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 - 거룩한 불만을 하나님의 비전으로 만들라
빌 하이벨스 지음, 김진선 옮김 / 두란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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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을 수 없는 한 가지, 거룩한 불만을 찾으라!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이 실험에서 실험 대상이었던 절반의 신학도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기 위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그냥 지나쳐갔다는 보고가 있다. 나는 오늘 ’교회 사역이 바쁘다’는 이유로, 나의 도움이 필요한 한 이웃을 외면했다. 외로움을 호소하며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는데, 나는 달려가지 못했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책상 위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맡겨진 ’업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역자이다. 교회에서 풀 타임으로 일하는 유급 사역자. 사역자인 내가 공식적으로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말하지 말아야 하는 고백이 있다. 오늘 그것을 말하려 한다. 나는 지쳤다. 15년을 풀타임 사역자로 일하면서 오래 전부터 만성 피로에 시달렸고, 어쩌다 쉬는 날이면 겨우 잠에서 깨어 한끼 정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거의 탈진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물론, 성경을 가르칠 때는 열정이 넘치고, 기억에 남을 사역의 열매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며,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을 들고 가겠다"고 했던 맹세는 시들해지고, "쉬고 싶습니다"라는 탄식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다.

늘 기쁨과 감사와 은혜로 충만해야 할 사역자가 이렇게 큰소리로 "나는 지쳤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은, 사역자의 탈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딜레마를 이해하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 앞에서 마음의 문빗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는 사역자의 탈진을 이해하고 진단한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지 않기로 하고, 지친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며 피하지 않고 다가서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했을 때의 시원함과 해방감이란!!!

문제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좋은 사역자만 ’한 가지 일’, 즉 내가 참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거룩한 불만’을 찾아 키워서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데 헌신하는 사역자가 좋은 사역자라고 말한다. 나의 ’거룩한 불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가슴은 다시 뜨거워지며, 연료 탱크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는 ’평상 상태’(Normal State)에 있는 사역자를 ’근본적 상태’(Fundamental State)로 옮겨 놓는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평상 상태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러나 리더십 환경이 다른 수백 명의 리더들을 연구한 퀸 교수는 "어떤 리더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그 열정으로 리더십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에 몰두할 때, 그 리더는 실제로 다른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발견했다(90). 퀀 교수는 이 발견을 ’근본적 상태 이론’이라 불렀다. "그것은 한 리더가 자기 중심적 태도나 염려하고 근심하는 모습을 버리기로 결단하고, 열정과 끈기가 있고 그룹의 목표가 최고의 결실을 맺는 방향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때 확인된다"(90). 한마디로, 근본적 상태는 거룩한 불만의 열정으로 살며 사역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사역자들이 과도한 업무로 지쳐가는 것은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필요 때문이고, 통제되지 않은 돌발적 필요들이 날마다 쏟아지기 때문이다.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가 사역자들에게 조언하는 중요한 목회 전략은, 공동체의 거룩한 불만을 일깨우고, 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하며, ’조직적인 시스템’을 세우라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대로 설명하면, 한마디로 ’은사 배치’를 실행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공동체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한 불만을 찾아내고, 그것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며, 그 사역을 하나로 묶어주는 ’조직적인 시스템’을 세우라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거룩한 불만이 개발되고, 요소 요소에 그것에 헌신된 사람이 세워질 때, 비로소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로 작동되는 원리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좋은 사역자가 품어야 하는(!) ’거룩한 불만’은, 결국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는 이 한가지 사명 안으로 압축된다.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잠재된 거룩한 불만을 일깨우고 키우는 일,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사역자가 집중해야 할 ’한 가지 일’인 것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문제는 언제나 근본으로 돌아갈 때 해결되는 것을 느낀다. 돌아보니, 나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일보다 스스로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지쳐가는 ’직원’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거룩한 불만’(Holy Discontent)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많이 어색했는데,  어느새 그 단어 자체로 사역의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목회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이 원리를 나누기 위해 동역자들에게 <빌 하이벨스의 좋은 사역자>를 교재로 워크숍을 제안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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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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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라는 진단명은 상당히 거창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을 읽어 보면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바로 나의 이야기일 만큼 흔한 질병이다. 다만, 살면서 단 한 차례도 ’충격’을 받은 일이 없다면 예외일 수 있지만 말이다.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은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치료할 방법도 없었다. 평범한 남편의 아내로, 착하고 모범적인 두 딸의 엄마로, 늘 부지런하고 씩씩하게 사는 분이셨기 때문에 그분에게 다른 어떤 문제가 있다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분이 신혼시절 허리 디스크를 심하게 앓았고, 큰 수술을 받고 누워있을 때 시아버지 되시는 분이 당신 아들의 인생을 망칠 며느리라고 식칼을 들고 쫓아와 당장 내 아들과 헤어지라고 위협했으며, 그때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그 자리에서 맨발로 도망친 경험이 있음을 알았다. 이분의 두통이 이때의 일로 생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고, 상담 치료를 받은 몇 년을 괴롭히던 두통이 거짓말 처럼 사라졌다.

