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유럽 100배 즐기기 - '10 ~ '11 최신개정판 100배 즐기기
홍수연.홍연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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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여행 관련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랜덤 하우스의 <100배 즐기기> 시리즈는 소장하고 싶은 여행 서적 시리즈 중 단연 으뜸입니다! 이번에 나온 <핵심유럽 100배 즐기기>는 2010년 2월까지 수집한 정보를 담은 개정 3판입니다. 꾸준히 개정, 출간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책의 영향력과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핵심유럽 100배 즐기기>는 유럽 여행 베스트 루트 12가지에서부터 유럽 각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할인쿠폰까지 실제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이 보다 더 유용할 수는 없다'입니다.

한창 배낭여행 바람이 불던 90년대에, 우리의 로망은 단연 유럽이었습니다. 방학을 이용하여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은 1년이 지나도록 경험담을 들려주고도 더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파리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이야기, 이후 가족들이 독일로 필요한 물품 등을 보내주었는데 숫자 1과 7을 표기하는 방식이 달라 한참 동안 짐을 찾지 못했던 이야기, 주말이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몰라 미리 먹을 먹거리를 사두지 않아 주말 내내 굶어야 했던 이야기, 위험하면서도 즐거웠던 기차 여행 이야기,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운동화를 손에 들고 나와 잔디를 걸을 때는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는다는 이야기, 활기가 넘치다 못해 미친 듯이 돌아가는 서울에 비하면 죽은 도시 같았다는 유럽의 분위기 등 친구들에게 밤을 세워가며 들었던 여행 경험담들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아직 유럽 땅을 밟아보지 못했는데 어쩌자고 이렇게 세월만 빨리 흘러 가버렸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 모두 아기 엄마가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핵심유럽 100배 즐기기>는 12개국(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모나코,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바티칸, 스페인)을 선별하여 유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정보를 테마별로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여행자의 형편에 따라 여행 코스를 계획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7일, 10일, 15일, 22일, 25일, 29일 등으로 나누어 여행 일정을 계획하는 것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다음으로는 유럽에서 꼭 해볼 것, 꼭 먹어볼 것, 꼭 살 것, 꼭 볼 그림 등 여행의 큰 그림을 먼저 그려주고, '알고 가면 더 재미있는' 상식으로 알아야 할 유럽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후로는 국가별로 정말 상세한 여행 정보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책만의 장점은 여행 동선을 기준으로 2권으로 분권(1권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2권은 독일, 이탈리아, 체코, 오스트리아, 스페인, 바티칸) 이 가능하도록 꾸며졌다는 것입니다. 가벼운 여행을 원한다면 책을 나누어 짐의 무게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족 여행,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여행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것도 차별적입니다.  

 


 

 

<핵심유럽 100배 즐기기>를 보니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유럽의 멋과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테마이지만 종교, 예술, 건축, 쇼핑, 요리 뿐만 아니라 유흥과 레포츠까지 역사만큼이나 아름답고 풍부한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에는 여자 혼자 떠나는 외국 여행이 위험하다며 말리는 부모님을 핑계로 떠나지 못했고, 이후로는 직장 생활과 계속되는 학업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이 다음에' 나이들고, 안정되면, 세계일주를 하자며 계속 미루어온 것입니다. 세계일주나 하며 노년을 보내자고 친구들과 약속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에, 무엇을 먹어도 맛있고, 조금 고생이 되어도 즐거울 수 있을 때에 떠나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깁니다. 청년도 노년도 아닌, 그렇다고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뭔가 억울한 딱 지금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믿을 만한 정보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저지를 수 있는 용기! 전세금을 빼서 여행을 하는 가족도 있는데, 비용과 시간은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리라 믿어봅니다. '핵심유럽'을 100배로 즐기고 돌아와 이 책에 O, X를 그려가며 나의 의견을 보탤 수 있는 날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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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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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torialist  

재단사의 뜻을 지닌 라틴어 sartor에서 유래.
세계 최고의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의 명칭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신사'라는 의미 



책을 받아보고 많이 당황스러웠다. 사진첩인가? 말 없이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책.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할까? 날개글을 읽고 그 이유를 알았다. "2005년 가을 스콧 슈만은 카메라를 들고 뉴욕 거리로 나가 패셔너블한 보통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는 사진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그의 사진은 수많은 방문자들에 의해 스크랩되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모든 이들의 사랑으로 전설이 된 thesartorialist.com 블로그는 전 세계인의 패션 취향을 담은 전시실이다. 뉴욕, 파리, 스톡홀름, 밀라노, 도쿄 등 다양한 도시의 길 위에서 만난 자기만의 스타일을 입은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전 세계 패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토리얼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의 내면까지 포착하여 단순히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스타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옷과 진짜 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사토리얼리스트는 '자기만의 개성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신사'다. 책에는 이 시대의 사토리얼리스트 약 500인이 실려 있으며 그들이 패션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자신감이 넘친다."

