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블랙홀 - 자기 회복을 위한 희망의 심리학
가야마 리카 지음, 양수현 옮김, 김은영 감수 / 알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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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에 구멍이 뚫린 느낌, 
병과 건강, 이상과 정상 사이에서!



만성적 공허감. 마음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느낌에 익숙하다.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못 견디게 시린 날이 있고, 또 그럭저럭 견딜만 한 날이 있을 뿐이지, 그 구멍을 메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에 뚫린 구멍도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고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의 블랙홀>을 읽으면서 그것은 실존적 고독과는 구별되는 일종의 병리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산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어 있다. 현대인은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다소 극단적인 진단이 통용되기도 한다. 때문에 주변 누군가로부터 "살기 괴롭다", ’힘들다"는 호소를 들어도 우리는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러려니 한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마음의 블랙홀>의 저자 가야마 리카는 ’진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환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존의 정신의학 개념과 용어로 설명하고 치료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정신의학의 기본인 ’병, ’이상’과 ’건강’, ’정신’의 구별은 이제 거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살기 괴롭다’, ’힘들다’고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10). 

저자는 병과 건강, 이상과 정상 사이에 있어야 할 간극이 어느새 한없이 낮아졌다고 말한다. 이상과 정상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마음의 블랙홀>은 병이지만 병이라 할 수 없고, 병은 아니지만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을 포착해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에 구멍이 뚫린 느낌’, ’무언가 소중한 것이 결여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도처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학교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작가나 뮤지션 등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도 있다. 즉, 문제는 객관적인 상황에 관계없이 "살기 힘들다", "허무하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고 호소한다는 데 있다(36-37). 

<마음의 블랙홀>은 특별히 이런 느낌을 호소하는 젊은층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과 느낌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을 진단하기 위해 기존의 정신의학 개념과 구별되는 세 갈래 길을 제시한다. 그 세 갈래란 ’충족되지 않는 나, 상처받기 쉬운 나’, ’몇 명의 나, 진짜 나’, ’마지막 보루로서의 몸’이다(11). 이것은 이 책의 목차이기도 하다. <마음의 블랙홀>은 현대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압박과 그 괴로움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정상과 이상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진달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괴로움의 실체, 그 괴로운 삶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마음의 블랙홀>은 그 처방을 고민하는 단계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상황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인데, 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러한 느낌은 인간이 가진 실존적인 고독과 어떤 차별을 가지는가? 왜 우리의 마음은 이렇듯 조각나고 있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주관적인 느낌, 다시 말해 나의 내면이 느끼는 부정적 생각을 조금은 객관화시키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스스로 객관화해보고,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느낌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메울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또 하나, 그러한 고통을 사람들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이 다 그래",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넌 살만 해 보이는 데 뭘" 등의 반응이 실제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절망이 될지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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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별장의 쥐
왕이메이 글, 천웨이 외 그림, 황선영 옮김 / 하늘파란상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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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을 가졌습니까? 내가 어릴 적, 선생님 한 분이 신장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어린 자녀가 좀더 자랄 때까지, 딱 10년만 더 살고 싶다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의 늙으신 부모님은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겠다고 울며 고집했지만, 그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리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줄 마지막 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닐까 합니다.

'자녀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릴 때 고생을 시키야 한다'는 주제의 글을 찾아보기 위해 검색을 했는데, 가장 먼저 검색되는 글들은 모두 '자녀 교육 때문에 부모의 고생이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시키느라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새삼 깨달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힘들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어린아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서 스트레스성 탈모 증상도 나타난다는 보도를 듣고 경악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매고 축쳐진 채 걸어가는 초등학생들이 가엽습니다. 폭력적인 청소년들이 가엽습니다. 높은 이상을 잃어버린 채 현실에 매몰되는 청년들이 가엽습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부모님들의 극성스러움이 자녀를 자꾸 몰아세우는 것 같습니다. 힘들 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이 그립습니다.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립습니다. 인적 자원이다, 인재 양성이다, 시끄러운 사회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무한경쟁 세계로 내몰고 있는 사회를 살아내기가 버겁습니다. 하루하루 지쳐갈 뿐입니다. <장미 별장의 쥐>라는 얇은 동화책을 읽고 나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면, 당신도 외로운 겁니다.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이 그리운 겁니다. 가만히 안아주는 사랑이 그리운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보다 먼저 '교훈'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교훈을 담은 이야기인가,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심어줄 것인가 하고 말이죠. <장미 별장의 쥐>는 교훈적인 측면에서 여느 동화와는 구별되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책에 흔히 등장하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말하지도 않고, 따뜻한 이야기지만 해피앤딩도 아닙니다.

