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놓치면 죽을 때까지 고생하는 뇌졸중
허춘웅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뇌졸증이 아니라 뇌졸중! 
여태껏 '뇌졸증'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뇌졸중'이 올바른 용어인 것을 처음 알았다.


뇌수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으로, 뇌졸중 수술에 대한 앞선 기술과 서비스로 정평이 나 있으며, 2005년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대한민국 유일의 뇌혈관 질환 전문 시범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이 있다. 바로 대림동에 있는 '명지성모병원'이다. <3시간 놓치면 죽을 때까지 고생하는 뇌졸중>은 그 명지성모병원의 허춘웅 원장님이 뇌졸중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쓴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긴장감이 느껴지는 <3시간 놓치면 죽을 때까지 고생하는 뇌졸중>은 한국의 중장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뇌졸중이라고 밝힌다. 얼마 전 모 기관에서 대한민국 중노년층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이 무엇인지를 조사하는 설문에, 1위가 뇌졸중이었다고 한다. 2위는 치매, 3위가 암이었다고 한다. 뇌졸중은 흔히 '중풍'이라고 불리는 뇌혈관 질환이다. 왜 한국인들은 암보다 '뇌졸중'을 더 무서워하는가? 치료의 때를 놓치면 완쾌 가능성이 없는 불치병인 '암'보다 '뇌졸중'을 더 두려워하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뇌졸중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여러 번 지켜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늘 피곤에 찌들어 학교에 왔다. 다른 친구에게서 그 사연을 들었는데, 그 친구의 아버지가 재혼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고 한다. 그런데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려서, 그 친구 혼자서 꼼짝없이 누워계신 아버지를 몇 년째 돌보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소식이 끊겼지만, 그 친구는 그 후로도 누워계신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든 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친구는 울지도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고 한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평소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신 후, 인생이 달라져버린 친구도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휴학을 했던 친구는 그 후로 다시 복학하지 못했다. 친구는 혼자서는 식사도 할 수 없는 어머니를 두고 외출도 하지 못했다. 결국, 10년 넘게 어머니 곁을 지키며 수발을 들었지만, 어머니는 조금도 호전 되지 못하신 채 떠나셨고, 그 가족에게 남은 것은 몇 번의 수술로 인한 엄청난 수실비, 그리고 치료비로 인한 빚과 몇 년 동안 생활을 포기하고 돌보았던 사랑하는 가족을 결국 떠나보내야 하는 상처뿐이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3시간 놓치면 죽을 때까지 고생하는 뇌졸중>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뇌졸중이라는 병은 '최선의 응급처치를 빠른 시간 안에 받으면 장애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정보이다. 뇌졸중은 발병하면 치명적인 장애를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뇌졸중은 빠른 치료와 수술이 관건이라고 한다. 3시간의 골든타임에 현명하게 대응하면 뇌졸중의 중증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뇌졸중이 무서운 것은 잡자기 어지럽거나, 갑자기 한쪽이 마비가 되는 등 벼락을 치듯 '갑자기' 증상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서야 걱정하고 후회하게 되는데, <3시간 놓치면 죽을 때까지 고생하는 뇌졸중>은 뇌졸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낸다. 뇌졸중을 바로 알고, 바로 대처하고, 바로 치료하면 예방에서 재활까지 가능하다. 뇌졸중은 다시 발병할 위험도 높은데, <3시간 놓치면 죽을 때까지 고생하는 뇌졸중>은 뇌졸중 재발을 막는 철통수비법에서부터 뇌졸중으로 상처받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행복한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뇌졸중에 대한 정보는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건강 상식이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뇌졸중, 바로 알고 대처하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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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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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부정("No!")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과제이다.


엄마가 열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엄마는 길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때 술집에서 나오는 네 명의 사내들이 엄마를 강제로 차에 태워서 끌고 갔고, 엄마는 곳간에서 강간을 당했다. 그렇게 태어난 여자 아이는 열여덟 살인 지금, 고정 거주지가 없는 ’길 위의 소녀’이다. 쉽게 말해서 ’노숙자’이다. 원래 이름은 ’놀웬’이지만, 모두들 그냥 ’노’(No)라고 부른다. 

