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브레이킹 - 가슴 떨리는 도전
조일훈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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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러나 영원한 1등은 없다.
네트워크를 파괴(넷브레이킹) 하는 빠꼼이가 살아 남는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 그룹인 소녀시대의 막내 ’서현’이 자기계발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읽는다고 한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나름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이 야무진 아가씨가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는다고 하니,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 중 하나라고 하는 ’자기계발서’가 더욱 불티나게 팔리지 않을까 전망해본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인 불안 심리가 높아질수록 더불어 자기계발서의 판매고도 증가한다고 하는데, 올해도 사회적 ’불안 코드’는 여전히 우리 생활 전반에 확장되어가고 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 가운데 <넷브레이킹>이 눈에 띄는 이유는, 특이하게도 ’복잡계 이론’이라는 학계의 핫 이슈를 바탕으로 한 자기계발서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로 복잡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패턴을 설명하는 데 활용되는 ’복잡계 이론’을 자기계발서에 접목시킨 것으로 보인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모델 중 가장 첨단을 달리고 있는 분야는 복잡계 이론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비효과’로 대표되는 이론이기도 하고,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옷을 입은 ’붉은 악마’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응원전을 펼친 사회 현상을 분석할 때도 활용되는 이론이다. 

"네트워크에는 항상 불균형이 존재하며 그 불균형이 깨지는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한다"고 세상을 분석하는 기본적인 시각은 물론, 책의 전반에 ’복잡계 이론’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이론이 베이스로 깔려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처한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자기계발의 원리가 도출된다.

"이 이론의 핵심은 한마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워낙 복잡하고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개인이나 조직은 스스로 변화를 창조해가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의 자율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으면 복잡다기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36).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인 변화의 폭과 양상이 유례없이 크고 넓다. 급속한 사회 변화는 점점 더 내일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앞날’에 대한 불안은 거의 공포 수준으로 사회를 잠식해들어가고 있다. 1등만 살아 남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은 그 1등의 자리마저 ’영원할 수 없다’는 새로운 불안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한 가지 주목해볼 만한 사회 현상은, 사회의 불안 심리가 높아질수록 네트워크는 열린 공동체가 아니라 닫힌 공동체의 성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인맥이 곧 권력이 되고, 기회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인맥 관리’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인연 맺기에 혈안이 된다. 강남의 엄마들은 자녀의 평생 친구가 될 ’유치원’부터 신중하게 고르고, 부자들이 모여사는 지역일수록 담이 높고 견고하다. 요즘은 연예인계에도 ’소속사’ 파워가 절대 군주의 위치를 차지하며, 영향력 있는 연예인과 연결된 ’라인’이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는 구시대의 산물처럼 여겨지는 ’연줄’이 오히려 그 힘을 더욱 막강하게 키우고 있는 것이다.

<넷브레이킹>의 저자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하지만, 기발한 역발상을 제시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그 특유의 현상 유지 논리를 앞세워 끈임없이 복종에 가까운 무력감을 개인들에게 심어주지만, 네트워크는 결코 불변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무수한 개인들의 연결로 얽혀 있는 복잡한 상호관계 네트워크 속에 다양한 기회와 위기, 변화와 도전이 공존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에게 단단한 네트워크 속에 안주하거나 쉽게 좌절하지 말고, 그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넷브레이킹’에 도전하라고 외친다.

저자는 실제 인물과 사례를 증거로 제시하며 어째서 우리가 ’넷브레이커’가 되어야 하는지 증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넷브레이커’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또라이가 아니라 창의적인 ’빠꼼이’가 되라고 조언하며, ’빠꼼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좋은 팀은 역할 배분이 잘 돼 있다.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리더)이 있고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웃기는 사람(harmonizer)이 있고 어디 가서 정보를 물어오는 데 귀신(일명 ’빠꼼이’)들도 있다. 빠꼼이는 경영학 용어로 ’경계확장자(boundary spanner)’다. 이질적인 지식과 생각을 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이들이다"(171).

