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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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다! 

 
<한국의 시장>, 한마디로 주제는 거창했으나 '의미' 만들기에는 실패한 작업이라 평하고 싶다. 기대가 컸던 것일까. 한국의 시장'을 담아내는 관점의 부재가 아쉽다. "시장이 가지고 있는 멋을 맛있게 전달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지만, 어설픈 감상문에 그치고 말았다. 제주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경기도, 서울 등 전국의 시장을 돌며 열심히 발품은 팔았지만, 시장이라는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해석해내는 '시각'에 대한 고민은 왜 없었을까. 향방 없이 산만한 '수다'의 가벼움이 실망스럽다. 아무래도 '의미' 찾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 책에서는 '정보'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의 시장>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시장>은 '시장'을 또다른 여행지로 제안하고 있다. '시장'은 소박한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상품과 상술만 가득한 대형 마트는 조작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시장'만의 이야기가 있다. 순대국, 감자전, 빈대떡 하나에도 삶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 소박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장만의 활기가 존재하는 것은 그곳에 '꿈'이 있기 때문이리라. 멋진 포장은 되어 있지 않지만 하늘과 땅이 함께 빚어낸 지역의 특산물이 있고, 잘 꾸며진 편의시설은 없지만 넉넉한 인심에 마음 한번 쉬어갈 수 있고,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의 친절한 서비스 대신 시장의 명물인 '스타'를 만날 수 있는 곳! 시장은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숨을 쉬고, 꿈이 자라는 공간이다.

<한국의 시장>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시장의 풍경은, 아기 옷을 만들고 계셨던 할머니를 만난 제주도 동문시장이다. 할머니가 만들고 계신 것이 배냇저고리라 생각했는데 숨을 거둔 아기 또는 낙태를 한 아기들을 감싸는 수의였다고 한다. 좋은 옷을 입혀 아이의 안타까운 생과 혼을 달려준다는 것이다. "동문시장에 있는 가게 곳곳에 무속신앙의 흔적이 있었다. 가게마다 부적 또는 부적처럼 생긴 종이들이 붙어 있는데 신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제주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47). <한국의 시장>을 읽으니, 시장이야말로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형 마트 등에 밀려 '시장'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 역시도 시장보다는 마트를 자주 가는 소비자의 한 사람이라 할 말이 없다. 향수와 추억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활기를 잃어가는 시장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음식들이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처럼, 한국의 시장도 '설득력 있는 재발견'의 작업이 필요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첫발을 내딛어준 <한국의 시장>이 고맙고, 그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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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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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 작가에게,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내미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도전장!

 
판권을 보니 이 책은 일본에서 1996년에 초판된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 <방과후>가 1985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까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이 2006년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바로 딱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0년 정도 작품 활동을 한 전업 작가로서의 고민이 이 작품을 탄생시키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이 작품을 '전환점'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만의 작품 세계를 찾지 않았을까 하는 감(感)이 온다.

추리 소설 작가를 양성하는 학원이 있다면 이 책을 교재로 사용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명탐정의 규칙>에서 추리 소설의 모든 것을 까발린다. 그동안 추리 소설 매니아를 자청하며 많은 작품을 읽어왔지만, 추리를 위한 트릭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추리 소설을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니,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예를 들면, 밀실 살인의 트릭은 누가 범인인가 보다 어떻게 죽였는가에,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살인은 누가 범인가에, 일명 '알리바이 선언'은 완벽해 보이는 알리바이의 허점이 무엇인가에 추리의 초점을 두고 독자와 두뇌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그중 추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고립'의 패턴을 예로 들면 이렇다. "탐정이 고군분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경찰이 끼어들면 과학 수사나 인해 전술 따위를 동원하기 때문에 지식 게임이 파괴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외부로부터 고립될 경우 순수하게 범인 대 명탐정의 싸움이 됩니다"(79). '고립'이라는 트릭에 숨은 매력은 이 뿐이 아니다. "범인의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지요. 무대가 고립되면 경찰이 개입할 수 없고, 등장인물들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손쉽게 살인을 할 수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모두를 살해하고 범인 자신도 자살할 수 있지요. 물론 그런 패턴은 명작에나 해당되는 것이지만요"(79).

