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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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는 "전장에서 양쪽이 대치 상태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의해서도 점령되지 않은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넘치는 무인 지대"를 말한다. 이 책에서 <노 맨스 랜드>는 ’청춘이 머무는 곳’을 상징하는데, 지리적으로 이 책에서는 ’네덜란드’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노 맨스 랜드>는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여 50년의 시차를 둔, 두 명의 청춘 이야기가 교차된다. 열일곱 살 제이콥 토드는 ’현재’를, 1944년 2차 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오스테르베크에 살던 헤르트라위는 ’열아홉 살이었던 때’를 이야기한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제이콥 토드는 영국의 집을 떠나 네덜란드를 방문 중이다. 그런데 입국 하루만에 그곳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열렬하게 기대했던 안네프랑크의 집 방문은 혼란만을 안겨 주었고, 남자를 여자로 착각하여 매력을 느낀 일은 어이가 없었고, 점퍼 날치기는 그를 바보로 만들었고, 날치기를 쫓다가 그는 녹초가 되었다(44). 그에게 네델란드(청춘)는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땅으로 다가왔다. 

네덜란드의 오스테르베크에 살고 있는 열아홉 살 헤르트라위는 부상당한 영국군 제이콥을 돌보게 되었다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 헤르트라위는 전쟁의 혼란과 혼돈 속에서도 제이콥을 사랑하며 영원으로 기억될 사랑의 순간을 간직하게 된다. "그저 그 시절은 내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이라고 말하겠다. 6주. 눈 깜박하는 사이에 사라진 시간. 하지만 기억 속에서 그 시간은 훨씬 길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수십 년 세월보다 더 많은 기억을 남겼다. 죽음을 맞는 순간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제이콥. 나의 사랑하는 제이콥을."(348)

날치기를 당한 제이콥이 우연히 그곳에서 만날 예정이었던 헤르트라위 할머니네 가족과 조우하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할아버지와 헤르트라위 할머니와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각각 전개되어 오던 제이콥과 헤르트라위의 이야기가 한 곳에서 만난다. 

<노 맨스 랜드>는 사랑뿐만 아니라, 동성애, 성(性), 안락사(죽음), 예술, 도덕적 규범 등 다양한 주제들이 각각 자신의 가치관과 색깔을 가진 등장인물, 그리고 언어, 시, 노래, 미술과 문학 작품 등을 통해서 표현되고, 상징되고,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낯설고 혼란스러운 땅이지만, 팽팽한 긴장 가운데 삶과 사랑에 눈뜨며 인생과 주변에 "주의를 집중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기"(140-141) 시작한 제이콥, 그는 아직 <노 맨스 랜드>에 머물러 있지만, 그의  청춘이 어디로 흘러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열일곱이었던가, 주민등록증을 처음 받던 날이 기억난다. 나에게 새로 발급된 주민등록증을 건네 주었던 아저씨의 다른 손에는 사망 신고를 끝내고 말소되는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을 보았다. 끊임없이 삶과 죽음이 교차되며 이어지는 세대, 그 고리를 이으며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로 맨스 랜드>를 통해 저마다 제색깔을 빚어내는 인생들을 통해 삶의 환희를 느낀다. 순간이지만 영원한 빛, 그것은 생명의 빛이요, 사랑의 빛이다. 그리고 그 빛은 열정으로 뜨거운 ’청춘’의 심장으로 인해 더욱 빛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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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경제학 - 인간은 왜 이성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가
피터 우벨 지음, 김태훈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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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의 한계와 적극적인 간섭의 제안!


2009년 12월 말쯤, 타이완에서 ’건강촉진법’ 초안을 연구 재정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고염분, 고당분, 고열량의 건강하지 못한 식품에 대해 ’비만세’를 징수하기로 했으며 빠르면 2011년에 실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초 유럽 각국도 패스트푸드에 ’비만세’를 부과하는 등 ’살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루마니아 정부는 아동 비만을 줄이기 위해 오는 3월부터 세계 최초로 맥도날드와 KFC에서 판매하는 패스트푸드에 비만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하고, 덴마크도 비만의 원인이 되는 단 음식에 대한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에 비만세 성격의 세금을 부과, 제품 가격을 대폭 끌어올릴 계획이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을 중심으로 어린이 TV 프로그램 방영시간에 설탕이 다량 함유된 과자와 단 음식 광고를 금지하는 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비만을 관리하기 위해 세금정책을 단행하며 ’적극적인 간섭’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비만율을 낮추기 위한 공적 개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비만을 퇴치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국민의 선호를 거스르는 일이 된다"(49)고 주장한다. 또한 시장옹호론자들은 "비만은 생활습관에 의한 선택의 결과이므로 개인이 스스로 허리사이즈를 조절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반박한다.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간섭을 하는 것이 정당할까? 아니면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비만은 이성적 선택의 결과’이므로 시장경제와 개인의 선택, 즉 ’자유’에 맡기는 것이 정당할까? 

