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⑥

 

6. 코라(chora) : 내가 버린 나의 가능성들의 총집합 (2)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그러한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도 최소한 이 괴물은 신비스럽잖아요?
 - 영화 <미녀와 야수> 중에서, 야수를 죽이려는 주민들의 목소리 
 
   

   슈렉은 동키와 함께 피오나 공주를 구하러 떠난다. 이 모험의 첫번째 난관은 거대한 용암 위에 펼쳐진 흔들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고소공포증이 도진 듯 벌벌 떠는 동키를 보며 슈렉은 우리가 함께이니 괜찮다고 말해준다. “동키, 내가 바로 옆에 있잖아, 걱정 마. 천천히 건너가면 되는 거야. 밑을 보지 말구.” 아래를 쳐다보지 말라는 슈렉의 경고를 어긴 동키는 두려움에 질려 더 이상 못가겠다고 버티고, 슈렉은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동키가 오히려 다리를 먼저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키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일이, 슈렉과 함께라면 가능해진다. 

   마침내 성에 도착한 슈렉과 동키는 흩어져서 용과 공주를 찾는다. 공주가 있는 계단을 찾던 동키는 오히려 거대한 용을 만나고, 흉측한 용이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던 동키는 뜻밖에 용이 ‘핑크빛’ 얼굴을 가진 여성임을 알게 된다. 용이 거대한 이빨을 선보이며 동키를 금방이라도 꿀꺽 삼킬 태세를 취하자 동키는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을 궁리를 한다.



동키 : 동키 : 오우, 이빨이 정말 크시네요. 이빨이 눈부시게 하얗고 반짝거리네요. 자주 들으시겠지만 이빨이 정말 하얗고, 미소도 정말 눈부시고요. 그리고 민트 냄새도 나는 것 같아요. 저…… 그리고…… 당신도 잘 알듯이…… 당신은 여자 용이시군요. 오우, 정말 여성다운 아름다움이 가득해요. 정말 아름다우세요.



   동키는 살아남기 위해 과장된 연기력을 발휘한 것이지만 우리의 핑크 드래곤에게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보는 ‘칭찬’이다. 핑크 드래곤은 동키를 잡아먹으려던 시늉을 그치고, 갑자기 기다란 속눈썹을 우아하게 깜빡이며 그녀의 ‘여성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칭찬은 그녀도 몰랐던 그녀 안의 여성성을 발굴해준 셈이다. 슈렉은 동키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동키의 코라를 일깨우고, 동키는 핑크 드래곤의 여성성을 발굴함으로써 드래곤의 코라를 일깨운다. 이제 피오나가 슈렉의 코라를, 슈렉이 피오나의 코라를 일깨울 차례다.



슈렉 : (드디어 공주를 찾았다는 표정) 당신이 피오나 공주님인가요?
피오나 :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구해줄 용감한 기사를 기다리고 있어요.
슈렉 : (무뚝뚝하게) 그렇군요, 갑시다!
피오나 : 잠깐만요, 기사님! 처음 만나는 건데 뭔가 아름답고 로맨틱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슈렉 : (피오나의 손을 잡아채어 얼른 데려가려 한다) 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피오나 : (자신과 함께 계단을 뛰어내려 가려는 슈렉에게 놀라) 잠깐만요? 뭐하시는 거예요? 저를 안아든 다음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백마에 올라타야죠! 이 순간을 추억에 남겨야 해요! 시를 낭송해 주세요! 발라드! 소네트! 아무거나!
슈렉 : (귀찮다는 듯이) 싫어요!
피오나 :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구출해 준 기사의 이름이라도 알려주실 수 없어요?
슈렉 : 슈렉입니다.
피오나 : (아직 살아 날뛰고 있는 용을 바라보며) 아직도 용을 안 죽였어요?
슈렉 : 그럴 예정이에요, 갑시다!
피오나 : 이게 아니에요! 당신이 직접 뛰어들어서 용과 싸우는 거예요! 다른 기사들은 다 그랬어요!



