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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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249).

다시 사랑은 온다고 마법을 걸어본다. 
그리움이 채워지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지금 사랑하라."


"읽고 나면 가슴 속에 깊은 우물이 하나 파인다." 정이현 작가님의 이 말이 예언처럼 들어 맞았다. 가슴 속에 깊은 우물이 하나 파였다. 그리고 잠들지 못했다. 이야기의 잔상이 그 우물 속에서 자꾸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그 출렁이는 물결을 타고 묻어두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기억이 나를 아프게 한다. ’옛사랑’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네, 제3의 작가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필 작가이다. 그는 사무실 겸 주거 공간인 반지하에 산다. 전화가 오면 상담을 하고, 계약을 하고, 다른 사람의 책을 대신 써준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동네를 걷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러다 자고 싶으면 잔다. 사먹기도 하고 해먹기도 하고 끼니 대신 술을 먹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혼자 산다.

그의 삶에 전혀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필을 하는 그에게도 나름 어떤 원칙 같은 것이 있다. "직업 전선에 나선 마당에 대필에 원칙을 세우는 건 사치다. 그러나, 가져갈 수만 있다면 사치는 가져가는 게 좋다. 정신의 사치는 우울증을 막아준다"(18).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다. 별 계획도 없고, 기대도 없는 일상이다. 특히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런 책 한 권이 세계의 비열한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모른다. 거기까지만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걸어 다니는 동네의 일만으로도 벅차다. 비열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개인들이다"(19).

그의 공간은 그에게 익숙한 동네와 기억이 전부이다. 하루 종일, 그리고 몇 날을, 그를 미행한다 해도 동네 밖으로 벗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그래서 더욱 위태로워 보이는 그의 삶과는 달리, 그의 기억은 과거와 현재, 산 자와 죽은 자, 현실과 환상, 우연과 운명을 넘나든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오늘 여기에 이르렀는지 그의 기억(그리고 환상)을 통해 천천히 복원된다. 그에게 있어 산 자와 이루어지는 ’현실’의 소통과 죽은 자와 이루어지는 ’환상’의 소통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그에게는 죽은 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얼핏 어지러울 수 있는 구성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전혀 복잡하지 않게 잘 따라가진다. 단지 읽는 나의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두어야 한다. 너무도 덤덤한 그를 대신하여 나의 마음이 감정의 물결에 멀리 쓸려나가지 않도록 말이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속물적 대결 의식’에 시달렸으나 한 번도 그 대결에서 이겨보지 못한 남자의 일상을 그린다. 혼자 걷고,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고, 혼자 일하고, 혼자 먹고, 그렇게 혼자 사는 남자. 그의 눈에는 햇빛도 저 혼자 살아서 아스팔트 위에 쏟아진다. 깊이 잠들어 있는 거리를 혼자 걷는 남자는 생각한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 속에.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태민이라는 개를 사랑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그의 ’기억’ 속에 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남자는 기억 속에 사랑이 있어 쓸쓸하지 않다는데, 지켜보는 내가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남자는 햇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켜보는 내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 이 남자, 어찌 살까. 아니, 지금 이 남자 산 사람인 것은 맞나?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살아있는 것 같지만 실은 죽은 사람이라는 반전이 결말 어디쯤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사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249).

그는 한 번도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인가. 그를 미행하며 오히려 내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나야말로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기억을 읽을 때마다 나에게 환청이 들린다. 소리 하나가 툭툭 튀어나온다. 지금 사랑하라고, 지금 사랑하라고, 지금 사랑하라고.  

이 책의 제목은 그의 아내가 새겨놓은 문패의 글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어떤 뜻일까? ’아홉 번째 집’의 의미를 알려주는 힌트는 찾았지만, ’두 번째 대문’의 힌트는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랑 다음으로 다시 찾아올 새로운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막연한 생각만 품어본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그가 다시 찾아들어갈 집, 새로운 사랑의 문이라고. 다시 사랑은 온다. 
 
