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백과사전 - 광수의 뿔난 생각
박광수 글.그림 / 홍익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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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급'이 다른 사전, '급'이 다른 생각!

 
조선일보라는 신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때, 오로지 '광수생각'을 보려고 그 신문을 구하던 때가 있었다. 그 생각이 주는 '여운'과 '느낌'이 좋았다. 그 '광수생각'의 박광수가 '사전'을 하나 편찬했다. 고급스러운 겉모양이 아깝지 않을 만큼 기발하고 멋진 이 사전의 이름은, '광수의 뿔난 생각'이라는 부제를 단 <악마의 백과사전>이다. <악마의 백과사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의 삐딱(!)한 시선을 염두에 둔 것인가? 그의 사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투영한다.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작가는 자신만의 사전을 새롭게 편찬하며, 세상을 다르게 정의내리고 있다. 'ㄱ'에서 시작하여 'ㅎ'까지 이어지는 그의 사전에는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가 철학은 물론, 세상을 비틀어보는 유머가 빛을 발한다. 몇 가지만 인용해보면 이렇다.

가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더 빛을 발하는 것. 교통 흐름이 원할하지 않는 사거리의 교통경찰 아저씨처럼,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라면 속의 떡처럼, 무인도에서의 불티나 라이터처럼"(24).

, "내가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밀고 가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꿈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 전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자기 것인 양 믿고 산다"(48).

달력, "1년이 단지 365일로만 한정되어 있다고 믿는 비관주의자들이 벽에 걸고 보는 종이시계. 반면에 낙관주의자들은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희망을 본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로 하여금 '빨간 날'만 목 빠지게 찾게 한다는 점에서 색명을 촉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함"(71).

샐러리맨,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영혼을 내던진 육탄용사들. 자신은 회사를 위해 100점 만점에 200점짜리 일을 하는 데도 50점짜리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늘 투덜대지만, 반면에 경영자들은 100점 만점에 50점밖에 일을 못함에도 200점의 급여를 지출한다며 항상 투덜댄다"(155).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발상으로 세상을 비틀어 보기도 하고, 혼자 책을 읽다가 키득키득거릴 만큼 재밌는 <악마의 백과사전>을 읽으며 내 마음에 가장 깊이 와닿은 한 가지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배려'라고 대답하고 싶다. 삶과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말이다.

배려 [配廬 , consideration]
누구나 충분히 갖고 있다고 스스로 믿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가장 인색해지는 것.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진정한 배려란 용기와 동의어라고 말한다.

<악마의 백과사전>은 '배려'를 정의하며, 저자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 하나를 들려준다. 오줌을 싼 제자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도록 제자를 혼내는 척하며 교실 한쪽에 있던 양동이를 들고 와서 물을 확 끼얹어버린 그의 선생님(140-142)! 나는 '광수의 뿔난 생각'을 담은 <악마의 백과사전>이 바로 그 선생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고백하기를 "나는 마음이 무척 약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이 사람이 용기(!)를 내어 자기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바로 '배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악마의 백과사전>은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예의를 갖추는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

'광수생각'의 중심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과 옳은 것에 대한 끈질긴 투쟁이 보인다. 쓰라리고 아파도 그 아픔을 견디며 모래 한 알을 제 품에 품어 진주를 만들어내는 조개처럼, 광수 그의 생각은 제 살 속으로 파고드는 생존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어냄으로써 빚어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말만 번지르르한 지식인의 일침에는 거부감이 들고, 달변가의 궤변에는 쓴웃음이 나지만, '광수의 뿔난 생각'은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또 하나,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 '광수생각'이 원래 이렇게 유머러스했던가? 도처에 난무하는 가벼운 농담을 향해 이렇게 외쳐보고 싶다. 농담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농담이 좋다!

덧붙여, 내가 살아온 경험과 배움을 토대로 나도 사전 만들기에 도전한다면 나는 어떤 단어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본다. '광수'처럼 나도 세상을 해석하는 나만의 사전을 가질 나이가 된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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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할 사랑의 진실 42
고든 리빙스턴 지음, 공경희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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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 뒤에는 환멸이라는 그림자가 존재한다"(127).

 
지금 "이 사람과 계속 사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망설이는 연인이 있다면, 이 책이 크게 도움이 될 듯하다. 정신과상담의인 저자 고든 리빙스턴은 "행복한 관계를 위해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할 지혜들"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우리의 행복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6-7). 좋은 관계가 행복한 삶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인간 관계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지혜이다. 마치 자녀에게 평생 함께할 인생의 짝(배우자)을 선택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써내려간 느낌을 준다.