   피오나의 머릿속에는 동화적 환상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자신을 구하러 오는 기사는 완벽한 외모와 용감한 심성을 지닌 왕자님이어야 하고, 왕자님은 자신을 구하기 전에 미리 용을 무찔러야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기사님은 투구를 벗어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자신에게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주며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게다가 백마 탄 왕자님은커녕 우리의 귀하신 공주님을 몸소 두발로 뛰어다니게 만드는 얼굴 없는 기사님이라니. 왜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나의 멋진 라이프스토리가 펼쳐지지 않는 걸까, 피오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슈렉>은 디즈니 월드가 추방한 아브젝트의 부분적 귀환이라 할 수 있다. 슈렉은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처럼 다시 ‘왕자’로 돌아갈 희망이 전혀 없다. 슈렉은 괴물인 채로, 흉측한 채로, 여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슈렉은 백인이 아니며 귀족이 아니며 왕자도 아니고 꽃미남도 아닌, 그야말로 디즈니의 주인공스러운 구석이 조금도 없는 사상 초유의 캐릭터였던 것이다.

   
 

미키 마우스의 세계는 가끔 무섭기는 하지만 안전하며, 비폭력적이며, 비이데올로기적인 어린이의 세계이며 여기서 모든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어떤 디즈니 영화도 어린이에게 악몽을 꾸게 하거나 어른들이 심각하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미키의 모든 존재는 모든 이를 위한 사랑과 안전에 그 준거를 두고 있다. 그의 모험에는 어떤 철학적인 함축이 담겨 있지 않고 영화에서 언급한 것 이상의 것은 없다. 미키의 매력은 모든 것이 잘 되며, 온유한 자가 상속받을 것이며 순진한 자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안심시켜주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 로널드 오트먼Ronald Oatman, <Journal of Popular Film and Television> 24권 2호, 1996,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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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 2010-01-0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핑크 드래곤, 너무 큐트해요~ ㅋㅋ

ehdrmf 2010-01-0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릴 때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지금 와서 보면 가끔 끔찍할 때가 있죠. 미녀와 야수, 미키마우스, 라이온 킹...특히 라이온 킹에서는 내심 '스카'가 멋졌음 ㅋㅋ

바밤바 2010-01-1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현실의 과도한 낙관주의로 현실을 이겨내려는 방향성의 기저에도 로널드 오트먼의 아포리즘이 작용한 듯 하네요. 잘 읽었습니당^^
 

 



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⑤

 

5. 코라(chora) : 내가 버린 나의 가능성들의 총집합 (1)

   
 

 아브젝시옹은 ‘자기 자신’에게 ‘다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추방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주체성의 경계를 한정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앨피, 2007, 111쪽.

 
   

  아브젝시옹이 ‘나답지 않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추방하는 과정이라면, 아무것도 몰아내지 않고 품어내려는 열정, 자기를 가득 채우는 것에서 힘을 얻는 것이 바로 ‘코라(chora)’다. 코라는 단지 생성하는 모든 것들의 저장소가 아니라 모든 생성의 유모 같은 존재다. 코라의 속성은 안정감이나 균형의 유지가 아니라 불안, 불균형, 불규칙, 동요 그 자체를 끌어안는 엄청난 에너지의 파동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서로 갈등하다가도 언젠가는 화해하고, 법률과 규칙 없이도 얼마든지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었던, 환상과 현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던 곳. 아기가 ‘언어’를 배우기 이전, ‘내 똥이 더럽다’는 것을 배우기 이전, 이렇게 하면 부모님께 야단맞을 것이라는 판단을 배우기 이전의 세계. 파쿼드 영주가 동화 속 생물들을 추방하기 이전의 도시 듀록도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모든 가능성으로 충만한 곳, 코라는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들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동키 : 그러니까 처음부터 네 늪이 아니었던 걸 되찾으려고 무서운 용과 싸우고 피오나 공주를 구한다는 거야? 그런 거야? 난 모르겠어, 슈렉! 왜 그냥 오우거답게 하지 않은 거야? 오우거들이 하는 거 있잖아?
슈렉 : 그래, 모든 시민의 목을 베어서 막대기에 꽂아놓았을 수도 있었겠지. 내장을 잘라내서 피를 마실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았을까?
동키 : 아, 아닌 거 같은데…….
슈렉 : (깊은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조금은 수줍게) 너는 모르겠지만, 오우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동키 : 예를 들면?
슈렉 : 예를 들어서, 아, 그래, 오우거는 마치 양파 같은 존재야.
동키 : 양파처럼 냄새가 나?
슈렉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동키 : 양파처럼 울게 만들어?
슈렉 : (짜증난 표정) 아냐!
동키 : 햇볕을 쬐게 밖에 놔두면 갈색이 되면서 줄기가 나는구나?
슈렉 : (답답해서 버럭 화를 내며) 아냐! 층 말이야! 양파엔 층이 있어. 오우거도 층이 있어. 양파도 층이 있고. 알겠어? 둘 다 층이 있어.

