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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설 1 황제내경 : 내경의 철학을 밝힌다 ㅣ 강설 황제내경 1
유장림 지음, 조남호 외 옮김 / 청홍(지상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동양의 나라에서, 동양의 문화권에서, 동양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동양의 철학에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해서 교양 필수 과목으로 서양철학사를 머리 싸매고 공부했으면서도, 동양 철학에 관해서는 무엇을 배웠나 아무리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봐도 희미한 윤곽조차 그려지지 않는다. 만일 서양 사람들이 "동양의 철학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막막할 것 같다.
뜬금없이 동양 철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히 청홍의 <황제내경(黃帝內經)>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이다. 흔히 줄여서 <내경(內經)>이라고 부르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은 가장 오래된 중국 의학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청홍이 <강설 1>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출간한 <황제내경(黃帝內經)>은 ’내경의 철학을 밝힌다’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동안 의학서적으로 알고 있던 <황제내경(黃帝內經)>이 사실은 고대의 중요한 철학 저작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의학적 내용말고도 상당히 많은 편에 당시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중요한 주제가 서술되어 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의학오경(醫學五經)의 하나이다. 책의 제1장은 내경의 형성 연대를 살피는데, 중국 신화의 인물인 황제와 그의 신하이며 천하의 명의인 기백(岐伯)과의 의술에 관한 토론을 기록한 것이라 전해지는데, 책으로 만들어진 것은 진한(秦漢)시대에 황제의 이름에 가탁(假託)하여 저작한 것 같다. 청홍이 발간한 <황제내경(黃帝內經)>은 <황제내경(黃帝內經)> 전문을 번역한 책이 아니라,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관한 ’분석과 해설’의 책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중국 철학사상의 중요한 개념인 기(氣), 음양(陰陽)론, 오행(五行)과 체계이론, 형(形)과 신(神), 천(天)과 인(人), 방법론으로 본 장상(藏象)으로 나누어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철학을 설명한다.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꼼꼼이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의 출처도 찾을 수 있어 흥미롭니다. 놀라운 것은 고대 중국의 과학자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독창적 사유 방법이다.
<내경(內經)> 철학의 특징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사람을 철학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 우주의 통일성을 강조했다는 것, 사물의 기능, 구조와 평형을 중시했다는 것, 그리고 일부 철학범주는 의학 등 자연 과학의 중요한 범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의학은 사람이 자연의 산물이고 자연계와 상통하며, 통일된 본질과 규칙이 있다고 본다.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연상시키는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에서 의학의 기본 원리가 생성되는데, 사람과 질병을 설명하자면 자연계 전체를 연구하고, 사람과 자연계의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 이렇게 인체의 생리, 병리에 대한 탐구와 자연관에 관련된 이론을 같이 통일시켜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의학은 인체를 전체 자연계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고, 바로 그러한 시각에서 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원리를 찾아낸다. 한의학은 철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의학이 만나 이루어진 학문인 것이다.
이 책의 추천인인 임응추 교수는 "한의학을 부정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의학을 재구성함으로써 한의학이 철학에서 출발한 의료 과학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과학에서 출발한 한의학이 어떻게 인체에 관한 하나의 과학이론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 철학이 과학을 앞설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요한 또다른 특징은 한의학을 철학적 측면과 더불어 방법론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연구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한 이론적 구조는 시스템론이다. 시스템론은 인체나 사회를 자연과학적인 기초 위에서 그것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큰 유기체라는 큰 틀로 해석하는 것이다. 체계론을 응용하면 대상이 총체적으로 지니는 특수한 법칙을 파악할 수 있는데, 고대 초기의 체계론을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동양의학인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근본적 차이는 철학적 사고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우주)과 인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접근방식과 풀이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동양철학의 근원과 초기 방법론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의학과 관계 없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