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을 말하다
탕윈 지음, 이문호 옮김 / 청홍(지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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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한의학과는 그 어떤 인기학과보다 입시 경쟁이 치열하며, 전국에서 내놓라 하는 수재들이 가는 곳이다. 그런데 <한의학을 말하다>를 읽어 보면, 오랜 세월 서양 의학에 밀려 멸시와 차별과 배척을 당하며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한의학의 위기를 읽을 수 있다. 수재들을 모아 한의사를 양성하고 있는데, 한의학은 요즘도 여전히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한의학을 신뢰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몸이 아프면 당연한 듯 서양 의술로 치료하는 병원을 찾고 있다. 한의원은 치료보다는 보약을 먹고 몸을 보신하려는 목적으로 더 많이 찾았던 것 같다. 양약은 한약보다 값도 저렴하고, 처방도 간단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병의 진단이나 치료도 왠지 서양 의술이 더욱 간편하고 정확하고 빠르다는 선입견이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실제 한의학은 서양 의술을 보조하는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한의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한의학의 매력에 빠져 드는 것은 그 기초를 이루고 있는 '철학' 때문이다.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한의학은 몸은 하나의 우주로 보며, 균형을 중요시 한다. 이러한 동양 철학은 의술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서양 의술과 비교해 보면, 서양 의술은 몸을 하나의 물질로 인식하여 째고, 잘라내고 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게다가 몸을 전체의 우주로 인식하지 않고 질병 하나만 보고 치료하는 서양 의술은 약을 하나 처방해도 질병 하나를 고치기 위해 다른 부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이에 비해, 동양 철학에 기초한 한약에 다른 부작용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약은 곧 보약이라는 인식도 그러한 약의 효능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러한 차이는 몸을 인식하는 철학적 사유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한의학을 말하다>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데서 그 설명을 시작한다. 생명과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한의학적 시각에서 질병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설명한다. 한자어로 된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지만, 질병이 발생하는 원리와 증상에 대한 설명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로 제시되어 있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질병이 발생하는 '원리'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어서 설명되는 문진(질병을 진단하는 방법)과 치료(동태평형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일), 팔법(치료 방법)은 한의학적 이론을 토대로 몸과 건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질병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개론적인 책이면서도 전문적인 의학 서적이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그리 녹녹치는 않다.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어도 개인이 방법을 직접 적용하기에는 어려워보인다(감기에 에 걸렸을 때 왜 생강차를 마시는 것이 좋은지 그 원리를 알고 실천하는 것 등과 같은 치료법은 상당히 흥미롭고 유익하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읽는다면 '원리'를 이해하는 재미는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내 몸에 나타나는 증상에 대한 설명이 나왔을 때, 설명이 더 쉽게 이해하는 것도 아마 그것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으리라.

솔직히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학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병을 진단해낼 수는 있지만 고칠 수 있는 질병은 많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게다가 의술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치료 과정에서의 의료 사고나 실수도 많이 보아온 터라, 아파도 병원 가는 것이 갈수록 꺼려지고 있다. <한의학을 말하다>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서양 의학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 우리 몸과 생명, 질병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서양 의학과 한의학이 서로 상반되는 무엇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주는 좋은 친구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한의학을 말하다>를 읽으니 '본초학'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커진다. 알수록, 몸을 건강하게 하면서 치료해주는 한의학적 치료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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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 : 서양편
아침나무 지음, 이창윤 그림 / 삼양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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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책으로 만나다!

역사를 간직한 공동체는 어느 곳이든 전해져 오는 ’전설’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어렸을 때 명절이 되면 거북이 관련되어 우리집안에 내려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나고, 내가 다닌 학교에도 공동묘지 위에 세워졌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된 전설이 있었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 내에서도 영웅적인 직원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구미호’나 ’우렁각시’처럼 옛 이야기로 들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전설일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수직적으로 구전된 이야기가 다시 수평적으로 회자되면서 전설적인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이 공동체의 암묵적인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처럼 역사를 가진 공동체가 ’전설’을 공유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설은 보통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오는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이렇듯 책으로 엮여진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을 대하니 문득 그런 의문이 생긴다. 더구나 내가 읽은 것은 <동양편>과 <서양편>으로 구분된 세계의 전설 중에 <서양편>이다. 

우선, 이 책은 동양적인 이야기는 ’전설’적인 느낌으로, 서양적인 이야기는 ’신화’적인 느낌으로 들었던 신화와 전설의 차이를 확실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을 보면, 신화와 전설의 차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회가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면 전설은 그 민족에 내재된 문화를 이야기한다. 신화가 자연의 이치를 이야기한다면 전설은 그 민족 고유의 가치관을 이야기한다." (머리말 중에서).

