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의형제>와 미하일 바흐친 ⑩


 10. ‘에고’와의 내전(內戰) (1)  

   
 

에고이스트는 마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부드러움과 유사한 그 어떤 것도 체험하지 못한다. 문제는 그가 이러한 감정들을 전혀 모른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자기보호는 일체의 사랑스럽고 애틋하며 미적인 요소들을 결여한 차갑고 가혹한 정서적-의지적 태도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44~45쪽.

 
   

 

   에고이스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수많은 대상 중에 평등하게 ‘자기’를 포함시키는 건 어쩐지 은밀한 반칙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른 모든 경쟁상대를 제치고 유독 출중한 자기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사랑해보지 않은 것이 아닐까. 사랑은 나에게 아무런 ‘자기중심적’ 즐거움을 약속해주지 않는 불안하고 낯설고 이질적인 타자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이끌리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지원과 이한규는 에고이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자신을 돌보는 일을 자주 까먹는 사람들이다. 송지원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막노동을 하면서도 진심으로 ‘나는 이 일에 만족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이한규는 이혼한 후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딸 윤지에게 양육비를 부쳐주느라 자기 몸에서 나는 지독한 홀아비 냄새도 모른 척한다. 송지원은 가족을 못 만난 지 6년이 넘었고 이한규의 가족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그들이 속한 조직은 그들을 버렸고 그들 주위엔 이제 살가운 친구도 선후배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족만을 생각하고 조직조차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사연 많은 두 룸메이트들은 사실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타인들’이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눈에서 서로의 가여운 분신을 본다. 우리는 처음에 전혀 다른 존재인 줄로만 알았다. 쫓아야 하고 쫓겨야 하는. 이해관계가 너무도 분명히 대립하는 선명한 적. 그러나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우리는 너무 닮았다. 너와 살을 부대끼며 같은 식탁과 같은 변기와 같은 현관을 쓰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너와 나는 조직이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어떤 조직에 있든 우리는 ‘조직적’으로 살 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직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못하면서 조직에서 배운 ‘신념’은 잊지 못하는 서글픈 족속들이다. 우리는 조직의 이해관계에 내 모든 개인적 삶을 끼워 맞출 수 없다는 점에서 유난히도 닮았다. 우리는 기계의 부속품이기엔 너무 제멋대로인 나사들이니까. 기계의 부속품으로 살기엔 ‘인간적’인 삶의 냄새를 너무 그리워하니까. 우리는 똑같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견고한 정체성의 껍질을 완전히 벗지 못한 지금, 아직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적(敵)’일 뿐이다.  

   
 

내 앞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의 의식의 시야는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환경과 그가 자신 앞에서 보는 대상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 나는 그를 미학적으로 체험하고 완성해야만 한다. 미학적 활동의 첫번째 단계는 나를 그 사람(타자) 안으로 투사(감정이입) 하여 그의 내부에서 그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체험하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즉 나는 나 자신을 그의 위치에 놓아야 한다. 이를테면 그와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 실제로 고통받는 인간의 내면에서 체험되는 삶의 상황은 나를 자극하여 도움, 위안, 인식의 사유 등과 같은 윤리적 행동을 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나 자신을 그 안으로 투사하는 것 다음에는 나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 즉 고통받는 인간의 외부에 있는 나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한다. (……) 만약에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타자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는 병리적인 현상이 발생할 것인데, 이는 타자의 고통에 감염되는 것에 불과하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52~54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illy2010 2010-03-1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에고이스트 이야기 보니까 왠지 뜨끔~^^*
 


 스포일러 주의!!


