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은 슬픔 - 엉뚱발랄 과부 소피의 팍팍한 세상 건너기
롤리 윈스턴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마법을 걸어보자.
"인생아, 다시 행복해져라! 이~얍!"
이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게 다 읽었다. 남편을 암으로 잃은 서른여섯 미망인의 위태로운 일상을, 그 극한 상실의 고통을,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곧 무너져 내리고 말 것 같은 내면을, <좋은 슬픔>은 치밀하게, 그러나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큰 줄기는 '상실의 고통'이다. 작가는 '부인,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이라는 슬픔의 다섯 단계를 차용하여(546 / 슬픔의 다섯 단계는 15가지 소제목 안에 끼어 있다), 주인공 '소피'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것을 이 책을 재밌게 읽는 하나의 포인트이다. <좋은 슬픔>은 소피의 '부인'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겨우 서른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비로소 결혼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데, 지난 3년간 살면서 남편이라는 호칭에 겨우 익숙해졌는데"(8). 슬픔의 단계를 건너는 소피는 우리의 가벼운 위로가 슬픔을 당한 사람을 어떻게 괴롭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위로는 상처를 헤집는 비수가 된다. 상실의 고통, 그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괴로움인지, 그 슬픔이 너무나 선명하여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따가웠다.
동갑내기 친구와 결혼을 했던 나의 이모는, 마흔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이모부를 2년 동안 간호했고, 결국은 작별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그렇게 이별해야 했다. 그후 매일 미친 듯이 산에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장례식 후 석 달만에 다시 만난 이모의 몸무게가 30kg으로 줄어 있었다. 이모는 괜찮다며 웃었고, 나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었다. 그때 이모가 혼잣말 처럼 자주 내뱉었던 말이 이것이었다. "어떻게 내가 미망인이 될 수 있지?"(8). 이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이모의 부재가 더 크게 실감난다고 했다. 왜 미친 듯이 산에 오르는지 물었더니,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떠나고 나면 남겨진 사람은 매일 밤 끝나지 않을 악몽과 함께해야만 한다"(147).
<좋은 슬픔>을 읽는 두 번째 포인트는 여성의 일상과 삶의 문제를 읽는 것이다. <좋은 슬픔>은 '아이러니'를 장치로 하여 누구의 삶에도(특히 여성), 언제라도, 갖가지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소피는 혼자만 사막에 던져진듯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에단의 부재라는 고통을 홀로 겪으며 서 있다. 그러나 슬픔을 견디고 있는 것은 소피만이 아니었다. 소피의 친구 루스는 대학시절 최고의 퀀카였지만, 말도 안 되는 여자와 바람이 난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소피의 시어머니 마리온은 소피와 대조적으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우아한 미망인이었지만,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치매를 앓게 된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피가 '큰언니' 역할을 맡은 크리스털은 한창 꿈많을 청소년이지만,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 자해를 하며 스스로를 학대한다.
"사실은 나도 우아한 미망인이 되고 싶다. 재키 케네디 같은 미망인이 되고 싶단 말이다. 가냘프고 차분하며 품위 있고 우아한 미망인. 하지만 나는 잭 다니엘스 유의 미망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슈퍼마켓에서 통곡하지 않나, 샐러드 바에 있는 샐러드는 몽땅 담아 오질 않나, 헝클어진 침대처럼 산발하고 있지 않나"(48). 소피의 일상은 슬픔의 무게에 짓이겨진다. 잇몸이 부을 정도로 오레오 쿠키를 먹어대고, 옷을 입은 채 잠이 들고, 슈퍼에서 일하는 10대 남자아이 손목을 붙잡고 울고, 목욕 가운을 입고 출근을 하는 이상 증세까지 보이고, 강박 신경증에 공항 장애까지. 그녀의 일상은 점점 더 무기력해져 간다. "하지만 난 상실을 겪으면서 너무 많이 지쳐버렸다"(55).
사춘기에는 엄마를 잃고, 서른여섯 살에는 남편을 잃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부심을 가졌던 직장까지 잃고,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일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소피. 상실의 고통으로 계속 무너져 내리는 소피. 이런 무기력한 소피를 다시 일으켜주는 것은, 타인의 슬픔이었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친구를 돕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화해하며, 버려진 크리스털에게 마음을 주면서, 그렇게 서로의 불행을 감싸 안으며, 소피의 슬픔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녀의 희망처럼 말이다. "일 년이 흐른 어느 날 아침, 에단과 함께 나누고 싶은 뉴스들이 알람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일이 있을 것이다. 월드 시리즈에서 어느 팀이 우승했는지, 누가 대통령에 출마했는지 같은. 하지만 에단을 생각하며 울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그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것이다. 보플을 날려버리듯 슬픔을 살짝 튀겨 날리면서 말이다"(201).
<좋은 슬픔>의 작가 롤리 윈스턴은 "반드시 '슬픔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거예요"(547)라고 말한다. 슬픔은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치어리더가 될 필요가 있다. "내 앞에서는 그렇게 치어리더처럼 굴더니 왜 자신한테는 그렇게 못하는 거니?"(223)
<좋은 슬픔>은 5년에 걸쳐 집필되었다고 한다. 소피(여성)의 일상과 내면에 밀착된 묘사가 치밀하고 사실적이면서도, 슬픔을 풀어가는 해법이 경쾌하고 따뜻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웃을 수 있는 신비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