패배의식에도, 상실감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도 무디어져버린 듯한 무감각한 남자. 그에게도 다시 사랑이 올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더 욕심을 내자면, 내가 알아차린 그의 그리움도 꽉꽉 채워지기를, 꼭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괜찮은 그를 대신하여, 전혀 괜찮지 않은 내가 대신하여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런데 남자가 아까 지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남자는 가야 할 곳이 있는 게 아니다. 살아 있을 때는 저런 식으로 바삐 걸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뚜걱뚜걱, 목적지가 분명한 당당한 걸음걸이는 저 사람의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채워질 때까지 남자는 계속 저렇게 걸어 다닐 것이다"(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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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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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 작가는 1964년에 개최되었던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설정했을까. 왜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일본을 고발할까. 이미 사회주의는 패배를 인정했고, ’복지’를 앞세운 자본주의는 의기양양 승전가를 높이 불렀는데, 왜 작가는 발전의 그늘에서 착취 당하고 소외 당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까. 일본은 이미 경제적으로 세계의 정점까지 올라가지 않았는가. 이제와서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가 뭘까. 철지난 (사회주의식) 계급투쟁을 다시 벌이려는 것일까. 1권을 읽는 내내 ’왜’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직 어떠한 힌트도 발견하지 못했다.


"올림픽을 인질로 몸값을 두둑이 받아낼 거예요"(414).

1964년 일본은 처음 개최하는 올림픽으로 온통 들떠 있다. 올림픽 개최일에 맞춰 여기 저기 공사가 한창이고, 외국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그러나 급조되고 있는 일본의 ’발전상’은 깊은 그늘을 남기고 있었다. 올림픽 개최지 도쿄에 치우친 불균형한 발전, 철저히 가진 자의 편인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우뚝 속은 도쿄타워 옆의 악취를 내뿜는 뒷골목 처럼 그렇게 공존했다.

<올림픽의 몸값>은 의문의 폭발사고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재는 1964년 10월 10일, 올림픽 개회식 날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중요한 때에 의문의 폭발사고와 함께 경시청에 협박장이 날아든다. 올림픽을 인질로 잡고 국가에 ’올림픽의 몸값’을 요구한다. 올림픽을 무사히 치르고 싶으면 올림픽의 몸값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때가 때이니 만큼 이 사건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가운데 범인을 잡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진다.

각 장마다 중심인물이 달라지는데, 세 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한다.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 예능국의 새내기 PD인 스가 다다시. 그는 지체 높은 관료 집안의 철부지 같은 아들이다. 도쿄대를 나왔다. 경시청 수사 1과 5계의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 올림픽을 앞두고 아파트에 입주하여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심 중인데 출산 예정일이 올림픽 개최일이다.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인 사마자키 구니오.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고, 미래가 보장된 엘리트이지만 몹시도 가난한 집안에서 오로지 똑똑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가족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스가 다다시와는 도쿄대 동창. 이밖에도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간다 제면회사’의 여직원 고바야시 요시코가 있다. 비틀즈의 팬인 그녀는 사마자키 구니오를 짝사랑하고 있다.

일본의 문학가로 명성이 자자한 이 대 작가는 1964년으로 돌아가 <올림픽의 몸값>이라는 다소 과장되고 풍자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전개한다.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대학생이었던 ’사마자키 구니오’의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을 통해, 착취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을 고발한다. 그 비참함이 차가운 분노로 바뀌면서 사마자키 구니오의 의식을 깨운다.

1권에서는 범인로 지목된 ’사마자키 구니오’를 향해 점점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다. 평생 노동만 하며 살던 형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사마자키 구니오는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한다. 비록 가족이지만 형과는 신분이 다른 도쿄대 학생인 그가 형이 담당했던 노동 현장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육체노동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타락하고 만다. 자본이 만들어낸 무한한 욕구가 품고 있는 비합리성,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밖에 없다. 세상을 바로잡는 건 프롤레타리아를 빼고는 없다. 고향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피눈물이다ㅡ"(184).

