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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 변화와 혁신의 천 년 역사
이노우에 고이치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바꿨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의 흥망사!
"우리는 보통 로마제국의 멸망이나 로마 문명의 멸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4-5세기의 '게르만족의 침입'이나 '로마제국의 동서 분열',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사건을 떠올리지 1,000년 후인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언제 멸망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엄밀한 대답은 1453년 5월 29일이다"(14).
'비잔틴제국'이라는 말은 후대에 역사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비잔틴 제국은 동서로 분열된 로마 제국 중 동로마제국을 가리킨다. 비잔틴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이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서방의 판도를 잃었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가 그리스 식민지인 비잔티온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한 제2의 로마 수도를 세운 뒤, 이곳을 중심으로 1,000년에 걸쳐 존속한 제국이다. 초대 황제인 아우쿠스투스 이후 로마 황제의 칭호는 끊임없이 계승되었고,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까지 이어졌다. 그의 죽음으로 로마 황제의 계승자는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의 저자 이노우에 고이치는 고대 로마의 멸망은 사실상 비잔틴제국이 멸당한 1453년임을 환기시킨다. 이 책의 제목처럼 비잔틴제국은 '살아남은 로마'인 것이다.
"비잔틴제국의 역사는 단순히 고대 로마제국 이후의 쇠퇴 과정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비잔틴제국의 1,000년의 역사를 독자적인 문명을 가진 새로운 국가의 생성, 발전, 쇠망의 역사로서 고찰하려고 한다"(15).
이 책은 비잔틴제국이 '살아남은 로마'로서 고대 로마의 명백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비잔틴제국은 로마제국과 구별되는 전혀 다른 나라이었음을 논증한다. 고대 로마제국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 것이 바로 '비잔틴제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로마제국의 쇠망사 안에 포함된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과 구별되는 비잔틴제국의 1,000년의 역사를 살폈다.
"세계의 역사에서 1,0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별로 없다. 비잔틴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 지역으로 많은 민족이 오고가는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와 경쟁하면서도 비잔틴 제국은 1,0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역사의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19).
저자가 비잔틴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1,000년에 걸친 존속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데 있다. 저자는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주위 여러 국가가 흥망을 거듭하는 사이에 비잔틴 제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비잔틴제국 1,000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비잔틴제국의 흥망사를 살피고 있는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의 논점을 정리하자면, 비잔틴제국이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그리스도교와 결합한 로마라는 이념이다. 로마라는 이념과 그리스도교가 융합하며 정신적인 면에서 1,000년의 역사를 지탱해왔다는 것이다. "'로마'라는 의식은 비잔틴제국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였던 '로마'의 의식만으로는 제국 존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족의 멸망 위기 속에서 일어난 유대교, 그것을 계승한 그리스도교가 '로마' 의식과 결부되면서 수도를 상실한 비잔틴제국의 존손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216-217). 저자는 '로마'라는 의식을 가지면서, 특별히 정책적인 면과 법률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확실히 드러나는 비잔틴제국의 '유연성'에 주목한다.
둘째는 실용주의라 부를 수 있는 '열린 사회'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일개 농민에서 제국의 최고 지위까지 올라간 예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나 있었다. 비잔틴제국은 혈통이나 집안의 배경과 관계없이 실력과 운이 있으면 황제가 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다. 이것 역시 비잔틴제국이 지닌 활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78). 저자는 비잔틴제국이 열린 사회였다는 점에 주목하며, 특별히 여성의 지위에 관심을 갖는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하여 비잔틴제국의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입증한다.
셋째는 '새로운 로마'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사람들은 영원한 도시였던 로마의 함락을 보면서 자신들의 도시야말로 '새로운 로마'이며 로마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74). 이로써 '로마'라는 이름과 이념을 계승하면서도, 로마제국의 유산을 버리고 새로운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높은 교육 수준과 지식인의 역할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비잔틴제국의 생성과 발전과 쇠망이라는 흥망사를 읽으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독자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인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제국의 전통과 이념을 존중했다. 비잔틴 제국이 1,000년 동안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어디까지 이념대로 갈 수 있을까, 어디쯤에서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할까, 이념을 그대로 두고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각 시기마다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 위기에 대응하고 변해가는 것, 다시 말해 혁신이야말로 제국 존손을 위한 참된 조건이었던 것이다"(246).
이 책의 저자는 비잔틴제국이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혁신'이라고 정리한다. 로마제국이 비잔틴제국으로 변화한 이유는 심각한 위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고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로마'라는 정통적인 이데올리기를 유지하면서도, 위기에 대응하는 그들의 '유연성'이 비잔틴제국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보수성과 유연성, 비잔틴 제국 1,000년의 역사는 표면적인 이념인 '로마'를 지키면서 계속해서 밀려오는 안팎의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살아남은 역사였다"(22).
이 책은 '비잔틴제국'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애정이 진하게 뭍어난다. 상당히 '감성적인 역사책'이라는 느낌은 아마도 저자의 그러한 애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서적이면서도 어딘지 허술해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러한 애정에 입각한 저자의 추측성 해석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민족이 오고가는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한 비잔틴제국의 혁신과 유연성이 '1,000년의 역사'라는 기적을 낳았다고 하지만, 역으로 생각할 때 그들의 지정학적인 요구가 벌써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비잔틴제국은 지리적으로 그러한 특수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이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이미 안정, 보수화, 폐쇄 상황을 고집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문별이 교차되는 항구 도시는 항구 도시로서의 공동적인 특수성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멸망하고 마는 것은 어느 문명,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럽 중심적인 사관에서 볼 때, 비잔틴제국은 "아랍과 투르크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파제였으며,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보존하고 유럽으로 전해 르네상스에 공헌하고, 그리스 정교와 문자를 동구의 슬라브계 여러 민족에게 전파해 그들이 문명을 건설하는 데 기초를 만들어주었다"(241)는 데 의미를 둔다. <살아남은 역사, 비잔틴제국>은 이러한 서구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나름의 독자적인 비잔틴역사에 대한 견해를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집필되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비잔틴제국의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서구 중심의 사관을 벗어난 독자적인 역사적 견해라고 하기에는 결론적으로 차별화된 논지를 세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비잔틴제국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비잔틴제국'의 자리를 찾아주려 애쓴 저자의 애정에 이 책의 의의를 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