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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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좌파 김규항’이 제시하는 사회와 삶의 좌표!


많은 책을 빠르게 읽기 위해 속독를 연마하고 있는 중인데, 오랫만에 꼼꼼하게 읽은 책이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데모를 하는 서울대 옆에서 체류탄 가스도 많이 먹었고, 전교조에 가입한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도 지켜봤고, 선생님과 함께 데모를 하던 선배 언니들과 임신 중이었던 선생님의 사모님이 머리채를 잡힌 채 전경들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을 전해듣기도 했었고, 대학에 입학한 뒤로 운동권에서 활동한 많은 친구도 두었다. 나에게도 저항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삶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나는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친구들의 좌파적 성향이 시들해질 즈음, 정치적 변절자들이 생겨날 즈음, 믿었던 사회적 인사들에게 거듭 실망할 즈음,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식의 체념이 깊은 상처와 좌절을 남기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더욱 무관심해졌다는 변명을 하고 싶다.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으며 내가 느낀 가장 깊은 좌절은 도대체 나에게도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었다. 극좌파, 극우파, 좌파, 우파, 급진파, 진보파, 개혁파, 아무리 잘게 나누어보아도 나는 소속을 모르겠다. 김규항 씨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재난이 닥쳤는데 그것이 재난인 줄도 모르는 우매한 대중이라고나 할까. 개인의 문제에 매몰된 삶이라는 자가진단이 나온다. 나름 배울만큼 배우고, 책도 꽤나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제대로 된 문제의식 하나 없이, 사회적 입장 하나 없이, 자신의 분명한 목소리 하나 가지지 못했는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이 사회보다 더 큰 문제라는 자책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 책이 나에게 이토록 자극이 되는 이유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종교인이라는 데에 있다.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을 혁명이라 하고, 내 안의 적과 싸우는 일을 영성"이라 말하면서,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심리적 평온뿐"이라는 그의 질책이 아프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예수님의 기르침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스스로 생각해도 떳떳할 수 없는 내적 갈등이 긴장을 만들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신자유주의"가 가진 문제점과, 우리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것 같지만 실은 이미 가진 격차를 공식화하고 더 심각하게 만드는 사악한 수단으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 자본도 무한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어요. 민주화의 기쁨에 취한 채 군사독재에서 벗어났는데, 이제는 자본의 독재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계발을 하고 경쟁에 몰두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 자유를 얻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싸웠는데 이젠 그 자유에 의해서 목이 졸리는 세상을 만나게 된 겁니다"(54).

군사독재보다 자본의 독재가 더 무서운 것은, 문제의 본질이 감추어져 있고, 착취 당하고 차별 받으면서도 우리 스스로 그 독재를 강화한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좌파 김규항은 지역문제보다 더 깊은 핵심은 ’계급’이라고 단언한다(147). 얼마 전, 아는 동생이 어렵게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입한 후, 심각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만 그만한 생활 형편의 친구들과 어울렸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그들과 어울릴 수 없는 자신의 계급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가짜 경쟁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필요하다"(279)고 말하는 김규항의 대안은 ’자발적 가난’이라는 가치관의 전환에 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게 아니라 가치관이 바뀌는 거죠. 자본가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을 노동자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꾸는 겁니다. 자본가의 가치관은 남보다 많이 갖고 싶어 하고 남들과 격차가 벌어질수록 행복해지는 가치관입니다"(290).

김규항은 "책하고 이론 속에서만 사는 사람들을 가장 한심하다"(119)고 말한다. 오해와 공격을 받더라도 본질을 이야기하는 게 지식인의 도리라고 말한다(147). 요즘 ’지행합일’이라는 가르침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는 중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되외시 하고 있는 가르침이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웠다. 사회와 체제에 대한 시덥지 않은 분노와 비판으로 오히려 시끄러운 소음만 일으킬 뿐, 사회성도, 공동체성도 잃어버리고 그저 개인적인 안일을 위해 살아온 시간들을 반성한다. 부디 내가 깨닫고 알게 되는 진실이 삶으로 이어지기를, 나의 앎과 행동이 일치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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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ppy Street Sign Cleaner - 행복한 청소부 영어판
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수잔나 오 옮김 / 풀빛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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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복한 인생에 대해서, 
특히 끊임없이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부모의 교육에 대해서,
깊이 반성해보게 하는 예쁜 동화!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 중 단연 으뜸은 "공부해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녀가 그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말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잘 알면서도 왜 부모님은 끊임없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실까요? 그것은 내 자녀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더 궁극적인 목적은 누구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이게도 이러한 논리가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다른 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배움만이 출세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던 우리 사회에서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하지 못하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뿌리 깊습니다. 출세라는 것 때문인지 직업에도 귀천이 있다는 가치관 또한 뿌리 깊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님 중에 자신의 자녀가 길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분이 계실까요? 

