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이롱이 중국어 첫걸음
조일신 지음 / 제이플러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롱이롱이(容易) 중국어 회화 입문서!

 
이 교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한 것입니다. 오래 전, 사업 때문에 잠시 중국에 머무신 뒤로 아버지는 중국어 공부에 늘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TV를 볼 때도, 우리가 미드를 즐겨 보듯이 중화TV를 즐겨 보십니다. 요즘은 환갑을 넘어 새로 시작한 학업과 관련하여 중국을 여행할 기회가 잦아지면서 더욱 중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계십니다. 특별히 전문가 수준 이상의 한문 실력이 큰 도움이 되어 일반적인 속도보다 빨리 중국어를 익히시는 편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실수록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스스로 주먹구구식 공부라고 생각을 하셔서 그런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약이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하십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학원을 다닐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회화 중심의 중국어 교재를 알아보고 있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쁘신 아버지를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학습이 가능하도록 MP3 CD가 있는 교재를 원했고, 또 듣는 것만으로는 어렵다고 하셔서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오디오북을 찾고 있었는데, 이 교재가 바로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몇몇 중국어 교재들은 굉장히 딱딱하고 어려워 보였는데, 이 책은 올컬러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편안하고 재밌어 보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려워 보이는 한자가 가득한 중국어 교재보다 훨씬 접근이 쉬워 보이고, 삽화가 있어 있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혼자 공부해야 하는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또한 기초적인 어법을 중심으로 기분 문형과 기초 회화 표현을 여러 각도에서 응용하고 반복할 수 있도록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아버지의 실력이라면 회화의 체계를 갖추면서, 정확하고 확실한 회화를 숙지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맨 처음 교재를 살펴보신 아버지는 무엇보다 '1분 스피치' 코너에 큰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긴 문장을 읽고 읽고 말할 수 있는 훈련을 따로 받아보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별책부록도 매우 알차게 꾸려져 있습니다. 간체자 소개와 함께 초급 과정에서 알아야 할 단어 128개를 정확한 필순에 따라 연습할 수 있도록 '간자체 쓰기' 연습장이 별도로 제공되고, 이외에도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단어 위크북'과 '미니 중한사전, '미니 오디오북', 'MP3 CD' 1개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환갑을 넘긴 연세에 어학 공부에 도전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우면서도, 그만큼 염려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노력에 비해 성장이 더디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는 좋은 교재를 찾아드리는 것입니다. 독학으로 공부할 때에는 좋은 교재가 가장 좋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롱이롱이 중국어 첫걸음>을 아버지께 선물해드리고 제 마음이 무척 뿌듯합니다. 교재를 끼고 다니시며 열공하시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보이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재를 개발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교재와 함께 수고로이 흘리는 땀만큼 아버지의 중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AT GRAMMAR : 말하기 위한 영문법 트레이닝 (교재 + CD 2장) AAT 시리즈
앤 쿡 지음, 지소철 옮김 / 윌북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영문법을 들으며 공부하는 영어 '통합' 학습법!


일명 '공부의 신' 열풍으로 과목별 학습 노하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목의 성격에 따라 그것을 정복하는 노하우는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영어만큼 많은 학습 노하우가 소개되는 과목은 없을 것입니다. 학습 노하우 열풍이 일반 과목으로 확장되기 전부터, 영어는 이미 학습 노하우 열풍의 주인공이었으니까요. 영어사전을 한 장씩 뜯어서 먹었다는 아버지 세대의 고전적인 노하우부터 문장을 통째로 암기하라, 한 가지 테이프만 마르고 닳도록 들어라, 큰소리로 낭독하라 등 날마다 새로운 버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영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강사들 뿐만 아니라, 영어를 정복한 고수자들까지 영어를 정복한 저마다의 학습 비법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람에게 통용된 학습 비법이 일반적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효과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친구만 해도 영문법 책을 통째로 달달 암기하는 것으로 영어 정복의 첫 걸음을 뗀 경우도 있고, 하루에 몇 개씩 영단어를 줄기차게 암기하는 것으로 영어 정복의 꿈을 실현한 경우도 있고, 꾸준하게 영작문을 연습하는 것으로 영어 고수가 된 경우도 있고, 영어 성경을 필사하는 것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 경우도 있고, 미드를 즐겨보며 듣기가 트이니 영어의 문이 열렸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영어 공부 비법도 자기에게 맞는 옷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별로 각각의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나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영역과 노하우를 찾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어떤 과목이든 "한 권으로 끝내는" 참고서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여러 가지 참고서를 많이 보는 것보다, 통합적인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해왔고, 그것으로 어느 정도 효과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독 영어에 대해서만큼은 한 가지 노하우만으로 영어의 전 영역을 정복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원서를 읽고 해석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할 공부법과 영어를 듣고 말하는 회화 중심의 공부법을 별개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하기 위한 영문법 트레이닝(AAT)>이라는 이 교재는 그런 고정관점을 깨뜨려주었습니다.

