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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신발 - 아버지, 그 진달래꽃 같은 그리움
박원석 지음 / 소금나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삶으로 남겨주신 한 아버지의 크고 높은 유산!
학교 다닐 때, 예제를 미리 내주고 시험을 보는 과목들이 있었습니다. 미리 시험 문제를 가르쳐주면 누구나 쉽게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예상 문제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험을 보게 되면, 이미 문제를 알고 있었는데도 시험 문제를 받아드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그제서야 미리 공부해 두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살아계실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부지런히 효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인생에게 주어진 예상문제와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사무쳐 오는 것은 바로 어버이가 떠난 다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이별의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이별이 주는 가장 잔인한 고통은 바로 그 사람을 아프게 했던 기억과 그에게 잘못했던 기억들입니다. 그리움의 두레박은 잘해준 기억은 모두 걸러내고, 오직 못해준 기억만 길어냅니다. 그리하여 그리움이 더할수록 가슴을 짓이기는 후회가 가슴에 또다른 피멍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제발 용서한다고 한 번만 말씀해주세요"(69).
그러나 부모님과의 이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효를 다하지 않으면 사뭇치게 후회하리라는 것, 이미 주어진 문제이지만 그것에 대비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신발>은 아버지를 떠난 보낸 아들이 피멍으로 써내려간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방송작가이기도 한 아들이 처음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발표한 아버지 이야기를, 재출간한 것입니다. 처음엔 '아버지', '어머니', '친청 어머니'를 코드로 한 체류성 작품이 유행처럼 발간되고 있어,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책이 아니라, 눈물로 쓴 책이고, 이 책을 읽고난 제 가슴에는 '존경'이라는 두 글자가 깊고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참으로 훌륭하게 한 생을 살다가신 참 교육자 한 분을 우리 곁에 남겨 주었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어린 자식이 콧물을 흘리기라도 하면 코밑이 상한다며 종이나 걸레로 닦지 않으시고, 당신 입으로 빠셨다고 합니다. 이웃들은 입으로 빤 콧물조차도 뱉기가 아깝다며 그것을 삼키신 아버지의 별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18). 아들은 이러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베풀어주신, 그 밑도 끝도 없었던 사랑이 얼마나 높고 넓고 큰 것이었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생선뼈를 죽처럼 씹어 입에 넣어주시고, 직접 양의 젖을 짜 억지로 마시게 하시고, 아직 어린 아들을 자전거에 태워 함께 출근을 하고, 몰래 들어와 방에서 자고 있으면 어떻게 아셨는지 아들 방에 군불을 지펴주시고, 곤히 자는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시며 귀하디 귀한 내 아들이라 자랑스러워 하신 아버지. 저자는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아버지를 위해, 아이를 너무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일부러 자신의 첫 아들을 키워달라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맡기었습니다. 아들의 뜻을 헤아리셨는지 부모님은 손주를 맡아주셨고, 그 누구보다 지극 정성으로 길러주셨습니다. 지극정성으로 손주를 돌봐주신 할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주의 양육일기까지 꼬박꼬박 남기었습니다.
<아버지의 신발>은 저자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한 아버지의 인생은 한 아들에게 깊은 그리움으로 기억될 한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교육자의 위대한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1971년 일간 신문에 "제2의 방정환"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릴 만큼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에서 일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헌신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사실 높고 높은 부모님의 은혜도 은혜이지만, 이 책은 우리가 우러러 봐야 할 하늘 같은 '스승'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책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했는지 일일이 다 옮겨적지도 못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스승이 열 명만 존재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믿습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있어도 올리사랑이라는 말은 없는 것처럼, 사랑은 아래로 흐르고, 자식은 아무리 효를 다해도 부모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야말로 누구보다 효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보낸 아들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깁니다. 그 '죄인'의 심정이 <아버지의 신발>이라는 책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신발>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그리움이며, 값없이 받은 사랑에 대한 속죄입니다. 그 속죄가 우리에게 유산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것은 한 아버지가 삶으로 남겨준 유산이며,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보존하고 전해야 할 값진 사회적 유산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험하고 어려웠던 시절, 밥에 굶주리고 사랑에 굶주리고 배움에 굶주렸던 그 시절, 마음에 피가 흐르는 어버이의 심정으로, 뜨겁고 넘치는 사랑으로 제자의 허기를 채워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대가를 모르는 그 순박한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인간성'의 원형이라 믿습니다.
당신이 모두의 흰고무신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정성스레 새겨주신 것처럼, 한 발 한 발 당신이 걸어가신 그 숭고한 발자취를 가슴에 깊이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당신이 삶으로 남겨주신 유산을 묻어두지 아니하고,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내겠습니다. 삶으로 가르쳐주신 그대로 조금이라도 닮아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