 영화 <의형제>와 미하일 바흐친 ⑨


  9.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동안 (3) 



 송지원 : 그런데…… 부인은 왜 떠나신 거예요?
 이한규 : (원망도 미움도 남아 있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내가 잘 못해줬어. 애 엄마는 영국인이랑 재혼했어. 알버트라고. 알버트가 애 이름을 영국식으로 지었다는데, 에이미래 에이미. 에이씨! 애 이름을 에이미가 뭐야, 에이미가!!
 송지원 : (이런 순간에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 이한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렴풋이 웃는다.)
 이한규 : 돈 많이 벌어서 우리 딸 결혼할 때 집 한 채 해주고 싶어.
 송지원 :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자신의 딸을 생각하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그러실 수…… 있을 거예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또 다른 목소리가 발화하는 순간들이 있다. 분명히 내가 한 말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은 낯 뜨거운 순간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홀로 얼굴이 붉어지는, 겸연쩍고 민망한 고백. 두 사람은 매일 한솥밥을 먹으며 같은 자동차를 타고 같은 방을 쓰면서 점점 더 그런 일들이 잦아진다. ‘사무적인 분위기’에서라면 전혀 나눌 필요가 없는 사적이고 내밀한 대화의 흔적들이 조금씩 늘어간다. 서로를 향한 자잘한 감정의 주름들이 늘어갈 수록 ‘참수리 7호(남파공작원 송지원의 닉네임)’의 보고서는 점점 짧아진다. 이한규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주알고주알 보고하는 것이 점점 힘겨워지는 것일까. 

 

   추석이 되자 ‘인터내셔널 테스크 포스’에도 달콤한 휴가가 찾아온다. 찾아갈 곳도 궁금한 곳도 없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전국 노래자랑’만 열심히 시청하고 있는 송지원. 이 황금 같은 휴일에 만날 사람도 없냐, 여자친구도 없냐고 묻는 이한규에게 송지원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누굴 만나요? 서울엔 친구 없어요. 여자한텐 관심 없어요.” 무척이나 공사다망한 듯이 부랴부랴 옷을 차려입고 외출하는 이한규의 뒷모습을 확인한 송지원은 재빨리 이한규를 미행하러 따라나선다. 잠시 긴장을 늦출 뻔 했으나,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창조해낸 ‘공적 임무’를 잊지 않은 것이다. 이한규가 아직 국정원의 일원이라 믿는 송지원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감독의 시선은 인물의 내면과 외면을 비추는 마음속 카메라의 완급을 조절한다. 망원경의 시선으로 송지원을 비출 때 그는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유능한 ‘공작원’으로 보이지만, 돋보기의 시선으로 그의 차가운 얼굴을 확대해보면 고뇌와 절망과 신념이 교차하는 그의 우수 어린 표정이 드러난다. 현미경의 시선으로 그를 비추면 그의 행동을 결정하는 변수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당’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인재지만 누구에게도 아주 사소한 상처도 주기 싫어하는 세심한 성격 때문에 ‘그림자’처럼 냉혹한 킬러가 될 수 없다. 여기에 ‘이한규의 시선’이 더해진다. 이한규의 시선 또한 크게 세 가지로 분리된다. 남파공작원 송지원을 바라보는 직업적 시선과 아내와 딸을 두고 떠나온 한 남자를 바라보는 인간적 시선. 그리고 자신과 동거하는 룸메이트를 바라보는,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없는 서로에게 이제는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어버린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제3의 시선. 



   이렇듯 한 인물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토록 다양한 감성의 렌즈가 필요하지 않을까. 송지원이 스스로가 처한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는 여전히 자신인 채로 수면 밖을 바라보는 잠망경의 시선이 필요할 것이다. 바흐친은 작가가 주인공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단지 주인공에게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있는 그대로’ 흠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에게 성격을 입히고 신념을 주입하고 대사를 녹음시키는 작가가 아니라, 어느새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된 주인공에 대한 무조건적인 흠모야말로 작가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위치가 아닐까.



   무조건적인 흠모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 불안과 그 현기증을 참아내면서 주인공의 있는 그대로의 전체를 그려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작가는 단지 주인공에게 거리를 두거나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작가의 입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불완전한 전체로서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주인공의 외부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불안한 지탱점’들을 찾아가는 과정. 작가는 그 과정에서 창조적 다중인격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인물에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형되는 과정 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작가-감독은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않고 인물과 완전히 거리를 두지도 않는 ‘자기만의 지탱점’을 매 순간 창조해야 한다. 바로 그 불안한 지탱점에서 아름다운 캐릭터가 탄생한다. 