그 민족에 내재된 문화와 고유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전설. 이런 개념을 가지고 읽은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은 아는 이야기도 전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서양편>에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 북유럽, 동유럽, 북미, 중남미, 오세아니아로 나누어 각각의 전설을 들려준다. 우리 민족의 전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재해석되는 것처럼,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도 꽤 많다. 의도적인 변형인지, 구전되는 과정의 변형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래 이야기라는 것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덧붙여지기도 하고 각색되어지도 하는 것이니 원형에 그리 집착하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구전되어 오던 것을 모은 책이라 그런지 이야기 자체가 문학 작품처럼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고 어딘지 허술한 것이 조금 가볍게 읽힌다.

공동체가 간직한 ’전설’은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을 담아 교육적인 역할도 하고, 영웅담을 통해 공동체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도 하며, 요정이나 마법의 세계와 같이 어떤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깃꺼리를 제공해주면서 그것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어떤 공동체의식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은 마치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신화를 읽는 것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신화와는 다르게 어쩐지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런 맛이 난다. 관계적으로 더욱 고립되어간다는 현대를 살아서 그런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전설' 이야기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전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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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사의 백신 영어 - 내 생애 마지막 영어 공부법
고수민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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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해도 늘지 않는 영어 실력의 원인을 깨닫다!
점수로 계산되어지는 영어가 아니라, 말하는 영어가 필요하다!


"10년 해도 안 되는 영어- 뉴욕의사 고수민의 명쾌한 진단과 처방!", "내 생애 마지막 영어 공부법", 책을 소개하는 글귀들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어떤 과목이든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하겠지만, 처음 만난 영어 선생님과 궁합이 잘 안 맞았던 나는 바로 영어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었다. 게다가 영어 선생님마다 영어 공부를 잘 하는 노하우가 달라 나의 영어 공부는 늘 미궁을 헤매였다. 어떤 선생님은 교과서를 통으로 외우라고 하셨고, 어떤 선생님은 영어로 된 문법 교재로 공부하라고 하셨고, 어떤 선생님은 영작에 주력하라고 하셨고, 어떤 선생님은 팝송으로 영어를 공부하라고 하셨다. 몸이 아프면 좋다는 것은 모두 해보는 사람들처럼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좋다는 방법은 거의 따라해본 것 같다. AFKN을 열심히 청취해보기도 하고, 아리랑 방송도 들어보고, 영자 신문도 구독해보고,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테이프 하나를 주구장창 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10년을 해도 안 되는 영어" 그 주인공이 바로 나다!

뉴욕의사 고수민!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나도 지인의 소개로 그의 블로그에 방문한 적이 있다. 책으로 읽으니 고수민 선생님이 전하고자 하는 노하우가 한 눈에 들어온다.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를 읽으며 우선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뼈아픈 사실은, 내가 시험 위주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자가진단이다. 영어는 내게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진학을 위해 필요한 점수, 졸업을 위해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었다. 이렇게 시험 위주의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시험을 치기 위한 노하우만 늘었지 진짜 영어 실력은 항상 제자리 걸음이었다. 독해도 전공 서적에 한해서 해왔기 때문에 실생활 영어와는 걸리가 멀다. 두 번째 깨달은 영어 공부에 너무 쉽게 실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영어는 꾸준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지간해서는 눈에 띄게 진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마음처럼 꾸준히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뉴욕의사의 백신 영어>는 현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영어 수준의 현실, 대한민국 영어 공부와 실력의 현주소! 학문에 왕도는 없을지라도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출발은 목적의 정확한 인식이다. 토익이나 토플 점수가 만점에 가까워도 왜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학습의 목표 설정이 잘못되어 있고, 목적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너무도 뻔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릅게 외면하고 있다. 점수로 계산되는 영어가 아니라, 말하여지고 소통되어지는 영어가 필요하다.

이제는 영어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지금이라도 잡지 않으면 남은 여생도 영어 때문에 적잖이 괴로울 것이다.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내어 책 읽기! 딱 2년만 꾸준히 실천해보고, 2년 후 반드시 고민수 선생님의 블로그에 감사의 글을 남기겠다는 야심찬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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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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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가 낭비하게 되는 것이 
인생인가.
지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어느 날,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불현듯 깨달은 것은, 친구들에게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오면서부터였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들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을 낳은 친구들 덕분에 한동안 축하잔치를 챙기느라 분주했는데, 이제는 부고를 받는 일이 더 잦아졌다. 부모님 세대를 잘 보내드리는 엄숙한 의무, 그것이 어른이 된 우리가 할 일이구나 깨달아지니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내게는 몹시도 버겁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어릴 때 꿈이 되어주셨고, 희망이 되어주셨고, 나침반이 되어주셨던 어르신들이 유난하게 많이 우리 곁을 떠나시니 불쑥불쑥 견디기 힘든 상실감이 차올라 멍해지는 일도 잦다.

