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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엄마처럼 살아갈까 - 엄마의 상처마저 닮아버린 딸들의 자아상 치유기
로라 아렌스 퓨어스타인 지음, 이은경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모든 딸의 거울 속에는 엄마가 있다
나는 엄마랑 밀착되어 있는 딸은 아니다. 위로 오빠를 두고 아래로 동생 둘을 둔 샌드위치 딸인데다, 우리 부모님은 일명 '방목형' 양육자에 가까우셨다. 서로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도 않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부모와 자녀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교가 많은 동생에 비해 나는 좀 데면데면한 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를 향한 나의 감정은 '사랑'하고는 좀 달랐다. 엄마를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하고, 뭔가 가슴 찡한 그 무엇이 있었지만, 어쩐지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마음에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를 향한 내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문할 때마다, 나는 나쁜 딸이 된 것 같았다.
이런 내가 <왜 나는 엄마처럼 살아갈까>라는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 친구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외동딸이었는데, 엄마를 지독히도 사랑하면서 그만큼 늘 지독하게 싸웠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보며 내 마음에 수수께끼가 생겼다. 엄마를 '너무' 사랑했던 그 친구보다 오히려 내가 더 엄마와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우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 엄마와 딸이 싸움을 시작했는데, 지켜보는 우리는 모두 같은 말을 했다. "둘이 똑같다!" 친구는 엄마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자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을 호소했지만, 객관적인 입장에 선 우리가 보기에 불화의 원인이 그 '닮음'에 있었다. 그 둘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성격까지 닮아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모든 것이 서로를 향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싸우면서 살 바에야 차라리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친구는 엄마 없이 못 산다고 했다. 그것은 친구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함께 살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했다.
나의 데면데면함도 문제였지만, 친구를 보며 딸과 엄마가 지나치게 말착되어 있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는, 특히 엄마와 딸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적당할까?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고자 이 책을 선택했다.
"일그러진 거울에 비친 자아상, 즉 자신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은 보통 할머니에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다시 딸에게로 전해진다"(9).
"그렇다면, 왜곡된 자아상은 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걸까? 그 원인은 보통 어머니가 딸을 자신과 분리하지 못하는 데 있다"(10).
<왜 나는 엄마처럼 살아갈까>는 "엄마의 왜곡된 자아상을 딸이 물려받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엄마는 딸의 거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엄마와 딸이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무관심한, 그리하여 엄마로부터 물여받은 부정적인 영향력을 감지한 '딸'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특히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억누르고 있는 '딸'에게 도움을 준다. 메릴린 먼로와 같은 유명인, 신화, 영화 등의 사례를 통해 엄마의 문제점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의 삶의 '문제'를 통찰한다. 그리고 '생각고리'라는 방법을 통해 엄마와 딸의 자아상을 분리하는 데 집중하며 치료를 시도한다. 일종의 인지치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일반화'의 문제이다. <왜 나는 엄마처럼 살아갈까>는 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에 주목하는데, 솔직히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물론, 병적인 영향력은 문제가 크겠지만, 일반적으로 '엄마의 흔적'이 '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육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딸이 엄마의 왜곡된 자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엄마의 왜곡된 자아상'을 일반적인 범주로 설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엄마의 왜곡된 자아상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형성한 딸의 자아상은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건강한 자아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나치게' 청결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오히려 면역력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저자도 책을 시작하며, 이 책이 엄마를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완벽한 사람 없듯이 완벽한 엄마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충분히 좋은 엄마'가 최고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부정적인 모든 것은 '엄마 때문'이라고 하는 것 같아 솔직히 좀 불편했다. '엄마의 흔적'에 대한 딸의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에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린 시절 엄마의 행동에 모든 원인을 두고 부정적인 반응(결과)을 일반화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쩐지 딸의 비겁한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엄마가 병적인 문제를 가진 극단적인 경우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