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눈물 샘깊은 오늘고전 12
나만갑 지음, 양대원 그림, 유타루 글 / 알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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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병자년, 그때 일을 잊을까 걱정스러워 기록한다"(140).


현재 우리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20년 전 처음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의 5대 후손에 해당한다. 신기하게도 이 강아지들을 보면, 제 어미와 할머니의 특이한 버릇과 신체적인 특징을 그대로 닮아 있다. 5대째 이어지는 강아지를 지켜볼 때마다 ’뿌리’와 ’혈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내 앞에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역사적인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고나 할까. 내 몸 안에 흐르는 피, 그 핏속에 과거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오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살아온 역사, 부모님이 살아온 역사, 집안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 그리고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기억하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울 때마다 누가 알까 지워버리고 싶은, 절대 부정하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을 만난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처박으며 굴욕적으로 항복 의식을 치뤘던 ’삼전도의 치욕’이다. 

그러나 치욕적인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다. "잘나고, 자라스럽고, 번듯한 역사만이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는 못나고, 부끄럽고, 초라한 모든 기억과 시간도 함께 품고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집니다"(141). 역사는 ’부정’이 아니라, 기억하고 되새겨야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같은 잘못과 같은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남한산성의 눈물>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임금과 함께 들어가 직접 전쟁을 겪으며 생생한 전쟁 기록을 남긴 공조 참의 나만갑의 <병자록>을 ’오늘’ 우리의 말로 다시 다듬어 쓴 책이다. "<병자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기까지의 상황,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와 외교, 주화파와 척화파의 갈등, 군인과 백성의 동정, 항복 의식의 세부, 병자호란 마무리 들을 모두 망라한 자료로서 57일간의 병자호란 일지를 포함"하고 있다. 

나만갑의 전쟁 일기는 370여 년 전 절박하고 참혹했던 병자호란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김훈 선생님의 <남한산성>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소설이 아니라, 역사의 ’사실’과 직접 만나는 ’민낯’의 신선함이 있다.

당시 국제정세에도 어둡고 국방을 지키는 일에도 안일했던 우리나라 조정은 청나라 군사들이 ’바람처럼 사납게 다가오고 있음도 까맣게 몰랐다’가 피난할 타이망마저 놓치고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해 들었다. 

나만갑의 일기에 기록된 병자호란은 ’전쟁’이 아니라, 차라리 한편의 촌극 같다. 병자호란이 진짜 부끄러운 이유는 우리나라 임금이 굴욕적으로 항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더 없이 치욕스럽게 만드는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벼슬아치들의 추태이다. 청나라를 업신여기고,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면 곧장 물리칠 것처럼 큰소리쳤지만, 정작 전쟁이 벌어지자 모두가 우왕좌왕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병사들을 비를 맞혀 얼어 죽게 하고, 한양을 지키기로 한 심기원은 거짓으로 승리했다는 보고를 올리고, 아무 계책도 없이 부하 병사들에게 칼을 휘둘러 적진에 뛰어들게 만들어 결국 모두 떼죽음을 당하게 만들고, 그 잘못을 다른 장수에게 뒤집이 씌우고, 장수는 적의 목을 베어오겠다며 허풍을 치더니 이미 죽은 우리 병사의 목을 베어 왔다. 

그 와중에 똑똑하다고 하는 대신들은 전쟁을 끝내기를 주장하는 ’주화파’와 절대로 굴복하지 말고 청나라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척화파’로 분열되어 싸워댔다. 적군과 아군도 구별 못하고 싸워댔다. 서로 힘을 합쳐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해야 할 대신들이 청나라 군사가 아닌, 명분만을 앞세워 서로 옳다고 싸워댄 것이다. 그때의 한심함이 오죽 했으면 ’까치집’에 희망을 걸었겠는가. "(30일) 행궁 근처에 까치 떼가 모여 집을 지었다. 사람들이 까치집을 쳐다보며 좋은 징조라고 했다. 성안에서 믿을 것이라곤 오직 이것뿐이니, 얼마나 절박했으면 다들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43).