그 해답이 바로 이 책 <욕망의 경제학>에 있다. 저자 피터 우벨은 이력이 독특하다. 내과의사이면서 15년 동안 행동경제학을 치밀하게 연구한 행동과학과 결정심리학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피터 우벨은 의사로서 비만이나 중독에 빠져  괴로워하는 환자를 치료하며 얻은 사례를 토대로 ’행동경제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전통 경제학에서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가정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능이 어떻게 자유시장경제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는지 실제 사례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명쾌하게 밝혀냈다. 우리는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패스트푸드를 사먹고, 담배를 사서 피우는 것일까?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정보를 이용해 이성적인 선택을 해야 할텐데,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광고에 현혹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한마디로, 인간이 비이성적 본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욕망의 경제학>은 자유경제시장이 인간에게 ’나쁜 선택을 할 자유’까지 주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실례로, 인간의 비이성적인 욕망과 자유시장경제가 만나 ’비만’이나 ’중독’의 문제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힘은 비만을 만연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다. 식품 산업이 저렴한 고칼로리 식품을 제조하는 보다 효율적인 공정을 개발하고, 먹는 데 드는 시간비용을 줄이도록 저장과 포장 방식을 발전시키면서 비만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47)

<욕망의 경제학>은 비만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를 자유롭게 시장에 맡기는, 즉 ’무간섭적인’ 접근법의 대안으로 ’적극적인 간섭’을 제안하고 있다. ’비만세’와 ’건강세’의 추진이 바로 이 피터 우벨의 <욕망의 경제학> 이론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탄력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개인의 문제로 여겨져왔던 비만(또는 중독)의 문제가 시장 경제 안에 그 원인이 있음을 밝혀낸 <욕망의 경제학>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력에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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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지 길들이기 리처드 칼슨 유작 3부작 1
리처드 칼슨 지음, 최재경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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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밉고 까다롭고 짜증나고 무례한 사람들을 다루는 법!


건방지고, 얄밉고, 까다롭고, 짜증나고, 무례한 사람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스크루지’에 비유한 것이 정말 탁월하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스크루지’ 보다 더 많은 ’스크루지’를 알고 있으며, 오늘도 나를 미치게 만드는 ’스크루지’ 때문에 열받고 성내는 하루를 보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느라 하루가 다 갔다. 덕분에 ’스크루지’는 언제나 나의 대화에 끝없이 등장하는 주인공이 된다.

<스크루지 길들이기>는 "우리의 일상을 망치는 스크루지를 피하고, 진정시키고, 심지어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법을 알아주는 인간관계 지침서"이다. 저자는 스크루지 때문에 괴로운 나의 심정을 꿰뚫고 있다. 마치 나의 일상과 속내를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묘사를 이어나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속을 뒤집어놓는 사람들에게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속상해 하고, 내가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이해시키려다 보니 상대방의 잘못만 크게 부각시키게 되고, 결국 격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스크루지’ 같은 사람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맞다! 그렇게 살고 있다. 

스크루지에 대처하는 우리의 가장 보편적인 대처 자세는 ’불만 쏟아놓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한마디로 불만을 토로해서는 얻는 게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다. ’스크루지’를 길들이는 50가지 방법을 소개하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을 당하든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목표다."(11) 나는 잠시 생각했다. 스크루지의 문제를 고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무슨 일을 당하든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목표라고?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허허’ 웃을 수 있는 ’도인’이 되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스크루지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마음을 지켜서 나의 반응을 바꾸라는 말이 아닌가.

실제로 <스크루지 길들이기>의 50가지 방법을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해보면,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예 상대하지 않는 것!
둘째는, 나의 반응을 선택하는 것!

