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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온 조개 개구리 ㅣ 책이 좋아 1단계 2
고수산나 지음, 박영미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순호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래요.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의 한 유형으로 국제결혼이 급증하면서 한국 사회가 빠르게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급속한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사회적인 관심을 증폭시키며 새로운 고민을 한국 사회에 안겨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은 통계적으로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국제결혼 양상은 그동안 순수혈통과 가부장적 단일문화주의를 고수해온 한국의 문화적인 전통과 ’이주여성’의 인권 문제가 부딪히면서 새로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고충과 저항은 다층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말고도 이주 여성들이 겪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단일민족주의뿐 아니라, 부계 혈통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는 ’이주 여성’들에게 일방적인 동화가 강요된다는 점이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매매혼’의 형태로 이주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주 여성들은 가정 안에서 낮은 지위에 자리하게 된다. 게다가 문화적으로도 시댁의 전통과 가풍을 따르는 것이 당연히 되기 때문에 문화적 적응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 된다. 그러다 보니 한 가족 내에서도 아내요, 며느리요, 엄마인 이주 여성의 나라와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이주 여성과 그 자녀에 대해 사회 일반의 태도가 매우 배타적이라는 것도 문제이다. 뿌리 깊은 ’단일민족’ 신화는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이주 여성과 그 자녀에 대해 다양한 편견과 차별을 양산하면서, 그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혈통적으로 다른 그들의 피부색과 생김새가 ’놀림’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온 조개 개구리>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그 ’놀림’이 만들어내는 상처가 얼마나 큰 아픔인지 잘 보여준다. 저자 고수산나 선생님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친구들의 놀림이었어요.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기도 하고, 엄마가 못 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한다고 했어요"(작가의 말).
고수산나 선생님은 <필리핀에서 온 조개 개구리>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순호’라는 친구를 소개해준다.
어느 날, 2학년 2반 ’경태’네 반에 얼굴이 까맣게 생긴 ’순호’가 전학을 왔어요. 까만 얼굴에 곱슬머리, 그리고 유난히 까맣고 큰 눈, 아이들은 아무리 보아도 순호가 한국 사람 같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묻고 또 물었어요. "너는 우리랑 좀 다르게 생겼는데?"(11)
순호는 도시 아이들이 엄마가 필리핀 사람인 자기를 어떻게 받아줄지 걱정이 되어 결국 자기가 혼혈아라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어요. 혼혈아라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얘기를 말이에요.
경태는 할머니랑 살고 있어요. 엄마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시고, 아빠는 원양 어선을 타고 먼 바다로 나가 계시기 때문이에요. 순호에게 친구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이 싫었던 외톨박이 경태는 순호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냈어요. 그리고 순호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 혼혈아라고 놀렸어요.
경태와 싸우고 집에 돌아온 순호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엄마,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 사람도 아니고 필리핀 사람도 아니고. 난 뭐야?"(28)
순호는 학교에서 자기를 놀리는 경태와 다시 한바탕 싸웠어요. 상처투성이로 씩씩대던 경태와 순호는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으며 서로의 얼굴을 보았어요. 순호는 조금 미안하고, 경태는 조금 걱정이 되었어요. "싸움은 나쁜 거라고 선생님께 야단맞는 것보다, 서로의 상처를 보는 게 더 힘들었던 모양이에요"(45).
순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김치전이에요. 어디선가 고소한 김치전 냄새가 솔솔 나자 순호는 김치전을 먹고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순호의 손을 끌고 김치전 냄새가 나는 이웃집에 놀러를 갔어요. 그 집은 바로 할머니와 살고 있는 경태네 집이었어요. 부엌에서 김치전을 뒤집고 있던 할머니는 순호를 경태의 방으로 밀어 넣었어요.
어색한 경태와 순호는 김치전을 나누어 먹으며 화해를 할 수 있을까요?
<필리핀의 조개 개구리>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면서도,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순호’의 이야기는 순호가 겪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순호 엄마’가 겪고 있는 어려움까지 세밀하게 포착한다. 이 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결코 가벼운 동화가 아니다. 인종적, 문화적 ’차이’를 어떤 시각에서 보고,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도록 호소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다문화 가정의 시급한 쟁점과 대안적인 시각을 누구나 접근이 쉽고 읽기에 편안한 ’동화’로 만들어냈다는 점이 탁월하다. 몇 편의 무거운 논문보다,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소중한 메시지가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쉽고 강렬하게 전달된다.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