여기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길거리의 청소부가 있습니다. <The Happy Street Sign Cleaner>는 독일어 원작을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행복한 청소부>라는 제목으로 한글로 번역된 책이 있습니다. 독일어를 원작으로 하는 동화가 이렇게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전하는 교훈과 감동에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루 종일 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입니다. 청소부 아저씨가 책임을 맡은 거리는 바흐, 베토벤, 하이든, 모차르트, 글룩, 바그너, 헨델, 쇼팽, 괴테 등 작곡가와 작가의 이름이 붙은 독일의 유명한 거리였습니다. 청소부 아저씨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일과 그 거리와 그 거리의 표지판을 사랑하는 아저씨는 바뀌기를 원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엄마와 그녀의 아이를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글룩(Gluck)’이라는 표지판을 본 꼬마는 청소부 아저씨가 ’행복(Glück)’라는 단어에서 움라우트(umlaut)를 닦아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그것이 아니라, 글룩(Gluck)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의 이름을 딴 거리의 이름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청소부 아저씨는 엄마와 아이의 이 대화를 듣고 그동안 자신이 청소했던 거리가 아주 유명한 작가와 음악가의 거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저씨는 그 거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종이에 바흐, 베토벤, 쇼팽, 글룩,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바그너 등의 이름을 적어놓고, 그들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랩도 하고, 도서관에도 가고, 공연에도 가고, 작가들의 책도 읽고, 음악가들의 연주도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크리스마스 때에는 자신에게 레코드 플레이어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음악가와 작가를 공부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아저씨는 대학교에서 강의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아저씨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제의를 거절하고 계속해서 행복한 청소부로 살아갑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레코드 플레이어를 선물하고 행복해 하는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아저씨가 참 멋져 보였습니다. 행복이란 즐거운 일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배움은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깨닫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던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희열은 느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즐거움이지요.

이 책은 부록으로 CD와 ’행복한 노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CD를 들으면,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사실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어린이 동화를 고른 것인데, 영어 공부보다는 행복한 인생에 대해서, 배우는 즐거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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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2010-05-06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
 
Life 라이프 -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Life 라이프 1
이이지마 나미 지음, 오오에 히로유키 사진 / 시드페이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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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고 행복한, LIFE 라이프!


영화 아바타처럼 3D나 4D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사진에서 향긋한 냄새까지 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보기만 해도 마음이 행복해지는 예쁘고 단정한 음식들 속에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호보닛칸이토이 신문에 연재한 레시피 <LIFE>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좀 특별한 요리책이라고 할까. 설정이 재밌다. 이 책의 저자인 이이지마 나미 씨는 영화 전문 음식감독이라고 한다.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가 그녀의 대표작인가 본데 나는 알지 못하는 영화이다(나중에 꼭 챙겨봐야겠다). 영화 전문 음식감독답게 그녀는 요리를 연출한다. 일상적 상황을 설정한 뒤, 그 상황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배우 윤손하 씨는 <LIFE>를 "일본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들어 먹을 법한 22가지 일상요리의 재발견"이라고 평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하고 정겨운 일상처럼 <LIFE>에 담긴 그녀의 요리에 소소한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다. 

어느덧 아버지가 된 주인공이 옛날 대학가 카페에서 즐겨 먹던 정겨운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직접 요리하는 상황에 어울리는 요리는 "아빠의 나폴리탄 스파케티". 이제 막 함께 살게 된 연인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 식사라는 설정에 어울리는 요리는 "버터 토스트"와 "헴에그". 이밖에도 벚꽃놀이 도시락으로 "유부초밥", 아이에게 칭찬해 줄 때는 튀긴 닭고기 요리인 "가라아게", 엄마표 "핫케이크" 등 아침 햇살처럼 싱그럽고 산뜻한 일상이 맛있는 요리 속들으로 들어간다.

<LIFE>가 전해주는 레시피는 요리 그 자체에도 충실한 레시피이다. 영화 전문 음식감독이라고 해서 영상, 즉 보여지는 부분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레시피는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진짜 요리이다. 피크닉에 어울리는 "샌드위치"를 만들 때도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도록 마요네즈를 적게 사용하는 팁을 알려 준다. 수험생 아들을 응원하는 엄마의 "햄버그 스테이크"에서도 구우면 크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소소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남자를 공략하는 요리로 추천하는 "미트소스 스파게티"에는 처음이라도 맛이게 만들 수 있는 배려가 담겨 있다. 휴일에 아빠가 만드는 카레 요리는 재료비도, 시간도 아끼지 않고 만드는 카레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엄마가 만들면 절약과 스피드가 우선이라 고기가 얇아지는 것이 불만이라는 설명은 우리를 가만히 미소 짓게 한다.

