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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도덕적인 책이라거나 부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은 잘 썼거나 잘못 썼거나이다.
- 작가 서문 中에서 -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상당한 논란과 비판을 몰고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딕 호러의 고전’(고딕 호러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소설의 음산함과 공포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며, 악당을 사회 고위층이나 귀족의 일원으로 설정하거나 그들의 그릇된 망상이 가지고 온 결과물로 설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등장 인물들의 내면의 갈등, 성적인 잠재의식 등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을 가진 문학이라고 한다)이라는 호평 속에 이 책을 원작으로 수많은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고, 권장도서로 지정되는 등 문학사에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작품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하면, "잘 쓴 책"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지나치게 탐미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옮긴이의 글에서 힌트를 얻은 바에 의하면) 유미주의 대 도덕주의, 또는 예술성 대 도덕성의 대결로도 볼 수 있겠다. 유미주의 운동은, 영국에서 산업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진 후 경제적인 평화가 오래 지속되던 시절, "청교도 정신과 공리주의, 산업화로 인한 물질주의에 반기를 들고, 아름다움 자체에 눈을 돌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자"는 움직임을 말한다고 한다(41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예술과 도덕을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 본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적 예술관을 잘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의 살인자’인 도리언 그레이와 그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젊음을 유지하는 동안 그의 초상화가 대신 늙어간다는 ’환상’적인 요소는 작가의 문학예술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시대를 통찰하는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라든지, 도리언 그레이의 아름다운 외모와 대조적으로 죄와 그것의 추악함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 또한 도리언 그레이의 삶과 죄를 반영하는 초상화가 ’양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쾌락과 파멸이라는 이야기 구도는, 여전히 이 작품이 도덕성의 틀 안에 있음을 말해준다고 본다. 게다가, 계속해서 도리언 그레이를 쾌락에 빠져들게 하는 헨리 경의 역할은 우리의 귓가에 들려오는 악마의 속삭임을 연상시킨다.
늙음을 곧 추악함으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에 오스카 와일드는 대비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과 괴리된 아름다운 외모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기묘하고, 잔혹하고, 퇴폐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는 쾌락과 파멸, 선과 악, 천박함과 고귀함의 대비 속에 눈에 보이는 추악암과 아름다움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악함과 아름다움의 근원과 마주할 것이다.
이상하다.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알려진 그의 작품 성향과는 반대로 나는 왜 그의 이야기가 이토록 ’보수적인 교훈’으로 읽히는 것일까. 그야말로 ’고전적’이지 않은가! 우리가 이 기묘한 주인공에게 거부감이 아니라, 동정심을 갖게 되는 이유도 아마 그것이 아닐까 싶다. 동성연애 혐의로 2년간 감옥생활을 했다는 그의 생애사를 보면 좀더 파괴적이고 반항적일 만도 한데 오히려 그는 쾌락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찢어놓는지, 욕망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리고 있다. 출소 후 곤궁하게 살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작가 자신의 결말을 예견하듯 말이다. 혹시 그는 쾌락을 탐닉한 자신의 동성애를 후회했던 것일까.
오늘날 아름다운 외모와 젊음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현대인들의 집착을 오스카 와일드가 목격한다면, 혹시 현대 사회를 ’지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너무 오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