’천재 소녀’로 불리며 두 번이나 월반을 한 지적 조숙아 ’루’는 발표 주제를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노숙자’라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은 버린 뒤, 발표를 위해 ’노’를 상대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루는 ’노’의 인생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발견한다. "인간은 6백 미터 높이의 마천루를 세우고, 해저호텔을 짓고, 종려나무 무양의 인공섬을 만들 수 있다. 유기적, 비유기적 대기오염물질들을 알아서 흡수하는 ’인공지능’ 건축 자재도 만들어낼 수 있고,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청소기나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저절로 켜지는 조명등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외곽순환도로 길가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다"(199).

그리고 사회에 소리 없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노를 만나기 전에 나는 폭력이 고함, 구타, 싸움, 피와 함께 자행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폭력이 침묵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258).

루는 친구 ’노’와 자신의 집을 나눠 쓰고 싶었다. 루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세운다.  

<도입부 : 나는 길거리와 쉼터를 오가며 사는 열여덟 살짜리 소녀를 만났다. 그 애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큰1번(테제) : 그 애가 힘을 얻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구체적인 논증과 실질적인 제안을 생각해둘 것.) 그 애가 우리 집 ’집무실’에서 지내면서 집안일을 거들면 된다.
큰2번(안티테제 : 스스로 반론을 제기해보고 그 반론들을 논박한다) : 물론 그런 아이들을 위한 특수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반드시 도와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해서’ 우리는 그 애를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큰3번(종합) : 프랑스에는 20만 명 이상의 노숙자가 있는데 사회 복지로는 매일 밤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길에서 잠을 청하는 이 현실을 감당할 수 없다. 요즘은 날씨도 춥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수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죽어나간다.
결론 : 시도도 못 해볼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겁내고, 왜 더 싸워보지도 않는가?>(120-121).

월반으로 만난 같은 반 친구들의 육체적 성장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성장기 청소년 ’루’, 돌연사한 아기(루의 동생)를 잃은 충격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루의 엄마, 아버지는 멀리 떠나고 엄마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따로 살고 있어 혼자서 생활하는 루의 같은 반 친구 ’뤼카’, 그리고 루의 아버지까지, 이들은 모두 루의 부탁으로 아무 상관 없던 ’노’의 인생에 개입하게 된다.

나는 천재 소녀 ’루’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단숨에 읽으며 결말에 도달했다. 그러나 <길 위의 소녀>가 주는 감동적인 결말은 뜨거운 감동이 아니라, 온 가슴을 시리게 하는 차가운 감동이다. <길 위의 소녀>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우정을 그리고 있지만, 현실을 빗겨나지 않는다.

바퀴벌레가 우글대는 추잡한 방구석조차도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사회에서,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복지시설조차도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다녀야 하고, 일정한 거주지가 없어서 취직도 할 수 없고, 부당한 착취를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는 노!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노는 끊임없이 "우린 함께인 거지?"라고 묻지만, "노도 우리의 가족이야"라고 외치는 건 루 하나뿐이고, 결국 노의 위태로운 희망은 "그건 네 인생이야"라는 차가운 외면에 갇히고 만다. 

