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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프 2 - 쉐프의 영혼
앤서니 보뎅 지음, 권은정 옮김 / 문예당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1권의 폭로가 충격적이었다면, 2권의 폭로는 감동적이다!
1권이 은밀한 주방의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았다면, 2권은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제목 그대로 쉐프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1권이 사람들은 잘 모르는 주방 세계에 대한 폭로에 가까웠다면, 2권은 요리사로서의 파란만장했던 성장과정(!), 동료에 대한 애정, 요리와 주방장의 '모험 같은 삶'에 대한 후끈한 열기로 가득하다. 1권의 폭로가 충격적이었다면, 2권의 폭로는 감동적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팀워크를 이루어야 하는 주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그곳에서의 스트레스와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 등을 통해 '요리사'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볼 수 있다.
"내게 부주방장은 이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아내와도 같다. 아니, 이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아내보다도 더 가깝다"(75).
나름 '천직'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미치도록 싫어졌던 이유는 '인간 관계' 때문이었다. 아마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는 '인간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방의 세계는 그야말로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협동의 세계이다. 정확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철저한 분업 속에서 '협력'이야 말로 주방의 생명과 같은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정글과 같은 주방의 세계에서 그곳을 지휘하며,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며, 저자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다른 요리사와의 소통이었으리라. 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저자의 고백 속에서, 역시 그답게 거칠지만 그 거친 입담으로 "내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라 고백하는 끈끈한 동료애와 우정이 드러날 때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최고는 어디서고 드러나게 마련이며 그 뛰어난 능력에는 반드시 그만한 보답이 돌아온다"(153).
그럭저럭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흥미를 끄는 싸구려 흥행 요리사도 많지만, 실제로 주방에 매일매일 출근해서 멋진 요리 작품, 가히 혁신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진짜 요리의 달인들이 몇 배는 더 많다고 전한다. 어느 분야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실력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요리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가 하는 조건을 들어보면, 요리사로서 저자가 어떤 자부심과 긍지로 일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비단 요리사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이든 자신의 직업 세계에 적용해볼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자기계발서의 항목보다 더 생생하다!
1. 완전히 헌신하라. "명령에 따르고, 필요하면 명령을 내리고, 불평 없이 그 명령의 결과와 더불어 살아갈 각오를 하라.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따를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길에서 물러나라"(223).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같은 구절이기도 하면서 내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기도 하다!
2. 스페인어를 배워라. 진정한 이 분야의 리더가 되고 싶으면 반드시 배워야 한단다. "이들은 당신의 동료이자 친구이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로, 당신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주면 그들 역시 끝까지 당신 편이 되어줄 것이다. 그들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어라. 그들의 언어를 배워라.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라. 그런 노력은 개인적인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며 직업적으로도 무형의 자신이 될 것이다"(224). 음식만 잘 만든다고 해서 훌륭한 주방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쉐프는 진정한 리더인 것이다!
3. 훔치지 말라. 이것은 업주들이 좋아할 만한 항목이다. 그만큼 윤리의식과 함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4. 절대 리베이트나 뇌물을 받지 말라. 정직성, 신뢰성, 성실성이 주방장의 최고의 자산이란다.
5. 시간을 엄수해라.
6. 절대로 변명하지 말고, 남을 비난하지 말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근무가 없는 날에 매장하라"(228). 참 지독하리만치 철두철미한 책임감이다.
7. 전화를 걸어 아프다는 핑계를 대지 말라.
8. 게으름을 피우거나 농땡이를 부리거나, 손이 더딘 굼벵이는 저리 가라.
9.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 어리석은 행위와 부정한 짓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각오를 하라. "당신은 이 생활의 모순과 불공정함을 참고 견뎌내야 할 것이다"(229).
10. 최악의 상황을 즐겨라. "당신과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타락한 놈이라고 해서 그들과 어울리지 말고 함께 일을 하지도 말고 더불어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 나 역시 지긋지긋한 놈이다"(230).
11.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12. 업주의 이름이 문 밖으로 나가는 레스토랑은 피하라. 이력서에 써넣었을 때 우습게 보일 만한 식당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이다.
13. 이력서에 대해 생각하라. "만일 당신이 지금까지 한 직장에 6개월 이상 붙어 있지 못했다면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훑어보는 주방장의 눈에 당신의 이력서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231).
14. 읽어라.
15. 유머감각을 가져라.
"나는 이 자국이 자랑스럽다"(235).
아스피린을 끼고 살며, 중노동을 방불케 하는 요리사들의 고된 생활, 남들이 쉴 때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그들만의 고충을 그토록 절절하고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뜨거운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요리사로서 그렇게 뜨겁고 치열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살아내었기에 거침없는 폭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내 동종업계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 느끼듯, 나와 악수를 해본 사람 역시 내 손바닥의 못을 대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프리메이슨(회원 간의 부조와 우애를 목적으로 삼은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단의 회원)들의 비밀스런 신호이자, 그 못의 두께와 단단한 정도로 서로가 걸어온 세월의 무게가 고단함을 알아보게 해주는 이력서와도 같다." 예전부터 있던 것들과 새로 생긴 화상들, 그 자국들을 사랑한다는 최고의 요리사. 왜 갑자기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이 연상되는 것일까. 그 손에 새겨진 요리사로서의 흔적을 보며, 이보다 더 뭉클한 인생의 훈장이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