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 - ABC 화가 순으로 보는 마로니에북스 아트 오딧세이 2
스테파노 추피 지음, 한성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서양미술사를 빛낸 서양 화가 인물 백과사전!

 
그림의 관한 몇 권의 책을 읽고 그림에 대해 그래도 꽤 알지 않나 하는 교만함이 살짝 고개를 들 때도 있지만, 아직도 몇몇 유명한 화가의 유명한 작품 이외에는 화가와 그림을 잘 연결짓지 못한다. 오히려 그 몇 권 읽은 책들 때문에 헷갈리 때가 더러 있다. 많이 본 그림인데 화가가 생각나지 않고, 알 것 같은데도 잘 기억나지 않는 화가 이름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마로니에북스가 펴내는 명화에 관한 책들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를 'ABC 화가 순으로 보는' 컨셉이다. '미술사의 결정적 순간을 수놓았던 거장'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나는 첫 장부터 좌절하고 말았다.

피테르 아르첸
프란체스코 알바니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안토넬로 다 메시나 ......

A를 다 지나도록, A를 지나 B로 접어들었는데도, 아는 이름이 없다. 어디 가서 명화를 좀 안다는 말은 아예 말아야겠다. 그런데 ABC 순이라는 이 책, 결정적으로 ABC 순이라는 감이 전혀(!) 안 온다. 화가들의 이름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 해놓고, 영문 표기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차는 "ABC"인데 이름은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 오히려 화가들 이름이 뒤죽박죽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차라리 영문 표기를 먼저 하고 한글로 표기된 이름을 괄호 처리했으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해두어야 원하는 '목차를 보고' 원하는 화가의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찾을 수 있고, 화가의 이름을 부르는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목차가 ABC 순인 것도 확실히 느껴질테니 말이다. 

또 하나, "화가별로 살펴보는 신개념 서양미술사"라고 하는데, '史'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화가의 이름순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대와 화풍을 넘나드는 '목차의 초월성'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극심한 단절(!)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페델코 바로치(우르비노, 1535-1612) 바로 옆에 자리한 '장미셸 바스키아'(뉴욕, 1960-1988)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사를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16)을 만났다가 곧바로 이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과의 예상치 못한 만남 이후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자각하게 되어 1983년 집중적으로 워홀과 협동 작업을 시작했다는 화가"를 만나는 경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분류법, 즉 역사적, 시대적, 국가적, 같은 화풍, 서로의 영향 등 일반적으로 연관성 있는 카테고리로 화가를 분류하거나, 아니면 한 명의 화가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 무엇도 아닌 "화가 이름순"이라는 목차가 페이지를 넘어가면서도 일정한 줄거리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넓은 백사장에서 모래알을 하나씩 집어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어 사전을 펴놓고 'A'부터 단어를 외워가는 막막함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별 다섯을 주는 것은, "화가의 이름순"으로 정리된 서양미술사 책을 한 권쯤 소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책은 보기만 해도 소장 의지가 불타오른다. <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는 "총 301명의 화가들이 남긴 종교화, 초상화, 정물화 속에 엿보이는 그들의 삶과 예술, 그 속에 담긴 주제의식을 통해 그림을 둘러싼 당시 시대상을 조명한다." 이 책을 통해 선이 굵은 화가를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화가의 이름순"이라고 하니, 화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책장을 넘겨가며 눈에 띄는 작품을 만나면, "이것을 그린 화가가 누구지?"라는 자연스러운 물음과 함께 화가의 이름을 머릿속에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 예를 들면, <거울>이라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기괴한 화풍"의 화가 이름이 '주세페 아름침볼도'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강렬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한 번 더 보았다. "그는 화폭에 다양한 사물을 첨가하는 방법을 통해 초상화와 알레고리화를 구성했다. 수세기 동안 그의 양식은 너무 자주 모방됐기 때문에, 때때로 정확한 진위여부 판가름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20세기에 어떤 이들은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추대하기도 했다"(12)는 설명과 함께. <물질>이라는 작품의 '움베르토 보초니'(31)도 새로 기억하게 된 화가의 이름이다(그런데 이름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어줍잖은 허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명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언제나 명화를 감상하는 일이 즐겁다. 세계적인 명화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경외감이 생겨나니 말이다. 상식과 교양으로 읽기 좋은 만큼의 길이를 가진 전문적인 설명이 화가와 그림에 대한 눈을 열어준다. 알면 알수록, 어렴풋하지만 거장의 예술적 영감이 느껴질 때마다, 한 폭의 작은 화면에 담긴 작품 하나 하나가 신비롭기만 하다. 정지된 화면 안으로 잠겨드는 이 마음을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익숙함을 경멸을 불러온다고 하지만, 보고 또 보아도 <미술사를 빛낸 세계 명화>와 만나는 일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지리산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5
김영주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어느 새, 올 여름 휴가철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번잡한 여행이 싫어서 일부러 늦은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여행지'이다. 늘 떠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막상 기회가 주어질 때면 긴장이 된다. 후회없는 여행지를 선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리산>을 펼쳐 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번 여름 휴가지로 지리산은 어떨까?