노의 인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그건 네 인생이야’라고 외면한다면, 내가 환란을 당할 때에도 도와줄 자가 없고, 함께 울어줄 자가 없을 것이다. 항상 문제는 앎과 행동,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이는 것지만, 우선 나부터도 내 삶의 자리 한 켠을 내줄 여유가 없으니 호기롭게 큰소리를 칠 입장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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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김수미 지음 / 샘터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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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엉덩이에 털이 났는지 찾아봐야겠다. 책 한 권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지치도록 또 그렇게 웃다가 울었다. 밤새말이다. 잠들기 전까지만 잠깐 읽으려고 한 것이, 책을 놓을 수 없어 내친 김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참 시원시원하게 썼다. 그런데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걸까. 유인촌 씨 차에 오줌을 싸버리고, 젊은 스님을 마음에 품은 이야기까지.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이런 친구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꽃을 보면 미쳐버릴 정도로 좋아서 엉엉 울어버리는 감성에, 나팔꽃 보고 싶다고 필리핀으로 날아가고 튀김 먹자고 일본 가는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달려가는 황당함에, 여리디 여린 내면이지만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정의감으로 제일처럼 달려들어 상대가 누구든 패대기를 쳐버리는 깡다구에,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너그러움을 지녔지만 예의 없는 후배의 인사는 받지도 않을만큼 '아니다' 싶은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No'를 말하는 분명함에, 언제라도 바리바리 맛난 반찬 흐드러지게 차려놓고 함께 먹자는 친구. 그 앞에서라면 몇 공기씩 밥을 먹게 되는 편한 친구말이다.

그녀가 간직한 아버지와의 추억이 나를 몹시도 울린다. 그녀의 아버지! 고구마 수십 가마니를 캐 팔아서 번 돈을 들고 군산 시내 양장점으로 가서 '뺑그르르 돌믄 팍 양산처럼 퍼지는 후랴스커트(플레어스커트)'를 사주신 아버지. 또래들이 '가겨거겨' 배울 동안 <님의 침묵>을 사다주셔서 "아버지, 너무 어려워유. 내 나이에 맞는 책을 사줘유" 하면, "선구자는 앞서 가는 겨" 딱 한말씀 하셨던 아버지! 서울로 전학 온 학교에서 '애들이 전라도 개똥새 촌년'이라고 놀려 먹어서 그냥 확 군산으로 내려가 버리겠다고 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보낸 전보. "내 강아지야, 니가 촌년은 건 사실이제. 하지만 만약 니가 도둑질을 안 혔는디 도둑이라 허믄 아부지가 첫차로 올라갈껴. 서울 것들, 공부로 뭉개 부러." 단 하루만이라도 다시 아버지와 보내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녀의 절절한 그리움이 나를 울린다. 아-!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배우 김수미. 원래도 김수미 선생님의 연기를 좋아했는데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에서 홀딱 반해버려 김수미 선생님이 나오는 작품은 일부러 챙겨보는 열성팬이 되었다. 김수미 선생님이 연기하는 독보적인 캐릭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지만, 왜 작가 김수현 선생님은 '배우 김수미'에게 배역을 주지 않고 심지어 인사조차 달갑게 받지 않으시는지 나도 궁금하다.) 이제 나는 '배우 김수미'뿐 아니라, '삶으로 글을 쓰는 작가 김수미'에 더 열광하는 광팬이 되었다.

위기일수록 강해지고, 무섭게 힘이 솟는다는 김수미 선생님!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그 어떤 분이 주신 용기보다 값지고, 빛나는 감동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진짜로 연락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예쁜 꽃을 볼 때마다, 꽃 앞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한 아름다운 여인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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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인생 - 삶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헤르만 헤세 : 사랑, 예술 그리고 인생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 그책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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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삽인되어 한동안 다시 관심을 받았던 옛노래가 있다. 서유석 씨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 이 노래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은 서유석 씨가 그 자리에서 바로 기타를 들고 작곡을 했다고 한다. <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서> 등 ’헤르만 헤세’의 몇 작품을 읽었지만, 그의 명성이 아니라 진심으로 ’헤르만 헤세’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만든 것은 바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번역된 그의 시였다.

어떤 책이든 작품보다 작가(지은이)에게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 <헤세의 인생>은 제목만으로도 반가운 책이다. 그런데 헤세의 삶에 관한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헤세가 말하는 인생’에 관한 책이다. 헤세 문학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하는 폴커 미헬스가 ’인생’에 관한 헤세의 철학을 말해주는 명문장을 가려내어 엮었다. 

