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신 (DVD 포함 고급박스 세트) - 방황하는 영혼을 위한 희망의 카운터컬처
티머시 켈러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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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위 말하는 지성인들 앞에 가서 초월적인 ’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산타크로스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몇 해 전, 사회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에서 나의 학부 전공이 ’신학’이라고 했더니, 네팔에서 여성인권운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분이 대뜸 이렇게 반응했다. "요즘 누가 신학을 학문으로 인정합니까?" 당시 토론 주제는 사회학 방법론이었고, 경험적 연구 방법론의 ’한계’를 제기한 나에게 학부 전공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이 있었던 것이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그분의 말 속에는 ’신’ 존재를 부정하는 비아냥과 이성을 절대 우위에 올려놓는 그분의 믿음이 들어 있었다. 

재밌는 것은 ’경험’에 의존하는 사회과학처럼 신앙도 상당 부분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가설을 검증하고, 가장 많이 논리의 근거로 내세우는 증거가 바로 ’통계’ 아닌가.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지역과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한 신앙적 체험을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의 경험적 통계가 무의미 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한 통계가 ’신’이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통계적으로 신앙공동체의 경험 자체는 유의미한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하나의 진리가 없다는 포스터모더니즘 시대에 성경을 절대 진리로 신봉하며, 스스로 ’종교’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며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주장하는 ’기독교’는  어쩌면 이성적으로 가장 대화하기 어려운 신앙공동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살아있는 신>은 신 존재에 대한 이성적인 대화, 논리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살아있는 신>은 신은 없다고 믿는 측의 주장과 회의적인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했다는 저자 티머시 켈러 목사님은 모든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회의론자들을 대화의 자리로 초대한다. 기독교 안티임을 자체하는 사람을 초대하면 좋을 자리이다. 그리고 반드시 초대에 응해야 한다고 본다. 신을 믿는 신앙인들의 믿음이 틀리다면 그저 어리석은 인간의 차원에서 끝날 일이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이 틀리다면 그 결과는 실로 심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이 존재할 것 같다는 걸로 논쟁을 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신이 존재한다는 걸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보이고자 한다"(210).

티머시 켈러 목사님은 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사고 체계를 따라가며 그들의 논지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하나의 믿음이라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도 또 다른 믿음임을 증명한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베드로전서 3:15)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지레 단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티머시 켈러 목사님처럼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설득력 있는 답변을 준비하는 것이 신앙인의 책임이요, 사명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고,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 측면에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는 물론, 신의 존재를 믿는 자들도 믿는 것을 검증하고 정리하는 마음으로 읽어두어야 할 책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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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4-2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25일 완성 히브리어 정복 - 쉽고 재미있게 히브리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길라잡이
김창대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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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성경 읽기, 도전하자!

요즘은 신학교 컬리큘럼에서도 원어 과목이 퇴출되고 있다. 많은 신학교에서 헬라어나 히브리어와 관련된 과목을 계절학기로 돌리고 있다. ’고전어 때문에 고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과목이기도 하고, 
성경 관련 소프트웨어가 쏟아지는데다가 분해사전이나 원어대조성경, 주석서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어(문법)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법을 공부해야 할까? 

물론 나는 대답은 "그렇다"이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법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원어 성경 읽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려면, 적어도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기초적인 문법이라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성경 관련 소프트웨어가 발달해도 그것은 단순히 ’분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을 원어로 직접 읽을 때만 깨달을 수 있는 본문의 ’뉘앙스’(진의)를 가르쳐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고전어를 연구하는 후배가 가까이 있어, 성경 본문을 원어로 읽는 훈련을 함께하고 있다. 그 후배와 함께 <25일 완성 히브리어 정복>을 공부하며, 다른 교재와 비교하여 이 책만의 차별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히브리어’를 공부하기 위해 적절한 교재를 찾고 있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한 것이다. 

