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2 - 금권천하 화폐전쟁 2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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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 시스템을 지배해 온 17개 금융가문의 300년 역사를 탐색하다!



국제 경제는 물론 국내 경제의 흐름에 대해서도 무지한 내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제 이슈는 ’달러가 몰락할 것인가?’에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달러의 몰락을 예측하는 가운데, 얼마 전에 읽은 <불편한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기 때문이다. <불편한 경제학>에서는 서민이 생존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은 ’풀뿌리 외환보유고’를 쌓는 것이라 충고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공황의 공포가 예견되는 있는 지금, 부동산도 믿을 수 없고, 은행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달러를 사야 할 것인가?’, ’금을 사야 할 것인가?’ 달러도 믿을 수 없고, 금도 믿을 수 없다면 서민이 금융 쓰나미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화폐전쟁 2 - 금권천하>는 약 300년 동안 국제 금융 엘리트 가문들이 어떻게 형성, 발전했는지, 그렇게 형성된 유럽과 미국의 17개 주요 금융 가문이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를 움직여왔는지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앞으로 달러의 몰락이 어떻게 세계단일화폐로 이어지게 될 것인지 상세한 시나리오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쑹홍빙은 전작인 <화폐전쟁>에서 글로벌 경제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해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신뢰성은 담보된 금융 시나리오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다시 확인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은, 세상은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들이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금융 천재 그린스펀은 정말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을까?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는 과연 예측할 수 없는 위기였을까? 2008년 세계를 덮친 금융 쓰나미는 정말 막을 수 없는 재난이었을까? 저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의도적으로 조작된 위기를 겪을 때마다 거대한 부자 평범한 서민들에게서 금융 엘리트에게 이전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폐전쟁 2 : 금권천하>는 금융 엘리트 가문들의 인맥 관계도 분석을 통해, 국제사회의 경제 동향에 숨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폭로한다. 그 중심에 "유대인 금융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 존재한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사실도 아니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난 뒷맛이 꽤나 씁쓸하다. 그중에서 "재단"이라는 시스템을 악용하여 자본을 이동시키는 사례는 록펠러 재단이 시초라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록펠러 재단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금권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강요하는 대신 유혹하는 방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금권은 사람의 마음속 욕망을 이끌어낼 뿐, 절대 외부적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교모한 수법의 하나가 바로 ’거짓 정보 흘리기’이다. 시장에서 다른 참여자들의 생각과 판단을 속이거나 혼란스럽게 만들어 그 속에서 이득을 얻는 것이다. 금융과 정보가 한통속인 것을 드러내는 <화폐전쟁 2 : 금권천하>는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한다.

<화폐전쟁 2 : 금권천하>를 통해 배우는 세상은 알면 알수록 불편한 진실이다. 덮쳐오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세계 경제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음모를 마주하고 있어도 내게 남는 것은 세상에 대한 체념과 약한 나에 대한 무력감뿐이다. 금권천하의 노예로 살아가며 신음하는 우리를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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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손 도장 - 2010 대표에세이
최민자 외 49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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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하기 위해 수필을 읽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물신(物神)이다"(5). 말을 바꾸면, 우린 지금 물신을 섬기며 살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등 부끄러움도 없이 새해 벽두의 덕담으로 ’부자 되세요’를 나누며"5) 사는 세상에서 경쟁에 지치고, 걍퍅해지는 마음을 치유하는 해결책으로 <하느님의 손도장>은 수필 쓰기를 권한다. 그리고 2009년 격월간 <에세이스트>에 실린 그들 중에, 이렇게 50편의 수필을 엄선하여 책으로 엮어내는 것은 수필을 읽자는 권고일 것이다.

아무나 책을 내고, 아무나 수필가는 아니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큰소리치며 나도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현실에서 겪어내기에는 누추할지라도 나의 일상도 이렇게 글로 담아내면 소중하게 느껴질까. 다른 이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읽으니,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던 나의 하루도, 나의 추억도,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수필을 통해 만나면, 텔레비전을 보면서 멸치를 까는 일도, 녹슨 하모니카 하나도, 동네 미용실에서 만난 배꼽티를 입은 아가씨도 특별하기만 하다. 