기존의 패션 잡지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차별성이 느껴지는 책이다. 무대 위에 올려진 패션 작품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난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책도 특별한 편집이나 디자인 없이 사진을 그대로 묶어 내놓았다. 책도 스타일도 자연스러운 연출이 돋보인다. "완벽하면 할수록 때로는 완전히 지루한 사진이 되기 때문"(163)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위적인 연출보다 살아있는 느낌을 그대로 살려내어 사진마다 생동감이 가득하다.

저자는 자신의 사진들이 "사람들의 자기표현을 기념하는 사회적인 기록"이라고 해석한다(5). 이 책의 핵심 키워드, 작가가 보는 패션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자기표현'이다. 패션 쇼나 패션 관련 잡지를 볼 때마다 예쁘고 멋진 옷을 입은 모델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다음으로 많이 하는 생각이 '나도 따라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모델과 똑같은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나오는 연예인들을 발견할 때마다 '소화를 잘 했구나' 또는 '모델이 더 낫다'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책 <사토리얼리스트>는 처음으로 '현재 나의 스타일'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다양한 도시의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 연출한 자기만의 스타일을 보며,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자기표현'을 보며, "나도 이들 처럼 입고 싶다"가 아니라,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자기표현을 개발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겼다. 조화롭기도 하고,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는 '사토리얼리스트'는 '살아 있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딱 자기 옷을 입은 사람들 모두 어쩐지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의 선입견일까. 자신의 삶에 충실한 자신감이 나를 압도한다. 멋진 패션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즐거운 인생이었다. 쾌락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껴안는 희열 같은 것 말이다. 많은 말이 없어도, 그 어떤 패션 책자에서보다 가장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자체로 한 편의 에세이가 된다.

"나는 사람들이 소라게 같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사회적인 역할로 가장하기 위해 겉껍질을 갈아입는 것 말이다. 우리는 '역할을 입는다"(27). 나는 복장이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단체복이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젊잖은 정장을 요구하는 곳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패션으로 나를 표현하는 일에 게을렀고, 그 게으름의 탓을 사회적인 '제약'으로 돌렸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우중충한 옷들이 내 영혼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아 불편하다. 사치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색깔을 찾고 싶다. 전에는 패션 관련 책자를 보아도 보는 재미로 만족하는 선에서 그쳤었는데, <사토리얼리스트>는 적극적인 자기표현을 위한 영감을 가득 불어넣어준다. 유명 브랜드나 유명 모델이 등장하는 어떤 패션 책자보다 재밌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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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한차현 장편소설
한차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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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가벼운 책


<SF + 성경 + 정신분석 + 음모론?> 책의 띠지에 적혀 있는 문구이다. 그러나 마지막 물음표는 내가 붙이고 싶다.

<변신>은 44세의 다소 지쳐보이는 남자가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비금도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파블로프' 씨의 안내를 받아 늙은 곤충학자인 '미켈란젤로' 씨를 찾아간다. 미켈란젤로 씨와의 대화에서 남자의 이름은 '차연'이며, 직업은 '목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는 미켈란젤로 씨의 도움으로 공간의 차원을 훌쩍 넘어 '켈라커닐링 행성'으로 우주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과거는 현재의 이유다. 헝컬어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까?'라는 독백이 힌트일까? '차연'이라는 남자의 불안이 궁금하여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변신>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이 모든 것은 화요 신앙 토론회가 있었던 날 차연이 그를 찾아온 왜소한 체구의 'A'라는 청년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차연이 쓴 <예수님, 알려 주세요! 성경에 대한 70가지 궁금증>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A는, 어느 날 불쑥 차연에게 전화를 걸어 꼭 보여줄 것이 있다며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뜬금없이) A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A는 지구 밖 우주, 다른 차원에서 온 지적 외계 생명체이자, 지구별 여행자였다(33).(그리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그는 차연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지구 밖 세상을 접할 기회, 즉 우주 여행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선택은 차연의 몫이다. 

