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컵! 렛츠 플레이 아기 놀이책
수아현 지음 / 시공주니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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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2021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


 


 


이 책은 책장을 넘기며 컵 쌓기를 경험하는 참여형 놀이책이다. 지난 작품인 <컵> (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594237273)을 아이와 무척 즐겁게 보았다. 이번 <컵? 컵!>역시 다양한 색깔, 모양, 크기의 컵들이 등장한다. 넓은 컵, 노란 색 컵, 큰 컵, 긴 컵이 등장한다. 모양도, 크기도, 길이도, 색깔도 제각각인 컵들로 재미난 컵 쌓기 놀이를 할 수 있다.


 


 

 


22년 1월 현재 14개월된 둘째는 다양한 색깔과 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머그 컵, 수프 컵, 찻잔이 등장하여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 모두 컵이에요'라는 단순한 문장과 여러 색깔과 모양의 컵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예고하는 듯한 첫 도입은 아이의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오른쪽 페이지에 컵들과 문장을 제외하곤 전부 다 흰 바탕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취학 아동, 특히 영유아 아이에겐 더욱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넓은 컵, 큰 컵, 노란색 컵, 긴 컵, 작은 컵을 차례 차례 탑을 쌓았지만 담을 수가 없다. '이얍!'과 함께 컵들은 산산히 무너지고 만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색 바탕에 색깔이 모두 사라진 컵들로 인해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책을 응시할 수 밖에 없다. 원색 가득한 컵에서 무색인 컵으로의 변신은 더욱더 상상력을 자극 하는 듯 하다. 


 



 


 


 

 






다시 컵을 쌓기 시작한다. 넓은 컵, 긴 컵, 노란색 컵, 큰 컵 그런데 작은 컵이 남았다. 빨간 색 작은 컵은 직접 손으로 떼어 낼 수 있다. 다음 페이지에 큰 컵에 집어 넣을 수 있게 구성 되어 있다. 아이는 이 부분이 신기한 지 연신 작은 컵을 뺏다 넣었다를 반복한다. 둘째 아이와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워 하는 모습이 눈에 자주 보였다.  크기와 길이, 넓이와 같은 기초적인 수학 개념을 컵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이와 같이 컵 쌓기를 경험하는 재미난 놀이책을 찾는 다면 <컵? 컵!>을 읽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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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핀 도라지꽃 - 2022년 북토큰 선정작, 2021년 소년한국일보 우수도서 선정도서 즐거운 동화 여행 144
한상식 지음, 강화경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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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조국을 지켜낸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이 책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진이는 대감집 도련님이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지주의 삶을 살고 있고 누나 혜이와 형 석이도 자신의 신념을 다해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압박은 점점 심해지고 아버지는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충징에 홀로 간다. 그리고 결국 형 석이는 자진해서 군대에 입대를 한 후 광복군이 되기로 한다. 또한 진이도 강제징용을 당하게 되는데 과연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까?

 

 

 

진이는 친구 희도와 강제 징용을 당해 신작로를 만드는 곳에 가서 노예처럼, 짐승처럼 일을 한다. 탄광에 들어가 허리도 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하고 겨우 입에 풀치하는 생활을 연연하는 도중 몸이 성치 않은 동생과 함께 강제 징용에 온 규태형을 알게 되고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지만 광산이 무너지면서 결국 규태는 동생 규식을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은 패망하게 되고 무사히 귀국하게 된 진이는 아버지, , 누나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돌아와 조선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형은 직업 군인이 되어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누나는 위안부로 끌려갔다와서 정신착란 증상을 일으킨다. 아버지는 곧 이념으로 전생이 날 것을 예상하고 누나의 치료 목적으로 부산 동래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한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서거로 나라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결국 1950625일 전쟁은 시작되었다. 미리 준비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한을 쳐 들어왔고 결국 많은 학생들이 자원하여 학도의용군에 지원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끝에 진이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친구를 잃고 누나는 자살을 하고 형은 오른쪽 손을 잃는다. 그래도 전쟁은 끝났고 평화는 찾아온 것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1930년이라는 세월은 까막득하게 여겨지지만 아직 100년의 시간도 흐리지 않았고 그 당시의 삶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여전히 생존해 계신다. 6.25전쟁을 참전하였거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그런데 자꾸만 그 역사적 사실과 아픔과 슬픔, 고통, 치욕을 잊고 살아가게 된다. 일본의 만행, 북한의 침략, 남북의 대립 등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많은 이슈들을 책에는 간략하게 주인공과 가족들의 삶을 통해 투영하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 좋은 내용이 가득 담긴 동화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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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하는 게 어렵다고? 나도 이제 초등학생 16
신현정 지음, 찌아 그림 / 리틀씨앤톡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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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나도 이제 초등학생’ 시리즈 16권



 


이 책은 칭찬을 잘 주고받는 방법을 알려준다. 칭찬(稱讚 -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혹은 가식으로 일관된 칭찬은 오히려 더 해가 될 뿐이다. 한국 사회는 칭찬에 인색한 사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등학생 아이에게 상대방을 칭찬해주는 것이 왜 중요한 지 ‘나도 이제 초등학생’ 시리즈 16권인 <칭찬하는 게 어렵다고?>를 통해 알아보자.