헤세가 작정하고 자신의 ’인생관’이나 ’인생론’을 저술한 것이 아니니, <헤세의 인생>을 읽어도 그의 인생철학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엮은이가 가려내준 발췌문을 통해 헤세의 인생관을 엿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헤세의 인생철학에 ’사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가 평생에 걸쳐 ’답’을 찾고자 사투한 어떤 진실을 함께 탐구하며 서서히 접근해가듯 그렇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책은 날개에 헤세에 관해 짤막한 소개글을 넣었는데, 헤세는 "독실한 기독교 선교사의 아들이었지만 신학교 중퇴, 자실 미수 등 젊은 날의 고통과 방황을 겪었다"고 전한다. 헤세의 인생에 관하여 아는 것이 전무한 나에게 이 글귀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선입견으로 작용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읽어서 그런지, 내게 헤세의 인생은 누군가 가르쳐주는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헤매이는 뜨거운 고독과 지독한 방황으로 읽힌다.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듯, 자아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헤세. "언제나 나는 여행 중이었고, 늘 순례자였으며, (...) 내 방랑은 의미와 목표조차 알 수 없었고, 넘어졌다가 몸을 추슬러 일으키기 그 몇천 번이었던가!" - 1921년.

삶의 행로에는 언제나 인간이 스스로 개입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 변화의 가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헤세는 고정된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하고, 권위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신’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아버지’로부터! "누구나 한 번은 아버지와 스승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한 걸음을 떼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고독의 냉혹함에서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다시 기어들고 말지만." - <데미안>, 1917년. / "청춘이란 힘겹다. 청춘은 힘이 넘치고, 규칙이나 관습과 끝까지 부딪친다. 자기 아버지가 매여 있던 규칙과 관습만큼 아들이 더 증오하는 것은 없다." - <’문학의 표현주의’에 대하여>, 1918년. 

<헤세의 인생>을 읽는 내내, 내게 헤세는 자꾸만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겹쳐졌다. 내면의 자아를 찾아가는 싱클레어.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우는 것처럼,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하는 새처럼, 그렇게 저항하는 젊은이. 끊임없이 외부와 대립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보려고 분투하는 청춘. 그 싸움이 돈키호테처럼 무모할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결연함이 그의 글에서 느껴진다. "오늘날 사람들이 독립된 개인이나 완전한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힘들을 당신이 보게 된다면, 또 상상력이 빈약하고 영혼이 미약하며 국가와 같은 큰 집단의 이상에 순응하고 순종적이며 획일적인 유형의 인간을 보게 된다면, 당신은 거대한 풍차에 맞서는 작은 돈키호테의 전투적 태도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너그럽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투쟁은 전망이 없고 어리석은 것 같아 보입니다. 심지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결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풍차보다 덜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 한 여대생에게 보내는 편지, 1954년 3월.

다소 긴 글이지만, 몇 번을 곱씹어 읽으며 그에게서 얻은 소중한 삶의 교훈은 이것이다. 헤세는 높은 곳을 올려다보는 우리의 거시적인 시각을 가장 낮은 곳인 우리의 내면으로 끌어내려 미시적인 것을 살피도록 만든다. 그러나 지독한 고독과 고뇌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의 내면에 영근 작고 소소한 깨달음은 그 어떤 거창한 외침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내게 남는다.

