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⑪

 

11. 슬픈 히트상품, 노스탤지어…… (2)  

네이티리 : (어머니이자 부족의 샤먼인 모앗을 소개하며) 우리의 차히크야. 에이와의 뜻을 해석하시지.
모앗 : (제이크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가득 찬 잔을 채울 순 없어.
제이크 : 전 빈 잔이에요.


   
  나는 어떤 주술사의 집을 함께 썼다. ‘바리(주술사’는 하나의 특별한 범주에 속하는 인간으로 물리적 우주나 또는 사회적 세계의 어느 편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은 이 두 가지 계급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하는 자라 하겠다. (……) ‘바리’는 비사회적 존재이다. 그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영혼들과 개인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특권적인 존재이다. 예를 들면 그가 혼자서 사냥을 나가면 초자연적인 도움을 언제든지 얻을 수가 있었다. 또 그는 자기 뜻대로 동물로 변신할 수도 있고, 예언의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질병의 비밀도 알고 있었다.
-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997,  227쪽.
 
   




   제이크의 ‘배신’을 눈치 챈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와 원래 인간 사이의 ‘링크’를 끊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비족 모두가 모인 부족회의에서 다급하게 부족의 위기를 알리고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속죄를 하느라 감정이 북받쳐 있던 제이크. 그는 아직 자신의 입장을 미처 설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네이티리를 비롯한 모든 나비족 사람들에게 원망과 분노만 산 채 링크가 끊겨버리고 만다. 아바타 조종사와의 링크가 끊어져버린 제이크는 마치 산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제이크가 인간들의 스파이라는 것을 알아챈 네이티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제이크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제이크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는 나비족에게도 인간사회에서도 철저한 배신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바타와 마음대로 링크할 수 없게 된 제이크는 그레이스 박사의 판도라 연구팀과 함께 ‘배신자들’로 낙인 찍혀 감금된 신세가 되어버린다. 과학을 통해 판도라에 다가간 그레이스, 나비족을 통해 배운 샤헤일루를 통해 판도라에 다가간 제이크. 그 두 사람의 종착역은 같았다. 그들은 아무리 아바타와의 기계적 ‘링크’를 제거해버려도 결코 나비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어져버린 자신들의 마음과 투명하게 마주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제 나비족도 판도라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구원의 손길이 뻗쳐 온다. 공군 여전사 중 한 명인 매력적인 트루디가 멋진 변심을 한 것이다. 평화로운 판도라에 폭탄을 투하하며 “바퀴벌레는 이렇게 죽이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는 쿼리치,  나비족의 집단학살을 진심으로 즐기던 쿼리치 밑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난 이러려고 지원한 게 아냐!” 트루디는 ‘배신자들’에게 식사를 가져다주고 “배신자에겐 스테이크도 아까워!”라고 뇌까리는 척하면서 함께 온 식사당번을 기절시킨 후 제이크와 그레이스 일행을 탈출시킨다. 낌새를 알아챈 쿼리치는 트루디가 조종하는 헬리콥터에 수없이 총탄을 퍼붓고 그 사이에 그레이스가 복부에 총탄을 맞고 만다.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제이크는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나비족에게 도움을 청해보자고 이야기한다. 그레이스는 자신은 과학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동화 같은 이야기란 나비족의 ‘주술사’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레이스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판도라를 사랑하지만 나비족의 주술적 믿음에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레이스는 이제 목숨에 대한 미련조차 벗어버린 얼굴이다.

   제이크의 아바타는 거대한 판도라의 숲 속 어딘가에 버려져 있고 그레이스의 아바타는 나비족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상태다. 제이크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진정 갖고 싶은 아바타의 육체를, 아니 나비족의 육체를 찾아 도움을 구해야만 한다. 그전에 우선 네이티리를 비롯한 나비족 모두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제이크는 믿는다. 그는 그레이스보다 훨씬 더 ‘나비족-되기’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는 나비족의 믿음을, 나비족의 주술사 모앗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무런 거짓 없이 나비족의 삶에 ‘링크’되어 있음을 믿기 시작했다.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완벽히 전도된 것이다.  