<명탐정의 규칙>은 이처럼 추리 소설에 숨어 있는 트릭의 패턴과 설정 이유를 대대적으로 공개한다. 그런데 '트릭의 패턴'을 공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문가의 매스를 들고 대 해부를 단행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본격 추리 소설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대놓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탐정 소설의 조연이라 할 수 있는 경감은 언제나 "생초보 탐정이 끼어들 상황이 아니야"라는 진부한 대사를 어김없이 되풀이 한다든지, 사건의 해결은 결국 명탐정의 몫이라는 설정은 독자들과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모르는 척 지나가야 하는 고정된 설정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어쩔 수 없음'을 비웃으며, 뻔한 패턴을 신물나게 답습하는 작가의 편의주의적 게으름을 꼬집는다. 기존 추리 소설의 안일한 패턴을 야유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판은 자기반성적 성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스스로에게 내미는 도전장이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독 '밀실 살인'에 대해서는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 알리바이 허점 찾기 패턴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완벽해 보이는 알리바이에 숨은 트릭이 무엇인지 곳곳에 힌트를 숨겨 놓고, 독자와 벌이는 두뇌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용의자 X의 헌신>도 결국 독자가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알리바이 트릭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히가시노 게이고는 알리바이 트릭이 숨어 있는 추리 소설을 읽는 독자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한다. "추리 따윈 하지 않아. 주인공이 추리해 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지. 그래서 지치지 않는 거야. 마지막 단계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해하고 만족하는 거야"(126).

<명탐정의 규칙>은 진부한 추리 소설의 신물나는 패턴을 야유하면서, 추리 소설 작가로서의 고민을 반영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도전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독자를 향한 강력한 도전장이기도 하다. 추리 소설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울수록 자기 스스로도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텐데, 탐정 소설의 규칙과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남김없이 폭로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자에게 추리 소설의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공정한 두뇌 게임이라고나 할까. 어찌 생각해보면, 추리 소설 작가로서의 엄청난 자신감이다!!!

<명탐정의 규칙>은 탐정 소설에서 늘 진부한 대사만 날리는 조연 '오가와라 경감'과 '두뇌 명석, 박학다식, 다재다능, 뛰어난 행동력의 명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로'라는 전형적인 명콤비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들이 소설의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명탐정의 규칙'을 파헤친다. 솔직히 이 책에 대해 "웃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일본 아마존 독자 서평은 좀 오버스러운 감이 있다. 그러나 명탐정의 규칙을 해부하는 설명서적인 책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추리 소설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그 독특한 실험 정신에 별점을 높게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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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그램툰 Hello! Gramtoon 1 - 문장 명사 관사 대명사 동사 편 GRAMTOON is My Best Friend 1
김영훈.김형규 지음 / 한겨레에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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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MTOON is My Best Friend 시리즈!

 

학교에서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참고서나 학습 교재가 아니라면, 초등학생을 위한 학습서는 대부분 '부모님'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특히 저학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공부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지만, 교재 선택권은 부모님에게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당사자인 아이들 만큼이나 부모님의 책임도 막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각종 참고서가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중에서 내 자녀에게 알맞는 학습서를 골라야 하는 부모님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을 듯 합니다.  

더구나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어 교육이라면 그 고민이 한층 더 깊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원어민 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학원도 많고, 비디오를 통한 교육이나 선생님이 방문하는 각종 학습지도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아무래도 스스로 공부하면서 가장 접근이 용이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종이책'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할 때도 책을 많이 선호하는 편이지만, 특별한 날의 선물이 아니어도 교육비의 상당 부분이 자녀를 위한 도서 구입에 투자되리라 짐작됩니다.

