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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소설의 내용을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연결하여 읽는 것은 초보적인 독서라는 말을 들었다. 소설과 작가의 삶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안에 투영된 작가의 자화상을 미세하게 포착하여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와 작품이 마치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문학을 위한 글, 글을 위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썼다. 자신의 인생을 쓰고, 고뇌를 뱉어냈다.
저자 석영중 교수님에 따르면, 톨스토이의 생애는 쉰 살이라는 나이를 축으로 전과 후로 갈라진다(7). 그런 톨스토이가 그 인생의 전환점인 마흔아홉 살에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썼다. 석영중 교수님은 톨스토이를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안나 카레니나>가 안성맞춤의 책이라고 한다. "문학 작품으로도 걸작 중의 걸작이면서, 동시에 사랑, 결혼, 종교, 윤리, 예술, 죽음, 인생에 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중년의 위기 이후 톨스토이가 인류에게 전하고자 했던 교훈적인 메시지는 이미 이 소설에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0).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남자주인공인 '레빈'이라는 - 올바르고 정직하고 근면한 청년 - 캐릭터에 자신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톨스토이 문학 특강처럼 읽히는 이 책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과 그에 답하는 톨스토이의 도덕적 교훈이라는 주제의 무거움과는 달리 무척 재밌게 읽힌다. 톨스토이 자체가 재밌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석영중 교수님의 입담이 그에 못지 않다. 거장의 고매한 고뇌에서부터 치부까지 거침 없이, 남김 없이 파헤쳐진다.
"톨스토이는 왜 안나를 죽였나?"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1부와 2부로 나누어 톨스토이가 주장한 '나쁜 삶'과 '좋은 삶'을 탐구한다. 그런데 톨스토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삶을 산 인물은 또 처음본다. 결혼, 절대로 하지 마라는 메시지는 남겼던 그는 48년 간이나 그토록 지독하게 결혼생활을 지속했고, 여자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여자를 미워하고, 육체의 쾌락을 좇으면서도 동시에 방탕한 생활을 혐오하고, 귀족의 생활을 하면서도 귀족을 미워하고,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다.
그런 그가 꿈꾸는 삶의 행복은 가난한 시골 농부의 저녁 밥상, 그것이었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온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는다. 구수한 메밀 죽 냄새가 방 안에 감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다 모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박하지만 정갈한 음식을 웃고 떠들며 먹는다.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노동, 소박한 음식, 마음 맞는 가족 - 톨스토이가 원했던 것은 이게 전부였다"(196). 그러나 늘 그가 원하는 것과 삶의 현실은 그 거리가 멀고도 멀었다. 톨스토이의 몸부림이 애처로울 정도로 그 거리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 앞에서 이처럼 평생을 괴뇌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예술을 한 작가라기보다 한 사람의 구도자 처럼 보여지는 '톨스토이'. 그의 가르침대로 산다면 결론은 인류의 종말이다. 결혼을 절대 하지 말라고 했으니 인류의 대가 끊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경도, 과학도 종말을 예견하는데, 도덕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게 뭐가 이상한가"라고 되물이며 인류의 종말도 개이치 않는다. 지독한 신념이다.
자신이 벗어던지고 싶었던 모든 것에서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뜨거운 열정만큼은 진심이었고, 도덕에 미쳐가면서까지 잘 살고자 애쓰는 그의 몸부림이 오히려 그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톨스토이.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톨스토이가 그의 문학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진의를 명쾌하게 꼬집어주면서, 동시에 그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안내 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톨스토이에게로 가는 지름길을 걸으며, 그와 만나는 시간이 누구와의 데이트보다 즐겁고 유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