   
  인간이 살고, 일하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되, 자신이 이 세상에 항상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지구가 언젠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때에는 인간의 작업 중에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 우리는 실재의 깊은 본성은 재현의 모든 노력을 벗어나 있음을 깊이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칸트입니다. (……) 과학적 지식은 우리 인간이 하찮은 존재임을 가르쳐줍니다.
인류가 사라지고,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우주의 운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내 입장이 철저한 회의주의라고 간주하겠지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겉모습만 맴돌도록 운명 지어졌다 하더라도 어느 지점에 멈추어서 어디에 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현명함을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디디에 에리봉· 레비스트로스 대담,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246~247쪽.   
 
   
 

   
 

  인간이 살고, 일하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되, 자신이 이 세상에 항상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지구가 언젠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때에는 인간의 작업 중에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 우리는 실재의 깊은 본성은 재현의 모든 노력을 벗어나 있음을 깊이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칸트입니다. (……) 과학적 지식은 우리 인간이 하찮은 존재임을 가르쳐줍니다.
인류가 사라지고,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우주의 운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내 입장이 철저한 회의주의라고 간주하겠지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겉모습만 맴돌도록 운명 지어졌다 하더라도 어느 지점에 멈추어서 어디에 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현명함을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디디에 에리봉· 레비스트로스 대담,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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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10-02-0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서 서성거리고 있지? <시네필 다이어리> 잘 보았어요. 책으로 보니 또 다른 느낌. 2탄을 기대합니다.

펀펀 2010-02-0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트루디...너무 멋졌어요..."너만 무기 있는 거 아니거든?" 할 때!^^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⑩

 

10. 슬픈 히트상품, 노스탤지어…… (1) 

  제이크 : (영혼의 나무 앞에서 기도하며) 에이와님. 정말 계신다면 저희를 도와주세요. 인간들이 대지를 파괴해버렸고 이젠 우리를 파괴하려 해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네이티리 : (연민과 사랑이 교차하는 눈으로 제이크를 바라보며) 대지의 어머니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세계의 균형을 지키실 뿐이시지.  


  

   
  언젠가 정부 당국에서 소총과 권총을 나누어 주었지만 인디언들은 그것을 집 안에 걸어놓기만 했다. 대신에 그들은 사냥을 할 때 총기류라고는 결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활과 화살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당국의 노력에 의해 날치기식으로 덮어 가리워졌던 예전의 생활방식이 재차 주장되었다. 황폐한 부락에서는 지붕들이 차례로 먼지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인디언들은 숲 속의 오솔길 사이로 줄을 지어 다녔다.
 우리들은 보름 동안이나 계속하여 말을 타고 숲 속을 헤쳐 나갔다. 그런데 숲이 너무 방대하고 길을 잘 알 수가 없어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척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어둠 속에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가 타고 간 말들은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나무들이 햇빛을 가로막는 어둠 속에서도 조금도 길을 잘못 찾는 법이 없었다.
 -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997년, 156쪽.
 
   
 