<넷브레이킹>은 우리에게 패배의식과 불안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사회 현상의 허를 찌르는 도전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안 코드에서 오히려 변화의 기회를 포착해낸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그 1등의 자리가 영원할 수 없는 현실이 불안 요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공의 기회라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이지만 세상을 움직여가는 성공 원리는 의외로 단순한 패턴을 나타낸다. ’혼돈 속의 질서’, 즉 ’열정의 프랙탈’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비밀 통로로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복잡계 이론을 함께 공부하면 좋을 책이고, 복잡계 이론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저자가 전하는 진의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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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드 Googled -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켄 올레타 지음, 김우열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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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당하고(Googled) 있는 세상!
(구글드 = ’구글 되다’, ’구글 당하다’, ’구글이 만들어낸 가공할 변화’를 의미하는 용어)


무서운 책이다. 한 기업의 이야기가 제대로 공포스럽다. 검색 엔진 ’구글’의 탄생에서부터 무엇이 그들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했는지 분석한 한 기업에 관한 이야기에서 영화 ’큐브’가 떠오른다. 단 11년 동안 막강한 입지를 구축한 구글의 베일을 벗겨낸 이 책을 읽고 나니, 노출과 감시, 그리고 통제라는 키워드 안에 갇힌 느낌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세계 유일의 낙서 실명제 나라’라는 글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낙서는 ’악플’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비판하는 이 글이 무엇보다 내게 경각심을 심어준 내용은 이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게시자의 신상 정보를 국가가 사찰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정부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작성한 이용자의 신상정보를 경찰과 정부가 수집하고 공유한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다. 이 소식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러한 관행이 당연시되는 사회는 이미 감시 사회이다."

감시 사회!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이라는 다소 과격한 부제목을 달고 있는 <구글드>를 읽으며 내가 느끼는 공포가 바로 이것이다. 감시 사회! 구글은 세계 곳곳에서 비밀리에 작동되는 데이터센터를 통해, 지난 10년간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 데이터와 막대한 소비자 정보를 무기로 광고, 신문, 방송(유튜브 인수), 도서, 무료 컴퓨터 OS, 통신사가 필요 없는 휴대전화(안드로이드) 등 전 방위로 사업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현재 구글은 미국 전체 인터넷 검색의 2/3를, 전 세계의 거의 70%를 장악했다고 한다. 외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검색 엔진을 통해 데이터를 검색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구글드>는 이렇게 경고한다. "전 세계는 바야흐로 ’구글 당하고(Googled)’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와 최신 기술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훨씬 더 큰 걸음으로 달려오고 있다."

<구글드>는 이 변화의 중심에 ’구글’이 있다고 밝힌다. "전 세계에 비밀리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센터를 통해 지금도 4시간마다 국회도서관 분량의 정보를 수집하는 구글은, 지금 우리가 알고 대비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폭발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팔짱을 끼고, ’그래도 구글이 아직 한국에선 힘을 못 쓰잖아?’라고 말하는 기업이 있다면, 몇 년 후에는 삼성과 똑같은 한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구글의 막강한 힘의 비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심각한 문제는 날로 거대해지는 구글의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사업하는 방식이다. 구글에서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을 개발하는 매커니즘에 주목한다. 그들이 어떻게 세계 경제의 판도를 뒤집고 있는지 <구글드>의 저자는 밀착취재, 생생 인터뷰 등으로 정보를 끌어모아 구글의 비밀을 분석적으로 밝히고 있다.

