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가 정말 ‘그’일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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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이라고 해서 신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 신화의 그늘 속에 살고 있고 우리 모두가 진리의 찬란한 빛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탓에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 막스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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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가 뛰어넘어야 할 과제는 매트릭스 안에서 지금까지 가져온 시공간의 감각이 ‘절대적이고 유일하다’라는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가상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고 살아왔기에 모피어스가 제공하는 훈련 공간을 ‘그저 가상일 뿐이야’라고 느낀다. 모피어스는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살았던 매트릭스가 2199년의 인류에게 유일한 현실이었듯이, 지금 네오가 훈련하고 있는 가상공간이야말로 네오가 일굴 새로운 ‘현실’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평생 매트릭스로 훈육된 시공간의 법칙을 스스로 깨뜨린다.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진짜 육체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는 가상의 매트릭스 안에 있을 때조차도 진정한 육체를, 진정한 영혼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감정의 짐짝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네오는 조금씩 매트릭스의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모피어스에 대한 의심도, 트리니티에 대한 궁금증도, 오라클의 예언에 대한 불안도, 그는 조금씩 내려놓는다. 내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도,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지막 미련까지도 내려놓는 순간. 그는 드디어 철벽같은 모피어스의 방어를 뚫고 공격에 성공한다. 이 회심의 일격은 모피어스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피어스와 네오 사이에 놓인 의심과 불안의 장벽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소통’의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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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자 사이에 혀를 날름거리는 심연을 건너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짐을 버려서 가벼움을 확보해야만 한다. (……)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방법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친숙한 세계를 버린다는 것은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선입견, 무의식적인 행동을 그 뿌리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장자의 권고는 마치 새에게 날개를 버리라고 권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았을 때 과거와의 이런 단절이 없다면 우리는 친숙한 세계에 영원히 포획되어 새로운 삶을 생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장자는 마음을 비우려고 하였고, 공자는 사사라운 뜻, 고착됨, 사적인 자의식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며, 불교도 자아의 동일성을 비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 강신주 외, <21세기의 동양철학>, 을유문화사, 2005, 366~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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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와 모피어스의 멋진 한판승부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네오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오른다. 네오를 질투하면서도 의심하는 사이퍼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네오에 대해 누구보다도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트리니티의 눈빛은 점점 깊어진다. 잠든 네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극진히 보살피는 트리니티를 바라보는 사이퍼의 눈빛에는 서슬 퍼런 살기가 감돈다. “나한테는 한 번도 안 그러더니. 그가 특별하긴 한가 보군? 정말 네오를 ‘그’라고 믿는다면 왜 오라클한테 안 데려가?” 트리니티는 동요하지 않고 대답한다. “준비가 되면 가겠지.”
언제쯤이면 예언자 오라클에게 네오가 ‘그’임을 확인받으러 갈 수 있을까. 아직 모피어스는 침착하게 네오의 몸과 마음을 수련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오가 유일한 현실이라 믿고 살았던 1999년의 지구. 그들은 변함없이 ‘지금은 1999년 O월 O일’이라는 매트릭스의 달력을 믿고 있을 것이다. 네오는 마치 유체이탈을 하여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듯 애잔한 눈길로,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지구인들을 바라본다.
모피어스 :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그 시스템이 우리의 적이다. 둘러보면 뭐가 보이나?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 우리가 구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지. 하지만 그들도 시스템의 일부니까 우리의 적이지. 이들 대부분은 아직 떠날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들은 너무나도 시스템에 잘 길들여져서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하지. (……) 누구나 요원일 수 있어. 우린 그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살아남았지. 하지만 그들은 문지기야. 그들이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거지.
네오 : 누군가가?
모피어스: 거짓말은 안 하겠다. 그들과 싸웠던 자들 중에 아직 살아남은 자가 없어. 하지만 자넨 성공할 거야.
네오 : 왜죠?
모피어스 : 요원은 콘크리트 벽을 부술 수도 있고 총알을 퍼부어대도 우습게 피하지만 그들의 힘과 스피드는 매트릭스 안에서 제한되지.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너를 능가할 순 없어.
네오: 그럼 나도 총알을 피할 수 있나요?
모피어스 : 아니. 네가 준비가 돼 있다면 굳이 피할 필요도 없어.
단지 영화 속 매트릭스 안의 인간들만이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의 삶만을 절대화하는 모든 힘들, 과학과 논리의 힘만을 신봉하는 지식의 흐름들, 달력으로 표시될 수 있는 역사적 시간만을 신뢰하는 이성의 근시안. 통장의 입출금내역과 스펙 쌓기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도시인의 일상적 시스템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삶이 너무 싫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다른 삶의 기회’가 오면 뒤로 흠칫 물러선다. 지금까지 이 삶에 적응하기도 바빴는데 또 다른 삶의 모험에 뛰어들기가 두려운 것이다. 이미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친 적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단지 미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미몽 자체가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그 꿈에서 깨어난다면 너무 괴로울 테니, 아예 깨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런 상태라면 사이퍼의 말처럼 ‘모르는 게 약’이고, 무지야말로 신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네오에 대한 질투로 불타는 사이퍼는 ‘성(聖)’의 세계로 떠나 고통받느니 차라리 ‘속(俗)’의 세계에서 영원히 안주하고자 한다. 성공하고 싶다고, 영화배우처럼 유명해지고 싶다고, 돈을 왕창 벌고 싶다고. 그러니 매트릭스에 다시 ‘꽂아만’ 달라고, 그는 스미스 요원에게 청탁을 한다. 매트릭스라는 미몽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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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적’ 인간의 대다수는, 비록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 자기가 비종교적이라고 느끼며, 그렇게 주장하는 근대인들도 여전히 수많은 은폐된 신화와 변질된 제의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 새해를 맞이할 때나 새 집에 살게 될 때에 수반되는 축제는 비록 속화되기는 했을망정 여전히 갱신의 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혼, 아기의 탄생, 새 지위의 획득, 사회적 진출 기타 등등에 따르는 잔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찰된다. (……) ‘꿈의 공장’이라고 하는 영화는 무수한 신화적 모티프들을 채용해서 써먹는다. 영웅과 괴물의 싸움, 입사의 투쟁과 시련, 모범적인 인물들과 이미지들(처녀, 영웅, 낙원의 풍경, 지옥 기타 등등)이 다 그러하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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