   <아바타>에는 최첨단의 미래와 태고의 과거가 치열하게 공존한다. 나비족은 원시부족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담뿍 담긴 반인반수의 이미지이지만, 그 이미지를 상상 속에서 복원한 힘은 첨단 과학의 테크놀로지다. <아바타>를 보며 나는 오래 전 과학의 이름으로, 문명의 이름으로 짓밟은 원시문명을 최첨단 과학의 테크놀로지로 복원하고자 하는 헐리웃 대자본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인류는 사력을 다해 인디언과 아마존의 문명을 파괴해놓고 이제 와서 잃어버린 원시문명의 잔해를 되살려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원시문명을 향한 노스탤지어는 하나의 거대한 전 지구적 산업이 되어가는 것 같다. 대중의 원시문명에 대한 향수는 ‘돈’이 된다. 그 집단적 향수에 기생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급증한다. 그런데 <아바타>의 대담성은 그 모든 상업적 계산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중의 뇌 구석구석을 스캐닝한 것처럼, 대중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포착해낸다는 점이다. <아바타>는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와 미래를 향한 노스탤지어, 그 사이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 우리는 단지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또한 그리워한다. 지금 여기의 삶밖에 누릴 수 없는 인간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에도 참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잃어버린 지도 모르면서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는 아련한 감정. 그 모호성이야말로 노스탤지어가 서식하기 딱 좋은 심리적 환경이 아닐까. 



   노스탤지어는 ‘단절’에 대한 공포감이기도 하다. 노스탤지어는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 과거 혹은 미래와 ‘나’의 육체가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서글픈 확신 때문에 생겨난다. 그런데 <아바타>의 나비족들은 자신들의 노스탤지어를 매우 지혜로운 방식으로 해소한다. 그들은 영혼의 나무를 통해 과거의 조상들이 살았던 삶의 소리와 교신한다. 동물과 인간, 과거인과 현재인,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샤헤일루’(교감)를 시도한다.

   그들은 세상에 한 번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단지 죽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고 믿는다.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뿐 아니라 현재인과 과거인까지도 서로 교감하고 있다. 아무것도 진정으로 ‘사라지지 않는’ 세계이므로 때늦은 사후약방문식 노스탤지어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네이티리는 제이크에게 영혼의 나무를 통해 조상의 소리를 들려주며 속삭인다. “우리 조상의 소리. 오래된 시간의 소리야.”




   네이티리의 재능이 샤헤일루(교감)라면, 제이크의 재능은 미메시스(모방)다. 동물과 식물은 물론 물과 바람과도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네이티리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뜨거운 샤헤일루를 실천한다. 제이크는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몸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비록 다리를 쓸 수 없지만 불구가 되어버린 그의 신체에는 아직 치열한 육체적 단련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바타의 육체, 아니 나비족의 육체를 입자마자 희미하게 남아 있던 그 ‘육체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이 아니라 기계와만 교신하는 쿼리치 대령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제이크의 몸은 뛰어난 학습능력을 지녔고 그 핵심은 바로 사물의 이미지와 정신을 모방하여 자기화하는 ‘미메시스’의 능력인 것이다. 그가 짧은 시간 안에 나비족의 일원이 되기 위한 혹독한 통과의례의 문턱을 뛰어넘는 비결도 바로 이 걸출한 미메시스 능력에 있다. 그는 네이티리의 샤헤일루 능력을 모방함으로써 나비족은 물론 판도라의 생태계와 교감할 수 있는 막강한 ‘몸의 지식’을 습득하게 된 것이다.   



   
 

   모를레 신부는 18세기에 이렇게 썼다. “자연은 어머니 품(또는 연인의 품) 안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그 순간조차 아름다움은 지속되지 않는 법이다. 아름다움은 간혹 한 찰나에 불과하다.” 사진은 바로 이 기회를 잡았다. 사진은 그것을 보여준다. 순간성, 바로 그것이다. ‘눈속임 그림’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 아니 잘 못 보는 것, 또는 그저 스치듯 보는 것. 그래서 이제는 영원히 보게 될 것을 잡아내고 보여준다.
 - 레비스트로스, 고봉만 류재화 옮김, <보다 듣다 읽다>, 이매진,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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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send 2010-02-0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샤헤일루와 미메시스. 어쩐지 둘이 잘 통하는 것 같네요... 발음도 엄청 이쁘고^^

맨손체조 2010-02-05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스탤지어는 단절에 대한 공포이다! 그렇죠. 귀환하지 못하는 자의 애도이기도 하구요.

