만 기이한 빛을 내뿜습니다. 그리고 "돌은 기적에 가까운 신비로운 힘으로 평범한 소년을 한순간 현자"로 만들어놓습니다(284). 돌을 가진 그림포는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무엇이든 한 번만 읽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교황과 프랑스의 왕 역시 철학자의 돌과 현자의 비밀을 찾으려고 안달이 나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두 사람"이 같은 목표를 위해 손을 맞잡고, 어떻게든 돌을 손에 넣기 위해 공격해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철학자의 돌을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돌을 이용해 모든 연금술사들이 갈망하는 황금을 만들고, 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탐욕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돌'이 진짜 주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황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지혜'입니다.

철학자의 돌을 가지게 된 뒤, 브링크덤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 그림포는 현명한 청년으로 성장해갑니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배우고 발견해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브링크덤 대수도원에서 자연과 우주에 대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얻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점 또한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지식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림포>는 지혜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능력이요, 가장 위대한 활동이라는 거창한 교훈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공부를 하고 무엇인가를 배워가는 행위야말로 얼마나 값지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인지 생각하게 해줍니다. 또 하나, 지혜 자체로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인류를 구원할 축복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자의 비밀'을 찾아가는 <그림포>는 그 비밀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애너그램, 별자리, 비유와 상징 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다만, 그 과정을 이끌어가는 스토리 라인이 생각보다 단순하여 '댄 브라운'의 것에 비하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해리 포터>에 비하면 캐릭터와 모험이 조금 단조로우며, 문학적 완성도가 높았던 <반지의 제왕>에 비하면 대서사적인 감동이 부족한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그러나 재미있고 착한 소설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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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로버츠의 리얼 제자도
밥 로버츠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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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명령, 다시 생각하라!


한국 교회의 제자 운동은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본이 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성도가 되지 못하고,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의 논리가 침투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때문에 우리의 제자 운동은 실패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로 소문난 교회는 많지만, 그 교회로 인해 그 지역 사회가 변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탄식하며, 때문에 한국 교회의 제자 운동은 실패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특정 교회, 소수의 교회 지도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잘못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에 풍요를 허락하셨고, 한국 교회의 세계적인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과 번영에 취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일'에 게을렀습니다. 많은 성도가 '믿음의 눈을 들어' 세상적인 성취와 성공을 바라보느라 하나님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높아진 학력, 넘쳐나는 정보, 풍부한 프로그램으로 무장하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모욕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순수한 의미의 영적 핍박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튀게 사는' 기독교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기독교인들의 요란함이 싫은 것입니다.  

<밥 로버츠의 리얼 제자도>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밥 로버츠 목사님은 교회가 삶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근본적인 변혁을 불러오는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우리의 관심이 겨우 종교적 견해를 바꿨다는 뜻의 '회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합니다. "수 세기 전에는 전 세계의 문제에 개입하는 주된 세력이 교회"였으나, 지금은 교회 안의 교회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에는 세상을 소란하게 하는 세력이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적 사명에 참여하라는 요청에는 남의 일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고통으로 인해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사는 세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습니다. 교회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안들을 어렵지 않게 내어놓으면서도, 현재 그리스도인들은 변화하는 세계의 실상, '세계화'라 불리는 새로운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밥 로버츠의 리엘 제자도>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현재 믿는 자들이, 교회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분석하며, 그 성경적 의미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단순한 회심은 복음 전도의 목표가 아님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곳을 두루 찾아가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소란하게 하고,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며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명령임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각인시켜줍니다. 그런데 왜 곳곳에 십자가를 세운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도 그 도시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까요? 밥 로버츠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복음 전도가 제자를 삼는 일이 아니라 회심자를 만드는 일에 상당히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요지는 한마디로 이것입니다. 설교자와 교회가 더 생긴다고 해서 세상을 요란케 하는 변혁과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신자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제자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 의미의 제자도란 무엇일까 제자가 된다는 건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는 것이다"(30).

어찌 보면, 참 단순한 가르침입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성도들 치고 이 정도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할까요?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는 밥 로버츠 목사님의 '리얼'한 목회 간증에 큰 은혜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하는 간절함,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장벽 앞에 상처받고 좌절하는 모습, 선교사의 뜻을 접고 교회 사역을 시작했으나 "교회 사역의 환멸"을 느꼈다는 고백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현재 내가 처한 삶의 자리, 그 답답함과 너무도 닮아있어서 말입니다. "오히려 자아를 잊어버리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지금 상황도 다스리고 계시며 그분의 뜻대로 나를 이끄실 수 있음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이 제 마음에도 와닿았습니다.

"우리가 진행하는 제자화의 가장 큰 문제는 제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밥 로버츠 목사님은 멘토가 되어준 릭 워렌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목회적 전환'을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목회자로서 "내가 속한 사회를 섬기는 방식"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불신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바꾸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 목회 현장에서 실패와 깊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교회가 선교사라면 어떻게 하겠느냐?"(58) 그 자신이 선교사가 되려고 그렇게 노력을 하고, 프로 목회자가 되기를 꿈꾸면서도 교회 자체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음성을 계기로 밥 로버츠 목사님은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교인들에게 직업적 기술을 활용해 교회를 섬기라고 격려할 게 아니라, 그 기술로 국내외의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게 하고 그것이 교회의 임무라고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60)

밥 로버츠 목사님의 <리얼 제자도>는 프로그램된 제자 훈련이 아닙니다. <리얼 제자도>는 삶과 인생과 세계에 대한 큰 그림입니다. 밥 로버츠 목사님이 소개하는 '앤디의 간증'은 <리얼 제자도>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실패한 가장에서 세계적인 '글로컬'(지역 사회와 세계에서 함께 섬기는) 사역자로 거듭나는 앤디의 극적인 변화는 우리를 전율케 합니다. 예수님의 평범한 제자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반응할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세계를 품습니다. 세계가 변하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리얼 제자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원하는 사람이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리얼 제자도>를 통해 주님이 내게 다시 명령하고 계심을 느낍니다. <리얼 제자도>는 저를 다시 출발선에 서게 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쓸고 지나간 한국 교회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이 책을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과 같이 읽고 나누려고 합니다. 함께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엎드리겠습니다. 성령의 비전을 다시 품게 해달라고 간구하려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내 안에 자라기 시작한 이 목마름을, 이 영적인 갈망을 주님이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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