고민하던 차연은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서는 아내 소연을 데리고 드디어 시간 여행, 즉 우주 여행을 감행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82437년 11월 허무한다르아한다르. 세상 그 무엇보다 독서를 사랑하는 그곳에서 앎의 탑과 도서관들의 도서관을 여행한 소연은 지구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55시간의 짧은 여행이 아쉬어 자신은 그곳에 남겠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홀로 귀환한 차연은 예상 못 했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시공간의 끔찍한 틈새! 그렇게 시간은 엉클어졌고, 이유도 모른 채 금빛 역십자를 상징으로 하는 오직예수혈맹단에 쫓기면서 소연을 다시 찾기 위해 무리한 우주 여행을 감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다시 만났지만, 이미 아내는 예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지구로의 귀환을 거부하며 기독교와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펠커교'를 신봉하게 된 아내를 남겨두고 차연은 홀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우주 여행 때문에 교회에서 파문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변신>은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이가 있을 것입니다"라는 차연의 말로 새 역사를 예고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SF? 성경? 정신분석? 음모론? 모르겠다. '발문'에서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선생님은 (거창하게도)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인식의 우주적 확장이다"라고 말한다. 그럼, 인식의 우주적 확장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변신>의 모든 설정은 하나의 타켓을 향하고 있다. 특정한 믿음, 특정한 종교, 즉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에서 좀더 깊은 문학적 성찰을 읽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작가의 '치기'로 탄생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볍게 읽었고, 가벼운 재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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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다 - 완역결정판
장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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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인 개념이 없어짐으로써 완전히 자유스러워진 세계, 이것이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이다"(99).

 
"장자는 노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 만물의 근본 원리로 삼고, 어떤 대상에 욕심을 내거나 어떤 일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無爲), 자기에게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여야 한다(自然)고 주장하여, 노장사상이라고도 하는 도가(道家)를 이룩하게 되었다"(표지 날개글 中에서)

<장자>는 몇 번을 읽어도 어렵다. 내겐 너무 어려운 <장자>. "<한서> 예문지와 <여씨춘추> 필기편 고유의 주에서는 '<장자> 52편'이라 하였으나, 지금 우리에게는 33편의 <장자>가 전해지고 있다"(16-17)고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장자의 가르침은 읽어서 알 수 있는 사상이 아닌 듯 하다. 경전을 읽듯이 주야로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어야 할 득도(得道)의 경지를 요구한다. 장자의 것 중 가장 유명한 '장자의 '나비 꿈' 우화, 그 한 대목을 들어보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만물의 조화'라 부른다"(98-99). 장자에게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귀함과 천함,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상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상대적인 개념을 초월한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게 될 것이다. 상대적인 개념이 없어짐으로써 완전히 자유스러워진 세계, 이것이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한결같게' 여겨질 때, 자연에 완전히 융화될 수 있을 것이다"(99). 장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은 모든 것을 초탈할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깨달음이 없다면, <장자>를 읽었으나 읽은 것이 아니요, 듣기는 들었으나 들은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장자>의 사상을 논할 실력은 되지 못하고, 기껏 그의 사상을 설명하는 주요 개념을 요약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한 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장자, 그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바로 '자유'였다고 본다.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다"라는 표지의 한줄 글처럼 말이다. 완전한 자유! 장자가 말하는 "완전한 자유의 경지란 사람들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행위와 사상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장자는 사람이 타고난 그대로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부담조차도 거부하면서 순수한 자연에 모든 것을 맡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아보자는 것이었다"(11). 어떻게 이런 경지의 실현이 가능할까? 빠른 걸음으로 바쁘게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도(道)를 아십니까?"라고 물어오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이질적이다.

<장자>의 사상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짊(仁)이나 의로움(義) 같은 것도 사실은 사람의 본성을 그르치는 면에서 도적질 같은 악덕과 다를 바 없다"(11-12)고 하는 주장이다. 어짊과 의로움은 타고난 사람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쓸데없는 것이라는데, 어째서 그런가? 알 듯, 모를 듯하다. <장자>의 우화는 내게 수수께끼이다.