   슈렉은 전에 없이 차분하게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양파의 ‘층’과 오우거의 ‘층’을 비교해서 설명한다. 관객도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홑겹’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슈렉의 다채로운 면모에 매혹된다.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비밀에 싸인 양파껍질처럼 신비롭고 난해한 무엇. 슈렉은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쉽게 파악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창조적 다중성이 ‘고립된 생활’에서는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슈렉이 계속 늪지대에서 은둔형 외톨이로만 살아갔다면 아무도 슈렉이 그토록 엄청난 재능과 매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슈렉은 아주 쉬운 방법으로(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늪을 되찾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어렵고 힘든 ‘모험’을 택한다. 이 결정은 미지의 모험 속에 깃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포착한 슈렉의 혜안이 아니었을까. 우리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들, 코라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공간과 더 많은 사람들 속으로 우리의 존재를 던질 때, 미처 발현되지 못한 우리 안의 가능성은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코라는 아직 하나의 정돈된 우주로 통일되지 않은 것이지만, 양분을 공급하는 모성적인 그 무엇이다. (……) 코라는 항상 이미 모순적이고, 동화력이 있는 동시에 파괴적이며, 이러한 이중성으로 인해 코라는 항구적인 분열의 장을 만들어 간다. (……) 언어와 무관하고 수수께끼 같으며 여성적인, 쓰인 글의 심층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김인환 역, <시적 언어의 혁명>, 동문선, 2000, 2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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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ffnfkffk 2010-01-06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의 총집합, 코라~!
 

 



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④

 

 4. ‘세균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버려지는 타자들 (2)

   
 

 내가 그녀이고, 그녀가 나인데, 어떻게 그녀를 증오할 수 있을까?
 - 줄리아 크리스테바

 
   

   내 안의 더럽고 역겹고 불쾌한 모든 것들, 그건 내 것이 아니야. 그것들만 사라지면, 난 완벽해질 수 있어. 각종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마초형 남성 파쿼드 영주는 그가 통치하는 ‘완벽한 세상’을 망치는 주범으로 동화나라의 주인공들을 지목한다. 파쿼드는 과자인형을 잔인하게 고문하며 동화나라 캐릭터들의 행방을 묻는다. “너와 이상한 요정 생물들이 내 완벽한 세상을 망치고 있다. 다들 어디 갔지?” 의리로 똘똘 뭉친 과자인형은 동화나라 생물들의 행방을 발설하지 않는다. 한편, 백설공주의 계모가 애용하던 ‘말하는 거울’을 공수해온 파쿼드는 자신의 ‘미모’가 아니라 ‘왕국’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어 한다.

   “벽에 걸린 거울아, 나의 왕국은 가장 완벽한 왕국이 아닌가?” 거짓말에 서툰 말하는 거울은 대충 얼버무린다. “그게……정확히 따지면 당신은 왕이 아닙니다. (손거울을 깨 보이며 협박하는 영주의 행동에 놀라 다급하게) 제 말은 ‘아직’ 왕이 아니라는 겁니다. 영주님도 왕이 될 수 있죠! 공주와 결혼하면 됩니다!” 거울은 ‘공주의 옵션’을 제시하며 파쿼드에게 가장 적절한 신붓감을 골라보라고 권한다.

