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은 가고 싶은 여행지 세계여행사전 1
내셔널지오그래픽 편집부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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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생에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여행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엄선하여 추천한 지구촌 여행지 500곳!

인생은 나그네길이요, 삶은 여행이라고 노래한다. 어차피 사는 것이 여행인데 왜 우리는(적어도 나는) 이토록 여행에 목말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우연히 재방송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필리핀 소녀가 잊혀지지 않는다. 일명 ’쓰레기 산’이라 불리는 동네, 그곳에서 태어난 사는 소녀였다. 산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보다 더 비참하게 느껴졌던 것은 태어나서 동네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는 소녀의 고백이었다. 한 발만 동네밖으로 내딛여도 그렇게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살지 않아도 될 듯한데 그 소녀는 쓰레기 산에 갇혀 살고 있었다. 한 번도 바깥 세상을 본 적이 없고, 경험해보지 못한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나와 바깥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소녀를 데리고 나와 바깥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그 짧은 여행이 소녀의 마음에 희망과 기대와 의지를 심어주기를, 그리고 세상 밖으로 박차고 나오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내게도 세상을 경험하고 본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내게 여행은,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삶의 자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을 온 몸과 마음에 새기는 작업이다.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어렵게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감사를 배웠다. 낯선 문화와 부딪힐 때면, 내가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보게 된다. ’아’ 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자연 앞에 서면, 마음이 숭고함이라는 감정에 감전되는 동안 내 안의 문제가 작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여행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메마른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내 삶을 환기시켜줄 지구촌 여행을 늘 꿈꾸며 산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구촌 여행이 꿈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여행을 실행하기 위해 내가 넘어야 할 장벽이 많기 때문이다. 선뜻 세상을 향해 나서지 못하게 하는 많은 장벽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장벽은 사실 두려움이다. 낯선 세상과 낯선 문화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준비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여행사전>과 같은 책은  준비를 도와주는 가장 훌륭하고 좋은 친구이다. 또 여행에 대한 소원의 불꽃이 일상에 젖어 금방 시들해지지 않도록 불길을 활활 지펴주는 불쏘시의 역할을 해준다. 오늘도 나는 여행 책을 읽으며 부픈 꿈에 계속해서 바람을 집어넣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길 위에 나선 나와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계속되는 여행 서적에 자극을 받아 가까운 곳에서 쉽게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비행기 티켓과 숙소의 예약을 마친 상태이다. 그렇게 내딛는 한 발이 나를 세상 속으로 이끌어주리라 기대하며 말이다.   


"이 책은 여행지에 도착하기까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 전체에 대한 책이다."
(세상으로 나가 탐험하고 보라 中에서)

<세계여행사전>은 내셔럴 지오그래픽이 엄선하여 선정한 지구촌 여행지 500곳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이다. 다른 여행 서적에 비해 구성이 특이하다. 전체를 구성하는 아홉 개의 테마가 ’교통수단이나 여행 유행’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강, 바다 , 호수를 따라가는 물길 여행
끝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동차 여행
꿈의 세계로 달리는 기차 여행
순수하고 소박한 즐거움을 찾는 걷기 여행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느끼는 문화 탐험 여행
이국적인 맛과 향을 즐기는 음식 여행
열정과 모험으로 가득 찬 레저, 스포츠 여행
새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비행기 여행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인물 여행

전문가들이 선정한 여행 테마라 그런지 스케일도 크다. 나에게는 불가능해보이는 여행 테마나 여행지도 있다. 가보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 같은 ’아마존 강’이 그렇고, 해보고 싶지만 비용이 걱정되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상공 비행’(574-575)이 그러한 예이다. 

이 책의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엄선한 테마와 여행지라는 것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세상은 넓고, 인생을 짧다. 그런 점에서 <세계여행사전>의 가장 큰 매력은 여행지를 선정하는 데 후회없는 선택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보증하는 여행지라면 믿을 수 있다. 이 밖에 성수기와 비수기, 날씨, 여행 일정, 숙소와 관련 웹사이트, 여정을 표시한 지도 등 전문가들의 실질적인 조언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 하나로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금물이다. <세계여행사전>은 여행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주는 여행 지도라고 보면 좋을 듯 하다.

사실 이 모든 것을 떠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여행지와 그곳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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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온! 그램툰 Come On! Gramtoon 2 - 형용사 부사 전치사 GRAMTOON is My Best Friend 2
김영훈.김형규 지음 / 한겨레에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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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학습만화를 통해 영어를 공부하는 요즘 어린이들이 부럽습니다! 