"지극히 올바른 경지에 이른 사람은 그의 본성과 운명의 진실함을 잃지 않는다.  (...)
그러므로 물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길게 이어 주면 걱정이 될 것이며,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짧게 잘라 주면 슬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본성이 길면 잘라 주지 않아도 되고, 본성이 짧으면 이어 주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어짊과 의로움은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진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걱정을 지니고 있는가?
(...)
지금 세상의 어진 사람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서 세상의 환난을 걱정한다. 어질지 않은 사람들은 타고난 성질과 운명의 진실한 모습을 버리고 부귀를 탐내고 있다. 그러니 어짊과 의로움은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227)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홀연히 떠나신 어떤 분을 기억나게 하는 <장자>. 절대적인 것도 상대적인 것도 부정하며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꿈꾸었던 <장자>. 그의 가르침은 논해서 알 일이 아니라, 깨달아 알 일이라는 한 가지만 내게 남았다. 실현은 어렵겠지만, 머리에 담아야 할 가르침이 아니라, 삶에 담아야 할 가르침이라는 한 가지만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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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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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입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8).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 농민들이 AIDS에 집단 감염된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들이 AIDS에 집단으로 감염된 이유는 매혈(賣血) 때문이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개혁개방이 시작됨에 중국에 새로운 시장이 하나 형성되었다. 바로 피를 사고파는 매혈 시장이었다. 중국 상부의 주도 아래 대대적인 인민들의 매혈 운동이 있었고, 특히 빈민층에 속하는 중국 농촌에서 매혈붐이 창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저자는 매혈로 집단 AIDS에 감염된 ’딩씨 마을’을 배경으로 사랑과 위대한 인성, 생명이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감에 대해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딩씨 마을의 꿈>은 악덕 채혈업자, 즉 매혈 우두머리인 ’아버지’로 인해 독살을 당한 열두살 소년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어버린, 꿈을 거세당한 힘 없는 소년을 통해 말이다.

딩씨 마을 사람들을 매혈에 동원하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에, 학교에서 종을 치고 학교를 지키는 일을 맡고 있어 ’딩 선생’으로 불리는 소년의 할아버지가 나섰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물처럼, 피도 샘물과 같이 퍼내면 퍼낼수록 더 왕성하게 생성된다고 설득했고, 일찌감치 미친 듯이 피를 팔아 부자가 되고 있는 이웃 마을로 견학을 다녀온 농민들은 부자가 되는 꿈을 꾸며 팔을 걷어올리기 시작했고, 딩씨 마을에 열 개가 넘는 채혈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때 할아버지의 아들 ’딩후이’도 채혈소를 차렸다. 딩씨 마을은 너도나도 미친 듯이 피를 팔기 시작했다(56).

채혈업자들은 나무로 만든 간판 하나씩 세워 놓고 그 위에 채혈소 이름만 몇 자 쓴 다음 간호사와 회계사만 갖추고서 채혈소 업무를 시작했다. 채혈업자 딩후이는 곧 부자가 되었다. 피를 판 사람들 중에 딩후이 만큼 부자가 된 사람은 없었다.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하고 솜 하나로 세 사람을 소독하도록 한 채혈업자 딩후이는 ’열병’(AIDS)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딩후이에게 피를 판 사람들은 ’열병’(AIDS)에 감염되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맙소사! 자네 아직 살아 있었군?"
또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며칠 동안 머리가 좀 아프기에 열병인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더군."
두 사람 모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
이것이 바로 딩씨 마을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딩씨 마을이 가슴을 졸이며 애타게 기다리는 열병과 세월이었다(26-27).
곧 죽을 것이라는 자각!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가?

딩씨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오늘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91). 그들이 꿀 수 있는 유일한 꿈은 ’하루라도 즐겁게 보내는 것’이었다. 작가는 <딩씨 마을의 꿈>이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과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8)라고 말한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열병에 감염된 딩량과 링링의 열꽃 같은 ’불륜’을 통해 적나라 하게 드러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생(生)의 절망을 낳고, 생의 절망은 무모한 용기를 낳는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만든다. 불륜도 두렵지 않게 만든다. "살아 있는 동안 며칠이라도 그녀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304). 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새로운 꿈을 낳는다. 그렇게 태어난 꿈은 절박하고 집요하다. "살아 있을 때 며칠이라도 떳떳하게 살고 싶은" 딩량과 링링은 죽을 날이 멀지 않았지만 끝내 소원대로 정식 부부가 된다.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 탐욕은 어떻게 생명을 좀먹는가?

<딩씨 마을의 꿈>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은 채혈업자 ’딩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매혈뿐 아니라, 관을 팔고, 음혼을 주선하며 부자의 꿈을 이루어간다. 그러나 이 책의 지독스러움은 딩후이의 탐욕 때문이 아니다. 열병으로 병색이 완연한 사람들이 서로의 것을 도둑질한다. 열병(AIDS)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툰다. 죽어서 들어갈 ’관’에 욕심을 낸다. 돈이 있고 권세가 있는 사람들만 관을 쓸 수 있고, 더 좋은 관을 쓸 수 있다.

