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코라(chora) : 내가 버린 나의 가능성들의 총집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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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젝시옹은 ‘자기 자신’에게 ‘다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추방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주체성의 경계를 한정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 노엘 맥아피, 이부순 역, <경계에 선 줄리아 크리스테바>, 앨피, 2007,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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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젝시옹이 ‘나답지 않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추방하는 과정이라면, 아무것도 몰아내지 않고 품어내려는 열정, 자기를 가득 채우는 것에서 힘을 얻는 것이 바로 ‘코라(chora)’다. 코라는 단지 생성하는 모든 것들의 저장소가 아니라 모든 생성의 유모 같은 존재다. 코라의 속성은 안정감이나 균형의 유지가 아니라 불안, 불균형, 불규칙, 동요 그 자체를 끌어안는 엄청난 에너지의 파동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서로 갈등하다가도 언젠가는 화해하고, 법률과 규칙 없이도 얼마든지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었던, 환상과 현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던 곳. 아기가 ‘언어’를 배우기 이전, ‘내 똥이 더럽다’는 것을 배우기 이전, 이렇게 하면 부모님께 야단맞을 것이라는 판단을 배우기 이전의 세계. 파쿼드 영주가 동화 속 생물들을 추방하기 이전의 도시 듀록도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모든 가능성으로 충만한 곳, 코라는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들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동키 : 그러니까 처음부터 네 늪이 아니었던 걸 되찾으려고 무서운 용과 싸우고 피오나 공주를 구한다는 거야? 그런 거야? 난 모르겠어, 슈렉! 왜 그냥 오우거답게 하지 않은 거야? 오우거들이 하는 거 있잖아?
슈렉 : 그래, 모든 시민의 목을 베어서 막대기에 꽂아놓았을 수도 있었겠지. 내장을 잘라내서 피를 마실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았을까?
동키 : 아, 아닌 거 같은데…….
슈렉 : (깊은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조금은 수줍게) 너는 모르겠지만, 오우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동키 : 예를 들면?
슈렉 : 예를 들어서, 아, 그래, 오우거는 마치 양파 같은 존재야.
동키 : 양파처럼 냄새가 나?
슈렉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동키 : 양파처럼 울게 만들어?
슈렉 : (짜증난 표정) 아냐!
동키 : 햇볕을 쬐게 밖에 놔두면 갈색이 되면서 줄기가 나는구나?
슈렉 : (답답해서 버럭 화를 내며) 아냐! 층 말이야! 양파엔 층이 있어. 오우거도 층이 있어. 양파도 층이 있고. 알겠어? 둘 다 층이 있어.
슈렉은 전에 없이 차분하게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양파의 ‘층’과 오우거의 ‘층’을 비교해서 설명한다. 관객도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홑겹’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슈렉의 다채로운 면모에 매혹된다.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비밀에 싸인 양파껍질처럼 신비롭고 난해한 무엇. 슈렉은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쉽게 파악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창조적 다중성이 ‘고립된 생활’에서는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슈렉이 계속 늪지대에서 은둔형 외톨이로만 살아갔다면 아무도 슈렉이 그토록 엄청난 재능과 매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슈렉은 아주 쉬운 방법으로(단순하고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늪을 되찾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어렵고 힘든 ‘모험’을 택한다. 이 결정은 미지의 모험 속에 깃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포착한 슈렉의 혜안이 아니었을까. 우리 안의 잃어버린 가능성들, 코라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공간과 더 많은 사람들 속으로 우리의 존재를 던질 때, 미처 발현되지 못한 우리 안의 가능성은 꽃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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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는 아직 하나의 정돈된 우주로 통일되지 않은 것이지만, 양분을 공급하는 모성적인 그 무엇이다. (……) 코라는 항상 이미 모순적이고, 동화력이 있는 동시에 파괴적이며, 이러한 이중성으로 인해 코라는 항구적인 분열의 장을 만들어 간다. (……) 언어와 무관하고 수수께끼 같으며 여성적인, 쓰인 글의 심층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김인환 역, <시적 언어의 혁명>, 동문선, 2000, 27~3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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