첫째, 이 교재는 <칼동사 동사변화표>에 동사변화만이 아닌, 절대형, 연계형, 분사, 명령법의 형태가 함께 제시되고 있다. 또한 약동사 동사변화표에서는 와우계속법과 간접명령 형태까지 제시되어 있어, 공부하기에 편리하다. 
보통 대부분의 문법책에서는 동사변화만 따로 제시되어, 분사와 명령법 등을 연관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동사와 분사, 명령법을 “함께 공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신학생들이 많은데, 저자는 처음부터 이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해주려는 의도를 가진 듯하다.

둘째, 
초보자들도 스스로 독학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사실 히브리어를 처음 배울 때, 선배들이 히브리어는 읽기(발음)만 잘 해도 반은 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만큼 발음 자체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재에는 단어들의 정확한 음역이 나와 있어(한글 음역) 초기에 잘못된 발음을 익히지 않도록 돕는다. 많은 책이 영어 음역만 제시하여 초보자들로 하여금 발음의 혼란을 빚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또한 해설이 예문을 그때그때 잘 제시해줌으로써, 강의를 듣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다른 문법책들은 문법정리 따로, 해설 따로라서 교재만으로는 독학이 어려워 반드시 누군가에게 따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단원 별로 꼭 필요한 어휘들이 엄선되어 있다. 원어 공부시, 초반에 단어를 외울 때, 어떤 단어부터 외워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덜 중요한’ 단어를 먼저 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주요 단어들을 간결하게 선별하여 효율적으로 어휘력을 신장시킬 수 있게 해준다.

넷째, 
동사 단원부터는 배운 문법을 성경예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해두었다. 기존 책들도 성경예문을 풍성히 다루지만, 이 책은 반드시 적용해보아야 할 예문들만 간단하게 구성하여 부담 없이 쉽게 적용해볼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히브리어 기초가 다져진 사람들에게는 문법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독해공부도 병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다섯째, 
동사 및 화법 영역을 다룰 때, 히브리어 문장과 영어문장을 대조하여 설명함으로써, 영어구문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더욱 효과가 있다. 역으로, 히브리어 문장을 통해 영어구문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특별히 고전어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이 교재를 활용한다면, 서로 다른 어군에 속하는데도(히브리어는 세미틱(Semitic), 영어는 인도-유러피안(India-Europian)에 속한다) 서로 비교하여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5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25일 완성’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특히,
동사 부분은 암기할 것이 많아 단원 당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난이도를 고려하여 25일 단위를 끊어주는 것이 더 현실성이 있다고 본다. 아니면, 25과를 그대로 두고, 하루에 공부해야 할 분량을 따로 구분해준다면 독학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책의 제목이 <25일 완성 히브리어 정복>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25일만에 완성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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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1
김이영 원작, 홍우진 지음, 류은선 그림 / 이가서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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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동이>를 원작으로 한 기획동화, 영조의 어머니 ’동이’를 그리다!

 
’대장금’은 역사책에 단 한 줄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 한 줄이 역사적 조명과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50부작이 넘는 대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역사를 시청할 때마다, 실제 역사에 얼마만큼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역사 사료가 빈약한 것도 문제이겠지만,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드라마적 재미를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적인 재미를 즐겨야 하는지, 실제 역사를 비판적으로 시청해야 하는지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이가서에서 펴낸 <동이>는 현재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동이>를 원작으로 한 기획 동화라고 한다. 이것이 참 난감하다. 어디까지 실제 역사로 받아들여야 할지 말이다. 물론,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 ’소설’인 것을 알지만, 역사적으로 낯선 인물일수록 한 권의 책이 깊은 선입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동이’를 비롯하여 ’대장금’, ’천추태후’, ’미실’ 등 그동안 역사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역사 속 여성 리더십 찾기’ 물결이 유행처럼 번지는 듯 하다. 새로운 소재를 원하는 문학적인 노력이기도 하지만, 남성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동이기도 할 것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 환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 하여 반갑다. 