 

   
 

여기서 문제는 작가가 주인공에게 이론적으로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님을 강조하자. 주인공의 외부에 있는 필수적인 지탱점을 발견하기 위해서 (……) 주인공과의 관계에서 오히려 발견해야 할 것은 주인공의 전 세계관이 주인공의 존재론적이고 직관적이며 구체적인 전체 안에서 단순히 한 요소가 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가치의 중심을 강제로 부여받는 존재로서의 주인공에게서 아름다운 것으로 주어져 있는 존재로서의 주인공에게로 이동해야만 한다. 주인공의 말을 듣고 그에게 찬성하는 것 대신에 작가는 현재의 충일성 속에서 주인공의 모든 것을 보아야 하며, 그 자체의 그를 흠모해야만 한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44~45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lur 2010-03-0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름다운 캐릭터의 탄생 비결이군요^^ 의형제에서 강동원이 왜 이전과 전혀 다른 캐릭터로 느껴졌는지 알 것 같아여~
 


 스포일러 주의!!


 영화 <의형제>와 미하일 바흐친 ⑧


  8.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동안 (2)

   
 

 나 자신의 입술은 오직 타자의 입술에만 닿을 수 있으며, 오직 타자에게만 나의 손을 올려놓을 수 있으며, 타자만을 적극적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고, 그의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으며, (……) 그의 육체와 그의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74~75쪽.

 
   

  

 농부 : (아내를 다시 찾아준 이한규와 송지원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표정을 담아) 사례를 해야 할 텐데.
 이한규 : 찾는 데 200, 데려오는 데 200, 총 400 되겠습니다.
 송지원 : 부인이 직접 오셨으니까 사례는 필요 없습니다.
 이한규 : (사장도 아닌 송지원이 제멋대로 사례비를 눈앞에서 공중분해시키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송지원을 노려본다.)
 농부 : (해맑게 미소 지으며) 그래도 감사의 표시라도…….
 이한규 : (농촌에서 직접 재배한 각종 야채와 닭을 자동차에 실어준 농부의 ‘사례’를 한심한 듯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홰를 쳐대고 꼬꼬댁 꼬꼬댁 소리를 내며 야단법석을 떠는 토종씨암탉을 노려보며) 그거 가져가려면 수갑 채워!
 송지원 : (흐뭇한 표정으로 씨암탉을 꼭 껴안고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서로에게 최대한의 실용적인 정보를 빼내어 저마다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불현듯 자기 자신의 정해진 업무를 망각하곤 한다. ‘인터내셔널 테스크포스’의 기계적인 흥신소 업무를 송지원은 별 무리 없이 잘 해내는 듯하지만, 그는 ‘두당 200만 원’의 수고비를 한 순간에 제멋대로 날려버릴 정도로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다. 농촌에서 힘겹게 농사를 짓는 가난한 남편과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들을 보자 200만 원의 수고비를 받아낼 생각이 싹 달아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외부에서 입력된 공적인 정체성이 잠시나마 지워지는 순간이다. 농촌 아이들과 놀아주며 나이를 묻는 송지원의 모습은 영락없이 잘생긴 동네 총각이다. 그의 얼굴에 가득 드리운 서늘한 그림자 뒤에 숨겨진 따스함을 읽어낸 관객의 마음은 어느덧 가뿐하게 무장해제되어 있다. ‘송지원의 직업과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한 인간의 마음속 소용돌이를 읽어낼 준비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남파공작원과 전직 국정원 팀장의 목소리가 아닌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본인들도 선뜻 ‘주어진 역할로서의 자아’와 ‘내면의 자아’를 구분하지 못한다. 농부가 준 씨암탉을 능숙하게 요리하여 닭백숙을 만들어낸 송지원. 그가 만든 닭백숙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이한규. 늘 싸구려 햄버거를 비롯한 각종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이한규는 송지원의 찰진 손맛에 배인 사람 냄새를 맡고는 자신이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집에서 해주는 음식’에 대한 향수를 맛본다. “토종 씨암탉. 맛있다. 누가 해주는 음식. 오랜만이네.”  



