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심리상담을 공부한 친구가 보여준 영화가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줄거리가 충격적으로 기억된다. 성인이 된 딸이 시끄럽게 짖는 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자 그녀의 엄마는 그 개를 죽여 버린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일이 꼬여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엄마는 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그 시체를 우물(저수지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에 숨겨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물 공사를 해야 한다며 인부들이 찾아오면서 또다른 위기에 몰린다는 내용이다.

친구는 시체를 우물에 숨겨두는 행위가 우리의 무의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살인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 문제를 묻어두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마음이 엉클어지는 상황에 처하면 깊이 묻어두었던 시체가 떠오른다고. 이 영화를 보고, 내가 해결하지 못한 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는 문제는 없을까 밤새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프로이트의 의자>에 앉기가 조금 두려웠다. 무의식에 묻어둔 것이라면 분명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이거나 불쾌한 기억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것들이 다시 들춰지는 것이 주저되었다. 그러나 "나는 의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려주는 저자의 손에 이끌려 편안한 마음으로 <프로이트의 의자>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있는 듯한 부드러운 어투 때문인지 <프로이트의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내 안에 이드(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라는 세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공부할수록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한 프로이트가 천재 중에 천재로 생각된다). <프로이트의 의자>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토대로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즉 무의식의 세계로 가는 길을 내어준다.

<프로이트의 의자>에 앉아 살펴보니 ’마음’이라는 것이 굉장히 상처받기 쉬운 연약하고 얇은 유리조각처럼 느껴졌다. 우리 마음은 왜 이리 자주 다치는지, 긁히고 깨어진 상처 투성이다. 그러나 뾰족하게 조각난 마음으로 만나서 관계를 만들어가고, 삶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위태로운 일상의 역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한편으로는 나와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듯한 안도감도 든다. 사실, 자아와 무의식의 경계에서 ’진짜 나’와 상처난 마음이 만들어낸 ’가짜 나’ 모두 그저 ’나’가 아닐까 하는 자조적인 푸념도 나오지만, 가짜 나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어할 힘을 얻은 듯 건강한 자신감도 생긴다.

내 마음을 이해하는 작업은 곧 타인을 이해하는 지평까지 열어주는 효과와 유익이 있다. 나를 이해함과 동시에 "아,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구나" 하는 이해와 포용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곧잘하는 실수이지만, 마치 상대의 속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짧은 이론을 상대방의 행동에 단편적으로 마구 적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허황되지만 꿈을 꾸었고, 무모했지만 도전했고, 실패했지만 시도했던 이들.


몇 해 전, 베이징 올림픽 때 방송매체가 평소 관행대로 방송을 했다가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에게 호되게 질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쓰러지면서도 역도 바벨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한 선수의 투혼에 감동을 받은 국민들이 이러한 선수들을 외면한 채 금메달을 딴 선수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방송의 관행을 질책한 것이다. 이후로 올림픽을 보도하는 방송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감동적이고 훈훈한 선수들의 사연이나 소외된 경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의 작가 폴 콜린스는 '잊힌 것들에 대한 따뜻한 기록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다소 엉뚱한 이 작가는 역사를 들여다 보는 새로운 필터를 제시한다. 그는 역사적인 승자가 아니라, 역사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역사가 가차없이 잊어버린 사람들의 잊혀진 삶을 추척한다. 위인들을 배우고 기억하기에도 과부화가 거릴 지경인데 역사가 잊어버린 사람들을 구태여 추척할 필요가 있을까? '신선한 의도'이기는 하나, 그렇게 추척하여 그들의 삶을 복원해낸다 하여도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읽고 지나가는 작은 에피소드나 가십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역사가 잊은 열세 사람의 삶을 추적하여 <밴버드의 어리석음>이라는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책에 수록된 열세 사람은 어떠한 기준으로 선발된 사람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작가 마음대로'이다. 사기꾼, 예술가, 과학자, 언어학자, 농부, 사업가, 시인, 군인, 작가 등 직업도 다양하다. 한가지 공통점을 찾으라면 처음부터 어처구니 없는 시도였거나, 아니면 시도는 좋았으나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이유(더러는 안타까운 이유)로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허황되지만 꿈을 꾸었고, 무모했지만 도전했고, 실패했지만 시도했던 이들. 이미 지나버린 역사이니 부질없는 가정(If)이지만, 안타까움에 나는 자꾸만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가정'(If)을 하며 책을 읽었다. 오로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목적 하나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째로 위조했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 만약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고 지지해주었다면?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 음만으로 세계 최로의 공용어를 만들고자 했던 프랑수아 수드르의 연구가 성공했다면? 포도 품종 개발에 성공한 이프레임 불이 특허를 딸 수 있었다면?(포도 쥬스로 유명한 웰치가 나와서 특히 재밌게 읽었다.)  엄숙함이 지배하던 시대에 컬트적인 연기를 하고, 기이한 복장을 하고 다녔던 로버트 코츠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최초로 의문을 제시했던 딜리아 베이컨이 함께 연구할 동료 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면?