한 분 한 분 보내드릴 때마다 마음의 걸음이 느려진다. 어떤 질문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나의 뒷모습, 내가 가야 할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떠날 것인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맞게 가고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거세게 파고들면 가방 하나 둘러매고 낯선 길 위를 걷고 싶어진다. 두 번째로 만난 <내 마음의 여행>은 모든 목표를 내려놓고, 빽빽한 계획을 잊고, 그렇게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에 비밀스러운 꿈 하나를 심어준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걸어서 국토 순례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몸살이 난다. 책을 손에 잡고 며칠 밤을 뒤척이는 중이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이생진 <무명도> 중에서 (p. 45)


나도 시인이 되어 그 풍경 속에 있고 싶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과 뜨거운 눈물과 뜨거운 한숨과 뜨거운 사연을 간직한 땅, 내가 나고 자란 이 땅,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내가 다시 돌아갈 이 땅을 느린 걸음으로 구석구석 걸어보고 싶다. 그렇게 이 땅의 한 자락이 되고 싶다. <내 마음의 여행>에서 만난 이들처럼 말이다.

정신없이 세월이 지난다 생각했는데, <내 마음의 여행>을 따라 걷다보니 지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땅 위에 이런 저런 삶이 쉴새없이 지나고 있다.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무한한 생명력으로 나를 받아주는 자연,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 이것이 <내 마음의 여행>에서 내가 발견한 ’희망’이다. 인생은 아낄수록 낭비되는 것 같다. 마지막 한방울의 땀까지도 다 쏟아 후회없이 사랑하며 함께 이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남고 싶다.

나를 시인으로, 철학자로, 좋은 이웃으로 만들어주는 <내 마음의 여행>! 두 번째로 떠난 <내 마음의 여행>, 나는 이 여행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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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펄 벅 지음, 정연희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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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순간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는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문제를 다층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펄 벅의 소설이다. 어찌 보면 제3자이면서도 이 문제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로라’는 마치 펄 벅 자신의 투영으로 보인다. 펄 벅은 한국전쟁으로 태어난 혼혈아의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사랑과 용서와 치유의 주제를 담는 동시에 그 안에 전쟁과 인권과 문화와 정치적인 주제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내었다.

주지사 선거에 후보로 나서 대권을 향해 달려가는 크리스와 과학자 로라는 서로에게 완벽한 남편이자 아내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가 평온했던 이 부부의 행복을 깨뜨려버린다. 젊은 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크리스, 그때 한국 땅에 태어난 크리스의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문제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는 ’로라’는 실제로 한국 혼혈아들을 돕는 일에 헌신한 펄 벅 자신의 투영으로 보이고,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완벽한 이력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크리스는 마치 미국이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이 문제의 당사자이면서 직접적인 책임자이기도 한 크리스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했던 자신의 입장을 이해받기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가 아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원조’이지,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족으로서의 사랑과 관심이 아니다. 한국인 어머니는 가혹한 자신의 운명을 쓸어안고 아파하느라 자신의 아들을 사회와 문화의 편견 속에 내동댕이 친 채, 아들의 불행과 어려움과 아픔을 전혀 돌아보지 못한다. 어머니의 나라에도, 아버지의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지독한 외로움과 소외 속에 어렵게 살아가는 ’크리스토퍼’를 한 사람으로, 가능성을 지닌 한 어린아이로 바라봐주는 사람은 로라이다.

펄 벅은 "그 순간 새해가 밝아왔다"는 희망찬 메시지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펄 벅은 아픈 역사를 과거로 남겨놓고 우리가 맞이해야 할 새해, 희망찬 새해가 열리는 ’그 순간’을 보여준다. 우리가 열어가야 할 새해와 어떻게 하면 그 새해를 열 수 있는지 그 길을 보여준다. 

전쟁과 인권과 문화적 편견과 정치와 정책의 주제를 추상적으로 보면 대단히 거창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실제 어려움을 겪으며 상처와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구체적인 개인, 개인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방안을 찾아가는 시각은 ’거시적’이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사랑과 용서는 내 가까이에 있는 구체적인 이웃에게 가닿을 때 진정한 치유와 회복과 희망이 시작될 것이다.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행복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크리스의 포부가 그의 사랑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들 ’크리스토퍼’에게 가닿았을 때, '그 순간' 새해가 열렸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을 텐데도 골치 아픈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상처와 혼란을 딛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 로라(동시에 펄 벅이기도 한)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내며, 그 가르침을 기억하겠노라고, 그리고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약속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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