열병에 걸린 사람들과 공동 생활을 할 때, 그들의 쌀을 훔치기도 했던 ’자오씨우친’은 열병에 걸렸으나 열병 때문에 죽지 않았다. "열병에 걸린 뒤로 지금까지 일 년도 넘게 살았거든. 그런데 왜 죽었냐 하면, 며칠 전에 쌀을 한 자루 가져다가 문 옆에 놓아두었는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집에서 키우던 돼지가 그걸 다 먹어 버렸대. 자오씨우친은 너무 화가 나서 돼지를 쫓아다니며 두들겨 팼겠지. 돼지 등짝에서 피가 날 때까지 패다 보니 그녀도 지쳤던 모양이야. 위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지"(301-302).

살아 있을 동안만이라도 링링과 결혼을 해서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아들 딩량을 위해 ’할아버지’가 나섰을 때, 며느리의 불륜을 용서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이렇게 비난했다. "아주버님도 글을 가르쳤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 못난 연놈들을 위해 뻔뻔스럽게 찾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다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이것을 이용하여 한몫 잡아볼 심산으로 거래를 요구한다. 이혼을 해주는 조건으로 ’오천 위안’을 요구한 다. 아내에게 열병에 발명하자 따귀부터 올려부치며 공동생활을 하는 곳으로 내몰았던 남편은 이혼을 조건으로 딩량의 모든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비록 불륜이지만 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서로를 붙들었던 딩량과 링링보다 더 뻔뻔하지 않은가.

탐욕에 먹힌 생명. 딩씨 마을은 그렇게 시들어갔다. "사람이 죽는 것이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등불이 꺼진 것과 같았다. 무덤을 파고 사람을 묻는 일이 삽을 들어 마을 어귀에 구덩이를 파고 죽은 고양이나 개를 묻는 것만큼이나 순조로웠다. 슬픔도 없었고 울음소리도 없었다. 울음소리와 슬픔은 말라버린 강과 같아서 소리도 없고 호흡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물은 맑게 갠 날 허공에 떨어지는 빗방울만큼이나 희박하여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말라 버렸다"(373-374).


<딩씨 마을의 꿈>은 딩씨 마을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딩씨 마을의 꿈>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이야기에서 '네 사람의 꿈'을 따오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관직이 곧 회복될 것을 예고하는 술 맡은 관원장의 꿈, 곧 죽게 될 것을 예고하는 '떡 맡은 관원장의 꿈', 흉악한 흉년을 예고하는 '파라오의 첫 번째 꿈', 흉악한 흉년이 반드시 올 것을 예고하는 '파라오의 두 번째 꿈'이 그것이다. 이 꿈들은 모두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예고한다. 왜 작가는 이러한 장치를 해두었을까?

<딩씨 마을의 꿈>은 서사가 전개되는 중간 중간에 고딕체로 구별하여 '꿈'을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꿈인 듯도 하고, 꿈이 아닌 듯도 하고,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분명 '꿈'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별됨이라 생각된다. <딩씨 마을의 꿈>은 실제 사건이다. 작가는 그것을 <딩씨 마을의 꿈>이라는 제목 안에 담았다. 딩씨 마을의 비극은 '꿈'에서 시작되었다. 피를 팔아 한몫 챙기겠다는 그들의 꿈이 현실의 비극을 낳았다.  작가는 <딩씨 마을의 꿈>을 통해 '꿈'이 현실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꿈은 현실을 낳는다. 현실은 꿈을 반영한다. 배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키처럼, 인생을 이끌어가는 '꿈'. 탐욕에 먹혀버린 딩씨 마을. 탐욕이 잉태하고, 탐욕을 잉태한 그들의 꿈은 딩씨 마을을 탐욕의 바다로 몰고나갔고, 그들의 꿈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딩씨 마을은 파선했고, 결국 탐욕의 바다에 침몰했다.

집단으로 AIDS에 감염된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 죽음에 감염되어 있다. 죽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을 알고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선 우리. 죽음을 눈앞에 둔 우리가 꾸는 꿈은 무엇인가? 딩씨 마을의 꿈과 다른가? 지금 어떤 꿈이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나가고 있을까?


아직 우리가 꿀 수 있는 꿈이 남아 있을까?

<딩씨 마을의 꿈>은 할아버지가 "새롭게 펄쩍펄쩍 뛰는 세상을 꿈"(455)꾸며 끝이 난다. 어쩌면 불멸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이 그만큼 생(生)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주고,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딩씨 마을의 꿈>이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을 읽으며 꿈을 꾸어야 하고, 어둠에 갇혀서도 빛을 기대하며,  지독한 환멸 속에서 여명을 발견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리라.

"저는 이미 나이가 예순이 넘었고 여러분들 역시 오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겁니다. 우리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서 다음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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