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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 논문에는 담지 못한 어느 인류학자의 난민 캠프 401일 체류기
오마타 나오히코 지음, 이수진 옮김 / 원더박스 / 2020년 6월
평점 :

논문에는 담지 못한 어느 인류학자의 난민 캠프 401일 체류기
이 책은 부두부람 난민 캠프에서 체류한 401일간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었던 ‘난민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준다. 인류학자 오마타 나오히코는 자신의 박사 논물을 위해 2008년 7월부터 2009년 9월까지 13개월에걸쳐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부두부람 난민 캠프에 체류한다. 부두부람 난민 캠프은 1989년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되어 1990년 라이베리아에서 피난 온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가나 정부가 설치한 시설의 형식으로 문을 열였다. 저자가 본격적 현지 조사를 시작한 2008년 당시 부두부람 캠프는 이미 문을 연 지 1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였고 2만 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캠프에서 공짜는 하나도 없다?’ 난민 캠프에서는 국제 원조를 통해 모든 의식주를 무료로 제공해 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긴급 구호 단계의 경우 즉, 인간의 생사가 걸린 기간에는 사람이 죽는 일이 없도록 식료품, 식수, 의료, 약품 등이 인도적 지원으로 무상 제공된다. 그러나 이 기간은 길어봐야 1~2년 이다. 장기화된 난민 캠프에는 국제 원조 공여자인 선진국의 관심이 줄어들고, 지원의 질과 양이 대폭 경감된다. 부두부람 캠프의 수도와 공중화장실 등의 서비스 유지를 위해 난민 스스로 결국 유료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설립한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원 등이 있고 난민 캠프 내에서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잡화점, 중고 의류점, 신발 수리점, 이발소, 네일 숍, 레스토랑, 술집, 사진관, 인터넷 카페, 치과 진료소도 있다.

책의 원고는 대부분 2017년에 집필했다. 난민의 규모는 2017년 당시와 비교할 때 100만 명가량 증가하여, 2020년, 현재는 2600만 명을 넘어섰다. 난민 문제는 빠른 시일에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잊지 않고 해결을 위한 논의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난민이 된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 아니라, ‘우리 중 누구나 난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제약이 수반된다. 난민에게 캠프 내에서만 지낼 것을 의무화하여, 허가 없이 캠프 밖으로 나오는 일을 금한다. 일할 권리도 제한되고 정규 일자리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수용국의 토지나 주택 같은 부동산 소유 역시 허용되지 않고 은행, 의료,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의 접근이 상당 부분 제한 된다.
영어에서 난민은 ‘Refugee’로, 프랑스어로 피난을 뜻하는 ‘Refuge’를 어원으로 두고 있다. 즉, 조국을 떠나 피난처를 찾는 사람을 의미한다. 한국어 사전에서 난민 [refugee, 難民]을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난민의 일반적 의미는 생활이 곤궁한 국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로 인종적, 사상적 원인과 관련된 정치적 이유에 의한 집단적 망명자를 난민이라 일컫고 있다.

2015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그것은 ‘알란 쿠르디’라는 3살배기 어린 아기의 사진이었다. 그 아이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하던 중 지중해에서 배가 난파되었고 터키 보드룸의 해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마치 엎드려 자고 있는 듯한 그 모습은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고 난민과 내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큰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리아의 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난민 수용에 대해서 세계 각국은 찬반 논쟁이 뜨겁고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독일 또한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신청 불허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20만명이 넘었었다.
이제는 난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공존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가 되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018년 6월 18일 ‘전쟁을 피해서 난민으로 제주의 온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인도주의 차원에서 우리가 잘 응대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은 아끼지 않아야 되겠다’라고 이야기 하였지만 그 말을 이해하거나 믿는 이는 적은 것 같다. 난민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과 불신, 또한 그들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행위, 종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전쟁이 없이 지내오고 가장 부유하고 부강한 요즘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전쟁과 기근, 내전이 끊이질 않는다. 인간의 탐욕, 욕심, 이기심은 줄어들지 않기에 그 피해는 어린아이, 여성, 노약자 등이 받는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기생충>의 반 지하가 생각났다. 거기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나로써는 너무 많은 공감이 가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 홍수가 나서 물에 집이 완전히 잠기는 장면, 길에서 오줌을 싸는 사람을 향해 고함을 치는 장면, 창문으로 햇볕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장면 이 장면은 극심한 빈부격차를 설명하기 위한 감독의 설정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외국인들은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하다. 달 동네에도, 산 동네에도, 빌라 촌에도 경제는 있고 규율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다. 단순하게 치부해버려선 안 된다. 난민 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혹은 이질적 감정에만 매몰 되어 있지 말고 그들의 삶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팬, 그리고 난민>인 듯 하다.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왜 이리 길고 난잡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는 ‘그리고 난민’을 주목 하길 바라는 듯 하다. 난민의 실상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