인생을 몰랐을 때(?)는 수필을 잘 읽지 않았다. 잔 재미는 있었지만 어쩐지 가볍고 시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껴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에는 수필을 읽는 일조차 낭비로 여겨질 뿐이었다. 시시껄렁한 남의 이야기 읽을 시간에 대신 거창한 내 삶의 족적을 남기자는 나름 야심찬 결의가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보내드리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되고, 열정에 들떴으나 불안하기만 했던 20대가 부러워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보이는 것 같다. 글은 참 힘이 세다. 그런데 정말 사람을 바꿔놓는 글의 힘은 글의 진정성과 진솔함을 느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작용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모두가 옳다고 믿으며 걷는 그 길에서 이제는 진정으로 비켜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병실에 누워 창밖에 펼쳐진 별따라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간절함을 읽고, 쉰이라는 나이와 마주한 시간이 뭉친 통증을 느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즐기시던 잔치국수 한 그릇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대접해 올리지 못한 딸의 눈물을 읽으며, 나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닦았다. 성공하기 위해, 자랑하기 위해 치열하게 읽어댔던 그 냉냉한 독서에서 벗어나, 초라한 내 삶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업이었다. 남들이 우러르는 거창한 족적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은 소망이 이슬처럼 송글송글 마음에 맺힌다. <하느님의 손도장>은 내 마음에 감사의 그릇 하나를 남겨 주었다. 그 그릇에 지금 소망의 물이 고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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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5-1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한 뙈기의 땅
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정병선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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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네가 보이지 않으면 첫째 죽었거나, 둘째 이스라엘 감옥에 끌려갔거나, 셋째 자살폭탄 공격의 순교자가 되었거나, 넷째 머리가 부서져 식물인간이 된 채 병원에 누워 있거나, 다섯째 죽었다고 생각하시지"(96).

팔레스타인의 라말라 지역에 사는 카림의 꿈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밖으로 나가 축구 연습을 하지 못하고, 2주 동안이나 집안에만 갇혀 지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게릴라 한 명이 이스라엘의 한 카페에서 두 명의 민간인을 쏴 죽인 사건 때문에, 이스라엘 점령군들이 통행금지를 발동하고 도시를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 이외의 카림의 또다른 인생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살아남기"이다. 덧붙여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혹시 총에 맞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부위여야 함. 절대 머리나 척추가 아니기를, 인샬라"(12).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 언제 어디서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탱크, 잘못한 것이 없어도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카림과 그 가족과 이웃들은 위태로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라말라 지역은 서로가 "자기네 땅이라 우기며" 테러와 보복 공격이 끊이지 않는 분쟁지역이다. 살아갈 땅이 필요한 것은 서로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책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점령 치하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점령군인 이스라엘 군대의 잔혹함과 상대적인 약자인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극적인 삶이 대비를 이루며 강조된다.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한 뙈기의 땅"조차 누릴 수 없는 카림에게 이 지구는 얼마나 작은 별인가. <한 뙈기의 땅>은 세계인들의 관심밖에 머무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좌절된 꿈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 카림의 삶을 안타까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테러와 보복 공격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는 것인가?"


"간단해요, 할아버지! 그들이 우리의 땅을 빼앗고 우리를 공격하고 죽이잖아요. 우리도 그들을 죽어야 해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해요! 그게 최선이구요!"(78)

테러와 보복이 계속 될수록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좌절된 꿈, 상처 받은 마음, 증오와 분노, 울분과 적개심으로 타오르는 심장뿐이다. 그렇게 계속 싸워서는 결국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너무도 확실하게 보이는데, 왜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싸움을 그칠 수가 없는 것일까.


"인간이라구요? 할아버지께서는 그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그래, 인간.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인간. 사실 난 바로 그 결론을 얻고 나서 아주 슬펐단다"(78-79).

우리가 다를 게 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도 슬프다. 내가 땅이 필요하면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도 땅이 필요하고, 누가 길 가는 우리 아버지를 아무 이유도 없이 발가벗긴다면 용서하기 힘든 분노를 느끼는 것처럼, 똑같은 일을 당하면서도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도 똑같은 분노를 느낄 것이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도, 살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그 누군가도 사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한 켠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분쟁을 지켜보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로 욕심내지 않으면, 서로를 조금만 이해하면,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에 넉넉한 지구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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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경제학
세일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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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외화예금통장' 만들러갑니다.  

이 책이 불편하다! 난처하고, 당황스럽다. 현재 읽고 있는 다른 경제서적과 정반대의 예측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는 모든 경제전망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이 책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 아니여도, 진실이여도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결국 불안한 경제뿐이기 때문이다.

오늘 경제 관련 이슈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7500억유로 상당의 대규모 안정기금 설립 소식이 증시에 미치는 약발이, 단 하루만에 끝났다는 기사이다. <아시아경제>는 오늘 일본과 홍콩,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일제히 약세로 방향을 튼 가운데 국내증시 역시 재차 하락하며 1670선을 턱걸이로 지켜냈다고 보도했다. 지난 밤, 스페인 증시가 폭등하면서 사상 최대폭의 상승세를 보인 가운데 뉴욕 및 여타 유럽 증시 역시 일제히 급등세를 타면서 투자심리를 크게 개선시켰지만, 국내 증시는 유럽발 호재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가 싶더니 오늘 오후에 접어들면서 코스피 지수가 하락세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날 발표된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 및 생산자물가지수가 시장 예상치를 웃돌면서 중국이 금리인상 및 통화절상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이어진 것이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분석한다. 이와 더불어 원, 달러 환율도 하루 만에 반등했다(전날보다 3.60원 오른 1,135.70원).