영조의 생모인 ’동이’는 우리에게 ’숙빈 최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장희빈’을 주연으로 한 드라마에 대결구도를 형성하며 그렇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동이’라는 인물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역사 상 처음으로 궁중 최하층의 천민이 내명부 최고의 품계에 올랐다는 데에 있다. 신분계급 중에서 최하층에 속하는 천민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소유물로 취급되어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인 인생 역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녀의 아들은 조선 5백 년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영조’이다. 다시 말해, 신분제 사회에서 천민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되었고, 그녀는 왕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동화로 제작된 <동이>는 특별히 왕을 키워낸 동이의 ’교육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비극적 운명에 맞서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에 맞서고, 권력과 정치적인 암투에 맞서며, 운명과 삶을 개척내는 <동이>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지만,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재밌다. 스피드 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녀의 일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잘 보여준다.

<동이>는 ’숙종’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주었다. 늘 ’장희빈’과 함께 기억되는 숙종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겐 그저 여자 관계가 복잡한 군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이>를 읽으며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 사실은, ’숙종’이 매우 개방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개혁가였다는 것이다. 동이는 물론 숙종이 사랑했던 장희빈 역시 양반가의 규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여인을 중전의 자리에 앉히기도 하고, 그 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동이’에게 첩지를 내리기도 한다. 세자를 책정하는 일에도 탄력적인 사고를 드러낸다. 숙종에게서 영조와 정조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와중에 동이는 숙종의 특별한 배려로 번이 없는 날 욕조 거리 일각에서 동료 감찰 궁녀들과 함께 천인들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계집종부터 초로의 늙은 갖바치까지 글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66).


’동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역사적 의의 하나가 더 있다. 그녀의 인생은 바로 다른 천민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동이가 천인들에게는 가슴 벅찰 만큼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천인들은 동이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발견했던 것이다. 자신들도 애쓰고 노력하면 오늘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과에 응시하려는 자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어린 계집종조차 글을 배우고 싶어 했다"(66).


그러나 없는 자가 가지려 하는 욕심보다 가진 자가 자기 것을 지키려 하는 욕심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동이>는 역사적으로 가진 자의 정치와 변화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폭력을 잘 보여준다. 동이로 인해 천인들이 희망을 가질수록, 그들을 부려야 하는 양반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때문에 천문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는 ’동이’는 양반들의 표적이 되었고, ’공공의 적’이 되었다. 죽일 듯 으르렁거리던 남인과 서인도 손을 맞잡았다. 

"천인들을 향한 양반들의 핍박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자신들의 질서와 기득권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참으로 놀라운 단결력을 과시했던 것이다"(75).

’동이’가 견디어야 했던 기득권의 저항과 폭력은 실로 견디기 힘든 모멸감이었을 것이다. 평등사회를 부르짖으며 신분제가 없다는 요즘 세상에서도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재벌가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결국 집안의 왕따를 견디지 못하여 불행해지고 결혼이 깨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동이’는 견디었다. 비록 영조는 평생 자신 안에 흐르는 천인의 피 때문에 평생 열등감을 안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어머니 ’동이’가 버티고 견디어주었기에 그 아들이 왕이 될 수 있었고, 조선사를 빛내는 성군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비록 천민이었지만 그 어머니의 삶 자체가 아들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었고, 정치철학을 세우는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배밖에 채울 줄 모르고, 많이 가지고도 더 갖지 못해 남의 것을 빼앗는 자들이 천한 것이지 이 어미도...... 연잉군도 결코...... 천하지 않다......"(138).