’트라우마’(Trauma)란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그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한다(30). 충격적인 외상 사건이란 강렬한 두려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충격을 말하는데, 대개 신체적인 안녕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비인간적인 폭력성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상실과 연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트라우마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빅 트라우마’이다. 이것은 전쟁, 재난, 천재지변, 불의의 사고, 강간, 아동기 성폭행 등과 같이 일상을 넘어서는 커다란 사건이 한 개인의 삶에 극적인 영향을 주는 경험을 말한다. 다른 한 가지는, ’스몰 트라우마’이다. 이것은 각 개인의 삶에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에서의 경험, 사건을 말한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친구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놀림을 받은 경험, 너무 급한 나머지 교실에서 오줌을 싼 경험, 발표할 때 실수를 했거나 길을 잃어버렸던 경험 등이 여기에 속한다(59). 스몰 트라우마란 작은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 있는 대단히 운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특징은 극단적인 흥분 상태의 증상들(과도 각성, 재경험)과 극단적인 마비 상태의 증상들(회피와 둔감화)이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미 마음(정신)에 충격을 준 사건이 종료된 뒤에도 그 사건의 충격에서 계속해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사건들은 덫에 빠진 것처럼 영구적으로 차단되어 갇히게 된다. 그리고 망가진 레코드 음반처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외상의 경험을 불러일으킨다"(62).


그곳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로버트 프로스트).

마음의 상처는 쉽게 드러나지 않고, 별로 드러내고 싶지도 않으며, 또 의지적으로 드러내려 해도 잘 설명될 수도 없다. 그래서 많은 경우 방치하게 되거나, 지독하게 아픈데도 잘 공감받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도 쉽지 않다.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은 직접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도, 영화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트라우마를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은밀하고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다가가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영화 속 다양한 트라우마들은 나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상처와 행동을 반추해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된다. 영화 이야기 사이사이에 트라우마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이 곁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의 정체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이해도 가능하다.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은 트라우마의 원인과 증상과 공동 운명을 지닌 공동체의 트라우마까지 다루며 치료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인지적인 측면에서 독서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혹시 본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트마우마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새롭게 분노가 폭발할 경우도 예상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극심한 상처가 건드려지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지금 나와 다른 내가 되고 싶다면, 지금의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에릭 호퍼).

문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의 시작이라고 한다. 고통스러울지라도 이제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이 상처를 다시 헤집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 보자.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떤 기억이 건드려져서 몹시 괴로웠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이제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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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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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


하가시노 게이고, 한국 시장에 그의 몇몇 작품이 소개되자 마자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이름이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 되었던 작품은 물론, 그의 초기작까지 빠르게 번역되어 출판시장에 유통되는 것을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브랜드 파워와 그의 작품에 대한 열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위한 독서를 하느라, 단순히 ’재미’를 위한 독서는 잘 하지 않는 지인이 어느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일부러 찾아 탐독하는 것을 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내가 읽기에 하기시노 게이고의 첫째 매력은, 도무지 짝이 맞을 것 같지 않은 퍼즐이 기막힌 조합을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반전의 기술이 명석한 두뇌가 빛나는 탁월한 추리력 위에 억지스럽지 않은 ’개연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말에 다달으면 절로 감탄이 터져나온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잠자는 숲>은 반전보다 흩어진 사건이 하나로 꿰어지는 묘미가 더 빛난다.  미모의 발레리나가 발레단 사무실에서 한 남자를 살해한 것에서 사건이 시작되고, 여기에 또다른 연쇄 살인과 살인 미수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간다. 발레단이라는 폐쇄적인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범인은 그 안에 있다! 그러나 범인의 윤곽은 잡히지 않고, 사건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 미궁을 헤맨다. 그런데 범인을 알고 몇 가지를 되짚어보니 주요등장인물 설명과 "하루코가 사람을 죽였다, 라는 연락이 왔다"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복선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다른 매력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 안심이 된다는 점이다. 어떤 추리소설들은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혀 범인이 아니기를 바라는 애처로운 인물을 ’어쩔 수 없이’ 범인으로 희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예지몽>의 한 단편에서도 그렇듯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설정이 필요할 때조차 범인의 편에 선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가 형사’처럼 그도 냉철한 머리를 가졌으나 심장은 뜨거운, 인간을 사랑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작가인 것이다. 