홀로 도시 밖 작은 별장에서 사는 장미 할머니와, 떠돌이 쥐 쌀톨이, 그리고 늙은 고양이 뚱이가 주인공입니다. 어느 해 겨울, 쌀톨이라는 쥐 한 마리가 장미 할머니를 찾아와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쌀톨이는 지하창고에 틀어박혀서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쌀톨이가 죽었는 줄 알고 땅에 묻어주려 했습니다. 그때 쌀톨이가 눈을 반짝 떴습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장미 할머니를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늙은 고양이 뚱이는 쥐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쓸모 없는 고양이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장미 할머니는 그런 뚱이가 심술을 부려도 나무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두운 밤에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장미 할머니는 심술을 부리다 다친 뚱이를 가만히 안고 별장으로 돌아와 다친 발에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장미 할머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쌀톨이와 뚱이에게 잘 해주려고 극성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무조건 쌀톨이와 뚱이를 오냐 오냐 하지도 않았습니다. 쌀톨이에게는 "우리 집 울타리와 대나무 발을 갉아 먹지만 않는다면 여기 살아도 좋단다"라고 최소한의 규칙을 정했고, 뚱이가 찾아왔을 때는 쌀톨이와 싸울까봐 선뜻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의 집을 쌀을 몰래 가져다 쌓아놓는 쌀톨이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함께 겨울을 보낼 친구가 생긴 것을 기뻐했습니다. 쓸모 없는 고양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양이 뚱이도 똑같이 대해주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은 무엇일까요?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좋아했던 쌀톨이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할머니에게 감동해서 할머니를 위해 술을 끊었습니다. 장미 별장을 떠나서도 늘 할머니를 그리워했습니다. 달팽와 새, 강아지는 상처가 아문 뒤 장미 별장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쌀톨이는 다시 별장을 찾아왔고 뚱이는 장미 별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쌀톨이와 뚱이가 장미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미 별장에 나란히 앉아 긴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은 아름다워서 더 슬펐습니다. 장미 할머니와의 긴긴 이별을 슬퍼하는 쌀톨이와 뚱이처럼,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울고 싶습니다. 힘들 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의 각박한 삶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할머니가 쌀톨이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그때처럼, 쌀톨이도 할머니를 위해 울고 있습니다. 한 번을 살더라도, 한 번을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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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네 방향 Dear 그림책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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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방향의 시간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인생극장!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이라는데 심오하기 그지 없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수준이 높아 보입니다. 빨리 크고 싶은데 시간이 더디게만 흘러간다고 느끼는 어린이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는데 시간이 저 혼자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저에게는 시간의 잔혹함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시청 광장의 시계탑 속에 자리잡은 ’시간’이 600년 동안 그 땅에서 나고 자라고 죽어간 인생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무서웠어요. 끊임없이 피고 자라고 시드는 꽃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렇게 피었다가 지고, 피었다가 지고, 피었다가 지는 인생들처럼, 언젠가는 나도 이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사라지고 잊혀지겠지요.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어쩐지 오싹해집니다.









"유렵의 한쪽, 어느 오래된 도시 한가운데 
사방으로 시각을 알려 주는 시계탑이 서 있어요. 
여섯 시, 아홉 시, 한 시, 다섯 시, 여덟 시, 열두 시, 
시계가 알려 주는 똑같은 시각에 
동, 서, 남, 북,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걱정을 하고 어떤 일에 즐거워할까요? 
백 년 전, 이백 년 전, 삼백 년 전, 사백 년 전, 
서로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커다란 금빛 시계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요." (뒷 표지)


시내 한가운데 네모반듯한 광장에는 시계판 네 개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네모난 시계탑이 있습니다. 광장의 동서남북으로 서 잇는 집들마다 시계를 바라보는 창문이 있어요. 첫 번째 창문은 동쪽 집에 나 있는데, 그 창문이 있는 방은 부엌입니다. 두 번째 창문은 남쪽 집에 나 있는데, 그 창문이 있는 방은 누군가의 작업실입니다. 세 번째 창문은 서쪽 집에 나 있는데, 아이들 방이 들여다 보여요. 네 번째 창문은 북쪽 집에 나 있는데, 그 창문 안쪽에는 항상 거실이 있었어요(14).