저자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에 하나는 "상대의 삶과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84)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착각은 사랑의 힘을 과대평가해서 갖게 되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사랑은 마스터키가 아니다!"(33)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어려움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거기서 사랑의 의미를 찾으려고"(33)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과상담의인 저자는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사람의 성격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습관적인 방식은 고치기 어렵다"(40). 성격은 생각처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랑과 격려로 상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낭만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은 "정신과상담의적 관점에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인간의 성격이나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습관적인 방식 중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정리해 경각심을 심어준다. 예를 들면, 우울함이나 불안함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염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지속할 경우 삶의 고단함과 상대에 대한 혐오만이 남겨질 위험이 크다(33).

사랑에 빠져들면 한동안은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마법은 서서히 풀리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피곤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룬 후에,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이 늦어버린 때에 말이다. 저자는 정규교육 과정 중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과목'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하고 사회에 나와서 각자의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높은 이혼율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사람과 살 것인지 결정하려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행복은 현실과 환상을 얼마만큼 잘 구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132).

이 책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선택'에 초점이 맞추져 있다. 저자가 잔소리 처럼 반복하는 메시지는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성격과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누구도 타인의 뿌리 깊은 사고방식과 행동을 교정하지는 못한다"(87)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관계 맺을 사람들을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로움을 일상처럼 껴안고 살다 보면, 어떤 날은 세상에 별 사람 없다고 자조하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래도 나에게 꼭 맞는 환상의 짝꿍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대충 사랑과 타협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저자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나와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격려한다.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던 시절에는, 내 눈에만 보이는 후광과 고동치는 내 심장으로 내 사랑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감정적인 선택의 결과는 굉장히 참혹할 수 있다"는 이 책의 경고 덕분에 나는 크게 뜨고 있는 눈을 더욱 크게 뜨게 되었다. 눈높이를 무릎 아래고 내리고 한쪽 눈을 질끈 감아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주변의 충고 따위는 잊으리라. 여기서 하나더 챙겨야 할 교훈은,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그 좋은 사람에게 걸맞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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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풀리는 내 인생 - 무의식의 힘으로 인생을 바꾸는 기술 EFT
최인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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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료하는 신흥종교?? 책의 정체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잡탕 같은 책이다. 장자의 철학 + 심리학의 무의식 + 한의학의 경락 + 그리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믿음의 법칙(확언)까지 모두가 이 책에서 만나 하나로 통합되었다. 고등학교 때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친구가 실제로 몸에 병을 얻어 대수술을 하고 요양을 하러 떠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정신(감정, 마음)이 육체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그 무서운 힘을 잘 알고 있다. 몸이 아파 한의원을 찾았던 한 지인은 울분을 마음에 쌓아두지 말고 표현을 통해 밖으로 표출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펑펑 눈물을 쏟기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은 몸을 지배하고, 그러한 감정에 지배당한 약한 육체는 다시 마음의 병을 더 깊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했던 <시크릿>이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꿈꾸는 다락방>과 같은 책은 우주의 에너지를 모으거나 생생하게 꿈을 그리는 믿음의 법칙, 다시 말해 마음의 힘을 통해 ’꿈’을 이루는 인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술술 풀리는 내 인생>은 그런 책과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차원을 이야기한다. 장자의 철학에 영향을 받고 있는 <술술 풀리는 내 인생>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마음의 ’자유’라고 생각된다. <술술 풀리는 내 인생>은 경락을 두드려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며, ’확언’이라는 기술을 통해 무의식의 힘을 스스로 통제하여 인생의 막힌 곳을 뚫는 기술을 소개한다. 막힌 것을 뚫어 마음의 자유를 얻으면 애쓰지 않아도 ’다’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제목 그대로 술술 풀리는 인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를 정의하자면, "마음을 치료하는 침술이며 몸을 치료하는 침술이며 침을 사용하지 않는 침술이다"(16)고 한다. EFT는 침을 쓰지 않고 한의학의 경혈(타점, 침놓는 자리)를 두드려서 효과를 낸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두드리기 타점’을 두드리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육체 증상이 좋아진다고 한다. 이 책은 부록으로 ’쉽게 따라하는 EFT’라는 제목의 CD를 제공하고 있는데, 실제로 ’불안즉석해결 사례’라는 동영상을 보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데, 무슨 마법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EFT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경혈에 감정을 치료하는 탁월한 기능이 있음’이 발견되면서부터라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경락이 막혀서 생기게 되고, 해소되지 않은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은 반드시 몸에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부정적 경험이 누적되면 부정적인 신념이나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EFT는 경락을 두드려서 막힌 곳을 소통시킴으로 몸에 나타난 신체적 증상은 물론 부정적 경험에 결부된 부정적 감정까지 지우는 기술이다. 