"구글은 간단하고 싸고 편리하고 효율적이면서 파괴적인 광고 모델을 내놓았다. 그들에게 광고대행사는 필요조차 없었다. 그룹M의 CEO 어윈 고틀립은 자신의 사업이 직면한 최대의 문제가 바로 구글의 시장지배력이라고 했다. (...) ’
마이크로소프트 때가 그랬지요. 구글은 더 심합니다. 구글의 탁월함은 대중들이 구글을 사랑한다는 점이지요. 소비자는 MS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광고주들은 예전보다 더 남는 장사를 하게 됐습니다.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더 나은 검색을 하게 됐죠. 게다가 무료로요.’ 미디어 기업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은 구글이 새로운 사업으로 파고드는 ’능력’과 ’욕구’다. 이동전화에서 시작해서, 컴퓨터 OS, 비디오, 광고, 심지어 은행 업무에 이르기까지"(218).

영화 ’큐브’에서 보면, 그 정육면체의 방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한 가지이다. 시스템보다 더 영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세계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구글, 그 막강한 지배력 밑에서 노예처럼 살지 않으려면 그들보다 더 영리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현장에 있는 독자가 아니라고 해도 <구글드>의 일독을 권한다. <구글드>는 일종의 경고의 나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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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오류 사전
조병일.이종완.남수진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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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거짓!


"국사가 무슨 골라 먹는 아스크림이야?" 개그콘서트의 ’동혁이형’이 2011년부터 국사가 필수가 아닌 선택 과목이 된다는 교육 개정안을 향해 날린 한마디이다. ’동혁이형’은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과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대처할 것 아니냐.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걸 노래방에서만 배울 거야? 자꾸 외로운 섬 하나 더 외롭게 만들 거야?" 어떤 시사 칼럼보다 더 시원하고 통쾌했다. 개그지만 그저 웃어넘길 수 없는 풍자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 자체로 진실과 거짓의 또 다른 싸움터가 되어 왔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만큼이나 힘써 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왜 한편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거짓의 역사를 만들어내려 그렇게 애를 쓰고, 왜 한편에서는 진실을 파헤치려고 때로는 목숨까지 걸로 투쟁을 하는가. ’오늘’의 삶은 ’어제’에 뿌리 내리고 있고, ’내일’의 열매를 잉태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의 지배를 받고, 현재는 미래를 결정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거짓과 진실의 싸움은 그만큼 ’역사’가 가진 힘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중국와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온적으로 반응하는 우리는 왜곡하려고 애쓰는 그들보다 역사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진실을 지키고 밝히려는 노력보다 왜곡하려는 노력이 큰 것을 보면, 왜곡을 통해 얻어지는 이해 관계가 크기는 큰가보다.

<세계사 오류사전>은 개그콘서트의 ’동혁이형’ 같은 느낌의 책이다. 역사 교육이라는 중요한 교육 현안이 개그의 소재로 다루어지고, 사람들을 웃기는 ’개그맨’이 웃음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중요한 일침을 날린 ’동혁이형’처럼, <세계사 오류사전>은 세계사의 ’오류’라는 다소 심각한 소재에 ’흥미’를 더했다. 

그림 형제의 유명한 동화 ’일곱 마리 양을 먹은 늑대’는 앞부분이 삭제되었다든지, 밀레의 ’만종’은 원래 죽은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그림이었다는 것처럼 사실이 드러나도 역사적으로 그리 큰 충격이 되지 않는 오류에서부터, 남북전쟁은 원래 노예해방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이미 다 알고 있는 오류, 나폴레옹은 키가 작지 않았다거나, 마라톤 거리는 원래 42.195km가 아니었다는 다소 가벼운(!) 세계사의 오류와 뉴턴은 숫자 조작의 명수였다는 다소 충격적이면서 불쾌한 오류 등이 백과사전 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목차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사 상식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칭 ’오류의 사냥꾼’들이 밝혀낸 역사의 진실은 우리가 가진 세계사 지식의 토대를 흔들만한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세계가 발칵 뒤집힐 만큼 엄청난 음모가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예능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를 보며 역사 과목을 선택 과목으로 개정하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요즘 역사의 진실을 역사 책이나 역사 수업이 아닌 ’생뚱’ 맞은 곳에서 배우는 경우가 많아지는 듯하다. <세계사 오류사전>과 같은 책이 발간되는 속도에 비해 역사적 오류를 바로잡는 일은 왜 이리 더딘지 한번 잘못 굳어진 역사는 화석처럼 단단하기만 하다. 세계사는 물론 국사의 오류가 교육의 ’주변부’에서 흥미꺼리로 다루어지지 않고, 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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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 1 - 천하제일상 상도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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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신철학(新哲學)을 말하는 <상도>,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다!