그야말로 널뛰는 듯한 혼돈의 경제이다. 종잡을 수 없는 경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경제를 전문가들의 분석과 예측이 좇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좀 특별한 경제논객을 만났다. <불편한 경제학>은 다음(Daum)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올려진 ’세일러’의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는 논객이지만, 그의 정체에 대한 추측이 난무할 만큼 화제가 되고, 인지도가 있는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불편한 경제학>을 읽으며, 가장 고마웠던 것은 ’서민’을 위한 경제정보, 경제동향, 경제분석, 경제예측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에는 완전 까막눈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서민이 살 길은 ’풀뿌리 외한보유고를 쌓는 것이라"는 소중한 가르침 하나는 제대로 마음에 새겼다. 대규모 공황, 부동산 버블의 붕괴 등 한국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는 저자는, 이러한 때에 대한민국의 중산층과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바로 ’풀뿌리 외환보유고’에 있다고 역설한다. 얼마나 경제에 관심 없이 살았는지, 나는 ’외화예금통장’이 있다는 사실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른 갈등이 시작된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미국 달러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차라리 금을 사라고 부추기는데, <불편한 경제학>은 정반대의 길로 가라고 일러주니 말이다. 얼마 전, 어업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 그곳에서는 달러 대신 중국 화폐로 거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제 곧 중국의 몰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불편한 경제학>은 일단 믿고 싶은 책이다. 읽을수록 경제에 대한 정직한 전망이라는 신뢰가 쌓인다. 무엇보다 서민을 생각하는 경제 전문가라는 믿음이 그의 해박한 경제 지식을 더욱 존경하게 만들고, 그의 설명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이게 만든다. 정부와 경제 관련 정책에 대한 불신이 이 책을 믿고 의지하고 싶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예측은 암울하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세계 경제의 흐름과 동향을 읽어내고 있다. 내일이 불안하고, 경제적인 대책을 세우고 싶은 대한민국의 서민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외화예금통장’에 풀뿌리 외환보유고를 쌓으라는 이 논객의 충고를 귀담아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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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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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신라의 궁중 암투 사건을 파헤치다!


나는 왜 이 책이 소설인 줄 알았을까?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이라는 제목만으로 당연히 이 책이 소설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한 것이다.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이라는 다소 무협지 느낌의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놀랍게도 ’논문’이다. 핼리혜성을 독립변수로 하고, 혜성이 나타날 때마다 신라왕이 피살되었다는 것이 종속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얼마전 종영한 <선덕여왕>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덕만이가 ’공주’로서의 신분을 되찾고자 할 때, ’일식’이라는 자연 현상을 이용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자신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하늘의 힘이 조금 필요하다"는 미실의 한마디가 당시의 신라 분위기와 이 책의 주제를 오버랩시킨다.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은 신라후기 4년에 걸쳐 벌어진 왕위쟁탈전이라는 반역의 역사 배후에 ’혜성’이라는 자연현상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논증한다. 정치적 반역을 꾀하는 자들이 ’혜성’이라는 자연현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데에는 고대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에 그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가 매년 극심한 홍수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 할머니는 나라의 임금이 분노한 하늘에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하셨다. 기상이변을 하늘의 심판으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신라인들 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에게 ’혜성’과 같은 기상 이변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었고, 특히 왕권이 불안정할 때 정치인들은 그러한 대중의 공포를 이용해 권력 찬탈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신라 격변기 등장한 혜성은 본능적으로 "거대한 혜성이 떠서 왕의 잘못을 경고하고 있다. 만일 왕을 죽이지 않으면 혜성이 지상에 떨어지고 우리 모두가 죽고 만다"(9)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정치적으로 혜성의 등장은 "그 나라 최고의 정치지도자 중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피 흘림"의 역사를 예고했던 것이다.

이 책의 서문(들어가는 말)은 이러한 주제의 논문이 학계에서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의 토대가 되는 다섯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학술잡지에 게재되기까지 모두 두세 차례 탈락을 경험했다고 밝힌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문헌자료가 부족하다는 것과, 자연현상과 정치를 직접 연결하여 고대사를 조명하는 이러한 이해가 생소하는 것이 학계의 배타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 책은 많은 부분 중국의 역사기록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1500년 동안 338회의 혜성이 출현했는데, "중국인들은 혜성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8). 고대 사서에 나타난 혜성 기록을 토대로, 신라 후기에 벌어진 왕들의 연이은 죽음과 반란을 ’혜성’이라는 자연현상과 연결시킨 저자의 상상력이 신라 후기의 역사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도록 자극한다. 이 책은 혜성이라는 하늘의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궁중 암투 사건 이외에도, 그것이 ’도솔가’ 등과 같은 문학으로까지 연장되고 있음을 밝힌다. ’혜성’이라는 자연현상을 고대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역사적 변수로 확실히 자리매김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술적 진지함과 시대를 통찰하는 상상력이 빚어낸 새롭고 재밌는 논문이다. 논문의 새바람이라고나 할까.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이라는 제목처럼, 틀에 박힌 학계에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저자의 학술적 상상력이 어쩐지 유쾌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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