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얼굴 위에 새겨진 이야기의 우주 (3)
송지원 : (도망간 베트남 처녀를 잡아오는 길. 이한규가 그녀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저기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이한규 : 한 번 잡은 사람 또 도망가면 그다음엔 대책이 없어.
송지원 : 차가 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도망갑니까? (……)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인간적으로 합시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버릴 정도로 깊이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아무리 사랑해도 가닿을 수 없는 존재의 견고한 벽을 느끼곤 한다. 그건 우리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의 본성일 것이다. 사랑은 원래 아무리 해도 부족하게 느껴지게 마련이고 사랑을 통해 타인의 벽은 오히려 명징하게 인식된다. 사랑은 결핍을 통해 더욱 절실하게 인지되고 단절을 통해 더욱 깊어가는 감정인 것 같다.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할 수 없고, 반대로 타인을 사랑하듯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어쩌면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에는 조금씩 나르시시즘적 계기가 깃들게 마련이지만 타인을 향한 사랑에는 자기애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 관여한다. 바로 타인과의 스킨십, 타인의 몸을 만지고 입맞추고 부둥켜안는 감각이다.
로댕의 <키스>, 1886
바흐친은 이 스킨십이야말로 우리가 타자의 존재를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등 뒤에서 우리를 포옹할 수 없으며, 스스로의 입술에 입맞출 수 없는 존재다. 아마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타인이 자신의 몸을 만지고 자신이 누군가의 몸을 만지는 순간의 쾌락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남녀관계만이 아니다. 타인의 존재를 느끼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를 ‘만지는 것’만큼 확실한 길이 없지 않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이나 악수 같은 가벼운 스킨십을 통해서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소통한다. 누군가의 체온과 살결을 느끼는 일은 그에 대한 인적사항이나 백 마디 설명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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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가까운 이를 사랑할 수 없으며, 더 정확하게는, 가까운 이를 사랑하듯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만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보통 행하는 모든 행위들의 총합을 그에게 전이하는 것뿐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8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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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서 버려진 이한규와 그림자에게 버려진 송지원.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이한규는 ‘인터내셔널 태프스포스’라는 사람 찾기 회사를 차렸고 둘의 첫 대면은 라이따이한 출신의 국제결혼 브로커를 잡아 현상금을 타려는 이한규가 곤경에 처했을 때 일어난다.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들을 수하로 거느리는 라이따이한은 자신을 잡으려 하는 이한규를 ‘처리’하려고 하지만, 마침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송지원의 도움으로 이한규는 위기를 모면한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모를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서로를 향한 ‘접선’을 시도한다. 둘은 서로에게 속삭이는 중이다.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안다고. 이한규는 송지원을 이용해 그림자를 비롯한 간첩조직을 엮어내어 거액의 현상금을 타내려 하고, 송지원은 이한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함으로써 그림자와의 접선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한규는 송지원의 뛰어난 무술 실력과 총명함을 무기 삼아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자 한다는 핑계로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기로 한다.
이한규와 송지원 두 사람이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 추격자와 피추격자 사이의 살벌한 주종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두 사람의 어색한 동거 직후부터 시작된다. 업무 첫날부터 송지원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고분고분 사장님의 명령을 따르는 충실한 피고용인과는 거리가 멀다. 도망간 베트남 처녀를 잡아 ‘가정의 평화’를 찾아주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임무라고 설교하는 이한규는 베트남 처녀에게 수갑까지 채워 자신의 ‘사업’에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
송지원은 업무 첫날부터 고용주의 사업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적으로 합시다.” 그는 깍듯한 존댓말도 편안한 반말도 아닌 중립적인 청유형을 써가며 이한규와 자신의 최소한의 동질성(우리 모두 ‘인간’이라는!)에 교묘하게 호소한다. 목소리만 컸지 본래 모질지 못한 이한규는 송지원의 단호한 태도에 놀라 얼떨결에 송지원에게 수갑 열쇠를 넘겨주고 만다. 그들의 ‘인간적 접촉’은 그렇게 시작된다. 두 사람은 같은 집과 같은 자동차와 같은 밥그릇과 같은 변기를 공유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너무 많은 인간적 접촉’의 시간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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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오직 타자만을 껴안을 수 있고 사방에서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이며, 오직 그의 경계만을 사랑스럽게 매만질 수 있는 것이다. 타자의 연약한 유한성, 완결성, 그의 이곳-현재의 존재-이 모든 것은 나에 의해서 내적으로 이해되며, 말하자면 나의 포옹으로 형성된다. (……) 나 자신의 입술은 오직 타자의 입술에만 닿을 수 있으며, 오직 타자에게만 나의 손을 올려놓을 수 있으며, 타자를 적극적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고, 그의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으며, 그의 존재의 모든 구성적 특징 속의 그를 덮어줄 수 있으며, 그의 육체와 그의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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