나는 어째서 최인호 선생님이 아프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을까. <상도> 개정판을 만나며 쓸쓸해졌다. 부모님이 DVD까지 구매해서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보고 있는 드라마가 바로 <상도>이다. 그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한 최인호 선생님의 <상도>를 집에 들고 들어가니 기대했던 것보다 부모님이 더 기뻐하며 반기신다. 서로 먼저 읽겠다고 잠시 아옹다옹 했으나, ’서평’을 핑계로 첫 차례가 나에게 주어졌다. 우리 어머니와 동갑내기이기도 하신 최인호 선생님의 쾌차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읽었다. 

2000년에 초판된 5권 짜리 <상도>가 최인호 선생님에 의해 3권으로 다시 태어났다. "천 매 정도 더 털어 내고 문장도 다듬어 다섯 권짜리 대해소설을 세 권짜리 장편소설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는 최인호 선생님은 "이번 개정판이야말로 작가인 내가 봐도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새로 낳은 내 늦둥이 새끼를 예뻐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 담긴 선생님의 남다른 애정과 개정판에 대한 만족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3백 50만 부가 판매된 이 책은 최인호 선생님이 쓴 작품 중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이 그처럼 독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참고로, 드라마 설정과는 상당 부분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자는 <상도>를 읽으며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역사적 실존인물이기도 한 ’임상옥’은 우리 시대의 갈증이요, 그리움이다. 경제적 위기를 최고의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 통치자도 ’경제 대통령’을 요구하는 경제의 시대에 우리는 ’임상옥’과 같은 한 사람이 아쉬운 것이다. 또한 누구보다 많이 벌었으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임상옥’의 삶은 무조건적인 ’이윤 추구’에 지쳐가는 우리의 고달픔을 달려준다.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긴’ 임상옥의 상도가 우리의 마음과 삶을 환기시키며 신성한 삶의 공기를 주입해주기 때문이다. 

<상도>에서 ’임상옥’의 삶을 추적하는 화자는 작가인 ’나’이다. 어느 날, 기평그룹의 총수 김기섭 회장에 독일에서 신차 시험운행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김기섭 회장의 유품 중에 그의 지갑에서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란 문장이 발견되고, 회사는 작가인 ’나’에게 그 문장의 출처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무역왕 임상옥(林尙沃)임을 알아내고, 그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자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삶이 역사적인 베일을 벗는다.

오래 전, <상도>를 읽은 독자들의 전화 때문에 최인호 선생님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김정희 선생이 그린 ’상업지도’는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석승 스님이 임상옥에게 전해주었던 ’계영배(戒盈盃)’가 현재까지 전해지는지, 대학로 뒷골목을 다 찾아보아도 여수(如水)기념관을 찾을 수 없다는 문의 전화가 많이 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설정이었으나 독자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만큼 역사적인 묘사가 뛰어나고, 흡입력이 강한 이야기라는 반증일 것이다.