이 책의 일차 목표는 영문법 정복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영문법을 마스터하기 위해 '듣기 학습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영어 문장을 귀로 들으면서 문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 앤쿡은 미국식 영어 액센트를 단기간에 쉽게 익히는 방법론을 제시한 <AAT : American Accent Training>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은, 세계가 공인하는 영어 학습법 개발자라고 합니다. 앤쿡이 이번에 발간한 <AAT GRAMMAR>는 AAT식 문법 학습서입니다. 앤쿡은 이 책을 통해 영어 문법과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통합한 학습법을 개발해내었습니다. 문법의 틀 안에서 말하기, 듣기 위주로 영어를 깨칠 수 있도록 고안된 '통합식' 학습이 이 책의 노하우인 것입니다. 이 책을 공부할 때는 교재를 먼저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CD를 활용해야 합니다. 교재와 함께 CD를 활용하려면 CD로 들어야 할 내용을 끊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재의 중간 중간에 부분적으로 표시되어 있는 'CD 듣기'에 형광펜으로 색칠을 해놓고, 동시에 포스트-잍도 붙여 놓았습니다. 처음엔 교재를 따라가며 해당되는 부분의 CD 내용을 듣고, 나중엔 CD 부분만 모아서 들으며 연습하는 방식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매일 아침 1시간만 영어를 공부하는 데 투자를 해보려고 작심했기 때문입니다. 문법과 듣기는 물론 영작까지 통합적으로 공부할 수 이 교재를 중심으로 적어도 두 달 정도 집중적인 훈련을 해보려 합니다. 영어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어느 한 분야를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실력의 저에게는 딱 맞는 교재, 꼭 필요한 교재라는 확신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의 신발 - 아버지, 그 진달래꽃 같은 그리움
박원석 지음 / 소금나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삶으로 남겨주신 한 아버지의 크고 높은 유산!


학교 다닐 때, 예제를 미리 내주고 시험을 보는 과목들이 있었습니다. 미리 시험 문제를 가르쳐주면 누구나 쉽게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예상 문제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을 보게 되면, 이미 문제를 알고 있었는데도 시험 문제를 받아드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그제서야 미리 공부해 두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살아계실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부지런히 효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예상문제와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사무쳐 오는 것은 바로 어버이가 떠난 다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이별의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이별이 주는 가장 잔인한 고통은 바로 그 사람을 아프게 했던 기억과 그에게 잘못했던 기억들입니다. 그리움의 두레박은 잘해준 기억은 모두 걸러내고, 오직 못해준 기억만 길어냅니다. 그리하여 그리움이 더할수록 가슴을 짓이기는 후회가 가슴에 또다른 피멍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제발 용서한다고 한 번만 말씀해주세요"(69).


그러나 부모님과의 이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효를 다하지 않으면 사뭇치게 후회하리라는 것, 이미 주어진 문제이지만 그것에 대비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신발>은 아버지를 떠난 보낸 아들이 피멍으로 써내려간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방송작가이기도 한 아들이 처음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발표한 아버지 이야기를, 재출간한 것입니다. 처음엔 '아버지', '어머니', '친청 어머니'를 코드로 한 체류성 작품이 유행처럼 발간되고 있어,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이 아니라, 눈물로 쓴 책이고, 이 책을 읽고난 제 가슴에는 '존경'이라는 두 글자가 깊고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참으로 훌륭하게 한 생을 살다가신 참 교육자 한 분을 우리 곁에 남겨 주었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어린 자식이 콧물을 흘리기라도 하면 코밑이 상한다며 종이나 걸레로 닦지 않으시고, 당신 입으로 빠셨다고 합니다. 이웃들은 입으로 빤 콧물조차도 뱉기가 아깝다며 그것을 삼키신 아버지의 별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18). 아들은 이러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베풀어주신, 그 밑도 끝도 없었던 사랑이 얼마나 높고 넓고 큰 것이었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생선뼈를 죽처럼 씹어 입에 넣어주시고, 직접 양의 젖을 짜 억지로 마시게 하시고, 아직 어린 아들을 자전거에 태워 함께 출근을 하고, 몰래 들어와 방에서 자고 있으면 어떻게 아셨는지 아들 방에 군불을 지펴주시고, 곤히 자는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시며 귀하디 귀한 내 아들이라 자랑스러워 하신 아버지. 저자는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아버지를 위해, 아이를 너무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일부러 자신의 첫 아들을 키워달라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맡기었습니다. 아들의 뜻을 헤아리셨는지 부모님은 손주를 맡아주셨고, 그 누구보다 지극 정성으로 길러주셨습니다. 지극정성으로 손주를 돌봐주신 할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주의 양육일기까지 꼬박꼬박 남기었습니다. 