몇백 년 동안, 날마다 광장에서는 인생극장이 펄쳐져 왔어요. 이 책은 광장의 시계가 정각을 알릴 때, 시계판이 보이는 네 집에서 각각 어떤 드라마가 펼쳐지는지 보여주는 책이에요. 100년에 한 번씩, 다른 시대, 다른 계절에 각각 그 네 개의 창문을 통해 어떤 인생극장이 펄쳐지고 있는지 구경해보아요(15).

그런데 왜 이 책은 왜 네 개의 창문, 즉 네 개의 방향으로 인생을 관찰할까요? 네 개의 창문은 세상의 네 방향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종교적인 축제와 관련해서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동쪽의 부엌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존을,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일을 하고 있는 남쪽의 작업실은 발명과 관련된 문화를, 가족들의 관계와 아이들의 꿈을 보여주는 서쪽의 아이들의 방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세대와 인간의 삶(꿈, 사랑, 걱정, 슬픔 등)을, 북쪽의 거실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아이들 방과 비슷한데, 이곳에서는 이웃관의 관계와 한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60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펼쳐진 인생극장이 한 눈에 보고나니, ’이런 것이 인생이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의 네 방향>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걱정을 하고, 같은 일에 즐거워하는 인간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세월 따라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변한다 해도 근본적인 인간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금 우리 우리 인생도 "몇 세기 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된, 그리고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연극 속으로"(79) 들어와 있는 겁니다.

<시간의 네 방향>은 갓 태어난 아기가 시간이 지나면 증조할아버지 되고, 다시 백 년이 지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고, 또 백 년이 지나면 그들을 기억하던 아이들도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덤덤하게 알려주네요. 슬프지만 나도 이제 그러한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도시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살다가는 인생, 서로 사랑하며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요. 사랑만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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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14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새로운 상상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가
최근에 출간 되었습니다.
 
똥 싸는 집 - 세계의 화장실 이야기
안나 마리아 뫼링 글, 김준형 옮김, 헬무트 칼레트 그림 / 해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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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화장실 이야기


여행을 떠나지 전에 여행지에 관한 정보 중, 내가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바로 ’화장실’ 문화이다. 음식이 안 맞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화장실 환경이 안 맞는 것은 내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매년 해외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팀들의 보고를 들을 때마다 내가 받는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바로 ’화장실 문화’였다. 실제로, 중국의 한 시골 마을로 선교 여행을 갔을 때, 칸막이가 없는 재례식 화장실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배설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보고 경악하여 혼자 도망쳤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제목도 원색적인 <똥 싸는 집>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화장실의 형태를 소개해주며 그에 얽힌 짥막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새롭게 배우는 것도 있고, 끔찍해 보이는 화장실도 있고 다양한 화장실 형태가 전체적으로 무척 흥미로웠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며 살고 있는 것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먼저 WC의 정확한 뜻이다. 흔히 화장실을 표시할 때 ’WC’라는 약자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수세식 화장실(Water Closet)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세식이 아닌 화장실 문에 WC라고 표시하는 것은 오기인 것이다. 참고로, 나는 WC라고 쓰여 있는 재례식 화장실을 본 적이 있다. 또 하나, 지금처럼 물로 씻어내는 비데나 휴지가 계발되지 전에, 돌멩이로 밑을 닦았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다. 아프지 않았을까? 잘못하면 피가 날 것 같은데 말이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그렇게 생활하고 있지만, 애완 동물들이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배설을 하는 것처럼 인간들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배설을 하며 ’똥’(오줌 포함)과 아주 가까이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이힐이 거리의 똥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이야기처럼, 숲이나 자연에서 볼일을 해결할 수 있는 시골에서보다 오히려 로마를 비롯한 파리나 독일의 도시가 똥과 오줌 냄새로 진동을 했다고 한다. 큰 도시에서는 양동이랑 기다린 천을 들고 다니는 화장실-아줌마랑 화장실-아저씨가 있어 급한 사람들에게는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니, 생각할수록 굉장히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는, 1855년 파리에 처음 길거리에 공중 화장실이 생겼는데, 모두 신사용(85개)이고 19년이 지나서야 숙녀용이 딱 한 개 생겼다는 기록이다. 또 "여자들은 이틀에 한 번 똥을 싼다고 학자들이 발표를 한 적이 있어서"(46), 여자 화장실을 별로 짓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화가 난다. 똥을 싸는 일에도 차별을 받아야 하다니!!! 죄수들이 노 젓는 배에서는 쇠고랑을 채워 놓아서 그냥 앉은 자리에서 똥과 오줌을 쌌다(18)는 이야기도 씁쓸하다. 뛰어난 이성으로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간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다!