니모 2010-02-07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막강한 몸의 지식, 미메시스~! 머리로만 살다보니 우린 그걸 잃어버렸나봐요..
 


 시네필 다이어리 출간 기념 이벤트  

당첨자 발표!

 

 



당첨자 발표

먼저 참여한,
슈밀크, linasaga 님 축하합니다. 



정답을 맞힌
모모momo, 도란도란, 태엽, cynical, 만삭, 찐빵 님 축하합니다.
 

 

<시네필 다이어리> 출간 이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 사인본 책은 다음 주 중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재미있게 읽고, 서평도 부탁드립니다. 
 

알라딘에 주문기록이 없거나, 비로그인 상태에서 댓글을 다신 분들은, 이 페이퍼 하단에 비밀댓글로 도서를 받을 주소를 남겨주세요. 2월 19일까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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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펀 2010-02-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축하드립니다. 책이 진짜 멋지게 나왔네요~!

o 2010-02-05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받고 싶었는데... 당첨되신 분들 축하합니다~

cynical 2010-02-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⑨

 

9.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줄게 (3)


 네이티리 : 이크란은 평생 동안 교감이 이루어진 단 한 명의 전사와 날아가는 새야. 진정한 전사가 되려면 이크란과 전사가 서로를 선택해야 해.
 제이크 : 언제?
 네이티리 : 때가 되면……. 



 제이크 : (네이티리 앞에서 날렵하고 확신에 찬 동작으로 짐승을 사냥하며, 죽어가는 짐승을 향해 속삭인다.) 미안해……. 에이와 여신이 네 영혼을 거둘 거야. 네 몸은 여기 나와 이곳 사람들의 일부가 될 거야.
 네이티리 : (대견하는 눈빛으로 제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 때가 되었구나. 




   제이크는 아름다운 네이티리의 노란 눈동자를 통해 이전에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바라본다. 판도라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공격적인 호기심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던 제이크는 조금만 낯선 동물이라면 거침없이 총을 겨누곤 했다. 네이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샤헤일루’(교감)라는 말이 있다. 제이크는 네이티리를 통해 언어가 아니어도 온몸으로 자연과 교신할 방법을 배운다. 네이티리는 나비족에게 가장 친밀한 동물인 ‘팔레이’를 ‘교통수단’이 아니라 ‘그녀’라고 표현하며, 인간의 머리카락을 통해 동물과 ‘샤헤일루’를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녀의 심장 박동을 느껴봐. 그녀의 숨소리를 느껴봐. 그녀의 강인한 다리를 느껴봐.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이제 ‘때’가 왔다. 제이크에게는 드디어 오직 그에게만 교감하는 멋진 이크란이 생겼고, 나비족은 제이크를 완전한 ‘형제’로서 인정한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삶이라는 거대한 거울을 통해 한 번도 비춰보지 못한 자신의 전신을 비춰본다. 인간에게 알려진 우주에서 가장 혹독한 행성이었던 판도라는 이제 사랑하는 네이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더없이 아름다운 삶의 터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제이크는 아바타 프로그램이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긴 하지만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나는 지금 과학을 하고 있다(I'm doing science)’라고 믿고 있었다. 그 과학의 일부가 바로 아바타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제이크는 이제 더 이상 ‘아바타 드라이버’에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임무는 아바타를 조종하며 느낀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기록’할 수도 ‘보고’할 수도 없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영혼의 파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죽인 동물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한없는 연민과 고마움을, 자신이 사랑하기 시작한 소녀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아바타 프로그램의 ‘과학적’ 보고서에 담을 수는 없었기에. 
 
 

  

   
  레비스트로스는 남북아메리카 양 대륙에서 기록된 수천 종류의 신화를 변형군으로서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하나의 신화가 마치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처럼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커다란 전체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마존의 인디언의 신화가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마침내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로 모습을 드러내는 식입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005, 동아시아, 55쪽.
 