저자는 계속 이런 동사를 사용한다. "양보하라", "무조건 피하는 수밖에 없다", "그냥 놔두자",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상사를 바꿔달라고 해서 얘기하라", "타임아웃을 외쳐야 할 시간이다", "같이 춤추지 마라",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흥얼거려 보라", "인정을 해줘버리라", "듣기 싫은 소리는 채널을 돌려라" 등

생각해보니 ’스크루지’가 우리에게 입히는 가장 큰 피해는 짜증스러운 ’감정’ 때문에 좋은 기분을 망치게 되는 일인 듯 하다. 그러니 스크루지에 대한 최대의 방어와 공격은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고, 좋은 기분을 지키는 일이다. ’스크루지’와 상대하며 게임을 해봤자 결국 우리 기분만 상하게 되는 것이다. 내 기분을 지키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는 필요하다면 양보도 하고, 때로는 그를 인정해주는 것이 지혜이다. <스크루지 길들이기>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현명함’인 것이다. 

"우리의 저녁 시간을 엉망으로 만드는 생각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자각이 들면 운전석은 다시 우리 차지가 된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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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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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네요."(58)


내 친구는 후회할 겨를도 없이 떠났다. 돌연사라고 했다. 스트레스와 과로가 원인이라고 했다. 차갑게 식은 친구의 손에는 일감이 꼭 쥐어져 있었다고 했다. 추가 합격으로 대학에 들어와 독일 유학 후, 동기들 중에서 첫 박사가 된 자랑스러운 내 친구, 그 친구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친구 대신 내가 후회를 하고, 또 후회를 했다. 힘들다고 했었는데,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고 했었는데, 이제야 찾아와 친구의 영정 앞에 선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었다. 가슴을 치며 울어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친구 앞에서 흘렸던 눈물은 아픈 이별의 눈물이 아니라, 헛 살아온 나를 스스로 원망하는 눈물이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친구를 그렇게 보내고 사는 일에 깊은 회의를 느껴 무기력증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내게도 닥쳐올 죽음을 생각할수록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온몸에 통증을 일으킨다.

한동안은 결혼을 한다는 친구들의 연락이 잦았고, 조금 지나니 아이 돌 잔치를 한다는 연락이 잦았는데, 요즘은 갑작스럽게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거의가 부모님의 부고를 전하는 소식이다. 조금은 먼 발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떠나는 것을 지켜봤던 내가 어느새 부모님 세대를 보내드려야 하는 책임과 역할을 맡은 것이다. 장례식장을 찾을 때마다 생각한다. 언제라도, 친구처럼 나도, 매순간 가야 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리라.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전문의가 1000명의 죽음을 지쳐보며,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후회했던 ’공통분모’를 나누는 책이다. 더 늦기 전에, 후회 없는 인생을 살라고 말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만나러 가세요. 산을 넘어 지금 당장 만나러 가세요."(97)

삶의 마지막 순간에 누구나 느끼는 후회, 인생에서 풀지 못한 숙제, 그 스물다섯 가지는 우리에게 말한다. 죽음 앞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고. 오히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우리가 ’성공’을 위해 미뤄두거나, ’성공’보다 하찮게 생각하거나, ’성공’만도 못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대부분 ’관계’와 관련된 것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단 말을 하지 못한 것을, 겸손하지 못한 것을, 친절하지 못한 것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연애를 하지 못한 것을,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내려는 생명은 후회하지 않는다."(229)


우리는 왜 후회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꿈을 꾸지 못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도 떠나지 못하면서 죽도록 일만 하며 살아갈까. 열심히 산다고 하면서 왜 삶을 즐기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하고, 나쁜 짓을 하며 살아갈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값싼 성공을 얻으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가장 어리석은 ’시간의 소비자’, 바로 성공과 성취의 노예가 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진짜 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시며,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 말씀하신 뜻을 말이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추억은 마지막 순간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실제로 죽음 앞에서 옛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표정으로 고백하는 환자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떠날 채비를 해야 할 때, 마지막 가는 길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등불이 될지도 모른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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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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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이제야 당신을 위해 울었습니다. 
이제라도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읽으며 어설픈 애국심 따위는 버리려고 했다. 나라를 잃고 비참하게 버려진 삶이 어디 그녀 하나뿐이었는가. ’조선의 마지막 황녀의 삶’이라는 타이틀에는 관심이 갔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기억은커녕 존재했었는지도 모르는 처음 듣는 이름의 옹주, 나라의 운명이 그녀만의 비극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냉정한 시선으로 읽으리라, 작정했다. 