   결코 닮은 데라곤 없어 보이던 두 사람의 영혼. 그런데 서로의 내심을 흘깃흘깃 엿보는 두 사람의 눈빛은 언젠가부터 조금씩 닮아간다. 송지원은 가족은 물론 조직사회에서도 버림받은 이한규를 바라보며 저 고독한 표정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한규도 마찬가지다.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당의 지원은 물론 그림자와도 연락이 끊긴 송지원을 바라보며 이한규는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진다. 저 얼굴. 저 얼굴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얼굴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바로 그것이다. 나밖에는 사랑할 사람이 없는 내 얼굴이지만 결코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없는 내 얼굴. 언제나 내심을 숨겨야 하기에 진짜 자연스럽고도 솔직한 표정이 어떤 것인지도 오래전에 잊어버린, 나 자신조차 낯선 내 얼굴.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머물며, 우리 자신의 반영만을 볼 뿐이고(……) 우리는 자신의 외양이 반영된 상은 보지만, 외양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한다. 외양은 나의 모든 것을 포함하지 못하며, 따라서 나는 거울 앞에 있는 것이지 그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 실제로 거울 앞에서의 우리의 위치는 항상 어느 정도 허위적이다. (……) 바로 여기서 우리가 거울 속에서는 보지만 실제 삶에서는 드러내지 않는 독특하고도 부자연스런 얼굴 표정이 나타난 것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63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맨손체조 2010-03-0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군가의 요리, 그 음식으로 맺어진 인연만큼 징한 것도 없는 것아요. 몸에서 기억해내는 그 달콤한 기억때문에 가끔 사단이 나기도 하죠^^*
 


 스포일러 주의!!


 영화 <의형제>와 미하일 바흐친 ⑦


 7.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동안 (1)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감각이 바뀌면서 현실이 무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마련인데, 이를 두고 십자가의 성 요한은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다. 모든 성인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해 그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이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다. 하지만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을 경험한 그 다음 순간, 모든 성인들은 감각적 현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이 감각적으로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게 덧없을 뿐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져야 할 텐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더 그 감각적인 생생함을 즐기게 되니 놀라운 일이다. 
 -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2007, 42쪽.

 
   

  



   “공작금 끊겨서 생계형 간첩 된 애들. 지금 취업난에, 알바자리 찾느라 난리라던데.” 그림자와 헤어진 후 송지원도 이렇듯 물적 토대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막노동에 몸을 던져야 하는 처지였다. 이한규는 도망간 베트남 처녀를 찾는 일로 건당 200만원에서 400만 원가량의 돈을 벌며 이혼한 아내에게 딸 윤지의 양육비를 보내고 있다. 송지원은 북한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낯선 남한에서 생계를 감당해야 할 뿐 아니라 북한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아내와 딸을 데려오기 위해 거액의 자금을 필요로 하는 처지다. 그들은 지금 저마다의 절박함 때문에 타인의 절박함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송지원은 이한규에게 고용되어 베트남 처녀를 잡아오는 ‘비인간적인’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길을 찾으려 한다. 

 

   실종된 베트남 여인을 찾던 이한규는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고스톱을 치면서 할머니들을 구워삶아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한다. 할머니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함구하고, 이한규는 오늘은 이렇게 공치는구나 싶다. 이때 송지원과 베트남 여인이 나란히 이한규 앞에 나타난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오는 베트남 여인을 보며 이한규는 놀란다. “어떻게 한 거야?” 송지원은 보일 듯 말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설득했죠. 인간적으로.” 이한규의 비인간적인 작업 방식에 대한 가벼운 풍자가 담긴 송지원의 대사다. 한방 맞은 이한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그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냉혹한 남파 공작원 송지원의 빈틈없는 표정의 갑옷 사이로 언뜻 비치는 ‘감성의 틈새’를 발견한다. 
 