   




 
   제이크는 네이티리와 아름다운 ‘첫날밤’을 보낸 후 숲 속에서 잠든다. 제이크가 아직 아바타와 ‘링크’도 시작하지 않은 새벽에, 쿼리치 일당은 예고도 없이 판도라 행성에 선제공격을 가한다. 아바타와 링크가 되지 않아 눈도 못 뜨고 몸도 마비 상태인 제이크. 영문을 모르는 네이티리는 필사적으로 제이크를 깨우려 하지만 제이크는 아직 그레이스 박사와 ‘인간의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다. 가까스로 링크가 되자마자, 거대한 포크레인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아름다운 ‘영혼의 나무’를 바라본 제이크는 분노에 치를 떤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포크레인 위로 올라가 카메라(이제는 ‘적’이 되어버린 인간들의 ‘눈’의 역할을 하는)를 부숴버린다. 제이크가 더 이상 아바타 조종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아바타 그 자체, 아니 나비족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동료에게는 ‘배신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야영자들이여, 파라나(브라질 남부에 있는 주)에 캠프를 쳐보시오. 그곳이 아니라면 캠프를 치지 말도록 하시오. 당신들이 지녔던 기름기 많은 종이들이나 빈 맥주병, 그리고 내버린 깡통들을 유럽의 마지막 흔적으로서 남겨 두시오. 그곳은 당신들이 텐트 치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개척 지역을 벗어나거나 그곳이 황폐해질 때까지는 격류들이 자유스럽게 흰 거품을 일으키며 현무암으로 된 자줏빛의 산허리로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시오. 만지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차가운 화산성 이끼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도록 하시오. 그리고 당신이 사람들이 살지 않는 초원을 처음 발견하였거나, 안개가 몹시 짙은 침엽수림의 숲속에 가까이 가게 되었을 때는 결코 더 이상 들어가지 마시오.
 -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역,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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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키펀펀 2010-02-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이티리의 눈동자에 다이빙 하고 싶은 늦은 오후입니다~ 파란 피부에 노란 눈동자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신인류의 창조 테크놀로지에 혀를 내두를 뿐^^

니모 2010-02-0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린 요새 누구의 거울도 되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서로의 눈길을 마구마구 반사, 반사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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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⑧

 

8.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줄게 (2)


 

  파커 : 도대체 나비족이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어. 학교도 지어주고 영어도 가르쳐 주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고.
 그레이스 : 그들에게 총질을 해대니까 그렇죠!
 쿼리치 대령 : (……) 파란 원숭이놈들 마음을 움직일 당근을 알아봐!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채찍을 쓸 수밖에!


   
  인디언의 동물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특히 동물을 죽이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습니다. 이때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의와 성실함을 갖춘 태도가 요구됩니다. 이때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의와 성실함을 갖춘 태도가 요구됩니다. (……) 동물을 공격하기 전에 사냥꾼이 끊임없이 변명하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동물이 지금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는 공격을 납득해주어서 서로의 ‘양해’ 하에 죽는 것이 바람직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대등하게 대결해 납득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동물이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계속 설득하는 겁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 2005, 116~117쪽. 
 
   




   아메리칸 인디언의 생존을 위협한 것은 단지 개척자들의 총칼만이 아니었다. 개척자들이 ‘선물’의 명목으로 주었던 모든 것들, 설탕과 커피를 비롯한 각종 문명의 기호품들, 특히 ‘위스키’야말로 인디언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위스키는 자연과 함께 살아오던 인디언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저항의 감각마저 마비시켰다. 알코올중독은 오랫동안 자연과 더불어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인디언 부족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식민주의자들이 ‘원조’의 명목으로, 혹은 ‘외교’의 명목으로 제공하는 모든 ‘선물’들은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었다. 물질에 대한 필요로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되돌리기 힘든 영혼의 중독성. 

