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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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15분 푸코는 강의를 끝냈다.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혼잡한 청강생들 틈에서 그는 혼자였다. (……) 나는 청중 앞에서 배우 또는 곡예사가 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인다.
- 미셸 푸코, 박정자 역,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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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은 인간 훈육 프로그램의 최고의 성공작이자 그 처절한 실패를 대변하는 양가적 인물이다.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탄생시킨 살아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제 1호였던 제이슨 본.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원으로 거듭났지만 최악의 문제점을 노출하는 장본인이었다. 제이슨의 정신 건강을 체크했던 요원 니키는 ‘실험적 훈련 중’이던 요원들의 다양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고한다. “행동 교정 훈련을 받던 요원들에게서 다양한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우울증, 분노, 충동적 행동……. 심각한 신체적 증상도 나타났죠. 극심한 두통, 광(光) 과민증 등입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기억상실증’이야말로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최대 약점으로 드러난다.
감옥이 인간을 완전히 길들일 수 없듯이, 학교가 학생을 철저히 통제할 수 없듯이, CIA는 인간을 완벽한 인조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얼굴들이 보여……. 내가 죽인 사람들의 얼굴……. 이름은 기억이 안 나……. 속죄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한 짓을, 내 삶을…….” 죄책감에 잠 못 이루며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 스스로의 삶 전체를 속죄하고 싶어 하는 제이슨. 이렇게 방황하고, 반성하고, 분열되고, 좌절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 교정 프로그램’에 결코 포함되지 않았던 예측불허의 이상행동이었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끈질긴 두뇌게임 끝에 마침내 트레드스톤의 창조주와 대면하게 된 제이슨 본. 그는 도대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그토록 무서운 인간 병기로 제조했는지를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그가 만나는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이 모든 우여곡절의 기원은 바로 제이슨 본, ‘바로 너’라고 외친다. 그들은 한결같이 책임을 회피한다. “마리를 죽인 건 너야. 그녀의 차에 네가 탄 그 순간, 네가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그 순간 그녀는 죽은 거야.”
제이슨은 항변한다. “우릴 내버려두라고 했잖아. 난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있었다고.” 제이슨 본에게 트레드스톤의 실패를 전가하고 싶었던 애보트는 말한다. “넌 과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해. 삶은 그런 거야. 인정해, 제이슨. 넌 살인자야.” 제이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애보트, 제이슨에게 살인누명까지 씌우며 수없는 살인 명령을 일삼았던 애보트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난 애국자야. 난 국가를 위해 봉사했어. 난 죄책감 없어.” 그들은 자신에겐 절대로 ‘죄’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의 ‘대의명분’은 바로 그들의 대단한 ‘애국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이슨이나 제이슨을 죽이려는 자들이나 양측 모두 이 모든 끔찍한 살인을 합리화하는 명목이 ‘애국심’이라는 것이다. 총명한 젊은이 데이비드 웹이 비밀 요원 제이슨 본이 된 것도 사실 애국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영웅’이라는 위대한 역할 모델들이 숨 쉬고 있는 걸까. 최고의 엘리트이자 촉망 받는 인재였지만 ‘애국심의 함정’을 알지 못했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의 진상을 알지 못했던 제이슨 본에게 한때 애국심은 정말 ‘좋은 것, 멋진 것, 폼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트레드스톤처럼 국가의 미명 아래 모든 폭력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런 명분이 없을 때, 사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서도, ‘국가의 안보’를, ‘국가의 위기’를, ‘국가의 미래’를 전면에 내세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제이슨이 아직 ‘데이비드 웹’이었던 시절, 그가 비밀 요원으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장면이 회상 신으로 등장한다. 애보트와 대화하던 중 이제야 제이슨 본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그때 그는 무려 72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잔 상태였으며 잔혹한 물고문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고문인지 훈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혹독한 인성교정프로그램 속에서 제이슨이 내린 결정을 ‘바로 네가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의 선택이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애보트 : 데이비드 웹. 설명은 다 듣고 온 건가?
제이슨 : 네.
애보트 :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자네 임무는 미국 국민을 구하는 거야.
제이슨 : 압니다.
애보트 : 넌 이제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
제이슨 : 뭐, 뭐든 따르겠습니다.
애보트 : 넌 오랫동안 잠을 못 잤다. 이제 결심이 섰나? 더 끌 순 없어. 결심해야 돼.
제이슨 : (자신의 눈앞에 ‘암살대상’으로 나타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죠?
애보트 : 같은 걸 되묻지 마.
제이슨 : 그가 뭘 잘못했나요?
애보트 : 그건 전혀 안 중요해! 넌 네 발로 왔어! 자원했다고! 미 국민을 구하기 위해 뭐든지 한다고 했지? 거짓말을 한 거였나? 아니면 힘드니까 마음이 변한 거야? 결심해! 데이비드 웹은 잊어! 오직 네 임무만 생각하라고! 넌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이제부터 넌 제이슨 본이야! 이 프로그램의 일원!
