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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천하 손자병법 ㅣ 시그마북스 동양고전 시리즈
도설천하·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 엮음, 이현서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손자병법>이 전하는 이기는 기술!
<도설천하 손자병법>을 읽고 있으니 옆의 동료가 한마디 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전쟁을 참 좋아해요!" 나는 "5천 년 역사 동안 수많은 외침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침략 전쟁을 한 적이 없을 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후예인데 무슨 말을 그리 살벌하게 하느냐?"고 교과서적인 반론을 펼쳤다. 그랬더니 그 동료가 말하기를,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우리가 썼던 말들을 보란다. '허정무 사단', '태극 전사', '원정 16강', '삼바 군단', '무적함대', '오렌지 군단', '전차 군단' 등 우리는 축구를 운동으로 보지 않고 전쟁으로 여긴다는 증거를 들이댄다. 뿐만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조폭과의 전쟁, 교통사고와의 전쟁, 귀성전쟁, 입시전쟁, 심지어 살과의 전쟁 등 사회 곳곳에 전쟁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쟁 같은 사랑'이라는 유행가 가사까지, 삶이 온통 전쟁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병서라는 <손자병법>이 지금까지 유효하게 읽히는 이유도 그것일까. 종전이 아니라 휴전 중인 한반도에서, 우리는 매일 무엇과 치열한 전투를 하며 살아가니 말이다.
<손자병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영학에서 다루는 '조직 리더십' 때문이다. 몇 해 전, 경영학 과목을 수강하며 '조직 리더십'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업의 조직 경영을 연구하는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손자병법>이 전하는 '군대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Organizational Leadership>이라는 책을 보면, <손자병법>이 전하는 전쟁의 기술과 전략에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예를 들면, <손자병법>은 "백만 대군의 생사가 한 사람(리더)에게 달렸다" 하여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전한다. 나아가, 적의 퇴각로를 열어두어 퇴각하는 적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은 '협상'의 기술에서 응용한다. 파부침주(破釜沈舟)라 하여 생존을 위해 싸움에 헌신하도록 아군의 퇴각로를 차단하는 것은 고용인들에게 상당량의 중요 주식 지분을 보유하게 하여 헌신된 노동력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응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산전수전(山戰水戰)에서는 현장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으라는 교훈을 길어올린다. 한마디로, 동양의 고전의 가치를 서양의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앞서나가는 학문 중에 하나라고 자부하는 분야에서 말이다.
시그마북스의 <도설천하 손자병법>은 구성이 독특하다. '손무'의 것이냐, '손빈'의 것이냐 하는 저자 논란이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이 책에는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손자병법>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손빈병법>까지 수록하였다. 관심 있는 독자는 두 <병법>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본문은 '개론적인 설명'과 함께 한문으로 쓰인 '원문'을 그대로 실어주고, 이어서 한글 '음독'(!)을 달고, '주석'까지 달아, 원문을 '해석'한 후에, '해설'은 물론 '경전고사'라 하여 역사에서 실제 사례까지 제시하며 그 '고사분석'까지 해주고 있다. 한문을 몰라도 리듬 있게 음독을 읽으면 고전을 직접 있는 맛을 느낄 수 있고(^^;), 원전과 원뜻은 물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교훈과 다양한 읽을꺼리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도설천하 손자병법>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원문만 보면 <손자병법>은 생각보다 얇은 책이다.

"전쟁에서 최상책이란 지략으로 적을 굴복시켜 승리를 거두는 것이며, 그 다음이 외교수단을 통해 적을 이기는 것이고, 그 다음 방법은 무력으로 진공하는 것이며, 최하의 방법은 적의 성지를 공격하는 것이다"(70).
<손자병법>은 전쟁을 위한, 다시 말해 잘 싸우기 위한 전략(기술)이 아니라, 잘 이기기 위한 전략(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손자병법>은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전쟁 없이 적군의 싸우려는 의지를 꺽으며, 가장 손실이 많고 위험한 정면 충돌을 피하고,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싸우지 말고, 얻을 게 없으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전략이 그것을 말해준다. 전쟁에서 이겨도 아군의 손실이 따르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기되 '잘'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싸움을 하며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일보다 더 미련한 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간혹 너무 화가 나면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어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의 파괴적인 싸움도 불사하게 될 때가 있다. <손자병법>은 '너 죽고 나 죽자'는 물론,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싸움도 상책이 아니라고 한다. 넓은 안목으로 봤을 때, 적군의 손실은 곧 나(아군)의 손실이 된다는 것이다. "적국이 온전한 채로 항복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69)이다. 승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적국의 손실마저 최소화 하려 노력해야 한다. 전쟁을 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고 상생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손자병법>은 오늘날 전쟁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 필요한 전략일지 모르겠다.
<손자병법>은 본디 전쟁의 전략과 기술에 관한 책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교훈은 우리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과 응용이 가능하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기업의 조직 경영과 리더십에서는 물론, 외교(협상), 인간관계, 자기계발의 측면에서도 귀 기울여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