그가 찾아간 곳은 형이 일했던,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거대한 공공사업 프로젝트 현장이다. 착취 사슬로 견고하게 얽혀 있는 노동 현장, 그 가장 밑바닥의 야마신 흥업에 속해 있는 사마자키 구니오는 일본의 실상을 마주한다. "이 나라에는 새로운 유산계급이 탄생하려 하고 있다. 백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눈이 벌게진 일본이다. 그건 즉 노동자 계급을 그대로 존속시키려는 꿍꿍이인 셈이다"(185).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을 때 일어난다는 계급혁명. 올림픽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을 뜨게 된 사마자키 구니오는, 착취 구조의 맨 밑에 있으면서도 쉽게 현실을 받아들여 거의 종복과 같이 생활하는 노동자를 보며 자신이 할 일을 깨닫는다. "노예를 해방시켜주는 것은 노예 측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식계급 혹은 유산계급에서 태어나 이질분자, 혹은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이제야 실감했습니다"(354).

그가 올림픽을 인질로 잡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386).

아직 2권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가 어떠한 의도도 아직은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범인은 (거의) 드러났고, 수사망은 좁혀져 오는데, 이야기는 어떠한 결론을 맺게 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196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완전히 과거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그가 다시 ’마르크스 주의’라도 들고 나온 것인지, 소설적 재미를 위한 상징적인 장치인지 지켜볼 일이다. 2권을 끝까지 읽어봐야 하겠지만, 이 재밌는 소설을 가볍게 읽으며 내 안에서도 깨어나는 계급의식을 지금의 정치권이 눈치 챈다면, 긴장할 듯도 한데. 내용의 진지함 때문인지 혹시 이 책이 금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혼자 오버도 해본다. (이 소설에 긴장하는 것은 나뿐인가?)

사마자키 구니오와 정반대편에 서있지만 지식 노동자로 살아가는 스가 다다시, 서서히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는 오치아이 마사오, 그리고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되어 국가적인 반역을 벌이고 있는 순수 청년 사마자키 구니오, 이들이 어떤 결말을 이끌어낼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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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여행 1001 죽기 전에 꼭 1001가지 시리즈
최정규.박성원.정민용.박정현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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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하루 전날, 잠들지 못하는 아이처럼 설레인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여행을 떠나는 상상으로 내내 들떠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은 세상이 넓은 만큼 우리나라에도 가볼 만한 곳이 많고, 할 일이 많지만 죽기 전에 다 가보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내 마음에 펌프질을 해댄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안에는 해외여행처럼 여러 날 계획하고, 여러 달 준비하지 않고도,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는 우리 생활 가까운 여행지가 가득하다. 서울권, 경기권, 강원권,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 제주권 등 총 7개의 파트로 나누어 국내 여행지를 소개해주고 있다. 버스 하나만 타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갈 수 있는 여행지에서부터, 우리나라에 이런 여행지가 ’숨어 있었구나’ 감탄하게 되는 여행지도 많다. 색인처럼 정리된 ’차례’를 따로 복사해서 옆에 두고 이미 가본 곳,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꼭 가보고 싶은 곳 체크하며 읽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은 자연 경치가 아름다운 산과 섬, 계곡, 바다(해수욕장)뿐만 아니라, 박물관, 기념관, 공연장, 수목원, 공원, 유명 시장, 문화 유적지, 극장 등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관심 분야별로 테마를 정해 여행지를 뽑아도 멋진 여행이 될 듯하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박물관 여행’이나 ’유명한 계곡 여행’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 박물관이 이렇게나 많았나 하는 것이었다. 낯선 여행지를 만날 때마다 관광자원이라는 의미에서는 홍보력이 아쉬웠다.