최인호 선생님은 이 책의 주제가 ’경제의 신철학(新哲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그 해답을 시대의 거상 ’임상옥’의 삶에서 찾았다. 나는 <상도>를 읽으며 ’세 가지로 짜인 두 조합’에 관심을 두었다. 인물로는 임상옥을 비롯하여 홍경래와 김정희라는 세 인물이 한 조합을 이루고, 상징적으로는 석숭 스님이 평생 맞이할 세 번의 위기를 구해줄 비책으로 임상옥에게 내려준 ’죽을 사(死)’자와 ’솥 정(鼎)’자, ’계영배(戒盈盃)’가 한 조합을 이룬다. 이 조합은 부와 명예와 권력이라는 인간의 세 가지 욕망과 다시 맞물린다. ’죽을 사(死)’자와 ’솥 정(鼎)’자, ’계영배(戒盈盃)’에 숨겨진 의미, 책을 관통하며 이 세 가지 조합이 빚어내는 <상도>의 빛깔이 감탄스럽다. (어쩌면 최인호 선생님이 원고를 덜어내는 수고를 다시 하며 이 책을 ’3’권으로 엮어낸 것에도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부와 권력과 명예의 ’위기’를 지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빈손의 가객으로 죽어 묻힌 임상옥. 그러나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상업으로 그가 남긴 것은 결국 사람이었고, 우리에게는 ’상업의 부처’(商佛)로 남았다.

나의 삶에도 ’계영배(戒盈盃)’ 하나 놓아두고 살아야겠다. 오래도록 소중하게 소장하고 싶은 이 책, <상도>가 내 삶의 ’계영배(戒盈盃)’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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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대한 백과사전 - 눈보라 속에 남겨진 이상한 연애노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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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니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기권을 외치고 싶었다.


별점을 매길 수 없는 책이다. 스토리와 교훈을 읽어내는 독서에 길들여진 나에게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이 소설은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줄거리가 전혀 없는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의 구성은 스토리에 길들여진 독자를 난처하게 만든다.

<눈에 대한 백과서전>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선행 이해가 필요할 듯 하다. 몇 년 전, ’다세포 소녀’라는 기괴한 영화를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저런 영화를 누가 볼까?’ 싶을 만큼 유치하고 요상하다 생각했다. 그때까지 ’B급 문화’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B급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 기조를 배우고 나서야 ’다세포 소녀’라는 영화가 가진 문화적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눈에 대한 백과사전>이 가진 문학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듯 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은 무엇일까? 몇 가지 자료를 검토하며 찾아본 설명을 인용하면 이렇다. "포스트모던 소설은 이제 부조리에 관한 게 아니라 부조리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하여 모더니즘으로부터의 이탈현상이 지적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논리적이고 인과론적인 이야기의 구성과 모티프의 구사, 혹은 완전한 이해나 전달이 전제된 관례적인 수사, 작중인물들의 자아의 현상과 발견의 계기, 사회적 현실에 대한 대항과 고발 의식, 완결된 하나의 형태로서의 소설 등 정통소설의 일반적 관례들에 대한 불신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19세기적 이념과 기법으로부터 반발하고 벗어나고 뛰어넘은 ’포스트모던 픽션’이야말로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유일한 문학형태라고 단언한다."

부조리 그 자체, 정통소설의 일반적 관례들에 대한 불신, 19세기적 이념과 기법에의 반발이라는 설명들을 토대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눈에 대한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이 소설의 ’구성’이 가진 의미가 희미하게나마 이해되기 시작한다. 

<눈에 대한 백과사전>은 이러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뉴욕 버펄로에서 심각한 교통 사고가 있었고, 남자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친인척의 통고가 없어 경찰은 사상자의 신원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 심하게 찌그러진 자동차가 눈밭에 처박혀 있는 현장에서 ’눈에 대한 백과사전’이라는 원고 뭉치가 발견되었다. 이 노트 안에는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눈’(雪)에 대한 표제어들이 가득 수록되어 있다. 