저도 책꽂이에 영어 학습과 관련된 도서가 상당히 꽂혀 있습니다. 한참 영어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학생들은 저보다 더하겠지요? 아마 어떤 책은 여러 번 읽어 닳은 것도 있고, 어떤 책은 새 것인 채로 그래도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습지를 골라야 하는 부모님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제가 영어 학습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겨레에듀에서 출판한 <GRAMTOON is My Best Friend 시리즈>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혼자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읽는' 학습서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연필을 들고 공부하는 교재라기보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영문법을 접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스토리 중간 중간에 영문법 요점정리가 나오고 있지만, 처음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이 부분을 따로 암기하지 않고 뛰어넘으면서 그저 책을 읽어나가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Hello! GRAMTOON>은 <GRAMTOON is My Best Friend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입니다. 1권은 문장, 명사, 관사, 대명사, 동사 편으로 영문법의 주요 개념을 설명합니다. 영어 공부를 할 때 상당히 지루해 했던 부분이고, 또 국어 문법과 다른 부분은 많이 헷갈리기도 했던 부분입니다. <Hello! GRAMTOON>의 가장 큰 장점은 문법적 설명을 등장인물이 존재하는 '만화 스토리'로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공부의 기본은 '암기'이고, 암기를 무시한 공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암기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해'가 아닐까 합니다. 이해를 한다면 그만큼 암기도 쉬워질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Hello! GRAMTOON>은 영문법에 대한 건조한 설명보다, '이해'에 중점을 둔 교재입니다.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암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권보다 형용사, 부사, 전치사를 다룬 <COME ON GRANTOON>을 먼저 선물했는데 반응이 좋았던 책이기도 합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지만, 영문법 기초가 약하거나 영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친구들도 이 책은 재밌게 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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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건져내랴 - 쉽게 풀어 쓴 로마서
조성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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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책입니다.
어느 유명한 학자의 용어를 빌린다면 ’위대한 위험’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위험’은 <로마서>일 것입니다.
(초대하는 글 中에서)


책을 받아보았을 때 첫 느낌은 소설책인가 했습니다. 아마도 저자 조성기 작가를 소설가로 먼저 만난 탓일 것입니다. 책의 판형이나, 표지나, 구성이 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인데, 이 책은 로마서 설교집이면서 동시에 로마서 강해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문학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바울의 독백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설교집이면서 동시에 로마서를 쉽게 풀이해주는 주석에 가깝습니다. 문체는 독특하게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평존칭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지성인의 날카로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성경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동서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현대 신학에서 로마서 최근 연구 동향까지 폭넓은 시야에서 <로마서>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미국의 법학 대학들 중에서는 법적인 논증 훈련을 위하여 로마서를 교과서로 택하는 대학도 있다고 합니다"(18). 그만큼 <로마서>가 조직적이고 이론적인 논증서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헬라어 원어를 중심으로 한 정확한 개념 정리였습니다. 저자는 매 장마다 헬라어 원어로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수고를 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6장 1-11절에 반복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표현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2절과 10절의 ’죽은’이라는 동사의 시제를 따져보면 직설 능동 과거입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어버린 자라는 뜻입니다. 11절의 ’죽은’은 동사형이 아니고 시체를 말할 때 사용하는 헬라어 형용사 ’네크로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여는 시체라는 말입니다. 죄에 대해여 죽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었다는 것입니다"(336).