   거울 : 공주 1은 먼 나라 왕국에서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죠. 그녀는 스시와 목욕을 좋아합니다. 취미는 사악한 언니들을 위해 요리와 청소를 하는 겁니다. 자, 신데렐라입니다! (신데렐라의 우아한 자태를 거울로 보여준다) 공주2는 망토를 입은 소녀입니다. 7명의 남자들과 함께 살지만 쉽게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죽은 듯이 차가운 입술에 키스해주면 됩니다. 보시죠! 백설 공주입니다! (백설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공주3은 용암으로 둘러싸인 성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피냐 콜라다와 비 맞는 걸 좋아합니다. 구출만 하면 되는, 피오나 공주입니다! (드디어 피오나 공주의 매혹적인 표정과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영주는 피오나 공주의 참신한 매력에 반해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피오나가 갇혀 있는 성으로 찾아가 용을 무찌르고 그녀를 구해내는 엄청난 노동은 타인에게 전가하기로 한 채. 마침 슈렉은 파쿼드 영주의 도시 ‘듀록’에 도착하여 파쿼드와 담판을 지을 참이다. 슈렉의 눈에 비친 도시 듀록은 엄청나게 깨끗하지만 왠지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동화나라의 생물들이 모두 추방당한 뒤라서 그럴까. 듀록은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처럼 음산하고 허전하기 그지없다. 슈렉과 동키를 맞이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다. “듀록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듀록은 완벽한 곳이랍니다. 마을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답니다. 줄을 꼭 지키세요. 듀록은 완벽한 곳이랍니다. 잔디를 밟지 마세요. 신발을 닦으세요. 얼굴을 씻으세요.” 환영한다고 외치면서 잔뜩 ‘금지사항’만을 읊어대는 자동인형의 기계적 합창에 슈렉은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이 도시에는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것’, ‘금지된 것’만 많은 것일까. 그런 도시는 과연 행복한 곳일까.

   파쿼드 : (원형 경기장에 모인 엄청난 군중을 향해) 용으로부터 아름다운 피오나 공주를 구출하는 영광을 가질 자는 누군가? 우승자가 실패를 하게 된다면 2등이 도전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3, 4등이 도전한다. 죽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희생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군중은 열광하지만 그 열광은 어딘지 가식적이다. 군중의 얼굴에서는 파쿼드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공포’가 서려 있다. 이때 거대한 원형경기장에 갑자기 ‘괴물’ 슈렉이 나타나자 군중은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공포에 질린 파쿼드는 괴물 ‘오우거’를 죽여버리라고 명령한다. 파쿼드는 급히 계획을 변경한다. 도전자들끼리 서로 싸워 토너먼트를 할 것이 아니라 오우거를 죽이는 자가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몰아치는 적들을 향한 슈렉의 폭풍 액션! 괴물 슈렉의 재치와 파워를 따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자 파쿼드는 또 한 번 계획을 바꾼다. 슈렉을 챔피언으로 결정한 것이다. “듀록 시민들이여! 슈렉이 바로 우리들의 챔피언이다! 축하한다, 오우거! 너는 위대한 모험에 나설 영광을 얻었다. 오우거! 날 위해서 이 모험에 나서면 늪을 돌려주겠다.” 늪을 돌려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에 슈렉은 이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로 한다. 

  크리스테바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했던 것들의 잃어버린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 잃어버린 가능성의 총체를 그녀는 ‘코라(cora)’라고 불렀고, 우리의 바람직한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역겹고 더럽고 위험한 것들을 버리는 과정을 그녀는 ‘아브젝시옹’이라 불렀다. 우리가 괴물이나 도깨비, 사악한 마녀나 끔찍한 요괴에게 공포와 매혹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 ‘아브젝시옹’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역겹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믿는 것들 또한 원래 우리 안에 존재하던 것들이었기에 우리도 모르게 그것들을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아브젝트는 원래 내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립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몰아낸 타자들이기에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원래 내 것이었기에 어딘가 매혹적이고 내가 추방한 것이기에 왠지 두려운 존재, 그것이 바로 아브젝트다.

   
     아브젝트는 금지된 욕망의 대상이 일어나는 (……) 비객관성, 결여의 장소, 매혹과 증오의 장소이다. (……) 아브젝트는 문화, 즉 ‘신성한’ 것이 정화시키고 분리시키고 추방하는 대상이므로 그 자체를 카타르시스라는 보편적인 논리 가운데 세울 수 있게 된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정신분석과 폴리스', <페미니즘과 문학>, 문예출판사, 1990,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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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sendqlsend 2010-01-0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사진이 커져서 좋네요. 영화를 보면서 강의 듣는 듯ㅋㅋ

둥이 2010-01-0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큰 tv가 좋아^^

viewfinder 2010-01-0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하하^^ 내 주변의 커다란 LCD 예찬론자들이 생각나는 군요 다른 건 몰라도 텔레비전만은 커야한다는ㅋㅋ

맨손체조 2010-01-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균 없는 세계를 만드는 파쿼드'들', 이 똥꾸 빵꾸들!
 