살을 에는 추위 끝에
살짝 꽃잎을 피운 개나리처럼,
마치 오래 전에 정해진 약속처럼,
지리산은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표지 中에서)


지리산은 그렇게 나에게도 찾아왔다. 며칠 동안 지리산을 마음에 품고 다녔다. 사실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다섯 번째 시리즈인 <지리산>은 '지리산' 자체보다 글쓴이의 글맛이 더 진하게 풍기는 책이다. 그 글맛이 색다르다. 지리산에 관한 여행 정보를 재빠르게 캐낼 요량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가, 내처 눌러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열대야의 더운 열기도 잊게 할 만한 청량함이, 부드럽게 마음을 간지르는 서정성이 나를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지리산 자락이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익숙해지고, 마치 예전부터 사랑했던 그 무엇처럼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모두 그녀의 필력 덕분이리라.

이야기의 절반 가까이를 읽어갈 때까지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 책은 총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이라 이름 붙이고 싶고 지리산 여행, 2부는 지리산 종주 경험, 3부는 여행의 끝자락 같은 여운이 느껴지는 지라산 동쪽편 여행을 이야기한다. 스스로는 이름 붙이고 있지 않지만, 각 부를 시작하는 첫 페이지의 지도를 보면 지리(코스)에 따른 구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 알고 떠나자'를 덧붙여 지리산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알뜰하게 수록해놓았다.

지리산이라고 하면 '노고단'과 '빨치산' 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내게 <지리산>은 어느 새 '살고 싶은 곳'으로 다가온다. 품고 있는 역사, 품고 있는 멋, 품고 있는 이야기가 하도 많아 하루 이틀 여행으로는 다 알 수 없는, 단단이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할 대 탐험지로 다가온다.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신비의 산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정겨움이 있다. 16년 간 잡지사의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도시 생활을 접고 지리산의 한 자락에 삶의 터전을 다시 놓았다는 '지리산 학교'의 교장 이창수 선생님의 표현처럼, 내가 아니라 지리산이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편하게 시작하세요.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이곳 사람들이 다가올 거예요. 지리산이 그렇잖아요. 설악산처럼 멋있다, 빼어나다라는 생각은 잘 안 들지만, 그건 아마 모나거나 날카롭지 않다는 의미와 같을 거예요. 능선 때문인가. 오히려 푸근하고 따뜻하죠. 그래서 지리산을 두고 할머니,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나 봐요. 또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고"(41).

처음엔 이야기에 빠져들며 섣부른 마음이 '무조건 종주'를 외쳐댔으나, 그렇게 시작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세수는 커녕 환경 보호 때문에 소금이 아니면 양치질도 해서는 안 되는 지리산 종주, 글쓴이와 함께 떠난 지리산 원정대가 첫날 대피소에서 나눈 대화가 마음에 남는다(259-260).

"혹시 다음에 지리산 종주 또 하실 거예요?"
"아니."
"저도요."

일단은 지은이가 이미 걸어간 길을 따라, 한국의 아름다운 길 백 개 중 하나라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5.5킬로미터 벚나무 길'과 섬진강부터 걸어보고 싶다. 수달은 수중 생태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면 그들의 몸도 똑같이 오염된다고 한다. 그러니 수달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것은 곧 물이 깨끗하다는 의미라고(118). 그 까칠하고 청결한 수달이 섬진강을 최고로 쳐준다니, 아직도 우리에게 이런 땅이 남아 있나 싶을 만큼 생경하다.

