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훌륭한 책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책이라고, 누가 한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다. 아마 카프카쯤 될 것이다. 말하자면 얼음을 깨는 도끼 같은 책이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랬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슨 독서가 그렇게 고통스러워야 돼? 유쾌한 책만 읽으려고 애를 써도 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책은 만나게 마련이다. 액션 영화만 보려고 티비 채널을 열심히 돌려도 이따금 가슴이 먹먹한 영화의 한 장면을 마주쳐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책이 카프카가 만족할 만큼 좋은 책일지, 무섭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어딘가 아쉬운 점이 있는 책일지, 어쩌면 '자살, 우정' 이 얽힌 짐작하기 쉬운 청소년소설일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많이 울었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워서 울었는지, 울어서 고통스러웠는지 모르겠다. 다만 편집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네, 저는 지금 사적인 이유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리뷰를 써야 했고 그래서 다시 책을 들추어야 했을 때 그러고 싶지 않을 만큼, 이 책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왜일까? 가까운 친구의 은밀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천지가 불쌍해서? 딸을 가슴에 묻고도 바로 그 슬픔 때문에 씩씩하던 엄마가 "아가! 좋은 배 타고 편히 가거라!" 라면서 흔들리는 장면 때문에? 죽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는 비밀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는 것이 한스러워서? 친구를 죽게 한 화연이의 못된 방황이 안타까워서? 글쎄, 그럴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고통스러웠던 것, 내가 운 것은 어쩌면 다른 이유.
안다고 말하지 마라. (어떤 독립영화의 제목이었지요.)
그래,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깊은 상처를 준다. 너 힘든 거 내가 안다, 너 아픈 거 내가 안다, 너 속상한 거 내가 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를테면 가족, 베스트 프렌드, 애인들-이 제일 결정적인 상처를 준다. 왜? 어디를 찔러야 제일 아픈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평소의 네꼬씨와 어울리지 않은 줄 알아요. 이게 다 술의 힘이랍니다.) 나는 그런 것이 늘 싫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언젠가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그런 말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친구 여러분을 실망시켜서 미안합니다만, 저도 이따금 난폭한 고양이라고요.)
그래도 너는 씩씩하니까 괜찮겠지, 라고 말했던 친구가 있다. 내가 불행을 잘 이겨내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너는 겉으로는 멀쩡하면서 속으로 약한 게 탈이야, 라고 말했던 친구도 있다. 아, 참, 구체적인 예가 떠올랐네. 재수를 하는 나를 막 걱정해놓고 막상 내가 대학에 합격하자 뭐 꼭 재수까지해서 좋은 학교 갈 필요 있나 싶어, 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그것이 손에 가시가 박히는 통증이든, 내일 모레 죽을 사람의 절망이든. 이렇게 쓰고 보니 나에게도 물어보게 된다. 그래서 너는 네 친구들에게 언제나 조심해왔니? 친구의 고통을 알면서도 그 고통을 확인함으로써 네가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우아하게 괜찮냐고 물어본 적이 없니? 성급하게 위로하기 전에 친구의 신음소리를 경청해봤니? ...... 그래서 내가 지금 맥주를 이만큼이나 마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