<잠자는 숲>은 가가 형사 시리즈 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추리소설로 꼽힌다고 광고한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내 견해에 의하면, <용의자 X의 헌신>에 나오는 범인의 사랑보다 덜 지독하지만, 그보다는 좀더, 아니 훨씬 아름답다는 것이다. 총4편의 가가 형사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를 먼저 읽었는데, 나머지 3편도 꼭 챙겨서 읽어보고 싶다. 여름밤, 더위를 식혀줄 최고의 추리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의 명성을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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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 HAKA! - 네 인생의 그라운드에 우뚝 서라
김익철 지음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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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럭비입니다! "하자, 가자, 함께 가자!"


실패. <하카>는 실패에서 시작한다. 자신민만했고 승승장구하던 사업을 접으며 공장 바닥에 앉아 소주와 눈물을 섞어 마셔도 추락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김 사장님!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방황하는 김 사장님에게 친구가 자신의 고향에서 좀 쉬었다 오라는 제의를 한다. 친구의 고향은 강원도의 소읍. 도망치듯 찾아간 그 강원도 소읍, 거기에서 운명처럼 ’럭비’와 고등학교 럭비팀을 지도하시는 장 감독님을 만나게 된다.

누구는 인생이 전쟁터와 같다고 했고, 누구는 인생이 놀이터와 같다고 했고, 누구는 인생이 소풍과 같다고 했고, 누구는 인생이 고해의 바다와 같다고 했고, 또 누구는 인생이 마라톤 경주와 같다고 했는데, <하카>는 인생이 ’럭비’와 같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를 곧바로 그 그라운드에 세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응원의 함성이 커다란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한낮의 열기 속으로 <하카>는 우리를 초대한다. 럭비는 강인한 도전 정신을 요구하는 운동 경기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그래서 럭비공은 한번 놓치면 다시 잡기가 어렵다. 그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온 몸으로 싸우며 계속 도전해야 하는 럭비, <하카>는 우리의 삶도, 일도 바로 이 거대한 그라운드 속 플레이와 같다고 말한다.

<하카>는 럭비 철학에서 우리의 삶과 조직에 필요한 리더십의 원리를 찾아낸 책이다. 럭비 용어를 빌어서 리더십 이론을 개념화 해내고, 다시 이것을 탄탄한 도식으로 도출했다. 그러나 원리만 배우려고 하면 알맹이 없이 겉만 핥는 식이다. 하키 철학을 통해 인생과 조직의 경영 원리를 배우는 <하카>는 그렇게 단순 원리가 아니다. <하카>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지한 자세를 겸하여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책의 내용 전개도 한편의 소설처럼 이끌어가고 있어, 느낌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인간극장’이나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 대본을 읽는 듯하다. 

<하카>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는 것은 ’도전정신’과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협력’은 요즘 어린이 세대에게는 힘써서 교육되지 않는 가치여서 반가웠다. 요즘 교육은 리더가 되라, 최고가 되라, 지도자가 되라는 가르침의 목소리가 높다. 협력하라, 협동하라는 가르침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하카>는 승리의 원리를 이렇게 말한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공을 잡은 리더가 매순간 한 발만 더 전진하고 동료들도 한 발만 더 전진하여 도와주면 됩니다"(44).