"큰 일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야말로 몰락의 시작이다. 인류를 매우 존중하면서도 하인들은 괴롭히는 것, 조국이나 교회나 정당을 신성시하면서도 나날의 일과는 형편없고 소홀히 하는 것에서 모든 부패가 시작된다. 이것을 막기 위한 교육 수단은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신념, 세계관, 애국심 같은 이른바 진지하고 신성한 모든 것을 자신과 타인에게서 완전히 치워버리고, 작고 사소한 것이나 순간의 일에 매우 진지하게 몰두하는 것이다. 자전거나 가스레인지를 고치러 가서 수리공에게 요구할 것은, 인류에 대한 사랑이나 독일의 위대성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고장 난 것을 제대로 고치는 일이다." - <소설을 읽을 때>,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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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 - 거룩한 불만을 하나님의 비전으로 만들라
빌 하이벨스 지음, 김진선 옮김 / 두란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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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한 가지, 거룩한 불만을 찾으라!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이 실험에서 실험 대상이었던 절반의 신학도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기 위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그냥 지나쳐갔다는 보고가 있다. 나는 오늘 ’교회 사역이 바쁘다’는 이유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한 이웃을 외면했다. 외로움을 호소하며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는데, 나는 달려가지 못했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책상 위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맡겨진 ’업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역자이다. 교회에서 풀 타임으로 일하는 유급 사역자. 사역자인 내가 공식적으로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말하지 말아야 하는 고백이 있다. 오늘 그것을 말하려 한다. 나는 지쳤다. 15년을 풀타임 사역자로 일하면서 오래 전부터 만성 피로에 시달렸고, 어쩌다 쉬는 날이면 겨우 잠에서 깨어 한끼 정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거의 탈진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물론, 성경을 가르칠 때는 열정이 넘치고, 기억에 남을 사역의 열매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며,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을 들고 가겠다"고 했던 맹세는 시들해지고, "쉬고 싶습니다"라는 탄식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다.

늘 기쁨과 감사와 은혜로 충만해야 할 사역자가 이렇게 큰소리로 "나는 지쳤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은, 사역자의 탈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딜레마를 이해하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 앞에서 마음의 문빗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는 사역자의 탈진을 이해하고 진단한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지 않기로 하고, 지친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며 피하지 않고 다가서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했을 때의 시원함과 해방감이란!!!

문제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좋은 사역자만 ’한 가지 일’, 즉 내가 참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거룩한 불만’을 찾아 키워서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데 헌신하는 사역자가 좋은 사역자라고 말한다. 나의 ’거룩한 불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가슴은 다시 뜨거워지며, 연료 탱크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는 ’평상 상태’(Normal State)에 있는 사역자를 ’근본적 상태’(Fundamental State)로 옮겨 놓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평상 상태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러나 리더십 환경이 다른 수백 명의 리더들을 연구한 퀸 교수는 "어떤 리더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그 열정으로 리더십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에 몰두할 때, 그 리더는 실제로 다른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발견했다(90). 퀀 교수는 이 발견을 ’근본적 상태 이론’이라 불렀다. "그것은 한 리더가 자기 중심적 태도나 염려하고 근심하는 모습을 버리기로 결단하고, 열정과 끈기가 있고 그룹의 목표가 최고의 결실을 맺는 방향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때 확인된다"(90). 한마디로, 근본적 상태는 거룩한 불만의 열정으로 살며 사역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사역자들이 과도한 업무로 지쳐가는 것은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필요 때문이고, 통제되지 않은 돌발적 필요들이 날마다 쏟아지기 때문이다.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가 사역자들에게 조언하는 중요한 목회 전략은, 공동체의 거룩한 불만을 일깨우고, 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하며, ’조직적인 시스템’을 세우라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대로 설명하면, 한마디로 ’은사 배치’를 실행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공동체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한 불만을 찾아내고, 그것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며, 그 사역을 하나로 묶어주는 ’조직적인 시스템’을 세우라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거룩한 불만이 개발되고, 요소 요소에 그것에 헌신된 사람이 세워질 때, 비로소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로 작동되는 원리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좋은 사역자가 품어야 하는(!) ’거룩한 불만’은, 결국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는 이 한가지 사명 안으로 압축된다.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잠재된 거룩한 불만을 일깨우고 키우는 일,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사역자가 집중해야 할 ’한 가지 일’인 것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문제는 언제나 근본으로 돌아갈 때 해결되는 것을 느낀다. 돌아보니, 나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일보다 스스로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지쳐가는 ’직원’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거룩한 불만’(Holy Discontent)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많이 어색했는데,  어느새 그 단어 자체로 사역의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목회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이 원리를 나누기 위해 동역자들에게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를 교재로 워크숍을 제안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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