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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열 편의 시가 아홉 편의 만화로 다시 태어났다.
시는 삶을 읽어내고, 우리는 그 시를 읽으며 다시 우리 삶을 대입한다. 알집에 넣고 압축을 풀어내듯, 시인이 압축해놓은 의미들이 만화로 풀어진다.
그런데 무슨 만화가 이렇게도 지독하담. 눈부신 조명 아래 바짝 타들어간 나비처럼, 작가 채민은 모든 수분과 생명의 기운이 말라버린 곧 바스러질 것 같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렇게 지독한 <그녀의 완벽한 하루>가 완성된다.
여기 등장하는 아홉 가지 이야기 속의 ’그녀’들은 일상이라는 압핀에 고정되어 옴짝달싹도 못한 채 모든 희망이 말라가고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서른 즈음의 여성이다. 서른 즈음의 사랑을 간직한 이제는 늙어버린 한 여인을 포함해서. 여자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높은 빌딩 숲, 무표정한 얼굴로 정신 없이 오고가는 사람과 사람의 물결, 그 속을 헤치며 걷다 갑자기 우뚝 멈춰 서게 되는 나이, 여자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불쑥 튀어나온 ’정지’ 신호 같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규원)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시를 통해 조명되는 ’그녀’들의 ’오늘’ 이야기이다. 단물 빠진 연애, 고달픈 생계, 원치 않는 임신, 의미 없는 섹스, 그것이 ’그녀’들의 오늘이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들의 아홉가지 이야기에서 나는 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서른, 그냥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를 적시는 그 축축한 우울의 정체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툭 하고 튀어나오는 그 느낌, 바로 잘못 살고 있다는 그 막연한 느낌 때문이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결국 가서 닿게 되는 그 끝자락. 무서워진다.
찢어진벽지(壁紙)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
(생략)
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아가리라.
이런말이결(決)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시제10호 나비 / 이상)
익숙하던 물체가 달리 보이는 때가 있다. 의미 없는 물체에서 생기 잃은 나의 ’오늘’을 발견한다. 언제부터 길을 잃었던 것일까. 이건 아니다 싶어 사방팔방 둘러 보지만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다. 무거운 돌 하나 가슴에 올려져 나도 모르게 가던 걸음을 멈추었지만, 누구도 내 마음의 아우성을, 그 깊은 신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서 만나는 ’그녀’들과 내가 대화하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
(삼십세 / 최승자)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건조하다. 깨달음도 건조하고, 아픔도 건조하고, 통곡하는 소리마저 건조하다. 생명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서른 살, ’그녀’들은 삶의 환희를 건조하게 비웃는다.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인생의 건조함. 오래된 통증 같은 느낌.
나 혼자만 유배된 게 아닐까
지상에서 지하로
지옥철로 외로이 밀려난 게 아닐까
(지하철에서2 / 최영미)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나만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지독하게 외로운데 오가며 부딪히는 사람이 많아서 더 슬프다. 철저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에게는 오래된 연인도, 다정한 이웃집 사람도, 함께 사는 남편도, 지하철을 함께 탄 승객처럼, 그저 하룻밤 의미 없는 섹스를 나누는 낯선 상대처럼 나의 ’밖’에 존재하는 타인일 뿐이다.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고
어떤 꿈도 몸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늘 그리워했으므로
그리움이 뭔지 몰랐고.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 허연)
세상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인지, 내가 세상에 맞지 않는 것인지 헷갈린다. 작가 채민은 왜 하나 같이 사회 부적응자 같은 ’그녀’들을 골랐을까.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가는 비 온다 / 기형도)
기형도의 그녀처럼 작가 채민도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요란한 세상에 소리 없이 죽어가는 ’한 소년’을 기억해서 무엇하려고, ’오늘’을 쓸쓸히 살아가는 ’그녀’들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일까. 마음 한 자락 내어주며 기억하려는 것인가,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포기하려는 것을까, 이런 삶도 있다 소리치고 싶은 것일까, 탈출구 없는 그녀들의 친구가 되어주려는 것일까. 희망 없는 비가는 노래하여 무엇하려고.
나는 어떻게 될까
내년이면 내후년 십년 후면... 살아 있을까
결혼과 아이라는 참호 속에 기쁘게 처박혔을까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 / 신현림)
그렇다. 고작 꾸어보는 꿈이, 기대할 수 있는 미래가 이 정도 뿐이지만 이 세상에는 우주의 그 단순한 요구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인생들이 있다. 당연한 그것이 제 것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오지 않는 내일에 막연한 희망을 걸어보지만, 암담한 미래 앞에 우리는 결국 이렇게 탄식할 뿐이다. 시인처럼 말이다. 거세당한 희망.
누군가 나타나서 여기서 나를 구해줄 거야......
(생략)
그 누구 나를 여기서 구해줄 수 있으랴......
(석고 두개골 / 황지우)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절망한다. 완벽하게!
그래서 참으로 하는 말인데
얼룩진 얼굴의 물굽이와 오후의 때와
다시 오지 못하는 이승의 그림자 길을
우리 서로 두 손으로 손때잡고 살았으면 해.
(...)
단 한번 바라지만 그러한 섬이 그리워.
(영원의 한쪽 / 박정만)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서는 ’서로 두 손에 손때잡고 살았던’ 그 시절조차도 짧은 오후의 한 때 잠시 비쳐들었던 햇살처럼 덧없이 흘러가버린다. 기댈 곳이 없어진다. 완벽하게!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현대 여성의 자화상을 그렸다. 아홉 편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된 단편이면서, 따로 또 같이 연속성을 갖는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전부일 수도 있고, 부분일 수도 있다. 여성의 삶을 대변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지독하리 만큼 한 곳을 집중적으로 파내었기 때문이다. 환호하고, 열광하고, 치열한 세상이 너무나 뜬금없이 느껴질 만큼 절망의 정적이 가득 들어찬 그 한곳을 말이다.
작가가 골라낸 열 편의 시와 작가가 그려낸 '그녀'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제 짐 한 짐씩 지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렇게 흘러가는 인생의 걸음을 멈추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게 만든다. 시인의 언어처럼 많은 말, 하지 않았어도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를 풀어낸 서사적인 줄거리는 시적 감상에 젖어들게 하고, 정지된 화면은 말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과 메시지를 뇌에 각인시키고, 컷과 컷 사이의 행간은 문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이 지독한 느낌, 그녀의 만화는 문학의 한 영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