저자가 만난 지리산의 민낯은 이랬다. "표표한 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곧추서 있고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들이 세월의 무게를 겸손하게 드러낸다. 사계절의 변화가 수도 없이 오고 가고, 바람과 눈과 이슬과 태양이 숱하게 들락거리고, 야생의 동물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곳. 이 나라에 변화가 닥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품에 안아 주었던 곳.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무거운 삶의 무게를 덜어 보려 찾아온 이들에게 아낌없이 용기를 주었던 곳. 지리산인 게다"(284). 내가 직접 마주하게 될 지리산은 어떤 곳일까. 나는 무엇을 "지리산인 게다"라고 말하게 될까. 지리산에 가고 싶다. 서둘러, 천천히. 이 책에서 만난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옮겨 앉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행복의 가설 - 고대의 지혜에 긍정심리학이 답하다
조너선 하이트 지음, 권오열 옮김, 문용린 감수 / 물푸레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행복에 관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운 책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이 책의 감수를 맡은 문용린 교수님께서 "한번 읽고 나면, 지적인 뿌듯함도 남기는 책"이라고 하신 뜻을 알 듯하다. "이 책은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행복에 관한 동서양의 지혜를 모으고, 이를 뇌생리학과 인지발달심리학 등 현대과학의 성과와 연결시켜서 행복의 본질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시도한다"(6). 한마디로, (내게는) 어렵다!

(나는 처음 알게 된 비유이지만) 이 책의 저자가 코끼리와 기수의 비유 창안자라고 한다. 코끼리와 기수의 비유를 잠깐 설명하면, 행복을 찾아나선 인간의 마음은 코끼리 등에 올라탄 기수와 같다는 것이다. 기수는 해석자 모듈이며 의식적이고 통제된 생각이다. 이와 반대로 코끼리는 그 외의 모든 것, 즉 직감, 본능적 반응, 감정, 그리고 자동처리체계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육감이 포함된다(46). 문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기수가 코끼리를 모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가 기수를 모는 것이다. 고삐를 코끼리가 쥐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으로 명상, 인지요법, 프로작 등을 추천한다. 그러니까 직감, 본능적, 반응, 감정, 육감 등 의지력만으로는 조절이 불가능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코끼리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끼를 길들여야 하는 이유는 "코끼리와 기수 사이의 긴장과 갈등, 조화와 협력 여부가 인간의 행복 추구에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물어보자.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몇 가지 '행복의 가설'이 있다.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서 온다는 것이 그 하나인데, 이런 행복은 지속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고 연구결과도 이를 확인해준다"(17). 한 가지 재밌는 것은 그동안 많은 종교나 사상이 행복을 '안'에서 찾았다면, <행복의 가설>의 저자는 행복을 '밖'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낳은 사상은 물론, 철학과 문학 분야의 다양한 저작들까지 두로 섭렵한 저자가 행복의 가설을 세우고 행복을 찾아 떠난 여행, 그 여행의 종착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세운 행복의 가설은 이렇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수정된 행복의 가설은, 행복은 사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행복의 조건들을 올바로 정렬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 조건들 중 일부는 내 안에 있다. 바로 내 성격의 각 부분과 차원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다른 조건들은 내 밖에 있다"(402).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외부적인 삶의 조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은 "나 자신과 타인, 나 자신과 나의 일, 나 자신과 나보다 더 큰 어떤 것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설정할 때 가능해진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5, 402). <행복의 가설>은 인류가 세워온 '행복의 가설'을 검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예리하고 깊은 통찰의 과정에 비해 도달하고 있는 결론에서 '조금' 맥이 빠지기도 한다. 행복은 오래도록 누릴 수 있는 '감'이 중요한데, 진정한 행복감은 나 자신과 타인, 나 자신과 나의 일, 나 자신과 나보다 더 큰 어떤 것 사이에 올바른 관계 정립이 갖는 '의미'에서 찾아진다고 들린다. 이 책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행복의 가설'을 검증하는 그 탐구의 과정, 다시 말해, 저자가 새로운 '행복의 가설'을 세우기에 이르는 그 '과정' 자체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가벼운 농담에서 재미를 찾고, 말초적인 자극이 가져다주는 쾌락을 탐하지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기쁨은 이런 것이 아닐 것이다. 어린 자녀가 조막만한 손으로 정성껏 부모님을 위해 만든 작은 종이 상자 하나에서, 우리는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보석 상자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을 느끼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행복감이 아닐까 한다. 명품으로 휘감은 이기적인 삶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이타적인 삶이 더 행복하다는 이 책의 (과학적) '검증'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알긴 아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쉐프 2 - 쉐프의 영혼
앤서니 보뎅 지음, 권은정 옮김 / 문예당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1권의 폭로가 충격적이었다면, 2권의 폭로는 감동적이다!

