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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브리지스의 견고함 -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의 능력에 대하여
제리 브리지스 & 밥 베빙튼 지음, 오현미 옮김 / 두란노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책장에 놓은 책들을 가지런하게 세워놓으려면 양 끝에서 그것들을 받쳐 주는 북엔드가 있어야 한다.
인생의 책장에 북엔드가 없다면... (prologue 中에서)
"자기 의에 빠져 잘난 체하는 바리새인과 죄의식에 짓눌려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생이라는 책꽂이에 북엔드가 없다는 것이다"(16).
"익숙함은 경멸을 불러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 것이 아니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친숙한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공부하는 것에도 적용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가르침)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늘 '새로운' 가르침을 좇아다니며, 자극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많이 들어서 익숙한 것과 제대로 알고 있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것입니다. 제대로 모르면서도 이미 들은 것이라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은 영영 그것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의 저자 제리 브리지스와 현직 기업가인 밥 베빙튼이 함께 지은 <견고함>은 신앙을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영적 진리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되고, 토대가 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우는 것처럼 기초적인 것이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적인 영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자칫 '익숙한 내용'이라고 하여 그냥 지나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로 기본이 되는 내용이지만, 신앙생활을 오래한 성도일수록 반드시 읽고 점검해봐야 할 내용입니다.
교회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늘 영적인 진리를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세상의 저항과 거짓 속임수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견고함>을 읽으며, 가장 마음 깊이 와 닿았던 것은 첫째는 가르침이 탁월한 책이라는 것과, 둘째는 치유를 목적으로 한 책이 아닌데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견고함>은 영적 진리를 설명하는 '비유'가 참 재밌습니다. 신앙생활을 책꽂이에 꽂힌 책들에 비유하고, 그것을 지탱해주는 두 가지 영적 진리를 '북엔드'에 비유합니다. 잘못 꽂힌 하나의 책 때문에 모든 책들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것처럼, 북엔드와 같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지탱해주는 두 개의 버팀대가 없다면 우리의 신앙도 이처럼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영적 진리를 설명하며, '복음의 적 1호와 2호와 3호'를 등장시킵니다. 또한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삼인조의 강력한 적수'를 상대해야 한다고도 설명합니다. '교리'라고 하면 딱딱하게 느끼는 성도들이 많은데,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설명하면서도 배우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됩니다.
<견고함>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명쾌하게 풀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 나를 옭아매고 있던 어둠이 물러가고, 영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의와 맞바꾸신 '위대한 교환(great exchange)'과 '칭의의 현재성'에 관한 가르침이 특별한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순결한 영적 진리를 선포하는 <견고함>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의 능력이 살아 역사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책꽂이에 두 개의 북엔드를 놓아 주신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의고, 또 하나는 성령의 능력이다"(16).
<견고함>은 책장에 놓은 책들을 가지런하게 세워놓으려면 양 끝에서 그것들을 받쳐 주는 북엔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이 비틀거리지 않으려면 두 개의 북엔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북엔드는 '그리스도의 의'이고, 두 번째 북엔드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저자는 "이 둘 모두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책들을 그 버팀대에 기대어 놓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의'를 대적하는 두 가지 '복음의 적'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쌓아서는 안 될 책, 우리가 쌓아놓은 책들을 도미노처럼 기울어지게 만들어버릴 복음의 적 1호는 '자기 의'이고, 복음의 적 2호는 바로 '죄책감'입니다. '성령의 능력'이라는 북엔드를 대적하는 복음의 적 3호는 '자기 의존적 태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해야 할 삼인조의 강력한 적수는 바로 "세상, 마귀, 그리고 우리의 육신"(113)입니다.
<견고함>을 통해 다시금 깨달은 사실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복음의 적'의 실체입니다. 그중에서도 '복음의 적 1호 :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대한 경고와 '복음의 적 3호 : 자기 의존(self-reliance)'가 깊이 와닿았습니다. 죄책감은 쉽게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데, '자기 의'와 '자기 의존'은 열심과 헌신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자기 의와 자기 의존은 서로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간혹 '자기 의'(self-righteousness)라는 함정에 빠지는 성도들을 종종 봅니다. '자기 의'라는 함정은 직분자들이나 열심 있는 성도들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열심과 공로와 헌신과 믿음과 권위와 청빈과 겸손과 말씀에 관한 지식과 거룩함과 선함 등 우리가 전심으로 구하고 좇아야 할 영적인 가치들이 언제든지 '자기 의'라는 함정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신앙생활의 위험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견고함>의 저자는 죄책감보다 '자기 의'가 더 치명적이라고 경고합니다. 적절하게 다루기만 한다면 죄의식은 사실상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죄의식은, 우리 몸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 근본 원인을 해결할 만한 어떤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를 보내주는 '통증'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15). 이에 비해, 죄의식이 없는 사람은 파괴적인 죄악의 길을 가면서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죄에 대한 무감각,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는 죄의식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견고함>은 한마디로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요, 대답이라고 생각됩니다. <견고함>은 우리 스스로가 아닌, 오직 '은혜' 안에서 우리가 강해질 수 있음을 깨우쳐줍니다. 비틀거리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의 능력'이라는 은혜에 기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두 가지 북엔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버팀대에 '의지'할 때에만 우리의 모든 것이 제대로 유지되고, 안정되고,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의지함으로써 견고해지는 원리, 세상은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