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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잊지 않을 것 중의 가장 큰 것이 어찌 굴욕이겠느냐."(327)
병자호란, 야만의 나라라 업신 여기던 사람들 앞에 우리나라 임금이 고개를 조아려 땅에 머리를 아홉 번 찧으며 항복했던 대 굴욕의 역사이다.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큰 것이 굴욕은 아니겠지만, 그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날의 굴욕과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적 치욕만이 아니다. 나라의 치욕만이 아니다. 나라의 치욕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한 인생이 있다. 한 나라의 세자였으나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고, 전쟁 포로로, 정치적인 인질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세자에게 우리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소현, 그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소현>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굴욕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인질로 끌려가 적국에서 8년의 세월을 보내고 돌아온 소현은 귀국 후, 두달만에 사망했다. 병으로 죽었다고 배웠으나, 그의 죽음을 두고 ’암살’을 언급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그를 학대했다는 아버지 인조가 있다. 사도 세자와 함께 비운의 세자로 조선의 역사에 남겨진, 그 소현 세자의 삶과 정치적인 정황이 궁금했던 것이다. 또 하나, <소현>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천주교인이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기 때문이다. 적국에 인질로 있을 때 천주교를 접했고, 귀국할 때 조선에 천주교를 들여왔다는 소현 세자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안이 아니고 노여움도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슬픔이었다. 아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아비에게 버려졌고,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나 나라에게 버려진 목숨이었다."(323)
김인숙 작가의 <소현>은 소현 세자의 환국을 전후로 한 약 2년 간의 이야기이다. 그의 전 생애를 다룬 전기가 아니라, 마지막 2년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정밀하게 재구성했다. 그런데 책을 마주한 첫 느낌은, 역사 소설이 아니라 한 편의 감상문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소현에 대한 관심보다 작가의 수려한 문체가 더 인상적이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구석구석 묘사하듯, 한 문장 한 문장이 매우 느린 템포로 진행하며 섬세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차갑거나, 비장하거나, 참혹하거나, 긴박하거나, 날이 서거나, 모질거나, 그렇게 밀도 높은 그림이 거친 듯, 격렬한 듯, 수려하게 펼쳐진다.
<소현>이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정세와 소현이 처한 자리라고 생각된다. 중원으로 뻗어나가는 적국과 조국 사이에 끼여 소현은 양쪽 모두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자신을 볼모로 잡고 있는 적국에 충심을 보이는 것만이 살 길이었지만, 그럴수록 조국의 의심도 높아갔다. 그를 슬프게 했던 것은 적국이 아니었다. 그를 믿어주지 않고 그를 품어주지 않는 아비와 조국이었다. 아비인 인조에게 아들 소현은 적국과 내통할지도 모르는 위험 인물이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권력 투쟁의 상대일 뿐이었다. 소현은 결국 아비에게, 나라에게 버려졌다. 왕위란, 권력이란, 정쟁이란, 그렇게 비정한 것이었다.
"청이 중원을 장악한 것이 태조가 창을 쥔 이래로 고작 50년의 세월이었다. 그중의 8년을 내가 그들과 함께 있었구나. 허니 내가 무엇을 알지 못한다 할 것이냐. 이기고 지는 것의 환멸을 알았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조선의 세자, 임금의 아들이다.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밝히 아는 것이 그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내 뼈를 갈고, 적의 똥을 핥는 한이 있더라도, 저들이 보여준 모든 것을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327)
삭히고, 견디고, 삭히고, 견디었던 소현은 중원으로 뻗어나가는 적국을 보며 자신의 조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았다. 정복자의 세상, 정복자의 세월을 보며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꿈을 꾸었다(316). 그리고 그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생은 볼모의 신분에서 풀려나고, 영구 환국 후, 두 달 만에 깊은 통한을 남긴 채 저버리고 말았다.
아비인 인조 임금의 태도는 그가 ’제거’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임금의 눈물에 대한 기록도 없고, 장례를 성대히 치러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청을 냉정히 물리치고, 세자를 살리지 못한 의관들을 벌하라는 주청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세자를 모셨던 시강원은 신속히 폐지되고, 세자가 세상을 떴으니 속히 원손을 봉하시라는 주청에 대해서만큼은 서두를 것이 없다는 하교가 내려졌다(331). 이뿐이 아니다. 세자가 세상을 뜨고 한 해 후에는 세자빈 강빈이 임금을 저주했다는 혐의를 입어 사약을 받았고, 세자의 세 아들은 모두 유배형에 처해졌고, 원손이었던 석철은 동생 석견과 함께 굶어 죽었다고 한다(332).
"세상을 탓하거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 태어난 시대를 탓하거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자리에 설 것이니 너의 억울함을 그때에 위로받거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세자가 단지 한마디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 잘 가거라......"(323)
이 고독했던 한 사람의 인물을 읽으며, 나도 단지 "잘 가거라" 한마디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 우리의 눈물이 소현에게 위로가 된다면 내 기꺼이 울어주리라. 그러나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는 약속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힘 없는 한 사람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의 자리가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야만국에 머리를 조아리며 패배를 인정하고 아들까지 제거해야 했던 불안한 권력자나, 짓밟히며 살아도 호소할 데가 아무데도 없었던 약소국의 백성이나, 중원을 재패했으나 결국 사라진 이름이 되어버린 청의 역사나, 8년의 모진 세월을 견디고도 자신의 조국에서 그렇게 허망한 최후를 맞이한 소현에게나, 결국 모두에게 삶(역사)은 비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현이 겪었던 세월의 비정함은, 강대국 앞에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불안한 권력이지만, 그것이라도 서로 쥐어보겠다고 속이고 감추고 물고 찢고 찢기며 다투는 오늘 여기,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