 

영어를 공부할 때,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분야는 아마도 '문법'일 것입니다. 문법의 딱딱한 개념을 이해하고, 재미없는 규칙을 암기하는 일이 쉽지 않을 뿐더러, 예외적인 법칙까지 있어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영문법은 암기를 했다고 해서 회화처럼 직접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읽고, 듣고, 쓰고, 말하기를 위한 보조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더 재미가 없게 느껴집니다. 영문법 공부는 한마디로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영문법 공부를 대충 건너 뛰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학 공식처럼 문법은 영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문법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기초 공사를 하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피할 수 없는 영문법 공부, 이제 문제는 얼마나 재밌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한겨레에듀에서 발간한 [그램툰]은 문법과 만화가 만나 문법 공부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그램툰]은 기초 영문법을 쉬우면서도 재밌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영문법 학습만화 시리즈입니다. 이 책에서는 영문법 중에서도 '형용사', '부사', '전치사'를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램툰]에는 모르는 게 없이 다 아는 최신 홈위크 로봇 '다아리'와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 찬 지구 소년 전사 '차오리', 영어에 대한 기본기를 갖춘 오리의 여자 친구 '반마리', 오리의 엄마와 아빠, 안드로메다 그램볼의 마지막 희망이자 후계자인 '왕자', 왕자를 따르는 전사들 '화이트 독', 그리고 무서운 음모와 갖가지 함정을 꾸미는 대마왕 '아마도'와 아마도의 수하들 '블랙 독'이 등장하여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엮어갑니다. 푹빠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영문법에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램툰]의 장점은 딱딱하고 어려운 문법의 개념을 정말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각으로 기억되는 것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하는데,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미지를 그려가며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요즘은 조기교육이나 몰입교육이다 해서 영어를 이른 나이부터 배우지만, 저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영어를 처음 배웠습니다. 어떤 과목이든 선생님을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직접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의 첫 영어 선생님은 영어가 정말 재미없는 과목이라는 인상만 우리들에게 남겨주셨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램툰]은 영문법을 가르쳐주는 첫 번째 선생님으로 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암기보다는 이해를 위주로한 문법의 설명이 쉬우면서도 재밌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문법이 '재밌는 공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재밌는 '놀이'를 겸한 별책부록도 알차게 꾸며져 있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동안 앞에서 공부한 영문법을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학습만화로 영어를 공부하는 요즘 어린이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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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감 - 동물과 식물의 모든 것 체험 도감 시리즈 1
사토우치 아이 지음, 김창원 옮김, 마츠오카 다츠히데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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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연 속으로!

 

 

여름방학 때마다 나를 가장 곤란하게 했던 방학숙제는 바로 곤충채집이었습니다. 잠자리채를 하나 사서 산에도 올라보았지만, 결국 관찰일기는 백과사전을 찾아 적당히 베끼고, 곤충표본은 문방구에서 파는 것을 사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처럼 엄마들이 아이들 과제를 자기 숙제하듯 도와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런 방학숙제를 도와줄 만한 참고자료도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그런 방학숙제를 내주는지 모르겠지만, <자연도감>이 있다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책을 받아보기 전에는 백과사전 같은 책일 거라 짐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연도감>은 기존의 백과사전과는 조금 다른 컨셉으로 구성되고, 집필되었습니다. 동물과 식물에 대해 단답형적인 지식을 정리해놓지 않았습니다. <자연도감>은 살아있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동물과 식물을 '직접 관찰'해보도록 이끌어줍니다. 실제로 도전해보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을 관찰하기 편한 옷차림과 도구에 대한 설명, 관찰 방법까지 자세히 기록하며, 스스로 자연을 탐구해보도록 집필되었습니다. 곤충류, 조류,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조개류, 그리고 식물까지 자연을 고루 관찰해보도록 해줍니다. 사실 <자연도감>이 가르쳐주는 대로 직접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활용해보기보다 백과사전을 참고하듯 읽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방법은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요즘 아이들 책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낍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자녀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투자를 해주시는 부모님들 덕분에 매일 양질의 교육도서가 쏟아져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자연도감>을 보니, "자연을 책으로 배웠습니다"라는 말이 마음에서 생겨납니다. 좋은 책이 발간되고 그것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분명 특권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가뜩이나 게임이나 가상 세계에 빠져 사는 아이들이, 자연은 휴가 때에나 찾는 곳 정도로만 인식하고 동물과 식물을 책으로만 배운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패한 교육이 아닐까요. <자연도감>에서 제안하는 자연 관찰이 현재의 생활양식이나 교육제도 아래에서 보면 위험하고, 실현 불가능한 탐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연을 향한 탐구정신만이라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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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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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남자가 "선생님" 하고 부르며 회상 속에서 선생님에게 말을 걸 때마다, 마음에 '쿵' 소리가 났어요.  