 



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③

 

 3. ‘세균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버려지는 타자들 (1)

   
 

 그들은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평가해버려.
 (They judge me before they even know me.)  

 - 영화 <슈렉> 중에서

 
   

    

    나를 알기도 전에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배제하는 사람들. 슈렉은 그런 사람들에게 지쳐버렸다. ‘판단’은 바로 차별과 배제의 전초전이다. 아기들은 악취에 코를 찌푸리지 않는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를 분별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어른들은 악취, 특히 부패로 인한 악취에 매우 민감하다. 부패한 생물에서 풍기는 악취, 그것은 바로 ‘죽음’의 냄새를 연상시키기에. 

   사람들은 슈렉에게 가까이 와서 그를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괴물은 냄새나고, 더럽고, 혐오스런 존재’라는 편견의 울타리 밖으로 슈렉을 밀어낸다. 슈렉뿐 아니라 동화 속의 생물들을 모두 추방한 파쿼드 왕국 또한 쓸데없는 공상으로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의 잣대로 현실 속에서 ‘환상’의 색채를 띤 모든 것을 몰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괴물의 입김도 환상의 바이러스도 없는 세계는 과연 안전할까. 이렇게 완벽하게 살균된 세계는 과연 행복할까. 

   안정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낯설고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것을 주체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려는 심리적 과정, 그것을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이라 불렀다. ‘아브젝트’가 배제된 대상들이라면 ‘아브젝시옹’은 배제하는 행위와 과정 자체를 말한다. 우리의 주체성이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있다면, 그 과정 속의 주체는 ‘나다운 것’의 기준을 세워 ‘자아’를 조립하고, ‘우리다운 것’의 경계를 그려 ‘사회’를 구성한다. 슈렉을 비롯한 각종 동화 속 생물들은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공동체, 보다 중앙집권적이고 균질적인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배제된 타자들이다. 

   파쿼드의 ‘동화 속 생물 추방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도망가는 당나귀 동키를 잡으려다가 슈렉을 만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쳐 버린다. 슈렉의 늠름한 덩치 뒤에 숨어 체포 위기를 면한 동키는 얼떨결에 자신을 구해준 슈렉에 대한 반가움에 들떠 호들갑을 떤다. 
    동키 : 와우, 정말 대단해! 정말 멋져!
    슈렉 :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금 나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동키 : (주변엔 슈렉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응, 그럼! 진짜 대단했어! 병사들이 날 막 쫓아왔었는데, 네가 나타나니까 길 잃은 아이들처럼 허겁지겁 도망가던걸.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으하하.
    슈렉 :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시니컬하게) 그거 참 잘 됐군.
    동키 : 아, 이제 드디어 그들로부터 벗어났구나. 이 자유의 기쁨을 친구들과 함께 축하해야 하는데! (……) 하지만 난 친구가 없어. (계속 엄청난 속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슈렉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아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랑 함께 지내면 어때? 넌 싸움을 잘 하잖아. 우리 둘이 함께하면 엄청날 거야.
    슈렉 : (귀찮다는 듯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늪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동키 : (슬프지만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내 등에 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난 친구가 필요해. (엉터리 노래를 부르며 계속 슈렉의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슈렉은 본척만척한다.)
   슈렉 : (괴성을 질러대며 노래를 흥얼대는 동키의 목소리를 참다못해 소리를 버럭지른다) 노래 그만! 친구가 없을 만도 하네! 어이, 날 봐! 내가 뭐 같아?
   동키 : 응? 키가 큰…… 사람?
   슈렉 : 아냐! 난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횃불하고 쇠고랑을 준비해야지! 날 피하지 않아? 정말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
   동키 :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럼!
   슈렉 : 정말?
   동키 : 정말이야! 난 네가 완전 마음에 들어.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슈렉 : 흠……, 슈렉.
   동키 : 슈렉? 슈렉!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뭔지 알아? 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는 네 태도야. 정말 존경스러워!