<밴버드의 어리석음>이 소개하는 열세 사람의 기이한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결국 '운'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서 원대했던 시도에 비해 너무 아쉽게 끝나버린 사람들. 따지고 보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든 것이 원인이 된다는 측면에서, 결과를 가르는 그 미묘한 차이는 결국 '운'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가 '운'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니 성공과 실패에 두었던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듯하다. 내 안에 불꽃이 있다면 성공이나 실패에 그리 연연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단조롭기 그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지금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불꽃을 품은 그 자체로 행복할 듯하니 말이다.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에게서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실패로 끝나고, 과거 속으로 사라지며, 역사로부터 잊혀졌지만, 여기 열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은 '불꽃처럼' 살라지는 삶이다. 그들은 적어도 폴 콜린스가 관심을 가지고, 문화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읽혀질 정도로 시시하게 살다가지 않았다. 이들처럼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서 나의 모든 것을 불사를 만큼 나도 '열정적인 불꽃'으로 타오르고 싶다. 내 전 생애와 남은 생명을 다 태우더라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
앤드류 머레이 지음, 유정희 외 옮김 / 두란노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기도 응답의 비밀! 십자가, 성령, 중보기도!

"나는 영의 사람입니다!"라고 세상에 알리고 싶다. 눈에 보이는 현상, 물질 세계만을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르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영, 그 영으로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영으로 기도하는 그 비밀스러운 감격과 기쁨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을 읽을 때, 내 마음에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 소원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기도 응답의 비밀>이라는 책의 제목이 눈앞에 크게 확대되어 다가왔다. 소녀시대의 노래처럼 주님이 내게 "소원을 말해봐!"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설레임과 기대감 가득 안고 책을 펼쳤다. 마치 모든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역시! 내가 구하는 것에 비해 아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것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무엇, 내가 전혀 기대하지 못한 그 무엇이었다! 내 안에 간절했던 소원은 어느새 흔적도 없고, 내 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가운데 잠겨 영의 세계의 비밀을 알아갔다.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을 여는 열쇠는 세 가지이다. 십자가의 능력, 성령의 능력, 중보기도의 능력! 이 세 가지는 기도 응답을 받는 비밀 열쇠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바로 기도 응답이다! 그렇다.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 성령의 능력, 중보기도의 능력을 알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이미 응답을 받은 것이다! 너무나 명백한 진리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 현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만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바로 그 영적 진리의 비밀을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십자가가 전하는 구속의 메시지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가장 깊은 기쁨의 근원이다"(p.15). 십자가의 은혜 아래 엎드려 기도하는 자는 이미 가장 깊은 기쁨의 근원을 맛본 자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이 내 안에 넘치는데 내가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십자가는 우리가 이미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힌 자이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소원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 나를 완전히 맡기는 삶을 살고 있는 주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 이 깨달음은 나의 기도를 바꾸어놓았다. 불평하는 입술 대신 감사가 넘치는 입술로, 욕심껏 부르짖던 입술 대신 찬양의 입술로 바꾸어놓았다.

"이 세대는 하늘의 것들을 가볍게 여긴다"는 경고의 메시지에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 즉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영으로 기도할 수 없다. 앤드로 머레이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이 바로 '나'를 위해 예비되고 약속된 것임을 강력하게 전한다. 그렇다. 우리는 영의 사람이다. 기도는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영으로 기도하는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이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자는 "한 번에 하루씩 산다!" 나는 이 말씀 안에 담긴 영적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매일 기도하는 영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내일에 대한 염려와 불안으로 두려워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뼈가 아프도록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비로소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진다. 주여, 내일의 염려까지 안고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당신을 오늘까지 인도하신 분이 내일도 인도하시리라 확신하며 안심하라"(p. 139).

기도의 가장 큰 비밀은 기도에는 엄청난 영광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믿기는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기도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다.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실 분은 소녀시대도 아니고, 요술 램프 안에 사는 지니도 아니고, 바로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분이 내게 귀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에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중보기도를 기뻐하시며, 우리에게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능력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위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과 위력의 위대함을 깨달을수록 스스로를 나약하고 비천한 존재로 여겨왔던 나의 소심함이 부끄러워진다.