나만갑의 기록에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가 당시의 영의정 ’김류’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일기 곳곳에 김류와 그 아들 김경징의 과오가 상당히 감정적인 평가 속에 기록되고 있다. "(13일) 조정에서는 강화도로 들어가서 적의 침략에 맞서자는 결론을 냈다. 강화도 검찰사에 김경징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원래 김경징은 큰 임무를 맡을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김경징의 아버지인, 영의정이자 도체찰사인 김류도 이 점을 잘 알았다. 그런데도 아들이 검찰사로 임명되자 오히려 칭찬했다"(21).

<남한산성의 눈물>은 57일 간의 전쟁 일기 외에도 나만갑이 남긴 또다른 기록 <강화도에서 있었던 일>과 전쟁 후의 기록을 짧게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정은 패배와 항복의 책임을 그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138) 있었다고.

솔직히 ’오늘’의 우리 모습을 보면 <남한산성의 눈물>이라는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370년 이라는 시차가 있을 뿐이지 그때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지워내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를 또 다시 후손에게 남겨줄까 두렵다. <남한산성의 눈물>은 치욕의 역사를 반추하며, ’오늘’을 비춰주는 소중한 거울이다. 이 짧은 책을 읽으며 내용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치욕의 역사이지만, 역사가 남긴 교훈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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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콘서트 KTV 한국정책방송 인문학 열전 1
고미숙 외 지음 / 이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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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學)의 위기?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의 위기?


대학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 방식으로 표명하여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켰던 무렵(9), 나는 생각했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여지는데, 어떤 점에서 위기라고 하는 것일까?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대학교에서 비인기 학과로 전락하는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한마디로 ’인문학이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솔직히 요즘 대학교 행정을 살펴 보면,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먹고 사는 문제에 큰 도움이, 아니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소외되고 국가 지원 정책에서도 소외되는 점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면, 인문학이 진짜 밥벌이가 안 된다는 또 하나의 반증인 셈이다. 어쩌면 이러한 사고 방식 안에 진짜 인문학의 위기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한 후배가 "21세기 인문학은 자연과학과의 대화 없이는 희망이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인문학은 이미 자연과학이 세계를 보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 후배는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했었다. 후배의 논리를 차용하여 조심스럽게 비판을 하자면,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학자들마저도 (이율배반적이게도) 그 진단의 저변에는 ’인문학이 장사가 안 되는 점을 우려하는’ 자본주의적이고 상업적인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 콘서트>는 K-TV의 ’인문학 열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인문학 열전’은 "출연자가 눌변이어서는 ’안 된다’는 평가를 무시하고 오로지 해당 분야에 대한 그분의 학문적 역량만을 평가"하여 출연자를 선정했다. 인문학적 담론에 참여한 열네 분의 출연자는 그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진행자였던 김갑수 선생님은 높은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용감한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그 무모하고 용감에 도전에 박수로 응원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인문학적 관심’을 환기시키자는 기획 의도에 비해, 프로그램의 포맷적인 측면에서 보면 ’신선한’ 기획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學)적인 ’근엄’한 대담이 오고가는 동안 철저히 ’듣는 자’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이 인문학적 ’소통’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學)의 ’소개’에 더 치중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개그맨 김미화 선생님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처음 맡을 때, 청취자의 입장에 서서 ’무식한 질문’도 용감하게 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는 인터뷰 내용이 기억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문학적으로도, 방송에 대해서도 무식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만,) 인문’학’(學)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적 관심’에 초점이 있었다면,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분’처럼 포맷적인 측면에서 조금 더 ’과감한’ 교양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책으로 만나본 <인문학 콘서트>는 인문’학’(學)적 담론을 형성하는 주제의 다양성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의 동향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책에 실린 인문학적 담론들을 소화해내는 것만으로도 지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만큼 '고급'이며, 내용을 곱씹는다면 중요한 삶의 이슈를 ’사고의 체계’를 가지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내용이 완전히 소화되어 인문학적 각성이 내 안에서도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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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돈 관리 -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은 당신을 위한
고득성 지음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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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노예로 살 것인가, 돈의 주인이 될 것인가?
돈 관리의 핵심은 목적별 수입배분에 있다.