 

"나는 사진 속의 선생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전까지 이렇게 강렬한 상실의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태껏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63) 

<침묵의 시간>은 학교 강당에서 치러지는 추모식으로 시작됩니다. 크리스티안은 슈텔라 선생님의 영어 수업을 들었던 13학년 학생입니다. 슈텔라 선생님의 영정 앞에선 크리스티안, 추모식을 지켜보는 그의 독백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크리스티안의 비밀스러운 회상 속에서 슈텔라 선생님과 크리스티안이 함께했던 시간들이 서서히 복원됩니다. 이별 예식이 치러지는 그 자리에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끝나버린 자리에 서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실 시작되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함께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게 인간이었다."(88)  

<침묵의 시간>은 스승과 제자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금기가 주제는 아닙니다. 걱정스러운 시선, 나무라는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 빠져드는 청춘이 있을 뿐입니다. 서로에게 반응하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고, 사랑에 들뜬 열기가 전해집니다. 설레임과 망설임 속에 그 둘은 서로에게 다가갔고,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사랑이 끝나 버렸습니다.  

 

 "선생님! 나는 유골 단지에서 나온 그 하얀 잿가루가 당신의 잔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잿가루는 바람에 조금 날리다가 곧 물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바다는 재를 재빨리 받아들였고, 아무런 흔적도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소리 없는 소멸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죠. 이것이, 이별의 문법인가요?"(148)

소리 없는 소멸. 선생님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채 피워보지도 못한 그 둘의 사랑도 그렇게 소멸하고 있었습니다. 다 타버린 사랑의 재가 아니라, 채 피워보지 못한 사랑이었기에, 크리스티안의 심장에는 아직 뜨거운 사랑의 정염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설레임이 멈추고, 터질 것 같은 가슴도 진정해야 할 시간입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기 떠가는 꽃들이 내 젊음의 영원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보듬는 크나큰 위안이 되리라는 것을."(148)

당시 오십을 넘긴 담임선생님이 십대 여고생이었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몸은 나이를 먹지만 마음은 너희들이 느끼는 그 설레임을 아직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요즘 나의 바람은 몸이 나이를 먹는 것만큼, 마음도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청춘의 끝자락에 선 내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단념해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청춘의 사랑을 유난히 아름답게 기억합니까. 또다시 심장을 뛰게 할 사랑은 또 온다고, 사랑은 언제고 시작될 수 있다고, 그렇게 주문을 걸다가도, 차라리 청춘만이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은 다시 없다고, 이제는 놓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념시킵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은 질긴 미련으로 남아 두고두고 기억을 괴롭히겠지만, 그나마도 갖지 못한 청춘이라면 그것은 또 얼마나 가난한 인생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침묵 속에 머물고 지켜져야 할지 모릅니다."(153)

심장이 기억하는 사랑은 데인 것처럼 쓰라립니다. 잃어버린 사랑이 기억날 때마다, 어느 순간을 밤새도록 후회하고 또 후회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간 사랑에 미련을 두는 이유는 '그 사람 때문에 행복했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순간은 영원 속에 남겨집니다. 크리스티안이 슈텔라 선생님과의 추억을 남들에게 누설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이 공유할 수 없는 그 둘만의 비밀스러운 영역이 그 영원 속에 남았기 때문이죠. 그의 손이 선생님 몸에 닿을 때의 갑작스러운 행복과 그 느낌을 또다시 원하는 설렘으로 그는 아직 가슴이 터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역을 함부로 꺼내보이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선생님, (...) 그곳에서는 기억 속의 모든 것이 되풀이 될 거에요. 지나간 일이 다시 일어나고 영원히 반복될 테죠. 아픔과 두려움이 함께하겠지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다시 살려 내려고 애쓸 겁니다."(149)