이러한 개념 정리 외에도 잘못 번역된 부분을 지적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8장 12-13절에서 ’빚진 자로되’ 하는 구절은 잘못 번역된 구절이라고 합니다. 표준새번역이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빚을 진 사람처럼 육신의 요구에 이리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있지만,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394). 이렇게 이해를 하면 이해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헬라어를 통한 본문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등한히 다루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471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로마서 8장까지의 강해를 싣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세밀하게 로마서를 읽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본문도 가볍게 다루는 법 없이 같은 무게감으로 로마서를 읽어내려옵니다. 저자는 로마서의 가치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바울이 다른 서신들을 쓰지 않고 로마서 하나만 썼다고 하여도 그는 신약 성경 저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저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17-18). 이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로마서 8장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이 안에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이 모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제목이 주는 뉘앙스 때문인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절규하는 바울의 독백이 재구성 되어 있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죄의 세력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 낀 ’인간 바울’, 복음의 능력을 덧입고 죄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사도 바울’의 몸부림과 인간적인 체취를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그 건조함이 지나칠 정도로 개관적인 해석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작가적 상상력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조성기 ’작가’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인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로마서 연구의 의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곳에서는 개인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고 기독교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공부하는 목적이요 이유이기도 합니다"(20). 구원은 공짜이기 때문에 구원받기가 참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구속의 원리는 깊고도 깊으며 높고도 높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그 구속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신앙인은 많지 않습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이 조성기 작가는 날카로운 비판력을 가진 분입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그 날카로운 비판력이 돋보입니다. 성경(복음)을 해석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아니하고, ’지금 여기’ 우리의 상황 속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로마서>를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쪼록 이러한 수고가 한국 교회를 변화시키고, 이 땅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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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삶
김태광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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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만남으로써, 나는 가족을 다시 보게 되었고,
앞에 놓이는 길보다 뒤에 남겨지는 삶의 자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다"(책 머리에)
 


앞에 놓이는 길보다 뒤에 남겨지는 삶의 자취가 얼마나 중요한가. 어쩌면 나의 '내일'은 당연하게 계속될 것이라는 얕은 믿음이 '오늘'을 허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내일에 대한 기대가 오늘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의 삶이 내일을 결정짓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어렸을 때, 한 선생님께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는 게임을 배운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주먹쥔 손에서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시며 "과거 현재를 지배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표시되는 숫자를 맞춰보라고 하셨다. 손가락 3개를 들어보여주시면 몇 개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셋(3)'이라고 대답했지만 '일(2)'이라고 하셨다. 다시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보이시며 몇 개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셋(3)'이라고 대답하셨다. 규칙을 알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찍기'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게임의 힌트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는 말 속에 있다. 정답은 바로 앞에 나온 숫자가 현재의 숫자가 된다는 규칙 속에 있었다.

<후회 없는 삶>은 뒤에 '내일'이 지워져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재소자 '강우영', 그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지난 날'의 잘못이다. 그러나 그는 원하는 '내일'을 마음껏 꿈꿀 수 없지만, 형벌로 주어진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뒤에 남겨지는 삶의 자치'는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에 남겨지는 삶의 자치, 그것이 곧 그의 '내일'인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은 우연한 편지로 시작되었다. 2009년 <영남일보>에 실린 작가의 칼럼을 읽은 재소자 한 사람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특수 강도죄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전과 9범의 강우영, 현재 그의 꿈은 범죄 예방에 관한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이다. 아내를 위해,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우영은 이 책의 저자 김태광 작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정중한 거절과 기꺼운 승낙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돕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와 매주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 가지 생각에 계속 사로잡혀 지냈다고. '후회 없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그 한 가지 오늘의 이 책을 만들었다.

과거의 잘못으로 내일이 지워진 채, 형벌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강우영. 그가 다시 꿈꿀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는 '후회'가 무엇인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진정한 회개는 반성이 아니라, 돌이킴이라고 한다. '아버지 아닌 아버지'로 살아가야 하는 '강우영'에게 지나온 날들은 하루하루가 모두 '후회'일 뿐이다. 후회, 후회, 후회로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남겨질 그의 삶의 자취는 후회가 아닌 사랑으로 채워지리라는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스스로를 돌이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 되는 모든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았던 것입니다"(235).

사랑은 참 힘이 세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263). 후회 없는 삶, 정답은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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