 
1권이 은밀한 주방의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았다면, 2권은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제목 그대로 쉐프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1권이 사람들은 잘 모르는 주방 세계에 대한 폭로에 가까웠다면, 2권은 요리사로서의 파란만장했던 성장과정(!), 동료에 대한 애정, 요리와 주방장의 '모험 같은 삶'에 대한 후끈한 열기로 가득하다. 1권의 폭로가 충격적이었다면, 2권의 폭로는 감동적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팀워크를 이루어야 하는 주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그곳에서의 스트레스와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 등을 통해 '요리사'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볼 수 있다.


"내게 부주방장은 이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아내와도 같다. 아니, 이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아내보다도 더 가깝다"(75).

나름 '천직'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미치도록 싫어졌던 이유는 '인간 관계' 때문이었다. 아마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는 '인간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방의 세계는 그야말로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협동의 세계이다. 정확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철저한 분업 속에서 '협력'이야 말로 주방의 생명과 같은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정글과 같은 주방의 세계에서 그곳을 지휘하며,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며, 저자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다른 요리사와의 소통이었으리라. 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저자의 고백 속에서, 역시 그답게 거칠지만 그 거친 입담으로 "내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라 고백하는 끈끈한 동료애와 우정이 드러날 때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최고는 어디서고 드러나게 마련이며 그 뛰어난 능력에는 반드시 그만한 보답이 돌아온다"(153).

그럭저럭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흥미를 끄는 싸구려 흥행 요리사도 많지만, 실제로 주방에 매일매일 출근해서 멋진 요리 작품, 가히 혁신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진짜 요리의 달인들이 몇 배는 더 많다고 전한다. 어느 분야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실력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요리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가 하는 조건을 들어보면, 요리사로서 저자가 어떤 자부심과 긍지로 일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비단 요리사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이든 자신의 직업 세계에 적용해볼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자기계발서의 항목보다 더 생생하다!

1. 완전히 헌신하라. "명령에 따르고, 필요하면 명령을 내리고, 불평 없이 그 명령의 결과와 더불어 살아갈 각오를 하라.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따를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길에서 물러나라"(223).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같은 구절이기도 하면서 내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기도 하다!   

2. 스페인어를 배워라. 진정한 이 분야의 리더가 되고 싶으면 반드시 배워야 한단다. "이들은 당신의 동료이자 친구이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로, 당신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주면 그들 역시 끝까지 당신 편이 되어줄 것이다. 그들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어라. 그들의 언어를 배워라.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라. 그런 노력은 개인적인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며 직업적으로도 무형의 자신이 될 것이다"(224). 음식만 잘 만든다고 해서 훌륭한 주방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쉐프는 진정한 리더인 것이다!   

3. 훔치지 말라. 이것은 업주들이 좋아할 만한 항목이다. 그만큼 윤리의식과 함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4. 절대 리베이트나 뇌물을 받지 말라. 정직성, 신뢰성, 성실성이 주방장의 최고의 자산이란다.   

5. 시간을 엄수해라.   

6. 절대로 변명하지 말고, 남을 비난하지 말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근무가 없는 날에 매장하라"(228). 참 지독하리만치 철두철미한 책임감이다.   

7. 전화를 걸어 아프다는 핑계를 대지 말라.   

8. 게으름을 피우거나 농땡이를 부리거나, 손이 더딘 굼벵이는 저리 가라.   

9.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 어리석은 행위와 부정한 짓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각오를 하라. "당신은 이 생활의 모순과 불공정함을 참고 견뎌내야 할 것이다"(229).   

10. 최악의 상황을 즐겨라. "당신과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파렴치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타락한 놈이라고 해서 그들과 어울리지 말고 함께 일을 하지도 말고 더불어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 나 역시 지긋지긋한 놈이다"(230).   

11.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12. 업주의 이름이 문 밖으로 나가는 레스토랑은 피하라. 이력서에 써넣었을 때 우습게 보일 만한 식당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이다.   

13. 이력서에 대해 생각하라. "만일 당신이 지금까지 한 직장에 6개월 이상 붙어 있지 못했다면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훑어보는 주방장의 눈에 당신의 이력서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231).   

14. 읽어라.   

15. 유머감각을 가져라.


"나는 이 자국이 자랑스럽다"(235).

