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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뙈기의 땅
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정병선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엄마는 네가 보이지 않으면 첫째 죽었거나, 둘째 이스라엘 감옥에 끌려갔거나, 셋째 자살폭탄 공격의 순교자가 되었거나, 넷째 머리가 부서져 식물인간이 된 채 병원에 누워 있거나, 다섯째 죽었다고 생각하시지"(96).
팔레스타인의 라말라 지역에 사는 카림의 꿈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밖으로 나가 축구 연습을 하지 못하고, 2주 동안이나 집안에만 갇혀 지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게릴라 한 명이 이스라엘의 한 카페에서 두 명의 민간인을 쏴 죽인 사건 때문에, 이스라엘 점령군들이 통행금지를 발동하고 도시를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것 이외의 카림의 또다른 인생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살아남기"이다. 덧붙여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혹시 총에 맞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부위여야 함. 절대 머리나 척추가 아니기를, 인샬라"(12).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 언제 어디서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탱크, 잘못한 것이 없어도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카림과 그 가족과 이웃들은 위태로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라말라 지역은 서로가 "자기네 땅이라 우기며" 테러와 보복 공격이 끊이지 않는 분쟁지역이다. 살아갈 땅이 필요한 것은 서로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책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점령 치하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점령군인 이스라엘 군대의 잔혹함과 상대적인 약자인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극적인 삶이 대비를 이루며 강조된다.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한 뙈기의 땅"조차 누릴 수 없는 카림에게 이 지구는 얼마나 작은 별인가. <한 뙈기의 땅>은 세계인들의 관심밖에 머무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좌절된 꿈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 카림의 삶을 안타까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테러와 보복 공격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는 것인가?"
"간단해요, 할아버지! 그들이 우리의 땅을 빼앗고 우리를 공격하고 죽이잖아요. 우리도 그들을 죽어야 해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해요! 그게 최선이구요!"(78)
테러와 보복이 계속 될수록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좌절된 꿈, 상처 받은 마음, 증오와 분노, 울분과 적개심으로 타오르는 심장뿐이다. 그렇게 계속 싸워서는 결국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너무도 확실하게 보이는데, 왜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싸움을 그칠 수가 없는 것일까.
"인간이라구요? 할아버지께서는 그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그래, 인간.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인간. 사실 난 바로 그 결론을 얻고 나서 아주 슬펐단다"(78-79).
우리가 다를 게 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도 슬프다. 내가 땅이 필요하면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도 땅이 필요하고, 누가 길 가는 우리 아버지를 아무 이유도 없이 발가벗긴다면 용서하기 힘든 분노를 느끼는 것처럼, 똑같은 일을 당하면서도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도 똑같은 분노를 느낄 것이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도, 살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그 누군가도 사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한 켠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분쟁을 지켜보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로 욕심내지 않으면, 서로를 조금만 이해하면,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에 넉넉한 지구일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