"당신에게 흘러올 돈은 대략 얼마나 남았을까? 당신이 65세까지 수입활동을 한다면, (65 - 당신의 나이 X  매월 수입 X 12개월) 만큼이 당신에게 흘러올 돈이다"(12). 물론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대략적인 ’수치’만으로도 암담해진다. 물려받을 유산도 별도 없는데, 나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법적인 혜택으로부터도 열외인 싱글 여성이다. 청춘을 다 보내며 죽어라고 일해도 내 수입은 어느 정도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고, 곧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위기감이 확 밀려온다.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노후를 보장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오늘 살기도 버거운데 내일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른다. 

’자산 관리’를 생각하면 일단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돈 관리의 중요성도 알겠고, 노후준비의 긴박감도 느끼는데, 이상하게 그 절실함 만큼 실행력이 따라 주질 않는다. 겁도 나고, 자신도 없고, 정보도 없고, 무엇보다 자산관리가 왜 이리 귀찮게 느껴지는지 대책도 없이 도망가고만 싶다.

그러나 한 평생 돈에 매여 노예로 살 수 없다는 자극을 받아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 <마법의 돈관리>를 읽으며 무엇보다 내게 큰 자극이 되었던 것은 바로 ’현실감’이다. 돈의 세계에서 돈과 관련된 일을 해오고 있다는 저자는 막연한 요행수에 기대어 무대책으로 사는 나의 비현실적인 경제감각을 흔들어 깨워주었다. 월급통장이 주는 평안은 거짓 평안이었다고나 할까. 

<마법의 돈 관리>는 말한다. "돈 관리에는 무엇보다 목적이 중요하다"고. 돈 관리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돈을 쓰고 싶은 욕망을 이길 수가 없고, 돈을 쓰고 싶은 욕망에 빠져들게 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평생 돈 걱정에서 놓여날 수 없다. 저자는 이것을 "목적이 이끄는 돈 관리"라고 한다.

"돈 관리의 핵심은 당신의 평생 수입을 목적대로 배분하는 것이다"(73). 한마디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그 유명한 투자격언이 마음에 새겨진다. 저자는 단언한다. "재정적으로 성공할 것 같았던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는 매년 돈을 버는 데 수백 시간을 쏟는 데 반해 그 돈을 자기 인생의 어느 곳에, 무엇을 위해 분배해야 할지 고민하는 데는 단 몇 시간조차 할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목적별로 잘 관리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

<마법의 돈 관리>는 목적별로 수입을 배분하여 관리할 수 있는 ’5대 자산 포트폴리오’를 그려준다. 5대 자산은 예비자산, 보장자산, 집자산, 은퇴자산, 투자자산으로 구성된다. 먼저, 매월 수입을 목적에 따라 다섯 개의 목적자산으로 나누고, 그 목적자산 내에서도 그에 적합한 상품을 골라 안정적인 자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가 제시해주는 포트폴리오별 투자 상품을 공부하며 생각은 ’놀부’가 ’흥부’에 비해 확실히 적극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장기적인 안목과 부지런함이 없다면 부자가 될 생각을 아예 말아야겠다.

<마법의 돈 관리>는 각종 도표와 그래프 등을 통하여 자산 관리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적절한 충격을 동반하여 절실함을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자산 관리에 대한 동기 부여가 뛰어나며, 통계와 투자 상품의 장단점을 비교해주는 자세한 설명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충격 요법은 물론, 특히 강조점을 두는 설명 방식은 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저자의 ’진심어린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책이 아니라, 저자를 직접 옆에 모셔두고 ’자산 컨설팅’을 받고 싶은 욕심이 간절하다.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되시면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안정망이 가장 취약한 싱글 여성들 위한 자산 관리 비법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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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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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는 실재하고 똥주는 판타지인 세상을 살며!