세상은 "소원을 말해봐"라고 노래하지만, 소녀시대도, 요술램프 안에 사는 지니도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없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우리의 기도에 귀기울이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나는 오늘도 그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영의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주님은 나의 최고봉 365 묵상 캘린더 - 오스왈드 챔버스의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5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365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십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책상 위 정면에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 있고, 모니터 주변으로 성경 말씀을 적어놓은 포스트잍이 붙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게 하는 성경 말씀도 적어 놓았고, 나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성경 말씀도 적어 놓았고, 필요한 은사를 구하는 성경 말씀도 적어 놓았다.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때때로 지치고 낙심되는 마음에 힘을 얻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싶어서이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성경 말씀을 적어놓으니, 시선이 성경 말씀에 가 닿을 때마다 마음으로 기도하며 수시로 새 힘을 얻는다.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기독교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하는 <주님의 나의 최고봉>이 예쁘고 아담한 크기의 상자에 담겨 내게로 왔다!

단행본으로 발간된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보혈이 흐르는 십자가 앞에 얼마나 많이 꿇어 엎드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꿇어 엎드려 길고 긴 침묵 속으로 젖어들었다. 예민한 영적 감각을 가진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날카로운 가르침이 가슴 깊이 파고들 때마다 내 속이 투명하게 비쳐지는 것 같았다. 교만하면서도 교만인줄 모르고, 잘못 가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줄도 모르고, 허공을 치고 있으면서도 열심을 내었던 나의 영적 무지를 깨달을 때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리고 또 엎드렸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나의 영은 끊임없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고, 더불어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과 사모함을 가지고 은혜의 자리로 나아갔다. 십자가를 통해 부어지는 보혈의 은혜, 성령의 도우심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모른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 365일 묵상을 위한 탁상용 캘린더로 제작되어 나왔다. 단행본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 실린 가르침 중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달력으로도 활용 가능한 묵상 캘린더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부터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로 인도하며 옳은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365 묵상>은 연도와 관계 없이 1년 내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영적인 가르침과 성경 말씀 묵상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영어 성경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암송하는 카드로 활용해도 좋을 듯 하다.

내가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을 반복하여 읽는 이유는 중요한 영적 진리들을 명확한 개념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은 강력하면서도 단호하다! 어떠한 타협도, 논쟁도, 망설임도 없다. 그 강력한 확신이 믿음의 뿌리를 든든히 하며, 우리의 걸음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준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365 묵상> 캘린더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라는 찬양이 절로 나온다. 이 묵상 캘린더를 선물하고 싶은 얼굴들이 많이 떠오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가 생각나 가사를 찾아보았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 하나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 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만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선생님이 가르쳐준 이 노래를 한참 불렀던 시절에는, 그저 가사가 동화처럼 예쁘고 참으로 건전하다고만 생각했지, 제목과 노랫말이 전해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제목은 '아름다운 것들'인데 노랫말이 참 슬프다. 아름다운 것들이 때가 되면 사라지니 말이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으니 이 노래의 의미가 비로소 조금 이해되려 한다.  <가스미초 이야기>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꼭 이 노래를 닮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평범한 생(生)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자주 잊고 사는 까닭에 '사라질 때'가 느닺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충격을 받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사라질 때가 오리라는 것 말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것들에 눈을 뜰까. 사라진다는 사실보다 더 슬픈 것은 너무 늦은 때에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가을에 너무도 멋지게 어울리는 노란 은행잎 가득한 표지, 그 표지에 이끌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었다. 의미나 줄거리가 어림도 되지 않는 다소 낯선 제목의 소설 책 <가스미초 이야기>, 가스미초는 '안개마을'을 뜻한다. 저자는 주인공 '이노'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여덟 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려한 장미빛이 아닌, 은행잎처럼 수수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남기며 안개처럼 조용히 흩어지고 있다. 그들의 인생이 조용히 흩어질 때,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차오르며 나는 어느새 내게서 조용히 사라져간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으로 헤이고 있었다. 언제나 별로 말이 없으셨던 외할아버지, 전화로 '어린왕자'를 읽어주던 친구,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내 앞에서 주정을 했던 선배 언니에 대한 추억,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시절의 아빠와 엄마의 모습과 꼬마였던 나. 어쩐지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그리움', 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감정이다. 치열하고 바쁜 일상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삼켜버렸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아온 세월이 느껴진다. 

슬픈 첫사랑을 간직한 할머니, 이노에게 한 장의 졸업사진을 마지막 선물로 남겨주신 할아버지, 넙죽 엎드린 자세로 은행을 줍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찍어 '노스승'이라 이름붙인 사진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아버지, 할아버지의 유골을 안치하며 "아버지,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하는 어머니. 이노의 인생과 연결된 이분들의 삶이 이노의 인생에 차지하는 자리를 생각하니,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의 2절에서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작은 새'가 얼마나 가엾은지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가스미초 이야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는 착한 이야기,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슬픈 이야기, 안개처럼 가득 피었다가 조용히 흩어지는 인생에 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은행나무로 가득한 가로수 길을 찾아 걸어야겠다. 하늘로 고개를 들고 은행잎 가득한 틈새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빛을 보려면 서둘러야겠다. 조용히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