   송지원은 이한규가 여전히 국정원의 팀장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활동 정보를 자세히 보고하면 그림자의 신뢰를 다시 얻고 끊어진 ‘당’과의 접촉도 다시 시작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이한규의 유능한 피고용인의 연기를 해내면서 동시에 이한규의 각종 신상 정보를 이메일을 통해 보고하기 시작한다. 그가 그림자에게 보내는 보고서는 ‘참수리 7호 보고서’다. “국정원 3팀장 이한규. 흥신소를 가장한 업무 반복. 딸이 있고, 이혼했음. 특이사항 햄버거.” 양주를 먹을 때조차도 싸구려 햄버거를 안주 삼아 씹어 먹는 이한규의 서글픈 식습관은 송지원의 눈에 ‘특이사항’으로 보였던 것이다. 늘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햄버거로 대충 허기를 모면하는 이한규의 식습관은 송지원의 연민을 자극한다. 그들은 서로의 숨 막히는 역할 가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서로의 맨얼굴과 상처 입은 속살을 훔쳐보며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밤이 되면 서로를 향해 단단히 무장하고 있던 심리적 가면이 반쯤은 벗겨진다. 특히 한쪽이 잠들 때쯤이면 그들은 자신의 가면을 벗고 자신도 모르게 벗겨진 저쪽의 가면을 바라보며 더욱 쓸쓸해진다. 잠들었을 때. 우리는 거울 앞에서처럼 좀더 ‘마음에 드는’ 자신의 표정을 지어보일 수도 없고,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을 때의 긴장감도 사라진다. 서로의 잠든 얼굴을 슬며시 훔쳐보며 그들은 자신이 미처 단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숨은 얼굴을, 상처가 생겨도 털어놓을 사람조차 없어 외로움으로 점점 굳어가는 서로의 얼굴을 발견한다. 송지원이 북한을 향해 보내는 편지는 늘 ‘unread’ 상태로 쌓여만 간다. 그가 보내는 편지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소통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완벽히 혼자다. 그는 지금 존재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정말 혼자일까. 
 


   

   
 

 작가는 자신 밖에 위치해야 하며, 우리가 실제로 우리 자신의 삶을 체험하는 차원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체험해야만 한다. (……) 작가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타자가 되어야 하며, 타자의 눈을 통하여 자신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사실, 삶에서도 우리는 매순간 이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타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하며, 타자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의식에 대해 경계이월적인 요소들을 이해하고 고려하려고 노력한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41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lsend 2010-03-0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존재의 가장 어두운 밤. 영혼의 통과의례 같은 거군요!^^
 


 스포일러 주의!!


영화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 ⑥
  

 

6. 얼굴 위에 새겨진 이야기의 우주 (3) 


 송지원 : (도망간 베트남 처녀를 잡아오는 길. 이한규가 그녀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저기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이한규 : 한 번 잡은 사람 또 도망가면 그다음엔 대책이 없어.
 송지원 : 차가 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도망갑니까? (……)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저 사람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인간적으로 합시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버릴 정도로 깊이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아무리 사랑해도 가닿을 수 없는 존재의 견고한 벽을 느끼곤 한다. 그건 우리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의 본성일 것이다. 사랑은 원래 아무리 해도 부족하게 느껴지게 마련이고 사랑을 통해 타인의 벽은 오히려 명징하게 인식된다. 사랑은 결핍을 통해 더욱 절실하게 인지되고 단절을 통해 더욱 깊어가는 감정인 것 같다.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할 수 없고, 반대로 타인을 사랑하듯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어쩌면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에는 조금씩 나르시시즘적 계기가 깃들게 마련이지만 타인을 향한 사랑에는 자기애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 관여한다. 바로 타인과의 스킨십, 타인의 몸을 만지고 입맞추고 부둥켜안는 감각이다. 
 