주인공 ‘정다율’네 선생님은 어느 날 2반 친구들에게 칭찬을 하면 칭찬 스티커를 나눠주기로 한다. 칭찬 스티커는 칭찬을 해 준사람에게 준다. 모두에게 똑같이 열 장씩 나눠준다. 칭찬을 잘한 친구가 있다면 스티커를 주는 것이지만 한 사람에게 딱 한 장씩만 줄 수 있다. 하루에 여러 명에게 칭찬을 해야 여러 장의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칭찬 스티커를 열 개 모은 친구에게는 선생님이 특별히 만든 칭찬 배지를 달아주기로 한다.




반친구들은 너도나도 칭찬 스티커를 받기 위해 서로 칭찬을 남발하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다율이의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치 칭찬 스티커를 모으는 칭찬 수집자 같았다. 전학 온 '전현주'은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칭찬을 잘 하는 모습을 보고 다율이는 칭찬 스티커를 받기 위한 거짓을 여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전학생 현주는 칭찬 스티커를 받기 위한 칭찬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칭찬인 것을 알게 되고 다율이도 칭찬의 효과를 알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동생인 '지율'에게 해본다. 칭찬은 누구나 좋아한다. 하지만 칭찬에도 가짜 칭찬과 진짜 칭찬이 있다. 가짜 칭찬은 듣는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은 말이라 들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진짜 칭찬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진심이 담겨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고민을 해결해 주는 학습 동화답게 아이의 시선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문제를 해야 해야 하는 지 같이 고민하고 있다. 또한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 책의 총 4장으로 구성 되어 있고 각각의 장이 끝나면 여러 질문을 통해 다시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끝으로 책 맨 뒤에는 <나도 이제 초등학생 OX퀴즈>가 있다. 초등학생 저학년이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난이도로 되어 있다. 칭찬이 필요할까요? 칭찬은 바로 하는 게 좋을까요? 칭찬은 상대방의 상황에 맞게 해야 하나요? 칭찬을 들었을 때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요? 상대방이 기분 좋게 부풀려 칭찬해도 되나요? 칭찬할 때 잘못한 점과 함께 말해도 되나요? 이러한 OX퀴즈를 통해 아이는 칭찬이 주는 효과를 직간접으로 알고 익힐 수 있을 듯 하다.


 

 

 

 




<나도 이제 초등학생 시리즈>


 


내 마음대로 입을래!‘(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488866571)

앗 조심해서 다녀야 해!’(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367730917)

에취 뿡, 나오는 걸 어떡해!‘(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326179768)

내 물건은 내가 챙겨야 한다고?’(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283509581)

나 혼자 해볼래 골고루 먹기’(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1505203939)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야!(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57745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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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 - 백년 믿음으로 바라본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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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100세 철학자의 믿음의 길

 

 

 

 

이 책은 102세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의 신앙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크리스천[christian]'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현재까지 한국의 가장 큰 종교는 기독교이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있는 국민은 43.9%, 없는 국민은 56.1%였다. 전체 조사 대상자 중에서 개신교를 믿는다는 사람이 19.7%(967만명)였고,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은 15.5%(761만명)로 나타났다. 천주교는 7.9%(389만명)였다. 인구의 약 20%가 기독교+천주교 신자라는 소리인데 아직도 사회 곳곳에 어둠이 만연해 있는 사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 물론 개신교도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수 많은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점점 세상은 악해져가고 사람들은 그런 악한 세상의 흐름에 동조하고 있다. 자살을 하는 연령은 점점 낮아 지고 살인을 비롯한 흉악한 범죄는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또한 물질만능주의에 태어나는 순간 빠진 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겐 명예, 양심, 존경이라는 단어는 어색한 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런 현실 속에 하나님의 은총의 선택으로 14세 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자라며 널리 복음을 전파하는 김형석 교수의 신앙관을 한번 들어보자.

