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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깊은 바다
파비오 제노베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여섯 살 파비오의 파란만장한 성장 분투기
이 책은 주인공 파비오가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아가는 눈부신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책의 저자인 ‘파비오 제노베시’는 2018년 이탈리아 비아레조상을 수상하였고 이탈리아 독자들이 매해 선정하는 오스카 앱설루트 영예 도서로 선정
되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 되는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니 매혹적인 글과 다양성이 풍부하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여 더욱더 역사와 사실 그리고 상상이 한데 뒤섞여 묘한 느낌을 끝까지 준다. 마치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이에게
읽어 주었던 동화 책 중에서 미겔 탕코의 <내가 아빠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 떠올랐다. 자녀를 키우고 있는 아빠라면 한 번쯤 읽으면 좋을
동화 이다.
주인공 파비오는 1974년 생에 태어났고 1980년 6살이 되었고 당시 그는 결혼은커녕 여자 손도 잡아 보지
못한 할아버지들이 열 명이나 있다. 아버지는 말수가 굉장히 적은 만능 수리공이고 어머니는 열성적으로
다양한 일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생존해 계신다.
어느 날 파비오가 학교에 간 날 할아버지 한 명이 학교에 찾아와서 욕설을 퍼 붓고 난장판을 부렸다. 이유는 닭장을 만드는 법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에 자신이 직접 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로 책은 시작을 한다.
파비오가 8살이 되던 1982년은
제12회 스페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 하였다. 하지만
결승전 TV 경기를 보던 중 심판 판정에 화가 난 한 할아버지가 놀고 있던 파비오를 모래 사장에 집어
던졌고 결국 오른쪽 쇄골 부서지기도 한다.
‘당신은 대체 우리가 선물한 삶을 어떻게 살았던 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생을 허비했군. 지옥으로 가시오.’ (56)
‘어려서 많이 울면 커서도 슬픈 사람이 되고 책을 많이 읽으면 꼴불견이
되고 개미나 태우면서 홀로 여름을 보내면 미치광이가 된다는 것이다.’ (64)
글의 배경인 이탈리아답게 천주교를 기반으로 내용은 이루어져 있다. 성자가
되고 싶은 파비오와는 달리 마흔살까지 결혼을 하지 못해 가문의 저주에 걸려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는 모순적으로 끝까지
책의 내용을 끌고 간다.
파비오가 초등학교 4학년, 10살이
되자 산타 할아버지의 비밀, 아기 탄생의 비밀, 아버지와
슈퍼스타의 닮은 꼴의 비밀들을 알게 되고 우연히 성당에서 무당벌레 옷을 입은 ‘마르티나’라는 여자 아이를 첫 만나게 된다.
‘여자들은 독이란다, 파비오, 잘 기억하렴, 독! 삼촌들은
늘 술을 마셨기에 이 말도 늘 했다. 조심해라, 여자들이
너를 망쳐버릴 거야.’(98)
‘그러고 보니 난 성자가 정말 맞는가 보다. 모두가 내게 간절히 빌고 있다. 성자란 그렇다. 선량한 것도 선량한 것이지만 희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난 리코르디나와 튜브를 꽂은 아줌마 그리고 다른 신자들을 쳐다보고는 외설스러운 페이지로 다시 눈을 돌렸고 순교의 길을 걸었다.’(240)
파비오의 할아버지들, 삼촌들은 여자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주인공은
외설적인 소설이지만 성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꾹꾹 겨우겨우 읽어 내려가는 장면은 일품이다.
프레세페(아기 예수 구유)를
만들어 주교에게 1등을 받기 위해 만치니 가문 사람들은 총 동원하여 최대한 화려하고 멋진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1등은 다른 동네가 받게 되고 서로 뒤엉켜 싸우고 욕설이 난무하는 와중에 파비오의 아버지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이렇게 1부가 끝난다.
2부에서는 더욱더 파비오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 지렁이를 만들어 낚시 미끼로 팔아 돈을 벌다가 문득 자신은 성자가 되야 하기에 돈을
받지 않기로 결심을 하자 삼촌은 바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병원에서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본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가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파비오는 할머니의 부탁으로 책을 읽지만 내용은 무척
외설스러운 내용이어서 결국은 끝까지 읽지 못하는데 그 모습에 천사, 성자 라는 칭호를 받고 어리둥절
한다.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사귄 아이는 벼락 맞아 몸이 6살처럼 보이는
‘피콜로 마시모’이다. 파비오는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자위의 숲’에 가기도 하고 반 아이들
모두가 초대 받았지만 절친인 마시모와 더불어 둘은 파티에 초대받지 못하기도 한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파비오는 테니스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테니스 볼보이가 되기도 한다.
아빠의 식물인간 상태를 파비오는 인정하려고 들지 않고 잠시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파비오는 아빠가 벌떡 일어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매일 안내서를 들고 아빠에게 읽어 준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떻게 남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파티에 초대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춤을 추고 여자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영화관 맨 뒷자석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리에 코트를 덮어놓고 무엇을 하는지, 만약
여자 아이 앞에 서게 되면 뭘 해야 하고, 자위의 숲속에서 여자가 아닌 나무 앞에 서게 되면 뭘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묻고 싶어졌지만 아빠는 계속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80년대와 비교를 하게 되었고 다양한 성격과
사연을 가진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녹아져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굉장하였다. <물이 깊은
바다>라는 제목에서처럼 바다를 회상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아버지가
억지로 바다에 빠트려 수영을 배우게 함으로써 아이는 물에 빠져 죽지 않을 힘을 키우게 되고 그것으로 결국은 친구를 도와주기까지 한다. 아빠를 다시 아이처럼 대하고 사랑해주는 모습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고 헌신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듯 하다. 너무나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술술 잘 읽힌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