(그 순간, 탕! 총소리가 들리며 이제는 ‘제이슨 본’이 된 데이비드 웹의 첫번째 암살이 끝난다. 그는 이렇게 제이슨 본으로 ‘개조’된 것이다.)
꿈 많은 젊은이 데이비드 웹은 천신만고 끝에 제이슨 본이 되었지만 이제 그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인물이 바로 제이슨 본이 되어버렸다. 그는 애보트에게 외친다. “난 이제 제이슨 본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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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애국자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옳든 그르든 내 나라.” 그러나 그는 자기 조국이 옳다거나 진정한 도덕은 조국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단언할 필요성을 더 자주 느낄 것이다. 진실의지는 그렇게 강력하다. (……) 우리는 우리 선택에 따라 진실을 판단하지, 진실에 따라 선택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가 가르쳐 주었듯이, 우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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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웹은 ‘국가에 충성’하는 멋진 임무를 맡기 위해 요원이 되었고, 트레드스톤은 이제 ‘국가 비상사태’의 명목으로 제이슨 본을 죽이려 한다. 도대체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애국의 명분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기이한 자기정당화들. 푸코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철저히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곧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의 습성을 ‘진실의지’라고 했다. 우리는 치밀한 반성과 시행착오 끝에 가장 진실에 가까운 신념을 고르기보다는 수많은 우연과 감정적 변수와 비합리적 취향에 의해 삶의 방식을 결정하곤 한다. 거기에 ‘진실’의 갑옷을 입히고 만족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찾아 떠난 끝에 간신히 부여잡은 소중한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한 것, 혹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습득된 주변 환경이 만들어낸 습관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특히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가면이다. 실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 달려왔으면서도 궁지에 빠졌을 때 그들은 ‘옳든 그르든 내 나라’라며, ‘내가 한 일은 모두 나라를 위한 것’이라며 당당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트레드스톤이 애국의 미명 하에 모든 부정부패를 정당화했다면, 젊은 시절 데이비드 웹은 ‘애국’이라는 환상의 그물이 얼마나 지독한 환멸을 품고 있는지 모른 채 순진하게도 그 그물에 포획되어버린 셈이다.
제이슨의 결백을 믿는 CIA 요원 파멜라 랜디는 그의 진짜 이름과 생일을 가르쳐준다. “데이비드 웹. 자네 진짜 이름이야. 자넨 미조리 주 닉사에서 1971년 4월 15일에 출생했네.” 하지만 이제 자신을 이렇게 만든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전모를 알게 된 제이슨은 더 이상 자신의 출생이나 기원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내가 만들어가야 할 삶인 것이다. 이 모든 물고 물리는 살인의 게임을 끝내기 위해 제이슨 본은 트레드스톤과 블랙 브라이어에 관련된 일급 기밀 서류를 빼내어 파멜라 랜디에게 전달하고 이 사건을 스스로 매듭짓는다.
“대통령은 각료 회의를 열고 블랙브라이어란 암살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미국 시민마저 표적이 됐던 이 프로그램을 승인한 국장은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실험소장 알버트 허슈와 총괄 책임자 보슨 부국장 등 두 명의 간부 요원은 체포됐습니다. 한편 블랙브라이어의 음모를 폭로한 데이비드 웹, 일명 제이슨 본은 총을 맞고 10층 건물에서 강으로 추락했으나 3일간의 수색 끝에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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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푸코와 나는 그의 작은 텔레비전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 관한 르포를 보고 있었다. 두 진영 가운데 한 진영에 속한(어느 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투사 한 사람이 화면에 나오더니 이렇게 공언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의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만들어졌고, 그에 관해서는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침내, 바로 저거야”, 푸코는 소리쳤다. 기껏해야 레토릭과 프로파간다로서나 쓸모 있었을 장광설을 듣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이 미학적 선호에 대해서 만큼이나 거대한 이상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는 사회를 잠시 상상해보자.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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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변수들을 수학공식처럼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이런 취향과 왜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하필 왜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하필 왜 이런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푸코는 당신들이 어떻게,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싸워야하는지 콕 집어 가르쳐주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푸코는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우리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너무 많은 제약과 차별과 억압으로 찌들어 있음을 우리 스스로 느낀다면, 그 ‘장애물의 지형도’를 그려드릴 수는 있다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인체의 모세혈관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 치밀한 장애물의 지형도를 그려준 푸코. 그 지도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지도를 소중하게 몸에 지닌 채 우리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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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에게 자, 여러분이 수행해야 할 투쟁은 이것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토대 위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 반면 나는 여러분에게 권력의 현재 담론을 기술하려 합니다. 마치 여러분 앞에 전략지도를 펼쳐놓듯이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투쟁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어떤 전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지도에서 저항 지점들은 어디인지, 가능한 통로들은 또 어디인지 보게 될 것입니다.
푸코는 자기 청중과 마치 군주와 그 조언자 같은 관계를 맺었다. 군주가 말했다. “나는 인민의 행복을 원한다.” 학자-조언자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의 결정이 그렇다면, 당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채택해야 하는 수단은 바로 이렇습니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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