과거에는 생활에 여유가 있는 계층이나 유행처럼 여행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부족하고, 돈이 없고,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서라고 변명이 가득했다. 그런데 여행은 ’떠나는 사람’이 즐길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돌아보면, 매년 휴가를 받아도 거창한 여행에 대한 꿈만 꾸며 흘려보내기 일쑤였고, 어쩌다 여행을 떠나도 매번 갔던 곳을 반복적으로 찾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를 읽으며, 그동안 게으르고 성의 없는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물론 책으로 보여지는 것과 직접 가서 즐기는 것 사이에는 이미지와 실제 사이에 여행자가 메워야 할 여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보면 ’실망’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익숙함은 경멸을 불러온다"는 말처럼 '국내'라는 익숙함 때문에 그 위험도가 더욱 높으리라. 그러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은 국내 여행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핵심적으로 짚어준다. 그러니 여행지에 서서 그곳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죽기 전에 한 번 와봤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보장받는 셈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를 선정하여 친절한 여행 가이드가 되어주신 네 분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여행은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최상의 선택입니다.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최상의 일탈’을 만드는 데에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최상의 일탈, 그것을 꿈꾸기에 최적의 책이다. 나의 나라이지만 모르고 지내던 여행지를 알게 된 기쁨이 크다. 아직 밟아보지 않은 미지의 여행지가 가까이에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늘도 어제처럼 흘러가는 지루한 일상에 활력이 되어준다. 

그런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을 읽으며 내가 느낀 더 큰 매력은 아무 감흥 없이 들어마시던 공기에 신선함을 불어넣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내가 매일 출퇴근을 하며 지나는 그곳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지로 선정되어 있다. 어제는, 늘 종종 걸음으로 지나기에 바빴던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새로운 느낌,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최상의 일탈’이 시작된 것이다. 하늘로 돌아가는 날 후회 없이 눈 감기 위해 계속 일탈을 시도하리라, 나름 비장한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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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20th-Century Art Book 20세기 아트북 파이든 아트북 4
PHIDON 지음, 윤옥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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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햇살이 따뜻해지니 미술관에 가고 싶어진다. 노랗게 피어나는 개나리의 계절이 되면 나는 항상 미술관을 떠올린다. 봄 소풍 장소로 자주 찾곤 했던 미술관, 시간이 멈춰진 그곳에 가고 싶다. 높은 천장에 압도되고, 뚜벅뚜벅 복도를 가득 메우는 발소리의 울림이 좋아서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면서도 숨소리조차 조심했던 미술관, 그곳에 가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교양인은 아니다. 예술가들의 예술작품은 사실 난해하기 그지없다. 대가의 작품을 마주하고 서 있어도 어떤 부분에 감상 포인트가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난해한 연주곡 때문에 금세 지루해지곤 했던 음악회와는 달리, 미술관은 이해할 수 없는 그 영역조차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친구들과 미술관에 가면 저마다 한참 머물러 서게 되는 작품이 제각각이었다. 그럴 때마다 서로 "뭘 보고 있어?"라고 물으면, 우리는 그저 "그냥, 이 작품이 나를 끌어당기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겠다는 듯 서로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여줬었다.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코드는 많다.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세계도 다양하다. 그 많은 코드와 다양한 예술 중에서도 특히 ’미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술이 가장 앞서가는 예술이라는 신뢰 때문이다. 미술이 가진 상상의 세계, 표현의 세계는 어떤 예술의 세계보다 무한하다. 미술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느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꼭짓점이 있다는 것이다. 미술을 감상하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로니에북스의 <20세기 아트북(The 20th-Century Art Book)>을 보고 나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마치 나만의 미술관이 생긴 기분이랄까. 500페이지에 달하는 큼직한 컬러도판 안에 20세기 미술 작품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20세기 미술의 동향을 한눈에 파악하며, 20세기를 주도한 미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설렘이 마음 가득 피어났다.

"20세기는 다른 어느 시기와도 비길 수 없이 수많은 미술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양식을 제공했다. 20세기는 발명과 발견, 정치적 격변으로 빠르게 변하는 시기였고, 그 결과 미술의 장도 급진적으로 변화했다."

무엇보다 20세기 미술은 ’급진적’이었다는 점에 끌린다. 격동과 격변으로 대변되는 20세기의 시대상이 미술의 흐름에도 나타난다. 다양한 매체를 가지고 실험적으로 이루어진 미술 동향 중에서도 특별히 여성 미술가들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The 20th-Century Art Book은 A부터 Z까지 이르는 미술가들의 이름 순서에 따라, 이 특별한 시대의 미술에 대한 안내를 제공한다." 