인생을 마라톤 경기로 보는 것과, 하키 경기로 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마라톤은 고독하다. 내가 쓰러지면 나머지 선수들은 저만큼 앞서 나간다. 한번 뒤쳐지면 따라 잡기도 힘들다. 그러나 하키는 팀플레이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 희생과 협력, 배려와 상호 존중,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이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승리도 개인의 것이 아니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쓰러져 있으면 안 된다. 진짜 실패는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끝까지 지속적인 도전이 중요하다. 승패는 언제, 어디서 판가름 나는가? <하카>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나의 영정을 쳐다보는 많은 사람들이 ’저 놈’이라고 이야기를 할 지 ’저 분’이라고 이야기를 할 지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61). 이것을 ’놈’과 ’분’의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하자, 가자, 함께 가자!

저 인생이라는 그라운드의 열기 속으로!

한 번뿐인 멋진 인생을 위하여!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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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릇한 친절 - 캐나다 총독 문학상, 의회 예술상 수상작
미리암 토우스 지음, 황소연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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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고발 소설로 읽어야 할까? 상징성으로 읽어야 할까? 
둘 다 해당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시니컬한 유머가 압권이다! ’감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농담처럼 툭툭 내뱉듯 이야기하는 십대 소녀가 주변을 관찰하는 눈빛이 매섭다. 작정하고 관찰하려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데, 오히려 그 무심한 듯한 시선이 더 오싹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사라진 엄마와 언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미스테리한 전개가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이는데, 그저 재밌게만 읽히지 않는 것은 ’고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야릇한 친절>은 종교적인 위선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종교인들의 위선을 그려낸 작품을 만나면 진땀이 흐른다. 도려낸 한쪽면만을 전부인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만, ’누구든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주변인의 시선도 그대로 인정하고 주변인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보는 일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종교인 스스로도 위선과 가식의 문제를 경계하고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채널을 돌리다가 종교방송에서 나오는 ’예배장면’을 보았는데, 다른 채널과 확연히 구별된 종교적 언어와 의상과 행위가 얼마나 생소해 보이던지, 당황했던 적이 있다. ’믿음의 내용과 의미’를 제거하고 ’행위’만을 본다면, 주변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야룻한 친절>에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주인공이 속한 종교 공동체는 기독교 내에서도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으며’,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소수 종파라는 것이다. "메노파는 오늘날 주로 미국과 캐나다에 농업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기독교의 한 종파인데, 종교와 세상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외적으로는 은둔을, 내적으로는 엄격한 집단 규율을 통해 강한 문화적 연대감을 형성한다"(388).
 
주인공 ’노미’는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지 않았다. 노미는 종교집단 안에서 출생했고, 운명처럼 그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문제는 신앙을 유산처럼 물려준 노미의 부모도 신앙이 그렇게 견고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미의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 재세례파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 아빠는 수동적이고, 엄마는 반항적이다. 결국, 노미의 가족은 각자의 해법대로 문제를 풀어가다 해체되고 만다.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메노파의 폐단은 노미 가족의 해체라는 비극적 파국을 야기했다. 세속의 쾌락을 곧 죄악으로 보는 마을에서, 노미의 가족들은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은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난다"(388). 

요즘 종교인을 더 위선적으로 보는 시각에는, 자신들만의 구별된 동네에서 담장 높은 집에 살면서 선거 때마다 시장을 찾아 서민과 악수하는 정치인을 보는 것만큼이나 대중적인 적개심이 가득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행위 없는 믿음’이 실망과 함께 역겨움을 양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역겨움이 비단 종교인이나 정치인만의 것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특정 집단이 개인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억압적 사회 ’권력’으로 작동할 때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믿음’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사후 세계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종교적 믿음이라면, 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쾌락’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믿음 체계이다. ’노미’가 운명처럼 속한 공동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그곳에서 탈출하여 ’비교’ 가능했던 세상을 향해 떠나지만, 위선과 가식이 완전히 배제된 공동체를 찾을 수 있을까? 

숨겨진 야릇한 친절이 더 나쁠까? 아니면, 대놓고 불친절한 것이 더 나쁠까? 나도 종교인이지만, 종교인들이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중메시지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심리학적 보고이다. 불친절은 그저 불친절의 문제로 끝날 수 있지만, 종교인의 ’야릇한 친절’은 세상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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