<아버지의 신발>은 저자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한 아버지의 인생은 한 아들에게 깊은 그리움으로 기억될 한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교육자의 위대한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1971년 일간 신문에 "제2의 방정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릴 만큼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에서 일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헌신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사실 높고 높은 부모님의 은혜도 은혜이지만, 이 책은 우리가 우러러 봐야 할 하늘 같은 '스승'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책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했는지 일일이 다 옮겨적지도 못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스승이 열 명만 존재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믿습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있어도 올리사랑이라는 말은 없는 것처럼, 사랑은 아래로 흐르고, 자식은 아무리 효를 다해도 부모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야말로 누구보다 효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보낸 아들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깁니다. 그 '죄인'의 심정이 <아버지의 신발>이라는 책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신발>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그리움이며, 값없이 받은 사랑에 대한 속죄입니다. 그 속죄가 우리에게 유산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것은 한 아버지가 삶으로 남겨준 유산이며,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보존하고 전해야 할 값진 사회적 유산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험하고 어려웠던 시절, 밥에 굶주리고 사랑에 굶주리고 배움에 굶주렸던 그 시절, 마음에 피가 흐르는 어버이의 심정으로, 뜨겁고 넘치는 사랑으로 제자의 허기를 채워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대가를 모르는 그 순박한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인간성'의 원형이라 믿습니다. 

당신이 모두의 흰고무신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정성스레 새겨주신 것처럼, 한 발 한 발 당신이 걸어가신 그 숭고한 발자취를 가슴에 깊이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당신이 삶으로 남겨주신 유산을 묻어두지 아니하고,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내겠습니다. 삶으로 가르쳐주신 그대로 조금이라도 닮아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혼의 부름을 따라 걷는 모든 이는 순례자다"(작가의 말 中에서).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소개하는 여행 서적이나 에세이를 많이 보았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이 책을 택했다. 서영은 작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상문학상을 통해 만난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나를 그녀에게로 이끌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서영은, 역시 그녀였지만, 전혀 다른 그녀였다! 나는 아직도 어떨떨한 충격에 빠져 있다. 아름다운 산티아고를 목소리 높여 찬미하지도 않고, 뒤 이어 걸을 순례자를 위해 친절한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는 것도 아니고, 문학적인 내공이야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것이지만 미학적인 문장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정직만 남았다. 마치 그녀의 알몸을 마주한 것처럼 거침없는 내면의 고백에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혼자 삭혀야 할 속마음을 어쩌시려고 이렇게 낱낱이 털어놓으신 것일까. 게다가, 순전히 개인적이고 신비한 종교적 색채까지.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듯 거침없이, 가감없이, 느끼고, 보고, 생각한 그대로 알몸을 드러내셨다. 

2008년 9월, 그녀의 나이 66세에 유언장까지 남겨놓고 길 위로 나섰다. 그리고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인생에서 두 번의 큰 위기를 ’걷기’로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는 그녀는 이번에도 ’걷기’를 선택했다. 

"그 순간 나는 작가로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너무 멀리 떠나와 있는 것을 느꼈다. 삼사 때문에 밀쳐놓았던 원고를 다시 책상 위에 펼쳐놓으면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제 분명해졌다. 생활비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써 심사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한 번이나 두 번으로 족했다. 그 이외의 것은 사양했어야 했다.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뿌리치지 못한, 내 안의 더 내밀한 속임수는 무엇이었을까?"(16) 

이것이 그녀를 길 위에 서게 했다. 누가 무어라 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느꼈을 자기 환멸, 무력감. 나는 이 부분에서 마구 감정이입을 하고 말았다. 어느 날, 문득 정신차리고 돌아보니 내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성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전혀 성스럽지 않은 나의 일상이 나를 옥죄이고 있다. 내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듯한 선생님의 고백이 반가웠지만, 그런 마음은 바로 접혔다. 서슴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안락한 집밖으로 나와, 낯선 길 위에 맨몸으로 선 서영은 선생님은 내게 해답이 아니라, 좌절이었다. 여전히 제자리를 뭉기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나는 이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서영은 선생님을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손위 제자와 함께 걸었다. 이미 그 길을 걸어보았던 제자가 동행을 자처한 것이다. 선생님은 그 동행을 ’치타’라고 부른다. 그 ’치타’가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하다. (사실 수제비 사랑이 뜨거운 그 작가가 궁금하여 산티아고 여행기를 냈으며, 서영은 선생님보다 손위인 저자를 찾아보다 포기하기도 했다.) 한 사람 말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것이 갈등의 내막인데, 서영은 선생님은 이 동행과의 갈등을 순전히 자신의 시각에서 보고 느낀 대로 밑바닥까지 털어놓는다. 걷는 동안 그렇게 선생님의 속살이 풀어지고 풀어진다. 