한 편의 영화처럼, 향수어린 에세이처럼, <LIFE>는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는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음식’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오늘은 나도 요리사이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사랑하는 특별한 한 사람을 위해서,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내 마음을 요리에 담아내는 일이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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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성경 : 동물 이야기 - 성경의 비밀을 푸는 동물 이야기 열린다 성경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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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재밌는 동물의 세계,
성경 속에 숨겨진 보화를 캐내는 기쁨, 
하나님의 말씀이 달고 오묘하다!



하나님은 인간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살도록 우주를 창조하셨다. 성경에서 천국(에덴동산)은 인간과 동물들이 서로 얽혀 사이좋게 살아가는 곳으로 묘사된다. 창조 시부터 동물은 인간 삶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성서시대를 살아간 성경의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원시자연의 동물들과 한데 어우러져 살아야 했던 성경의 인물들에게 동물은 어쩌면 오늘의 우리에게 보다 더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열린다 성경 - 동물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히 동물은 이들의 의식세계에 깊이 들어와 있었고 성경의 표현 속에도 적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 각각의 동물에 대한 성서시대 유대인들만의 상징과 이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이해는 성경을 이해하는 우리의 시야를 한결 넓혀 주리라 확신한다"(15).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매번 깜짝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몇 번씩이나 통독했던 성경 말씀인데 마치 처음 읽는 구절처럼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었던가" 싶을 만큼 낯선 성경구절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읽어 넘겼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특별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내게 5장(이세벌의 시체를 왜 개가 뜯어 먹었을까?)에서 다루고 있는 성경에 나오는 ’개’ 이야기가 재밌었는데,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삼상 24:14).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이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욥 30:1).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마치 밭에 숨겨둔 보화를 캐어내듯, 성경 말씀 속에 담긴 깊고 오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간된 <동물 이야기>는 ’동물’이라는 키워드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열쇠가 되는지를 새삼 깨우쳐 준다. 유대 풍습이나 지리적이고 문화적 상황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만들어진 상식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열린다 성경> 시리즈는 바로 그러한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다. 그런 가치를 생각하면, 이 책이 <열린다 성경> 시리즈의 완결이라고 하니 책을 읽는 기쁨과 동시에 아쉬움도 크다.

<열린다 성경 - 동물 이야기>는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의 풍습을 모르면 알 수 없는 진리,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부분들을 바로잡아준다. 예를 들면, 2장에서 다루고 있는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와 관련된 진리와 오해를 볼 수 있다(38-40). 유대인들에게 ’구유’는 순종(겸손)을 상징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보며 두 가지 오해를 하기 쉬운데, 첫째는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모습을 낮고 천하고 불쌍하고 연민을 자아내는 모습과 결부시키는 것은 성서시대의 보편적인 주거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오해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구유를 말구유로, 즉 마구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어디에도 ’말구유’나 ’마구간’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으니,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나신 것으로 설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일이다.

<열린다 성경 - 동물 이야기>는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긴장과 과제를 안겨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4장에서 설명하는 ’낙타’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에 최초로 낙타가 보급된 것은 아라비아보다 한참 후인 주전 12, 11세기경이라고 한다(62). 이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시대에 해당한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사사기에 낙타가 등장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만(삿 7:12),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족장시대에 낙타가 등장하는 것(창 12:16; 24:63)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62). 이 책을 읽은 독자나, 이와 관련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성도들의 질문에 대비하여 대답할 만을 준비해야 할 듯 하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추천하고 있다. <동물 이야기>는 동물과 그 세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의 관심을 보여준다.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렇게 중요한 키워드인데 그동안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다루었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열린다 성경> 시리즈 1탄의 완결을 축하하며, 더 새로워질 2탄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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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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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1998년이었던가.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구의원 출마자가 없었다. 투표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뒤늦게 단일 후보로 나온 분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나중에 그분의 이력을 듣고 경악했었다. 초등학교 졸업에 무직이있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출마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분을 보며 정치라는 것이 참 재밌으면서도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 구의원의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분과 친분과 생겨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다. 구의원이라는 직함을 보고 사람들이 몰여들기 시작하더니, 구의원이라는 직함으로 대출을 받아 사업장을 열고, 사무실도 차렸다는 것이다. 명절 때면 사무실에 선물도 꽤 쌓인다고 했다. 가까운 재래시장의 상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지지 세력도 생겼다고 했다. 가장 하부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구의원’이라는 직함에도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것을 보고 왜 다들 정치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우리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차우셰스쿠와 엘레나가 휘둘렀던 철권 정치를 알지 못했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아니 내가 살아온 동시에 지구의 한 귀퉁이에서 무지막지한 정치적 촌극과 잔인한 독재가 벌어졌었는데, 나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차우셰스쿠, 악마의 손에 키스를>은 공산주의자의 탈을 쓴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일대기를 통해 그가 어떻게 장기간의 독재체제와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차우셰스쿠, 그와 루마니아 역사를 몰랐던 것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과 대치 중이고, 독재 권력의 탄압정치를 경험한 바 있는 우리에게, 루마니아의 역사는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차우셰스쿠>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 맞다면, 정말 끔찍하다. 