"연잉군의 몸 속에 반은 천인의 피가 흐르기에...... 연잉군은 이 나라 만백성의 진정한 어버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176).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 ’동이’가 은근슬쩍 이야기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동이’에서 ’영조’로 중심이 옮겨지면서 ’동이’는 어느 순간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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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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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우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어느 목사님이 이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설교하셨다. 아기들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살아도, 기차 소리 요란해도 잠을 잘 자는데, 어른들은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나에게도 잠 못 드는 밤이 있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같은 내 초라한 삶이 싫었고, 시끄러운 세상이 싫어서 말이다. 그렇게 잠 못 들던 그 시절,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고자 치열했던 그 시기에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나는 지금 ’성직자’로 살고 있다. 나는 정말로 위대한 성직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또 잠 들지 못하는 밤이 생겨났다. 내가 꿈꾸는 이상과 내가 부딪히며 살아가는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컸고, 그 틈새 사이에서 무기력해질 때마다 나는 몰래 속울음을 울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과 싸워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한 가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셨다. 미국의 유명하신 목사님이 직접 진행하는 세미나 시간이었다. 목사님이 손을 얹고 기도하며 축복하는 시간에, 한 부부가 자신의 갓난 아이를 안고 목사님께 다가왔다고 한다. 아이를 기쁘게 아이를 받아든 목사님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중심을 잃고 휘청거릴 만큼 충격을 받았고 한다. 아이는 심각한 기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부모는 너무도 평온하고 기쁜 얼굴로 이렇게 기도를 요청했다고 한다. "우리가 얼마나 이 아이를 사랑하는지 이 아이가 그 사랑을 알기를 원합니다!"

아이와 부모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 목사님은 교회가 도울 일이 없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이미 충분한 도움을 받고 있다고 고백하며 그 부부가 자리로 돌아갈 때, 여덟 명의 이웃이 그 부부를 둘러싸고 기쁨으로 맞아주며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 부부는 이웃 공동체와 연결되어 서로의 짐을 서로 나눠 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었다. 작은 자에게 베푼 작은 친절이 바로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깨달아졌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새계명의 의미가 깨달아졌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매순간 서로를 사랑하며 보내는 그 사소한 일상 속에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의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그렇게 좋았던 이유는, ’착취하는 삶이 싫어서 교사가 되었다’는 모리 선생님의 고백 때문이었다. 남을 착취하지 않으며 살기 위해 교사가 되었다는 모리 선생님, 그 선생님이 매주 수요일 밤 교회에서 열리는 무료 댄스 파티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시며 땀에 흠벅 젖는 장면을 읽을 때, 나는 소리 없이 울었었다. 내가 살고 싶던 삶, 내가 동경하는 삶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8년의 동행>은 좀 당황스러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대중적인 작가가 대놓고 ’종교’ 이야기를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미치 앨봄은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 그리고 유일하게 알아왔던 랍비로부터 추도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언젠가 화요일마다 모리 선생님을 만났던 미치 앨봄은 이번엔 그의 추도사를 쓰기 위해 랍비를 정기적으로 만난다. <8년의 동행>은 렙이라 부르는 유대인 랍비와, 미치 앨봄과 인연을 맺은 또 다른 성직자 헨리 목사의 이야기이다. <8년의 동행>은 미치 앨봄의 추도사로 렙이 천국 가는 길을 배웅하며 끝이 난다.

<8년의 동행>은 인생에 대해, 잘 사는 인생에 대해, 신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 특별히 나에게는 성직자로서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 그건 혼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거야"(199).

유행처럼 번지는 우울증에 잠식 당하면서도 ’외톨이야’를 외치며 '외톨이'이기를 자처하는 우리. 그러나 <8년의 동행>은 신과 연결되고, 과거(조상)와 연결되고, 가족과 연결되고, 이웃과 연결되는 삶을 이야기한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서로에 대한 헌신을 잃어가는 동안 우리는 동시에 행복도 잃고 있음을 돌아보게 한다.


<8년의 동행>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훈은 단순하고 평범하다.

"부디 서로 사랑하십시오. 대화를 나누십시오.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때문에 관계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342).

이 단순한 메시지는 언젠가 세상에서 퇴장할 그날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나는 이것이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라 믿는다. 신과 연결되고, 가족과 연결되고, 이웃과 연결되어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온전하고 후회 없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할 수 있을 것이다. 렙처럼 말이다.