’똥주’라고 불리는 선생이 있다. 그리고 "똥주 좀 죽여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완득이가 있다. 완득이의 기도는 "이번 주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라고 협박할 만큼 간절하다. 똥주는 완득이의 조폭 스승, 담임이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난쟁이라고 불릴 만큼 키가 작다. 사람들은 그를 장애인이라고 한다. 직업도 불안정하다. 아버지가 가난하니 완득이도 가난하다. 핏줄은 아니지만 같이 살고 있는 삼촌은 허우대는 멀쩡한데 정신이 좀 모자란다. 어머니는 기억에도 없다. 완득이가 살고 있는 옥탑방, 그 옆집 옥탑방에 거짓말처럼 똥주가 살고 있다. 

완득이는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동네에서 산다. 그곳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는데, 그런 완득이는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 하고 외쳤다(233). 툭 하면 "야, 도완득!"을 부르는 똥주는 수급대상자인 완득에게 수급품을 챙겨주며 이런 가르침을 준다. "왜? 너도 쪽팔려? 새끼야, 가난한 게 쪽팔린 게 아니라, 굶어서 죽는 게 쪽팔린 거야."(11-12)

똥주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몰라도 될 걸 알아버린 인간들이 얼마나 너저분하게 구는 세상인데, 남의 약점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지천에 깔렸는데,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에게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던지는지도 모르고, 발톱이 빠지고 인대가 늘어나면서까지 연습한 진정한 춤꾼을 꿈꾼 아버지를 변두리 카바레로 내몰고 웃음거리고 전락시키는 ’남’들에게 "사실이 그런 건 그냥 그렇다고 말해버리는 게 속 편하다"고 가르치는 진짜 속편한 선생이다.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니 나이 때는 그 뭐가 좇나게 쪽팔린데, 나중에 나이 먹으면 쪽팔려 한 게 더 쪽팔려져."(137)

똥주는 그렇게 싫어도 싫다는 말 못 하고, 아파도 아프다는 안 하고 그냥 다 속에 담아 두고 사는 완득이는 불러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는 완득이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누구와 대화해본 적이 없어 혼자 떠들 수 있는 교회를 찾았는데, 하나님은 똥주를 죽여주는 대신 그에게 똥주를 보내주셨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숨어 일하는 똥주는 완득이에게 엄마까지 찾아준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 여전히 가난하게 살며, 똑같이 가난한 사람이면서 아버지 나라가 그분 나라보다 조금 더 잘산다는 이유로 큰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한국인으로 귀화했는데도 다른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는 그분, 그분이 바로 완득이의 어머니다.

똥주가 만들어내는 기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똥주는 여태 세상 뒤에 숨어 있던 완득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 운동을 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눈치없는 완득이와 정윤하를 은근히 연결시키주고, 투자자를 자처하며 완득이 아버지에게 ’댄스 교습소’까지 차려준다.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지도 못하는 가난한 난쟁이 아버지와 가난한 나라에서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팔려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듯 홀로 살아가는 완득이는 ’똥주’가 아니였다면, 어쩌면 그렇게 평생 ’탈출구 없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떳떳한 요구조차 떳떳하게 하지 못하게 요구하도록 하는 이 사회에서 완득이에게 ’똥주’는 유일한 비상구이다. 

똥주의 관심은 서로 피해 안 주고 조용히 살다 죽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완득이를 노력하게 만든다.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다"(204).

완득이는 자신의 가족을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똥주에게서 아마도 희망의 빛을 보았을게다. 그 빛은 완득이에게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만든다. "대단한 거 하나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233-234).

정신 없이 웃다가 소리없이 울면서 책을 덮었다. 2009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완득이>를 벼르고 벼르다 이제야 만났다. 날새는 줄 모르고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김려령 작가의 이름을 이제야 알아보는 것이 미안할 정도이다. 모처럼 후련하게 웃었는데, 이상하게 가슴에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완득이’는 실제적인데,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캐릭터 우리의 "똥주" 선생님이 내겐 ’판타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똥주"가 실재한다면 남의 약점을 가지고 즐거워 하는 싸가지 없는 놈들이 지천에 널린 너저분한 세상이라도 열등감을 동력 삼아 열심히 살아볼 희망이 좀 생길 것도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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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사람을 밀고 간다
지장홍 지음, 정수국 옮김 / 창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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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당신의 마음속에 시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심어보세요!"(4)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을 가진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 이 곡은 원래 CCM이라는 기독교 음악이지만, 신앙과 종교를 초월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서로의 존재를 축복하는 말로 이 보다 더 감동적인 말은 없을 듯하다.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불러주면 부르는 사람도 축복을 받는 사람도 눈물을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도 부르면서 많이 울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곳에서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고, 존재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에 환희를 느끼는 그 순간은 바로 사랑의 빛이 비추는 순간인 것이다.