<눈에 대한 백과사전>은 바로 눈 속에서 발견된 이 노트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롤로그’가 있고, ’편집자 노트’가 나오고, Angel(천사), Blindness(설맹), Comrts(혜성), (...) Zenith(천정)까지, 그리고 ’주’가 나오고, ’에필로그’로 끝난다. 현장에서 즉사한 한 남자, 그리고 그 현장에 남아 있던 노트가 이야기의 전체 틀과 줄거리를 이끌어가지만, 사실 이 책은 줄거리가 그리 큰 의미가 없는 책이라 ’느껴진다.’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눈’(雪)에 대한 표제어들을 주제로 하여, 책 제목 그대로 ’눈’에 관한 과학적인 정의, 역사적인 명제나 환상적인 이야기, 고전에서 발췌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그런데 그 모든 내용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 지나치게 독립적이여서 책장을 넘길수록 아마도 "뭐지?"라는 의문이 더 커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것을 예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엔 그가 한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는데, 독자도 처음엔 그럴 것이다. 그렇다. 난 그의 말, 그가 수집한 스크랩과 인용문, 사진, 주석, 농담, 일화, 시, 노래들의 집합체인 이 이야기가 한 사람의 전 생애를 기울인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너무도 잊히기 쉬운 이야기들이기에, 그는 그 이야기에 자물쇠를 달아 열쇠로 채워 보관하려고 자기 생애를 전적으로 바쳤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이다"(18).

스스로를 설명하는 이 문장에 이 책을 이해하는 열쇠가 보인다. 이 책은 줄거리보다 ’눈’ 하면 떠오르는 연상 단어들을 매개로 어떤 이야기를 꾸려간다. 사실 ’실험적인 연애소설’이라는 책 소개를 읽고, 각각의 설명을 ’연애’와 연결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읽기 보다는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가 주는 ’느낌’에 더 충실해야 할 소설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예를 들면, Dream(꿈)을 읽어 보자. "꿈…. 눈이 내렸습니다. 낮에도, 낮이 아닐 때도 알프스 고원지대에 눈이 내렸습니다. 소리 없이, 꿈도 없이 아주 깊이, 아주 가볍게 내렸습니다. 나는 테라스를 나와 샤츠알프로 자꾸자꾸 올라갔습니다. 입을 벌린 채, 그렇게 무(無)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얼음 바람에 맞서 밧줄을 꼭 잡고서, 내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다렸습니다. 더 이상 눈을 헤쳐 나오기 힘들어졌을 때, 내가 지팡이로 낸 구멍에서부터 녹색이 도는 깨끗한 푸른빛이 발산됐습니다. 그 빛을 받아 하얀 눈송이들이 쉼 없이 빙그그로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 눈은 나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다음엔 어떻게 됐을까요? (생략)"(50).

정말 난해하다. ’꿈을 꾼다. 눈이 내린다. 고개를 든 채, 눈이 내리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점점 무(無) 속으로 들어잔다. 빛나는 눈, 그 빛을 통해 금광석처럼 반짝이는 깨달음을 얻는다.’ 혼자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그리고 그 느낌을 간직한다. ’연애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심오한 메시지가 숨어있을 듯 한데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차갑고, 순결하고, 깨끗하고, 순수한 결정체를 상징하는 하얀 ’눈’(雪), 그러나 그 눈은 무엇보다 빨리 녹아버린다. 뒷표지 인용문에 보면, <눈에 대한 백과사전>은 차가운 눈에 빗댄 뜨겁고 절절한 사랑 고백이라고 한다. 노트의 주인이 차마 생전에 고백할 수 없었던 이 사랑이 그가 떠난 자리에서 발견되었다는 애잔함까지. 이러한 힌트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게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은 이것이었다.

"눈보라를 볼 때마다 일상적 삶에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을 당신을 떠올리게 되겠죠. 나를 당신과 사랑에 빠졌던 남자로 추억하진 마십시오. 그보다는 지평선에 뜬 작은 무지개를 보여주려 당신을 앨버타 주로 데려갔던 남자로, 스위스의 산장에서 당신에게 담배를 가르친 남자로, 당신이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영국에서부터 달려왔던 남자로 기억해주십시오. 나 역시 당신을 그런 방식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내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온 공간을 환하게 밝혔던 미소의 주인공영혼을 감동시킨 글의 저자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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