아스피린을 끼고 살며, 중노동을 방불케 하는 요리사들의 고된 생활, 남들이 쉴 때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그들만의 고충을 그토록 절절하고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뜨거운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요리사로서 그렇게 뜨겁고 치열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살아내었기에 거침없는 폭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내 동종업계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 느끼듯, 나와 악수를 해본 사람 역시 내 손바닥의 못을 대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프리메이슨(회원 간의 부조와 우애를 목적으로 삼은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단의 회원)들의 비밀스런 신호이자, 그 못의 두께와 단단한 정도로 서로가 걸어온 세월의 무게가 고단함을 알아보게 해주는 이력서와도 같다." 예전부터 있던 것들과 새로 생긴 화상들, 그 자국들을 사랑한다는 최고의 요리사. 왜 갑자기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이 연상되는 것일까. 그 손에 새겨진 요리사로서의 흔적을 보며, 이보다 더 뭉클한 인생의 훈장이 또 있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쉐프 1 - 쉐프의 탄생
앤서니 보뎅 지음, 권은정 옮김 / 문예당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주방문은 열렸다, 주방의 일급비밀을 폭로하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가급적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를 주문하지 말라!" 중국 음식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 지인의 조언이다. '고급' 중식당이 아닌 곳에서는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 주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재료 회전이 느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선한 해산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또 하나, 집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내 친구는 절대로(!) 김밥을 사먹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푹푹 찌는 무더위에 김밥을 먹는 것은 김밥이 아니라 대장균 덩어리를 먹는 것이라며 말이다. 

가끔 TV에서 한 번 손님상에 올랐던 재료(반찬)를 재활용하는 식당이나 끔찍할 정도로 비위생적인 주방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일부(!) 식당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쉐프>를 읽고 나서는, 외식을 할 때마다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음식이 이 상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을지 말이다. 원산지는 둘째 치고, 재료들을 손질하고 조리하는 과정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특히 요리에서 홍합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손질은 잘 했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으니 설마 설마 하며 외식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27년을 미국의 저명한 식당들에서 주방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맨해튼의 별 두 개짜리 레스토랑에서 수석 주방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저자 앤서니 보뎅은 <쉐프> 1, 2권을 통해 "식당의 급소라 할 수 있는" 주방의 일급비밀을 폭로하고 있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최장기 베스트셀러이자 세계 18개국에 번역 출간될 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표지와 제목만 보고 이 책이 '소설'이라고 덜컥 혼자 결론을 지어버렸다. 책을 받아 '이야기를 시작하며'를 읽을 때까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한 소년이 요리사를 꿈꾸게 된 추억담을 시작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주방의 진실과 마주하며 적잖이 당황했다. <쉐프>는 소설이 아니라, 르뽀이다!


"TV 스타 쉐프의 팬들, 그리고 소위 식도락가들은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유니폼을 입고 어느 때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대령하길 즐겨하는 사랑스럽고 껴안고 싶은 존재로 주방장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11).

<쉐프>의 저자 앤서니 보뎅은 주방의 진실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전혀 다르다. TV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낭만적인 열기로 가득한 주방과는 달리. "매일매일 쏟아져나오는 주문"에 맞춰 "똑같은 방식으로 요리를 해서 담아내는" 실제 요리의 세계는 고달프고 힘든 작업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유니폼"을 입은 멋진 쉐프를 상상하지만, 앤서니 보뎅은 음식 얼룩으로 더러워진 유니폼을 입고 쉴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느라 굵은 땀방울을 줄줄 흘리며 일하는 진짜 주방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그저 식당의 급소이자 가장 후미진 구석, 그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주방의 진실에 대해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21).

"일어나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한두 시간을 열나게 자판을 두드렸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써 갈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거침이 없다. 문 닫힌 뒤쪽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요리의 과정과 군대처럼 질서정연하면서도 난장판인 주방의 '하급문화'가 만들어내는 은어들, 스타 쉐프들에 대한 험담까지 거침 없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폭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요긴한 주방 도구들에 대한 설명, 필수적인 양념들에 대한 설명, 식당 오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하는 '경고', 성공적인 식당 운영의 법칙까지 다룬다. 식당과 주방에 관한 것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공개하기로 작정한 사람 같다.

그러나 역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 할 수 있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관한 것들이다. "먹기 전에 의심하라"(115-133)는 부분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외국 여행을 갈 수도 있는 일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저자가 폭로하는 몇 가지 규칙 중에 '월요일 생선요리 주문은 미친 짓'(116)이라든지, '웰던'을 주문하는 것은 주방장의 쓰레기를 먹어치는 행위(124)라든지 하는 것은 다른 음식을 주문할 때도 응용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규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갈한 그릇에, 정성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정갈하게 담아낸, 그런 음식을 먹고 싶다면 엄마에게 가야할 것 같다. 일급 요리사인 저자도 장모님의 소박한 음식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앞으로 소스에 버무려져 나오는 샐러드는 절대 피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