인간은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 예술, 학문, 과학기술 등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며,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이룩해온 문화와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도 존재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사랑이 없는 발명은 오히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해로움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존재를 존재로서 사랑하지 못하고, 효율성과 유익성의 이름으로 ’쓸모없는 사람’과 ’쓸모 있는 사람’으로 차별하고 있다. 이성이라는 잣대로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정죄하고 있다. 계급과 계층이라는 의식으로 ’존중해야 할 사람’과 ’무시해도 좋은 사람’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명, 그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와 감사를 잃어버리고 다투고 짓밟고 빼앗느라 지쳐간다. 불행하다. 삶이 버겁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물은 아마도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사랑이 사람을 밀고 간다>는 청소년출판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장홍’이라는 중국인이 ’사랑의 이야기’를 모아 엮은 책이다.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 되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의 숭고함을 이야기한다. 의미 있는 인생, 진정한 행복의 의미, 그에 대한 해답을 ’사랑’에서 찾고 있다. 

’돌아보면 언제나 누군가 곁에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은 나눌수록 더 커집니다’,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은 사랑입니다’, ’긴 인생길, 따뜻한 동행을 꿈꿉니다’라는 4가지 테마 아래 총 40가지의 이야기를 모아 엮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야기’가 쉽게 소통되다보니,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들도 더러 있지만, 다시 읽어도 여전한 감동이 전해지는 사랑의 힘을 간직한 이야기들이다. 

가난한 할머니와 손자에게 따끈한 국밥을 대접해드리고 싶어 ’백 번째 손님’에게는 공짜라고 했던 식당 주인의 이야기.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먹는 친구를 놀렸지만, 그 도시락은 눈 먼 어머니의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친구들 이야기. 자신의 작은 키를 새어머니가 무시한다고 생각해 평생 새어머니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았는데, 자신의 침대에 몰래 몰래 눈금을 새겨가며 자신을 걱정해주었던 새어머니의 사랑을 돌아가신 후 깨닫게 된 아들의 이야기 등 소박하지만 진실한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랑의 힘은 모든 존재를 위대하게 만들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기적을 부른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이야기들이다.

기억 속에 오래 남으며 되새겨지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아홉 번째 행복 : 아버지의 사랑, 뜯지 않은 편지>를 소개하고 싶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에서 일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매달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내온 한 편지의 말미에 ’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애비도 힘들구나’라고 썼다 지운 흔적을 발견한 아들은 그것이 돈을 좀 보내달라는 뜻이라는 걸 알고 부담스러웠다. 그후부터 아버지의 편지를 봉투도 뜯지 않은 채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친구가 찾아와 소식이 없는 아들 때문에 혼자 외롭게 지내시는 아버지가 더욱 걱정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들은 자신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아버지의 속내를 비웃으며 그동안 읽어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편지를 뜯어보았다.

아버지가 보낸 모든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과 함께 봉투마다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애비도 힘들구나. 그래서 돈을 이것밖에 넎지 못했다.’(48-55)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 속에, 이기심 속에, 걱정 속에, 사랑을 외면하고 불행한 시간을 살고 있는가. 무한경쟁, 약육강식이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직 살아 남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반성해본다. 책을 읽으며 내내 드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작가의 저작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놓은 예화집 같은 책이지만, 마음에 사랑을 심어주는 시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은 확실하다. <사랑이 사람을 밀고 간다>는 책의 제목처럼, 살아갈 힘과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조용한 감동으로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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