 

 

 

 

신앙은 인격적 체험에 속한다. 신앙적 체험을 겪은 사람은 후에 그 체험 내용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게 되고, 신학을 먼저 택한 사람은 후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완전한 신앙을 갖게 된다. 저자는 먼저 체험을 했고 그 체험의 내용을 서서히 이론적으로 정립해 가는 순서를 밟았다. 저자는 교회가 사회의 덕이 되지 못하는 행동, 행위들을 통해 몇 가지 신앙 자세를 정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기독교를 기성 교회의 독점물로 삼는 것도,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교회의 개선과 더불어 울타리 밖에서도 기독교 정신은 성장하며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또 하나는 사랑의 실천이다. 크리스천들의 사랑은 대단히 편협하게 이해되고 실천해 왔다. 개인의 자기위안적 사랑이 사랑의 전부인 듯 착각해 왔다. 사랑이란 인간의 선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며 사회 정의와 질서를 지켜 주는 것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보다 경제를 발전시켜 가난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사회 질서와 윤리 기강을 확립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뜻이 나의 사명이 된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이 최고이거나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회적 사랑의 실천 자체보다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인간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최후의 목적은 인간을 위한 봉사라는 대답 이상을 얻을 수 없다. 기독교는 인간에의 봉사가 최고의 목적임에는 틀림없으나 완전한 봉사는 우리의 회개와 거듭남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러우진다고 확신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구원을 얻으며 그 구원은 종국에는 영원에 이르는 것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위대한 결단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참 신앙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양심의 회복이고 둘째,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 셋째, 휴머니즘에 동참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선악보응의 역사적 심판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그 점에서는 구약과 신약에 차이가 없다. 오히려 기독교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사실은 엄연한 역사적 심판 때문인지도 모른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역사 속에서 역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역사 종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역사적 심판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는 흘러가는 역사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신()학이 아니라 신()학을 가진 종교다. ()학은 옛날에도 있었고 기독교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무신론자에게도 신()학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음의 학문적 이론과 체계를 원한다.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가 관건이다. 물론 신()학과 신()학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철학자들의 신()이 학문적 접근에 중점을 둔다면, 기독교의 신()학은 교회와 믿음이 그 중심을 이룬다.

 

 

 

 

 

 

 

 

 

 

 

일주일 내내 뛰어도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근로자에게 일요일에는 쉬면서 교회에 나오라는 말이 통할 리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신부나 목사들은 교회에 나올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을 부두나 광산으로 찾아 나선다. 양들이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양떼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목자의 직책이 더 귀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신앙 자체가 생활이기 때문에 말보다 생활, 요구보다 모범, 시키기보다 섬기는 자세로 교회생활을 이끌어가야 한다. 만일 그렇게 살아간다면 지금 당장 눈에 띄지 않아도 더 많은 전도와 더 값있는 교회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은 앎이 아니라 신념이며, 신념은 실천을 통해 얻는 확신이다. 그러므로 믿는 대로 이러우진다는 것은 실천의 신념을 뜻한다. 삶의 결실을 이웃과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교회가 많은 재물을 소유했을 때 과오를 범하는 경우가 많았다. 종교개혁 전후로 교회가 많은 재산을 소유했고 가난한 백성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기보다 피해를 주었다. 하나님 앞에서의 풍요로움은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이다. 으리으리한 교회 건물 주변에 있는 오막살이나 빈민촌을 보면 마음일 편할 수 있는가. 수많은 빈민과 실업자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는데 교회만 풍족한 생활을 즐길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풍요로움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풍요로움은 모든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값지게 쓸 때라는 가르침이다.

 

 

 

 

김형석 교수의 글을 읽고 있으면 교회를 벗어나 진리르 전하고 실천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교회 내에서 리더, 조장, 순장, 팀장, 교사 등 귀한 일을 감당하지만 세상에선 아무런 영향력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과 모욕을 피해 교회로 더 몰려드는 청년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목사님의 설교나 성경 공부가 아닌 자신이 성경을 통해 직접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주변에게 보여주는 노 철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교회 생활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으로 또한 교회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생각에 함몰된 많은 비기독교인에게 진리가 무엇인 지 알려주는 좋은 책인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들>

 

크리스천이 돈다는 것은 자기 직업에 더 성실해진다는 것이며 모든 일을 가장 신앙인답게 실천하는 일이다.(31p)

 

신앙이란 내 생명보다 더 귀한 무엇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32p)

 

 

 

 

 

 

예수(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009869492)

백년의 독서(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400144461)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2413808978)

삶의 한가운데 영원의 길을 찾아서(https://blog.naver.com/chihanjjang/221796052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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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다독이는 관계 심리학 - 나르시시즘과 외로움
우즈훙 지음, 박나영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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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내 안의 나와 터놓고 대화하기

 

 

 

 