   한 번도 타인과 함께 지내본 적이 없는 슈렉은 당나귀 동키의 끈질긴 러브콜이 귀찮기만 하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존재를 처음 만난 슈렉은 너무 놀라 물어본다. 정말 내가 무섭지 않느냐고. 슈렉은 자신을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존재를 처음 만난 것이다. 당나귀 동키의 눈에 비친 슈렉은 그저 ‘키 큰 사람’이고 위험에 빠진 자신을 본의 아니게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이다. 동키는 처음으로 괴물 오우거(ogre)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동키는 그의 이름을 가만히 되뇌며 그와 친구가 되고자 한다. 

   당나귀 동키를 차마 내치지 못하는 슈렉의 여린 마음속에는 사실 숨길 수 없는 외로움이 둥지를 틀고 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없는 슈렉은 채식 위주의 웰빙 식단으로 꾸려진(파다하게 퍼진 괴소문처럼, 사람의 내장이나 눈동자를 후벼내어 만든 젤리 샌드위치가 아니라!) 소박한 식탁 위에서 혼자 식사를 하며 은근히 문밖에서 굶고 있는 동키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외부의 침입자가 나타난 듯한 기척에 놀란 슈렉은 집 밖으로 나오고 파쿼드의 ‘퇴거 명령’으로 추방된 각양각색의 동화 속 생물들을 만난다. 유럽의 동화 속 주인공들은 총출동한 것 같다. 

   슈렉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오랜 은거지인 늪을 지키기 위해 파쿼드와 담판을 하러 떠난다. “요정 여러분, 너무 편하게 있진 마세요, 여기선 환영 못 받아요. 당장 파쿼드를 찾아가서 다시 여러분의 집을 되찾아주도록 하겠습니다. (동키를 가리키며) 너, 너는 나랑 같이 가는 거야!” 동키는 슈렉과의 여행(?)이 성사되자 뛸 듯이 기뻐하며 그를 따라나선다. 이제 버려진 존재 ‘아브젝트’의 인권과 주거권을 탈환하기 위한 모험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슈렉과 동키가 도착한 파쿼드 왕국은 어쩐지 생기도 활기도 없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균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각종 환상의 바이러스들을 모두 제거했는데, 이 세계는 조금도 안전하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 앞에는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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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3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구년월"
그뜻 그대로 되시길...

viewfinder 2010-01-0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키같은 친구가 있다면 정말 평생 외롭지 않을 듯^^
 

 



영화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 ②

 

 

2. ‘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2)

   
 

‘아브젝트(abject)’는 우리가 혐오하고, 거부하고, 거의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시큼한 배설물, 심지어는 어머니의 과격한 포옹도 여기에 속한다.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앨피, 2007, 92쪽.

 
   

  


    “사람들은 날 보면 말해. 으악! 못생기고 냄새나는 괴물이다!” 슈렉은 한 번도 ‘이름’을 제대로 불려보지 못한 존재다. 이름 불린다는 것.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친밀성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번째 문턱이다. 이름 불리지 못하는 슈렉은 단지 ‘괴물’일 뿐이며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타자다. 괴물 주의! 괴물 수배 중! 현상금 있음! 그가 사는 주변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팻말이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현상금이 걸린 괴물을 잡으려고만 하고 아무도 그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여기는 파쿼드(Farquaad) 영주가 지배하는 화려한 도시의 바깥, 괴물 슈렉이 혼자 사는 늪지대다. 

   엄청난 길이의 ‘키 높이 부츠’를 신고 말을 타고 다니는 전형적인 마초형 남성 파쿼드 영주. ‘조금 짧은 다리’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와 타인을 향한 무한한 지배욕으로 똘똘 뭉친 파쿼드는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모두 몰아내고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려 한다. 아직 왕이 되지 못한 파쿼드는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여 국왕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 슈렉은 이런 골치 아픈 세상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혼자만의 칩거 생활을 즐기는 중이었다. 늪지대에 넘쳐나는 지저분한 진흙으로 샤워하고 동화책은 화장실 휴지로 써버리면서. 사람들은 슈렉을 잡아 현상금을 나눠 가지려다가 슈렉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 혼비백산한다. 