A부터 Z까지 미술가들의 이름 순서에 따라 백과사전적으로 구성된 <20세기 아트북>은 20세기를 대변하는 시대적인 특징과 변화의 핵심을 군더더기 없이 집어준다.

소개되는 화가와 작품 중에 가장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작품은 ’애드 라인하르트’(Reinhardt, Ad)의 ’검은 회화 34’(Black Painting No. 34)이었다. "검은 물감이 캔버스를 완전히 뒤덮고 있다. 오직 직사각형 두 개의 흔적만이 물감의 장막 속에서 겨우 보일 듯하다"(384). 이 작품 안에 숨겨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고 작품 해설을 읽었다. 나는 20세기 미술 작품을 여행하고 난 감상을 한마디로 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했다. 검은 물감밖에 보이지 않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겨우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두 개의 직사각형을 품고 있는 회화, 그 안에 이런 거대한 음모가 들어 있다. "미술 창작의 작업을 과거의 작품에 대한 계속적인 반작용으로 보면서 라인하르트는 ’환상, 암시, 기만이 배제된’ 양식을 목표로 하였다." 저항적이면서, 실험적인 이 작품의 도전에 20세기 미술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처음 마주보면 캄캄하지만 자세히 보면 무엇인가 보인다는 점에서도, 20세기 미술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가질 수 있는 만족과 희열을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책이다. 20세기 예술은 물론 시대를 보는 시야까지 넓혀주며,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눈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만족도 100%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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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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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편의 시가 아홉 편의 만화로 다시 태어났다. 

시는 삶을 읽어내고, 우리는 그 시를 읽으며 다시 우리 삶을 대입한다. 알집에 넣고 압축을 풀어내듯, 시인이 압축해놓은 의미들이 만화로 풀어진다. 

그런데 무슨 만화가 이렇게도 지독하담. 눈부신 조명 아래 바짝 타들어간 나비처럼, 작가 채민은 모든 수분과 생명의 기운이 말라버린 곧 바스러질 것 같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렇게 지독한 <그녀의 완벽한 하루>가 완성된다.

여기 등장하는 아홉 가지 이야기 속의 ’그녀’들은 일상이라는 압핀에 고정되어 옴짝달싹도 못한 채 모든 희망이 말라가고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서른 즈음의 여성이다. 서른 즈음의 사랑을 간직한 이제는 늙어버린 한 여인을 포함해서. 여자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높은 빌딩 숲, 무표정한 얼굴로 정신 없이 오고가는 사람과 사람의 물결, 그 속을 헤치며 걷다 갑자기 우뚝 멈춰 서게 되는 나이, 여자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불쑥 튀어나온 ’정지’ 신호 같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규원)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시를 통해 조명되는 ’그녀’들의 ’오늘’ 이야기이다. 단물 빠진 연애, 고달픈 생계, 원치 않는 임신, 의미 없는 섹스, 그것이 ’그녀’들의 오늘이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들의 아홉가지 이야기에서 나는 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서른, 그냥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를 적시는 그 축축한 우울의 정체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툭 하고 튀어나오는 그 느낌, 바로 잘못 살고 있다는 그 막연한 느낌 때문이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결국 가서 닿게 되는 그 끝자락. 무서워진다.


찢어진벽지(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 
(생략)
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아가리라.
이런말이결(決)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시제10호 나비 / 이상)

익숙하던 물체가 달리 보이는 때가 있다. 의미 없는 물체에서 생기 잃은 나의 ’오늘’을 발견한다. 언제부터 길을 잃었던 것일까. 이건 아니다 싶어 사방팔방 둘러 보지만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다. 무거운 돌 하나 가슴에 올려져 나도 모르게 가던 걸음을 멈추었지만, 누구도 내 마음의 아우성을, 그 깊은 신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서 만나는 ’그녀’들과 내가 대화하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

(삼십세 / 최승자)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건조하다. 깨달음도 건조하고, 아픔도 건조하고, 통곡하는 소리마저 건조하다. 생명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서른 살, ’그녀’들은 삶의 환희를 건조하게 비웃는다.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인생의 건조함. 오래된 통증 같은 느낌.