<침묵의 시간>, 표지에 얼굴을 반쯤 내보이고 있는 젊은 남자가 있습니다. 어딘가 무심해 보이는 표정 때문일까요. 어쩐지 나는 이 사람이, 얼마 전에 끝난 '거침 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의 '이지훈'이라는 캐릭터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했던 선생님의 추도식에 선 이 열아홉 살 소년은, 눈부시게 밝은 햇살 속에 홀로 서 있는 이방인처럼, 홀로 섞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리 내어 슬퍼할 때, 그는 무척이나 담담해보입니다. 그러나 슈텔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별 예식을 마친 사람들은 기억의 끈을 놓으며 슬픔에서 놓여나려 하는데, 그는 홀로 사랑의 기억을 지고 가고 있습니다. 덤덤하게 읽어내려가다 그가 '선생님' 하고 부르는 대목을 만날 때면, 어디선가 날아든 공에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뻐끈한 통증이 갈수록 번져나갔어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다시 살려 내려고 애쓸 것이라"는, 이 청춘을 어찌해야 하나, 괜히 제 가슴이 아파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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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 겨레 전통 도감 5
조현 지음, 홍영우 그림 / 보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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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으로 풀어내는 우리 탈춤  

 

탈춤은 제게 특별한 추억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대강당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습니다. 밴드부, 합창부, 연극부 등 신입생을 위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탈춤부'의 공연이었습니다. 재밌는 탈, 신명나는 리듬, 그리고 큼직큼직하게 움직이는 탈춤의 몸동작을 따라 우리는 어느새 손뼉을 치며 함께 박자를 맞추었습니다.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몸짓으로 펼쳐지는 탈춤 '이야기'에 젖어들며 참으로 신나게 웃었습니다. 환영회가 모두 끝나고 운동장에서는 탈춤부의 뒷풀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동그란 원을 그리며 모여 서서 함께 우리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탈춤부의 한 선배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선배님 앞에서 치러지는 오디션에 도저히 참가할 자신이 없어서 탈춤부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지만, 탈춤부 공연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제일 먼저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 장단을 익히고, 탈춤을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보리에서 출간된 <겨레전통도감> 시리즈가 총 다섯 권의 책으로 완간되었다고 합니다. <살림살이>, <전래놀이>, <국악기>, <농기구>, 그리고 이제 출간된 <탈춤>이 그 다섯 번째 책입니다. 저는 이중에서 <살림살이>와 <탈춤>을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읽은 <살림살이>는 소중한 분께 선물로 드렸지만, 꼭 소장하고 싶은 시리즈입니다! 책을 실제로 보신 분들은 <겨레전통도감>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소장 가치가 눈에 보이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탈춤>에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열한 가지 탈춤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 마을에전해 내려오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 전해 내려오는 가산오광대, 경상남도 통영 지역에서 놀던 통영오광대, 경상남도 고성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성오광대, 부산 지방에서 놀아 온 들놀음, 부산 동래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동래야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 경기도 지방에 전해 오는 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 황해도 지방 사람들이 놀던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함경남도 북청에서 놀던 북청사자놀음이 그것입니다. <탈춤>은 탈춤 보존회가 공연하고 있는 대본을 바탕으로 해서 그림과 이야기로 한 과장씩 보여줍니다. 열한 가지 탈춤의 '이야기'는 조상들의 빛나는 재치와 해학을 엿볼 수 있는 흥겨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머슴, 백정, 할미, 파계승, 양반, 문둥이, 기생 등 등장인물도 다양합니다.  

아시아에만 해도 500개가 훨씬 넘는 탈이 있지만, 우리나라 탈처럼 구수한 익살과 따뜻한 정을 담고 있는 탈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6). <탈춤>은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하여 탈춤의 원래 모습을 되살려냈습니다. 또한 탈춤에 쓰이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옛 탈 가운데 방상시탈, 처용탈, 장군탈, 병산탈 등 알아두면 좋을 만한 탈을 따로 소개해주고 있습니다(238-239). 

탈춤은 함께 어울려 흥겹게 노는 가운데 마음속 시름을 덜어내는, 치유적인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억눌리며 살아도 호소할 데가 없는 소박한 사람들의 여한을 놀이로 승화시켜 달래주고 풀어주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탈춤>에 담긴 정신과 지혜를 배우고 그 흥겨움을 몸으로 느껴서, 탈춤이 이제는 문화재나 박물관에만 보관되는 옛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숨쉬는 놀이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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