어찌보면 접근하는 이론은 잡탕 같은 책이지만, <술술 풀리는 내 인생>이 가진 큰 차별성은 ’한의학의 경락’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경혈을 손으로 두드림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인드콘트롤’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치료하는 이런 직접적인 기술은 처음 접해보는 듯하다. 또 하나 이 책이 가진 차별성은 확언을 통해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작업은 단순해보이지만 심리학적으로도 상당히 의미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이 책이 말하는 EFT 기술은 단순하다. 그러나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장자의 철학을 기반으로 ’마음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마치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기라도 할 듯한 기세이다. 마치 목사님이 성경을 설교하고, 스님이 법전을 설파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해탈의 경지를 꿈꾸는 것은 좋은데, 삐딱한 종교 비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솔직히 읽기 좀 불편했다. 왜 나는 이 책을 읽는데, 신흥종교의 새로운 교리를 읽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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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퍼홀릭 2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 - 합본 개정판 쇼퍼홀릭 시리즈 2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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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개미와 베짱이?
칙릿소설의 발랄함과 해학적 풍자가 돋보이는, 쇼퍼홀릭의 성장 보고서!

 
<개미와 베짱이>이라는 이솝 우화를 현대 버전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이야기가 있다. 여름 내내 일만 했던 개미는 몸에 골병이 들어 겨울 내내 앓으면서 지냈고, 노래하기를 즐겨했던 베짱이는 음반을 발표하여 대박이 났다는 것이다. (다른 버전에서는 베짱이의 두 번째 앨범이 망해서 베짱이는 다시 쪽박을 차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도 한다.) 이러한 해석에는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당연하게 여기지는 것을 비틀어 생각하는 해학적 묘미가 들어 있다. <쇼퍼홀릭2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는 <개미와 베짱이>의 현대 버전 같은 재미를 선사해준다. 주인공 레베카에게 구제불능의 '쇼핑 중독'은 더 이상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디딤돌되어 인생의 반전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 책은 <쇼퍼홀릭> 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인데, 아직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시리즈와의 내용적 연관성은 잘 모르겠다. 다만, 1권을 읽지 않고 2권을 읽었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며, 시즌제로 제작되는 드라마처럼 완성도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전할 수 있다.

칙릿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중에 <쇼퍼홀릭2>에 등장하는 주인공 레베카 만큼 대책 없는 아가씨가 또 있을까 싶다. 쇼핑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와는 멀어도 한 참 멀리 떨어진 세계에 사는 아가씨이다. <쇼퍼홀릭2>의 저자는 명품에 열광하고, 쇼핑을 사랑하는 여성의 심리를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게 잘 묘사해주고 있다. 못말리는 쇼핑 중독에, 대책 없이는 사고뭉치에, 쾌활이 지나친 즉흥적인 낙천성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천진무구하기까지 한 레베카! "필요한 것만 사라"는 새로운 좌우명에도 불구하고, 근사한 브랜드와 상점을 볼 때마다, "아, 난 몰라!"를 외쳐대며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그녀! 솔직히 나는 그녀가 좀 짜증스러웠다. 그 '처참한 하루'가 시작되기 직전, 내용의 2/3를 다 읽어갈 때까지 말이다.

 레베카 불름우드는 <모닝 커피>라는 아침 방송에 고정 출연하며, "돈을 돌보세요! 그러면 돈이 여러분을 돌봐줄 거예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재테크 상담가이다. 뉴욕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야심찬 연인 루크를 따라 뉴욕에 갈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인생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물론 각종 청구서와 독촉장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주거래 은행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약간(!)의 위험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뉴욕의 방송관계자들이 관심을 내보이고 있으니 이제 곧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모두 갚아버리면 된다! 아무렴! 그러니까 구겐하임 미술관이 아니라 구겐하임 미술관 상점에서 꽤 예쁘고 훌륭한 문화를 접하고, 멋진 상점들이 즐비한 소호에서 쇼핑의 자유를 만끽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의 일종으로 산 베라 왕 드레스를 입고 루크와 함께 멋진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뉴욕이야말로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레베카는 그녀의 쇼핑이 "이렇게 끔찍한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과 만족감으로 충만했던 '그 밤'이 지나고, 수치심이라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채소가 되어버린 '그 날'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재테크 상담가의 무분별한 쇼핑과 약간(!)의 빚이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기회를 차버리고,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그녀는 물론, 루크의 것까지!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멀미기가 느껴진다. 처음 살 때는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저 모든 것들이, 나를 그렇게 신나게 했던 저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냥 산더미 같은 쓰레기 주머니들로 보인다. 대체 어디에 뭐가 들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건 다만...... 잡동사니일 뿐이다. 태산같이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395-396).