    “그 괴물은 뼈를 갈아서 아침 식사로 먹는다고 하던데!”
   “그건 거인이에요. 괴물 오우거(ogre)는 더 잔혹하죠. 사람의 가죽을 벗겨서 수프를 만듭니다. 내장을 자르고 눈에서 젤리를 뽑아냅니다! 사실 눈에서 뽑아낸 젤리는 토스트에 발라 먹으면 맛있어요.”

    슈렉은 자신을 잡으러 몰려온 사람들을 ‘엄청난 입 냄새 폭탄’으로 순식간에 몰아내고 평화로운 은거 생활을 즐기려 한다. 그는 ‘괴물은 무섭다’는 막연한 뜬소문을 역으로 이용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슈렉에 대한 무지와 소문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 때문에 슈렉을 제대로 대면하기도 전에 도망쳐 버린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존재하는 각종 ‘괴담’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사람들의 상상보다 훨씬 덜 무섭고, 덜 잔혹하며, 덜 해롭다. 진짜 공포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역겨운 것들’을 몰아내려는 문명화된 인간의 관습이 아닐까. 

   ‘바람직한 주체’로 사회화되기 위해 현대인은 자기 안의 수많은 가능성을 버리고 ‘나다운 것’의 경계를 구축해야 한다. 보다 깨끗하고, 보다 적절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야생적 본능을 버려야 한다. 부패한 우유, 똥, 구토물, 시체들을 보고 구역질을 참지 못하듯이 우리는 ‘한때 내 것이었으나 이제는 억압하거나 배설해버린 욕망들’을 자아의 경계 바깥으로 멀리 추방하고자 한다. 크리스테바는 이렇게 문명화한 현대인의 자아, 그 경계 바깥에 추방된 존재들을 ‘아브젝트’라 불렀다. 

   프로이트는 문명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주체의 다채로운 욕망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억압되어 숨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억압된 것의 귀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적어도 인간의 ‘부끄러운 욕망’은 무의식 속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는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기피하지만 실상 매일 접하는 것, 즉 더러운 오물이나 끔찍한 죽음처럼, ‘아브젝트’는 항상 우리의 또렷한 의식 주변을 배회하며 서성인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미 버려졌지만, 그렇게 버려진 아브젝트는 ‘바람직한 주체’의 경계를 위협하며 ‘난 아직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파쿼드 영주가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추방한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세속적인 삶에서는 전혀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동화 속의 생물들’이다. 동화 속의 환상 따윈 이제 필요 없어! 오직 노동하고 생산하고 발전하는 문명만이 있을 뿐. 파쿼드의 왕국은 이 모든 ‘동화적 환상’을 철저히 ‘아브젝트’로 버려둔 채 독재자 파쿼드의 시선으로 재단된 바람직한 문명의 경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들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물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 피리 부는 아저씨, 피터팬, 피노키오, 일곱 난쟁이, 아기돼지 삼형제 등 수없이 많은 동화 속의 인물들과 동물들을 추방해버린다.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슈렉의 늪(swamp)으로 잠입하여 거대한 난민촌을 형성한다. 평화롭고 안락한 슈렉의 은둔 생활에 최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추방되는 것은 과격하게 쫓겨나지만, 결코 다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유아의 경험 주변을 배회하며, 유아의 모호한 자아 경계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어떤 것이 단지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추방된다는 것은 그것이 의식에서 전적으로 사라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깨끗하고 적절한 자아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시에 의식적인 위협으로 남는다. 아브젝트는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다.  

-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 앨피, 2007,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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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2009-12-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숏다리 영주 파쿼드 표정, 지금봐도 너무 웃김 ㅋ 손에 흙 안묻히고 공주를 차지하려는 그의 얕은 수와 잔꾀가 결국 슈렉과 피오나를 이어준다^^

둥이 2009-12-3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 자아는 점점 파쿼드 영주의 왕국이 되어가는건가
난 나의 아브젝트를 찾아 떠날꺼얌^^
하지만 너무 춥어!! 차막혀!!(역쉬 나의 파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