물었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406)

조국은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국과 운명을 같이 했다. 그녀에게 닥친 운명은 분명 한 여인의,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조선의 황녀’로 태어났으나 그녀는 ’조선 왕가의 마지막 핏줄’이 되었다. 그녀는 철저히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살았다. 명을 다한 조선의 황녀로 산다는 것은 일본의 허락 없이는 이름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일본의 감시와 간섭 속에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것을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함을 의미한다. 조국에서 살 자유도 없음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날 자유도 없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조선의 황녀’였기 때문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살았고,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조선의 황녀였기 때문에 말이다. 

조선의 황녀였기에 그러한 삶을 살았지만, 조국은 그녀를 지킬 수 없었다. 조국이 이런 저런 탓을 하며 그녀를 잊었듯이 그녀도 조국을 잊고 차라리 그저 한 여인으로 살았으면 좋으련만, 이 가여운 여인은 끝내 조국을 품고 살았다. 자신이 ’조선의 황녀’임을 놓지 않았다. <덕혜옹주>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시련은 조국을 잃은 것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것도, 보고 싶은 어머니 곁에 가볼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강제로 결혼하여 일본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바로 자신의 핏줄이었다. 일본이 그렇게 짓밟고 파괴하려 했으나 그 고결한 영혼 깊은 곳에 숨어 고이 간직되어 오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일본인도 될 수 없고 조선인도 될 수 없는’ 그 딸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일본 땅에서 일본인의 아내로 살지만, 조선의 황녀임도 놓을 수 없고 자신의 딸도 놓을 수 없었던 덕혜옹주는 자신의 정신을 놓아버렸다.

일본인 남편은 결국 그녀를 버렸다. 패망한 일본도, 해방을 맞이한 조국도 모두 그녀를 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국보다 오히려 원수들이 그녀에게 더 관심을 가졌으나, 그들이 잊어버리자 누구도 기억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덕혜옹주는 그렇게 15년 간 정신병동에 감금되었고, 결국 그녀의 딸도 그녀를 버렸다.

"그녀는 한 여인이기 이전에 조선의 황녀였다. 지금은 일본의 볼모가 되어버린 황녀. 그는 일본이 조선을 삼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일본이 그녀를 볼모로 삼지 않았다면."(171)

"삶은 원칙도 없고 배려도 없다. 사납게 휘두르는 운명의 갈퀴를 막을 힘"(306)은 누구에게도 없다. 높은 지체를 타고난 사람이나, 천하게 태어난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운명이 덕혜옹주에게만 유독 가혹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국을 잃은 자들에게는 사랑도 사치"(171)라고 하지만, 멸망한 나라의 황녀에게는 존재 자체가 사치였다. 

한 여인이기 이전에 조선의 황녀였던 덕혜옹주가 차라리 나라님이라도 원망할 수 있는 힘없는 백성이었다면, 그녀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겨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조선 황녀의 억울한 삶을 목격하고도 도대체 누구에게 이 안타까움을, 이 분노를 쏟아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양심이, 내가 타고난 이 민족의 피가 어설픈 애국심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도리질을 했던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피 끓는 절규를 한다. 내가 온전히 디디고 사는 바로 이 조국의 이름으로(!)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인 삶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내가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함이 있었더냐."
"옹주의 위엄을 잃은 적이 있었더냐."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403)

’나라를 잃고 비참하게 버려진 삶이 그녀 하나’뿐은 아니지만, 덕혜옹주는 해방 후에도 우리가 미처 다 찾지 못한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며, 그 치욕의 역사를 딛고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민족 긍지의 상징이다. 작가 권비영의 <덕혜옹주>는 우리가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며, 민족의 긍지를 세워나갈 역사의 한 자락을 우리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덕혜옹주 홀로 싸워 지킨 ’조선 황녀의 위엄’을 찾아주었다. 그녀를 잃어버리고, 그녀를 잊어버린, 우리는 이제야 그녀를 위해 울고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녀를 기억해야 하리라. 대한민국 후손의 이름으로 덕혜옹주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선물하는 일, 우리의 기억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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