 

   <아바타>의 나비족은 결코 ‘하늘의 사람들’(인간들)이 주는 미끼에 중독되지 않으려 했다. 인간들이 나비족에게 제공하려 한 미끼는 학교, 도로, 병원 같은 문명의 상징들이었다. 그런 ‘원조’는 나비족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나비족은 ‘원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그림자를 간파했다. 그들은 자연과 나비족, 그 둘만으로도 충분했던 판도라의 삶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책임자 파커와 쿼리치 대령은 ‘언옵타늄’을 얻을 수 있다면 나비족의 삶의 터전을 얼마든지 빼앗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한 협상기한 3개월은 거의 끝나가고, 이제 정말 당근이 아닌 채찍을 휘두를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잘 이해하게 된 제이크는 점점 더 나비족의 생존 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제이크는 나비족과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고 느낀다.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금-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오랫동안 판도라의 생태계를 연구해왔던 그레이스 박사 또한 나비족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녀는 나비족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교사이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채찍’도 ‘당근’도 아닌 ‘마음’으로 나비족에게 다가가야 함을 알고 있다. 그레이스는 과학의 이름으로 판도라를 연구하기 시작했지만 나비족을 통해 과학의 이름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신성한 나무’에 깃든 힘을. 그것은 단지 미신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거대한 과학임을. 판도라에서는 더 이상 차가운 과학과 뜨거운 신화가 분리되지 않았다.




 그레이스 : 그 나무들은 신성한 나무예요. 미신이 아니에요. 숲의 생태학을 말하는 거예요. 나무들의 뿌리가 전기화학적으로 소통하지. 한 그루의 나무가 1만 그루와 연결된 거예요. 판도라에는 1조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들은 인간의 두뇌보다 더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종의 네트워크죠. 나비족은 이 나무들의 데이터와 메모리를 이용할 줄 아는 거예요. 진짜 자원은 땅속에 있는 언옵타늄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언제나 존재하는 자연 속에 있다고요.
 파커 : (온 마음을 다해 말하는 그레이스의 눈빛을 조롱하며 차갑게 뇌까린다.) 그건 그냥 평범한 나무일 뿐이야. 



   파쿼와 쿼리치 대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간은 ‘평범한 나무’로 보이는 신성한 나무의 힘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연을 에너지원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고정된 에너지원’을 소유하고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네이티리는 끊임없이 제이크를 가르친다. 그런 게 아니라고. 우주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우리는 잠시 그 에너지를 빌려서 쓰는 것일 뿐. 모든 에너지는 잠시 빌린 것이며 언젠가는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제이크는 네이티리의 가르침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다. 동물들을 단지 먹기 위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육신을 빌려 잠시 우리는 이 땅에 스치듯 살아갈 것이고 그들이 돌아갈 곳이 에이와 여신의 품인 것처럼, 인간도 언젠가는 에이와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라고.  



   
 

근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유독 곰에 대해서는 총의 사용을 금지하는 사냥꾼들이 많았습니다. 전통적인 활이나 화살의 사용을 권했으며, 때로는 쇠로 만든 화살촉마저 금지해 신석기시대처럼 돌로 된 화살촉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무기에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냥꾼과의 사이에 매우 강력한 공감에 의한 유대관계가 형성됩니다. 무기가 생명이 있는 물체와 같다면 동물들도 그것을 납득하고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여하튼 옛날에는 사냥이 위엄을 갖춘 일종의 결투였던 셈입니다. 왜냐하면 언어의 원초적인 형태가 시였으며 교환의 시작이 증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상태에서는 모든 싸움이 결투에 의해 정화되어가기 때문입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 2005,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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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2010-02-0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판도라에서는 더 이상 차가운 과학과 뜨거운 신화가 분리되지 않았다!

qlsend 2010-02-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넌 강한 영혼을 가졌어..... 하면서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But you are stupid!'하고 소리를 버럭 지를 때 네이티리 정말 귀여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