이 책의 2/3에 도달할 때까지, 재미는 있지만 한심하게 생각되는 레베카에게 애정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이 책이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망쳐버린 그날, 레베카와 루크의 대화를 통해 '쇼핑 중독'의 문제를 '일 중독'의 문제와 대비하여 풀어가는 작가의 의도를 눈치채고 나서는 갑자기 이 책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좀 철이 없는 정도가 아닌 레베카의 무책임한 쇼핑만큼이나, 피 똥싸게 일하며 성공에만 매달리고 있는 루크의 냉정한 생활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일까.

더 이상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밑바닦까지 곤두박칠 치게 된 레베카가 막바지에 멋진 반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그녀의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힘들어도 웃게 해주는 따뜻한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레베카는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빛나는 우정에 힘입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킨다. 그녀는 진짜로 모두에게 "본때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평소에도 매력이 넘치며 매사에 냉정하고 철두철미해 보이는 루크였지만, 그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그의 옆에는 아무도 있어주지 않았다. 동료는 그를 배신하고, 친어머니는 그에게 관심조차 없다.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주었다. "쇼핑밖에 모르는 삶과 성공밖에 모르는 삶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것은 레베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함부로 유혹에 빠지지 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고. 그 말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일, 내 인생, 내가 진정 무엇을 해서 먹고살기 원하는지에 대해서"(540).

다른 사람의 조언에 귀기울일줄 알았던 레베카는 자신의 무책임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레베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레바카의 어머니는 레베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런데 얘, 세상에 넌 대체 어떻게 돼먹은 애가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니?"(540). 이보다 더 유쾌하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격려가 또 있을까 싶다.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립해서 살고 있는 레베카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루하루가 완전히 전쟁터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바쁘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힘에 부치면 부칠수록, 일이 닥치면 닥칠수록, 더 바쁘면 바쁠수록 여기서 일하는 게 더 좋다"(536).

어릴 적 즐겨 읽었던 하이틴 로맨스라는 소설은 항상 마지막 열 장 정도를 읽을 때가 가장 신이 났었다. 모든 갈등이 시원하게 풀어지고, 오해와 갈등으로 멀어졌던 주인공들이 극적으로 다시 만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을 속삭이며 끝을 맺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결말이 바로 그런 즐거움을 선사한다. 결말이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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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 변화와 혁신의 천 년 역사
이노우에 고이치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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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바꿨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의 흥망사!

 
"우리는 보통 로마제국의 멸망이나 로마 문명의 멸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4-5세기의 '게르만족의 침입'이나 '로마제국의 동서 분열',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사건을 떠올리지 1,000년 후인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언제 멸망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엄밀한 대답은 1453년 5월 29일이다"(14).

'비잔틴제국'이라는 말은 후대에 역사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비잔틴 제국은 동서로 분열된 로마 제국 중 동로마제국을 가리킨다. 비잔틴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이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서방의 판도를 잃었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가 그리스 식민지인 비잔티온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한 제2의 로마 수도를 세운 뒤, 이곳을 중심으로 1,000년에 걸쳐 존속한 제국이다. 초대 황제인 아우쿠스투스 이후 로마 황제의 칭호는 끊임없이 계승되었고,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까지 이어졌다. 그의 죽음으로 로마 황제의 계승자는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의 저자 이노우에 고이치는 고대 로마의 멸망은 사실상 비잔틴제국이 멸당한 1453년임을 환기시킨다. 이 책의 제목처럼 비잔틴제국은 '살아남은 로마'인 것이다. 

 
"비잔틴제국의 역사는 단순히 고대 로마제국 이후의 쇠퇴 과정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비잔틴제국의 1,000년의 역사를 독자적인 문명을 가진 새로운 국가의 생성, 발전, 쇠망의 역사로서 고찰하려고 한다"(15).

이 책은 비잔틴제국이 '살아남은 로마'로서 고대 로마의 명백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비잔틴제국은 로마제국과 구별되는 전혀 다른 나라이었음을 논증한다. 고대 로마제국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 것이 바로 '비잔틴제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로마제국의 쇠망사 안에 포함된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과 구별되는 비잔틴제국의 1,000년의 역사를 살폈다.  