나 혼자만 유배된 게 아닐까
지상에서 지하로
지옥철로 외로이 밀려난 게 아닐까
(지하철에서2 / 최영미)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나만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지독하게 외로운데 오가며 부딪히는 사람이 많아서 더 슬프다. 철저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에게는 오래된 연인도, 다정한 이웃집 사람도, 함께 사는 남편도, 지하철을 함께 탄 승객처럼, 그저 하룻밤 의미 없는 섹스를 나누는 낯선 상대처럼 나의 ’밖’에 존재하는 타인일 뿐이다.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고
어떤 꿈도 몸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늘 그리워했으므로
그리움이 뭔지 몰랐고.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 허연)

세상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인지, 내가 세상에 맞지 않는 것인지 헷갈린다. 작가 채민은 왜 하나 같이 사회 부적응자 같은 ’그녀’들을 골랐을까.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가는 비 온다 / 기형도)


기형도의 그녀처럼 작가 채민도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요란한 세상에 소리 없이 죽어가는 ’한 소년’을 기억해서 무엇하려고, ’오늘’을 쓸쓸히 살아가는 ’그녀’들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일까. 마음 한 자락 내어주며 기억하려는 것인가,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포기하려는 것을까, 이런 삶도 있다 소리치고 싶은 것일까, 탈출구 없는 그녀들의 친구가 되어주려는 것일까. 희망 없는 비가는 노래하여 무엇하려고.  


나는 어떻게 될까
내년이면 내후년 십년 후면... 살아 있을까
결혼과 아이라는 참호 속에 기쁘게 처박혔을까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 / 신현림)


그렇다. 고작 꾸어보는 꿈이, 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이 정도 뿐이지만 이 세상에는 우주의 그 단순한 요구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인생들이 있다. 당연한 그것이 제 것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오지 않는 내일에 막연한 희망을 걸어보지만, 암담한 미래 앞에 우리는 결국 이렇게 탄식할 뿐이다. 시인처럼 말이다. 거세당한 희망.


누군가 나타나서 여기서 나를 구해줄 거야......
(생략)
그 누구 나를 여기서 구해줄 수 있으랴......
(석고 두개골 /  황지우)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절망한다. 완벽하게!


그래서 참으로 하는 말인데
얼룩진 얼굴의 물굽이와 오후의 때와
다시 오지 못하는 이승의 그림자 길을
우리 서로 두 손으로 손때잡고 살았으면 해.
(...)
단 한번 바라지만 그러한 섬이 그리워.
(영원의 한쪽 / 박정만)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서는 ’서로 두 손에 손때잡고 살았던’ 그 시절조차도 짧은 오후의 한 때 잠시 비쳐들었던 햇살처럼 덧없이 흘러가버린다. 기댈 곳이 없어진다. 완벽하게!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현대 여성의 자화상을 그렸다. 아홉 편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된 단편이면서, 따로 또 같이 연속성을 갖는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전부일 수도 있고, 부분일 수도 있다. 여성의 삶을 대변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지독하리 만큼 한 곳을 집중적으로 파내었기 때문이다. 환호하고, 열광하고, 치열한 세상이 너무나 뜬금없이 느껴질 만큼 절망의 정적이 가득 들어찬 그 한곳을 말이다.

작가가 골라낸 열 편의 시와 작가가 그려낸 '그녀'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제 짐 한 짐씩 지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렇게 흘러가는 인생의 걸음을 멈추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게 만든다. 시인의 언어처럼 많은 말, 하지 않았어도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를 풀어낸 서사적인 줄거리는 시적 감상에 젖어들게 하고, 정지된 화면은 말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과 메시지를 뇌에 각인시키고, 컷과 컷 사이의 행간은 문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이 지독한 느낌, 그녀의 만화는 문학의 한 영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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