독일 저자의 책인데 창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임금님의 ’매화틀’이나 그 집안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었다는 다양한 모양의 ’요강’ 이야기 등 우리나라의 화장실 이야기가 꽤 상세하다. 아마도 번역 과정에서 첨가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독특한 화장실 자체도 재밌지만, 특별히 더 이 책이 재밌게 느껴지는 것은 ’번역’의 힘인 것 같다. 어린이의 눈높이를 억지로 맞춘 책이 아니라, 동심을 가진 번역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옮긴이가 누구인지 관심 있게 찾아봤는데, 소개글이 참 독특하다. 옮긴이의 소개글을 읽으며 감명받기는 또 처음이다.

이 책을 읽고 어린이날 선물로 주려 했는데, 그냥 내가 가지려고 한다. 은근히 소장 욕심이 생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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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영어 (책 + CD 1장 포함) - 해외선교 영어 가이드북
박은영 지음 / KMC(기독교대한감리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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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를 위한 영어도 배우고, 선교 전략도 배우고!


몇 년 전, 갑자기 필리핀 단기선교팀에 합류했던 경험이 있다. 오랫 동안 선교를 준비한 청년 지체들을 따라가는 것이었기에 별 걱정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내게 주어진 미션은 사진 촬영, 사역에 필요한 도구 제작, 장 보기, 선물 준비, 회계 등 주로 팀을 조력하는 사역이었다. 일명 그림자라고 하는 조력 사역이 내 임무였지만, 필리핀은 영어권이었기 때문에 현지어를 몰라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현지인과 마주하면 간단한 영어회화조차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따라와 관심을 보이는 현지 어린이들을 보고도, 겨우 인사를 건네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렵게 떠난 선교여행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그대로 흘려버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기 그지 없다. 

아무런 준비없이 떠난 선교여행에서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준비되지 않은 선교여행은 잘못하면 ’관광’이 되겠구나 하는 자기반성이었다. 가장 당황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웠던 것은 어느 마을을 방문했을 때였다. 손자가 아픈데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할머니가 우리 팀을 반기며 기도를 부탁했다.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도록 영어로 기도하고 싶었는데,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in the Name of Jesus, A-men!"이 전부였다! 영어로 기도해주시는 선교사님 옆에서 다음에는 반드시 준비를 철저히 해서 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선교영어>는 단순히 선교를 위한 회화를 배우는 책이 아니다. 영어로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전도전략서로 읽힌다. 한마디로, "영어로 복음 전하기"라는 목적에 매우 충실한 교재이다. 특별히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팀들에게 아주 훌륭한 교재가 되어줄 것이라고 본다. 보통은 선교영어라고 하면 영어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훈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 교재는 그것에서 한 걸음 앞으로 더 나아갔다. 의사소통 훈련은 물론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론까지 함께 고민하며 전략을 세워나간다. 

개인적으로는 복음을 전할 때 제시할 수 있는 영어성경 구절을 선별하여 ’전해야 할 복음’을 정리해준 것이 가장 좋았다. 더불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굉징히 실제적인 훈련교재이기 때문에 선교훈련 팀이 함께 진도를 나가며 실제 복음을 전하는 상황을 연습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2부에 실린 ’해외 실용영어’나 ’세계영어’는 선교 현장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친절하고 따뜻하게 녹아 있다. 선교여행을 처음 떠나는 지체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의 불꽃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것인가 보다. 이 책 <선교영어>에 바로 그러한 불꽃이 살아있다. 마치 실제 강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친근한 어투로 교재가 집필되었는데, 직접 현장에 있었다면 저자와 함께 나의 마음속에도 복음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을 것 같다. 단순히 ’선교’라는 주제어로 영어를 공부하는 교재려니 생각하고 펼쳐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책 안에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처럼 복음의 빛이 충만하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고민과 열정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훈련 교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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