 
"세계의 역사에서 1,0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별로 없다. 비잔틴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 지역으로 많은 민족이 오고가는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와 경쟁하면서도 비잔틴 제국은 1,0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역사의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19).

저자가 비잔틴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1,000년에 걸친 존속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데 있다. 저자는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주위 여러 국가가 흥망을 거듭하는 사이에 비잔틴 제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비잔틴제국 1,000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비잔틴제국의 흥망사를 살피고 있는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의 논점을 정리하자면, 비잔틴제국이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그리스도교와 결합한 로마라는 이념이다. 로마라는 이념과 그리스도교가 융합하며 정신적인 면에서 1,000년의 역사를 지탱해왔다는 것이다. "'로마'라는 의식은 비잔틴제국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였던 '로마'의 의식만으로는 제국 존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족의 멸망 위기 속에서 일어난 유대교, 그것을 계승한 그리스도교가 '로마' 의식과 결부되면서 수도를 상실한 비잔틴제국의 존손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216-217). 저자는 '로마'라는 의식을 가지면서, 특별히 정책적인 면과 법률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확실히 드러나는 비잔틴제국의 '유연성'에 주목한다.

둘째는 실용주의라 부를 수 있는 '열린 사회'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일개 농민에서 제국의 최고 지위까지 올라간 예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나 있었다. 비잔틴제국은 혈통이나 집안의 배경과 관계없이 실력과 운이 있으면 황제가 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다. 이것 역시 비잔틴제국이 지닌 활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78). 저자는 비잔틴제국이 열린 사회였다는 점에 주목하며, 특별히 여성의 지위에 관심을 갖는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하여 비잔틴제국의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입증한다.

셋째는 '새로운 로마'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사람들은 영원한 도시였던 로마의 함락을 보면서 자신들의 도시야말로 '새로운 로마'이며 로마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74). 이로써 '로마'라는 이름과 이념을 계승하면서도, 로마제국의 유산을 버리고 새로운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높은 교육 수준과 지식인의 역할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비잔틴제국의 생성과 발전과 쇠망이라는 흥망사를 읽으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독자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인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제국의 전통과 이념을 존중했다. 비잔틴 제국이 1,000년 동안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어디까지 이념대로 갈 수 있을까, 어디쯤에서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할까, 이념을 그대로 두고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각 시기마다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 위기에 대응하고 변해가는 것, 다시 말해 혁신이야말로 제국 존손을 위한 참된 조건이었던 것이다"(246).

이 책의 저자는 비잔틴제국이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혁신'이라고 정리한다. 로마제국이 비잔틴제국으로 변화한 이유는 심각한 위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고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로마'라는 정통적인 이데올리기를 유지하면서도, 위기에 대응하는 그들의 '유연성'이 비잔틴제국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보수성과 유연성, 비잔틴 제국 1,000년의 역사는 표면적인 이념인 '로마'를 지키면서 계속해서 밀려오는 안팎의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살아남은 역사였다"(22).

 
이 책은 '비잔틴제국'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애정이 진하게 뭍어난다. 상당히 '감성적인 역사책'이라는 느낌은 아마도 저자의 그러한 애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서적이면서도 어딘지 허술해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러한 애정에 입각한 저자의 추측성 해석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민족이 오고가는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한 비잔틴제국의 혁신과 유연성이 '1,000년의 역사'라는 기적을 낳았다고 하지만, 역으로 생각할 때 그들의 지정학적인 요구가 벌써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비잔틴제국은 지리적으로 그러한 특수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이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이미 안정, 보수화, 폐쇄 상황을 고집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문별이 교차되는 항구 도시는 항구 도시로서의 공동적인 특수성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멸망하고 마는 것은 어느 문명,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럽 중심적인 사관에서 볼 때, 비잔틴제국은 "아랍과 투르크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파제였으며,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보존하고 유럽으로 전해 르네상스에 공헌하고, 그리스 정교와 문자를 동구의 슬라브계 여러 민족에게 전파해 그들이 문명을 건설하는 데 기초를 만들어주었다"(241)는 데 의미를 둔다. <살아남은 역사, 비잔틴제국>은 이러한 서구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나름의 독자적인 비잔틴역사에 대한 견해를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집필되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비잔틴제국의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서구 중심의 사관을 벗어난 독자적인 역사적 견해라고 하기에는 결론적으로 차별화된 논지를 세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비잔틴제국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비잔틴제국'의 자리를 찾아주려 애쓴 저자의 애정에 이 책의 의의를 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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