"이 사람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잠을 잡니다"(132).

"그리고 때가 되면, 온전하고 후회 없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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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브레인 - 인간 지능의 기원과 미래
게리 린치.리처드 그래인저 지음, 문희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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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뇌’를 연구하다!
뇌가 크면 능력도 뛰어난가? 뇌가 커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E.T’는 진화한 인류의 미래 모습을 추론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진화할수록 두뇌 용량이 늘어나 머리가 비약적으로 커질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빅 브레인>도 이야기하듯이, 뇌의 크기는 개인의 지능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즉, 머리가 크다고 더 똑똑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인간과 다른 동물의 지능을 비교할 때 뇌의 크기만큼 확실한 잣대는 없다"(5). 사람의 뇌는 유전자를 98.4% 공유한 챔팬지의 뇌보다 3배 이상 크다고 한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뇌의 크기는 무서운 속도로 확대되었다"(6).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뇌의 용량이 클수록 더(!) 진화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빅 브레인>은 우리보다 더 큰 뇌를 가진 인류의 조상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화석이 발견되어 학계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전한다. 보이콥인이라고 명명된 이 유골의 뇌 용량은 우리의 뇌보다 30% 이상 거대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빅 브레인>은 여기에 수많은 질문을 쏟아놓는다. "뇌가 크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뇌가 크면 능력도 뛰어난가? 우리보다 뇌가 큰 종족은 멸종한 반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보스콥인의 뇌는 인간의 뇌와 종류가 달랐을까? 아니면 인간과 똑같은 능력을 지녔을까? 보스콥인도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정말로 우리보다 똑똑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었는데 지금껏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18). 한마디로, 보이콥인은 ’뇌의 크기와 지능’의 관한 진화론의 일반적인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빅 브레인>은 어떻게 우리 조상들의 뇌가 커지기 시작했고, 뇌 기능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지금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어떤 가정을 거쳤는지 밝혀나간다. "뇌가 우연히 커졌고 예상하지 못한 행동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면, 이렇게 우연히 발생한 사고에서 지극히 적응적인 행동이 나타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66) <빅 브레인>은 이러한 주제를 놓고 1) 우연히 커진 뇌, 2) 예상치 못한 행동의 효용성, 3) 뇌의 지속적인 팽창이라는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다.

<빅 브레인>은 문제제기와 의문은 재미있는데, 설명이 어렵다. 최근 ’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여진히 인간의 ’뇌’는 신비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듯 하다. 분화되어 있는 학문의 구조가 ’뇌’ 연구에 있어서 한계를 들어내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는 신장에서 췌장까지 다양한 장기를 연구한다. 하지만 뇌는 생물학적 현상뿐 아니라 정신 현상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기관이다. 신경과학에서는 뇌를 연구한다. 하지만 뇌는 유전, 진화, 발달의 과정에서 부호화되고 조직된다.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연구한다. 하지만 마음은 뇌뿐 아니라, 환경, 학습능력, 문화적 배경이라는 틀에서 형성된다"(14). <빅 브레인>은 다양한 분야에서 내놓은 뇌 연구의 자료들을 통합하여 ’뇌’ 작동 원리를 알아내려 애쓰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독자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머리를 싸매야 할지도 모른다. 뇌의 용량 변화와 진화, 그리고 지능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읽는데,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제기되는 물음 때문인지 자꾸 '그래서 결론이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내가 얻어낸 것은 뇌의 여러 가지 기능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이다.

인류는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가지 가설(해답)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창조론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론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창조론을 ’믿고 있다’. 사실 <빅 브레인>도 스스로 제기한 문제에 대해 아직 명확한 해답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가설과 부분적인 검증이 있을 뿐이다. 진화론을 이미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나가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도, ’뇌’가 가진 신비를 확인할수록 오히려 ’창조론’을 더욱 지지하게 된다. 그만큼 신비하고 위대한 영역인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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