                  로댕의 <키스>, 1886

   바흐친은 이 스킨십이야말로 우리가 타자의 존재를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등 뒤에서 우리를 포옹할 수 없으며, 스스로의 입술에 입맞출 수 없는 존재다. 아마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타인이 자신의 몸을 만지고 자신이 누군가의 몸을 만지는 순간의 쾌락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남녀관계만이 아니다. 타인의 존재를 느끼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를 ‘만지는 것’만큼 확실한 길이 없지 않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이나 악수 같은 가벼운 스킨십을 통해서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소통한다. 누군가의 체온과 살결을 느끼는 일은 그에 대한 인적사항이나 백 마디 설명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나는 자신을 사랑하듯이 가까운 이를 사랑할 수 없으며, 더 정확하게는, 가까운 이를 사랑하듯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만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보통 행하는 모든 행위들의 총합을 그에게 전이하는 것뿐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82쪽.  
 
   


 

   국정원에서 버려진 이한규와 그림자에게 버려진 송지원.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이한규는 ‘인터내셔널 태프스포스’라는 사람 찾기 회사를 차렸고 둘의 첫 대면은 라이따이한 출신의 국제결혼 브로커를 잡아 현상금을 타려는 이한규가 곤경에 처했을 때 일어난다.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들을 수하로 거느리는 라이따이한은 자신을 잡으려 하는 이한규를 ‘처리’하려고 하지만, 마침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송지원의 도움으로 이한규는 위기를 모면한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모를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서로를 향한 ‘접선’을 시도한다. 둘은 서로에게 속삭이는 중이다.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안다고. 이한규는 송지원을 이용해 그림자를 비롯한 간첩조직을 엮어내어 거액의 현상금을 타내려 하고, 송지원은 이한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함으로써 그림자와의 접선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한규는 송지원의 뛰어난 무술 실력과 총명함을 무기 삼아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자 한다는 핑계로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기로 한다.  




  이한규와 송지원 두 사람이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 추격자와 피추격자 사이의 살벌한 주종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두 사람의 어색한 동거 직후부터 시작된다. 업무 첫날부터 송지원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고분고분 사장님의 명령을 따르는 충실한 피고용인과는 거리가 멀다. 도망간 베트남 처녀를 잡아 ‘가정의 평화’를 찾아주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임무라고 설교하는 이한규는 베트남 처녀에게 수갑까지 채워 자신의 ‘사업’에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
  송지원은 업무 첫날부터 고용주의 사업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적으로 합시다.” 그는 깍듯한 존댓말도 편안한 반말도 아닌 중립적인 청유형을 써가며 이한규와 자신의 최소한의 동질성(우리 모두 ‘인간’이라는!)에 교묘하게 호소한다. 목소리만 컸지 본래 모질지 못한 이한규는 송지원의 단호한 태도에 놀라 얼떨결에 송지원에게 수갑 열쇠를 넘겨주고 만다. 그들의 ‘인간적 접촉’은 그렇게 시작된다. 두 사람은 같은 집과 같은 자동차와 같은 밥그릇과 같은 변기를 공유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너무 많은 인간적 접촉’의 시간을 쌓아간다. 


   
 

결국엔 오직 타자만을 껴안을 수 있고 사방에서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이며, 오직 그의 경계만을 사랑스럽게 매만질 수 있는 것이다. 타자의 연약한 유한성, 완결성, 그의 이곳-현재의 존재-이 모든 것은 나에 의해서 내적으로 이해되며, 말하자면 나의 포옹으로 형성된다. (……) 나 자신의 입술은 오직 타자의 입술에만 닿을 수 있으며, 오직 타자에게만 나의 손을 올려놓을 수 있으며, 타자를 적극적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고, 그의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으며, 그의 존재의 모든 구성적 특징 속의 그를 덮어줄 수 있으며, 그의 육체와 그의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이다.
 - 미하일 바흐친, 김희숙 · 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도서출판 길, 2007, 74~7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니모 2010-03-0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댕의 키스를 여기서 보다니, 반가워라^^

홀릭 2010-03-0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적으로 합시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