"산티아고는 길이며 숲이고, 낙엽이며 바람이다"(119).

서영은 선생님은 순례자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순례자가 되었다. ’걷기’라는 단순 행동을 통해 내면에 길을 내었고, 그 길로 이끄신 신과 교감했다. 노란 화살표 방향을 걸으며, 어떤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된 순례자는 "지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순례자는 자신을 비워내고 있다. 전혀 새로운 것으로 다시 채우기 위함이다. 그것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당대의 권좌에 올라있는 대작가의 여행기라기보다, 한 순례자가 자기를 벗어던진 구도의 역사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독자에게 이것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트리히 본회퍼 - 사진으로 보는 그의 삶 세계 영성의 거장 시리즈 2
레나테 베트게 & 크리스티안 그레멜스 엮음, 정성묵 옮김, 김순현 감수 / 가치창조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것이 끝이다, 하지만 내게는 생명의 시작이다"(219).

세상이 시끄럽다. 너도 나도 한 마디씩, 말이 홍수를 이룬다. 저마다 책임을 따져 묻고,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기를 주장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본을 보여주는 선구자가 아닐까. 옳고 그름을 '말'로만 주장하는 사람은 '위선자'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무리가 바로 기독교 신앙인들이 아닐까 싶다. 성경적인 메시지의 선포는 '성경적인 삶'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구원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표적이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계시였듯이, 예수의 제자된 성도도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말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작정한 자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경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가장 존경하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운동의 선구자로, 히틀러에 대항하다 처형되었다. 전쟁을 반대하고, 유태인들을 옹호하며,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도 교류한 평화주의자이면서,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본회퍼 목사님이 삶으로 남긴 신앙의 유산은 바로 '행동하는 신앙'이었다. 히틀러 암살시도가 실패로 끝난 다음날인 1944년 7월에 쓴 그의 편지에 이런 글이 있다. "나를 거룩한 듯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믿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깨달아가고 있다. 완전히 세속적인 삶 속에서만 믿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214).

우리나라에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살인을 금하는 교리를 신봉하는 종교인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싸웠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본회퍼 목사님은 조국 독일이 자행하고 있는 죄악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의 삶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성경적 가르침이 무엇인지 선포한 것이다. 독일 거주 유태인들에 대한 핍박을 목격한 본회퍼는 정치적 저항에 가담하며, "유태인 문제에 직면한 교회"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기독교의 선포를 위험에 빠뜨리는 교회는 스스로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관련해서 세 가지 행동을 해야 한다. 첫째, 교회는 국가의 행위가 합법적이고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국가의 행위에 희생당한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 교회는 모든 사회 질서의 희생자들을 반드시 도와야 한다. 심지어 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그래야 한다. 세 번째 행동은 바퀴에 짓밟힌 사람들의 상처만 싸매주는 것이 아니라 바퀴 자체를 멈추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취해야 할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이다"(84-85).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가 거센 저항과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실종되고 세속적인 권력 다툼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회퍼 목사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믿음을 실현해야 하는 영역은 '세속적인 삶'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세속적인 삶 가운데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 본회퍼 목사님의 일생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사회는 본회퍼와 같은 신앙인 한 사람을 목말라 하지 않을까. 

가치창조에서 발간한 <디트리히 본회퍼>는 '사진으로 보는 그의 삶'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본회퍼 탄생 100주년 기념판'으로, 화보집 성격의 전기이다.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간직한 독일의 엘리트 가정에서 태어난 가족적 배경에서부터, 그가 살고 죽었던 독일의 시대적 상황까지 아우르고 있다. 본회퍼 목사님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것도 같지만,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본 회퍼의 삶은 행동으로 표현된 신앙이었다. "이것이 끝이다, 하지만 내게는 생명의 시작이다"(219)라는 그의 마지막 말처럼, 이 땅에서의 그의 생명은 끝났지만,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짧았던 그의 생애는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며 많은 신앙인들의 가슴에 도전의 불이 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