터무니 없고 어처구니 없는 촌극이 따로 없다. 철학도 없고, 정치적 신념도 없고, 성찰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도력도 없는 지도자. 공식적인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끝이 나고, 원래 책을 가까이 하는 공산당원도 아니여서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도 형편 없던 상태에서 오직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리를 줄줄 외우는 것이 전부였단다. 게다가, 무지와 경망스러운 행동은 물론, 현실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채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 정도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혔던 정치가 차우셰스쿠. 이런 사람이 어떻게 공산당 서기장을 거쳐, 4선 대통령이 될 정도로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을까. 적개심 가득 찬 군중들의 야유 속에 아내 엘레나와 함께 서둘러 진행된 재판에서 즉결처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오래도록 지도자로 군림했었다는 사실에 어떤 절망과 뒤늦은 분노를 느낀다.

독재가 차우셰스쿠가 연마한 것이라고는 오직 정치적 권모와 술수였다. "공산당 내의 권력투쟁을 보면서 차우셰스쿠는 정치적인 술수를 연마했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마키아벨리적 수법에도 능하게 되었다"(187). 변절과 충성심의 경계에 선 천박한 정치권력이 조직 폭력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런 터무니 없는 독재가 가능했던 이면에는 복합적인 기제가 서로 맞물려 있다. 루마니아 공산당 안의 혼합적 요인이라는 특별한 정치 상황과 라이벌 그룹의 형성, 음모, 원색적 민족주의의 작동, 그리고 여기에 체포, 희생양, 비밀경찰, 뒷조사, 숙청, 추방, 우상화, 탄압, 고문과 협박, 특별 감시, 국유화, 통제경제, 집단농장 등과 같은 전형적인 독재권력의 공포정치가 더해졌다. 또하나 안타까운 사실은 전쟁 기간 중 처음에는 독일에게, 다음에는 소련군에게 철저히 약탈당했던 루마니아의 국가적 트라우마가 루마니아 국민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심지어 소련 내부에서조차 차우셰스쿠 시대의 루마니아처럼 강압체제가 횡행했던 곳은 없다. 루마니아 비밀경찰은 루마니아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318). 

비밀경찰의 위협과 협박에 순종적인 자세를 보인 루마니아에는 무명의 반체제 투사들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특이한 기질에 넘쳐나는 정보원, 상호 불신의 분위기, 차우셰스쿠 정권의 독특한 면까지 곁들여지자 저항 기미의 싹은 뿌리 내리지 못했다. 사회적 불만 억제에 모든 역량이 동원됐고, 자식인들의 활동에 관한 한 최소한의 노력으로도 그런 성과는 쉽사리 거둘 수 있었다. 루마니아의 지식인들과 민초들 사이의 역사적으로 오래된 상호 불신은 비밀경찰의 역할을 수월하게 만들었다"(278).

이러한 정치 분위기일 때, 반드시 나타나는 무리가 있다. 바로 권력에 편승하여 자기의 이를 챙기는 천박한 기회주의자이다. 국가의 주요 직책에는 말 잘 듣는 사람, 체제에 충성심을 보이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은 고속 승진의 대가를 누린다. 

여기에 언론까지 합세를 하면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다. 차우셰스쿠 역시 그러한 기민함을 보였는데, 그는 특별히 자기의 위상에 도움이 되는 닉슨이나 브란트 수상 같은 사람들만 환대하고, 외국 저명인사들에 대한 융숭한 대접으로 해외에서 그의 지명도를 높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반드시 유명한 언론인들을 대동하게 마련이었고, 언론인들 또한 당시 루마니아 상황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32). 서방 세계도 루마니아의 정치 상황과 차우셰스쿠라는 독재자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는 즉결처분되었다. 그러나 암울했던 독재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다. "그의 수하였던 수많은 공산당 비밀 정보원들은 여전히 권력의 상층부에 포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에드워드 베르가 루마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혁명’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표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루마니아 혁명이 미완의 혁명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지도자는 가고, 국민들은 남았다. 영도자는 사라졌지만 그 체제나 기구, 또 통치 방식에 대항해서 투쟁했던 사람들이 없애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잔재들은 놀랍게도 아무 탈 없이 잘 가동되고 있다"(11). "권력자가 바뀌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을 계속 곱씹어본다.

<차우셰스쿠>를 읽으며 생각해본다. 역시 약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연합과 연대라는 것을 말이다. 부패한 절대 권력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 그것은 약자들의 ’연대’가 아닐까.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냉소적 태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보았다. 그리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철지난 문화처럼 촌스럽기 그지 없는 교훈이 가슴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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