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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조정에 적을 제합할 계책이 없으니, 운림의 노스님이 일어나셨다.
"내 눈앞에 바다가 있고, 그 바다 건너에 내가 뒤지고 살피고 꿰뚫어봐야 할 왜인들의 나라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이제 이것만이 나의 도입니다(111).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책에 더 가까운, 글로 쓴 다큐멘터리로 읽힌다. 이야기 전개가 상당 부분 역사적 배경 설명과 시대 해석에 기대고 있다. 아마도 ’사명대사’라는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에게 그 시절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지식이 그만큼 미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탄탄한 역사적 고증과 함께 시대를 비판적으로 읽어냄으로써 사명대사라는 인물의 역사적 활약과 그 의의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문학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이고 학술적인 가치를 동시에 지닌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심한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위태로웠던 시절에 조국을 피와 땀으로 지켜낸 숨은 위인이 있다. 공교육의 역사책에서는 한 두줄로 정리하고 마는 인물이지만, 한 작가에 의해 그리고 5년이라는 집필 과정을 거쳐 우리가 다시 찾은 사명대사는 역사와 후손의 마음에 깊고 분명하게 새겨야 할 위인임에 틀림 없다. 한 인물의 충(忠)과 덕(德)이 오늘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한다.
작가는 임진왜란의 영향을 이렇게 평가한다.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봐도, 이 왜란으로 덕을 본 나라가 없었다. 모두가 패전국이었다"(79).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국가가 존립해 있다는 자체가 기적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게다가 일본이 재침략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런 지경에 조선에 기대어 먹고살던 대마도는 당장 식량난에 부딪혔고, 일본 측에서는 계속해서 조선에 통교를 요청해 왔다. 일본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선 조정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내지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정이 내놓은 대책은 일본으로 건너가 정세를 살피고, 교린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수행할 대신이 없었다. 바로 이때 천거된 사람이 바로 사명대사, 유정이었다.
억불정책을 펴는 조선에서 승려는 천민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조선의 조정은 국운이 걸린 이 중차대한 사명을 유학자가 아닌, 사명대사에게 맡기려 했을까. 작가는 이달의 입을 빌어 이렇게 설명한다.
"왜국으로 가서 왜인들을 상대하는 일에 사명대사만 한 이가 어디 있겠나.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이며, 용기를 가졌다 한들 사명대사만 한 경험과 통찰을 가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사명대사는 일찍이 칼로써 왜를 쳐부순 공도 어떤 장수 이상이거니와 가등청정(加藤淸正: 가토 기요마사)과 강화(講和)를 논할 때도 상대의 속셈을 꿰뚫어 꼼짝달싹 못하게 한 분이야. 게다가 승려 아닌가. 왕명을 받들고 가는 거지만 나중에 명나라에서 뭐라 해도 왕명을 내린 게 아니라 불자로서 도를 행한 거라고 발뺌을 하기도 좋질 않은가. 조선의 고승이 어리석은 왜국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러 간 거로 치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누가 천거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건 탁견이지, 탁견이고말고"(45).
"자기 안위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임금의 무수한 영웅 죽이기와 판단 착오와 우유부단과 결정 번복의 혼란까지 헤치고 나가야 했던"(88) 조선의 조정이 사명대사를 ’외교관’으로 내세운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 국왕의 명을 받아 탐색사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던 사명대사에게 이 일은 또다른 번민의 시작이었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불제자의 태도요 행동이랄 수 있을까? 유교의 경전을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가 승려가 된 몸이 어째서 속세로 돌아와 그곳의 운명에 관여하고 있는 것을까?"(62)
게다가 61세의 고령이었던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떠나는 형편은 당시 국가의 형편만큼이나 비참했다. 국서도 지니지 않고, 관작도 없는 몸으로, 적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110). 맨몸으로 왜국으로 건너가 왜인들과 마음을 열어 교류하는 한편, 기세를 올려 제압해야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만히 뒤를 살펴야 했다. 이 일을 위해 사명대사는 스스로 담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을 구해야 했고, 지략과 계책을 가진 사람을 구해야 했고, 의복과 약재도 스스로 구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정을 힘들게 한 것은 이것이었다. "사명대사 유정이 이끄는 행렬은 그 중에서도 탐정을 하고 교린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임무를 띤 사절이었다. 명을 내린 국왕도 절차를 밟아준 비변사나 예조도 무엇을 어떻게 하고 오라는 정확한 지침을 내려주지 못했다. 모든 게 유정의 몫이었다. 유정을 힘들게 한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183).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침략국에 내던져지듯 보냄을 받았던 탐색사 유정의 위태로운 행적을 복원하며, 그렇게 열악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가 일구어낸 외교적 업적의 의의를 새롭게 평가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 우리의 외교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20세기 초 한국을 강점하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을 비롯 동아시아 전역에 진주해 세계 전쟁을 벌이고 패전하던 때까지 각국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당당함은 왜란 때 굳어진 정한론에 그 단단한 씨앗이 박혀 있다"고 논한다(399).
이밖에도 <사명대사 일본탐정기>는 국제 정세를 아우르는 임진왜란에 대한 거시적인 평가, 선조를 평가하는 부정적인 시각, 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항왜(降倭)의 존재, 그리고 당시의 일본까지 두루 살피며 읽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기보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까닭은, 비판적인 입장을 지탱할 만큼 지식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시대 해석이 큰 공명을 만들어낼 만큼 강렬하고 탁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안일만을 걱정했던 임금과는 달리 자신의 안일을 개의치 않고 온몸으로, 그리고 맨몸으로 적진에 들어가 나라의 자존을 지켜준 사명대사의 탁월한 외교전과 인물됨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