 

이 책은 외로움과 나르시시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천재 심리학자 '우즈홍'이 수십 년간 연구와 상담, 경험을 통해 인간의 심리에 관해 깨달은 진리를 담고 있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육체를 이성을 대하듯 하고 스스로 애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 말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 그것을 벗어 자신과 사랑, 관계, 일상의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자기 내면에 잠재된 나르시시즘 수준이 발현되는 정도에 따라 사랑의 온도가 변화하고 관계의 유착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외로움도 나르시시즘에서 유발된다. 사회가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주변에 많은 친구가 있어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이 책은 나르시시즘과 외로움의 상태를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나르시시즘은 4단계로 나뉜다. 첫째, 건강한 자기애로 '자신감'이다. 활력을 얻고 스스로 성장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둘째, '오만함'이다. 자신감을 넘어선 단계로 독선과 아집을 부른다. 셋째, '의심병'이다. 항상 자기 몸과 마음이 약하며 병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망상'이다. 현실적인 근거를 무시하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며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여긴다.

 

 

 

 

 

 

 

존재감 있는 ''는 내면에서 응집된 자아이다. 추상적인 ''는 소망들이 실현될 가능성 위에 세워져 있다. '나의 기대'에 맞는 '나의 발전 원동력'의 실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결정한다. 완벽함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매 순간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과 온전한 연결을 맺으면 결과가 미흡해도, 어떤 흠이 있거나 아쉬움이 남아도 그 순간에는 완벽함이 깃들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애의 손상을 견딜 수 있다.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배려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이들은 자기애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입은 은덕을 저버리기도 하고 배신하기도한다. 성숙한 자아가 구축되면 대단한 것에 현혹되지 않고 강함에 유혹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아가 구축되지 않은 사람은 나르시시즘을 유지하기 위해 대단해보이는 것만 추구한다. 그 결과 오히려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잘못은 반복된다. 이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인정하려면 잘못이 허용될 심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은 타협이고 관용적인 모습의 표현이다. 반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과도한 나르시시즘과 편집증과 연결된다. 이제껏 항상 내가 옳았다면 나는 실속 있게 살아본 적이 없다는 진실의 반증이다. 초연결사회를 이끈 과학 문명의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에게 외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비대면 시대와 인터넷 상거래, 재택근무 등 편리성이 더해진 만큼 더 쉽게 혼자만의 세계에 머물도록 만든다. 특히 사회적 비중이 적고 관계를 잇지 못하는 이들은 소외되고 분리되어 자신을 패배자로 생각한다. 그리고 좌절감과 실패감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내면에 파묻힌다. 외로움에 갇혀 있다면 주위를 돌아보자. 자신, 관계, 가족, 사랑에서 외로움의 탈출구가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단언컨대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친밀관계에서 진정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상대방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중요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위선적 모습보다 부족하더라도 진솔한 모습으로 대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다. 그리고 동등한 자격과 위치를 확보해 평등한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사회적 지위와 높낮이는 친밀관계에 적용되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 어떤 결정이나 합의가 따라야 친밀관계에 유대가 깊어진다. 사랑은 우리 삶을 활성화시킨다. 행복과 기쁜도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신체와 감정을 가지고 내면에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모든 감정이 자유롭게 흐를 때 사랑이 완성된다. 사랑하게 되면 외로움이 사라지고 온전하게 자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서로의 거울이 되어 각자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돕는다. 사랑이 더 완벽한 자아가 형성될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관계의 본질은 누군가에게 불안을 투사하는 것이거나 누군가의 초조함을 대신 견뎌주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불안감을 이전하지만, 아이들은 그 불안감을 소화하지 못하므로 참아내며 나름대로 이겨낼 힘을 모색한다. 관계에서 진정한 자신을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관계에서 자신에게 공급해주는 자양분의 척도가 된다. 진정한 자아를 표현할 기회가 부족하면 현재 관계가 좋더라도 점점 시들게 마련이다.

 

 

 

아이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것은 독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다. 복종을 강요당하는 아이는 원한을 품게마련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면 아이의 미래를 잿빛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성장기의 아이를 계속 부정하면 아이 자존감의 뿌리를 썩게 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내 보이진 않아도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다. 또한 자기 이상과 감정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모른 채 억누르고 회피한다. 자기 스스로 내린 결정이나 판단을 틀린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에게 부모의 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정말 아이를 위한 교육인지 아니면 부모의 나르시시즘을 실현하려는 것인지 거듭 생각해야 한다. 나르시시즘에 의한 가르침은 나는 너보다 강하고 많이 안다는 사실을 중심을 두고 있으므로 자녀는 부모보다 못한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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