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⑫

 

12.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1)

   
 

한마디로, 푸코의 저작은 전부 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연장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믿는 모든 개념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변전된’ 것이며, 그 기원들에는 숭고한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73쪽.

 
   

   언제부터 사람들은 ‘신분증’이 없으면 중요한 일을 하나도 처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내가 바로 나다’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해진 순간, 인간은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우리들 자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소소한 과거의 행적들이 어디선가 관리되고 어디선가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싹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모든 ‘근대적 정체성’의 관리 시스템이 진정한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우리의 출생과 이사와 여행과 출산과 사망을 관리하는 주민등록의 절차에 의해 우리는 때로는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 때로는 각종 통계 수치의 머릿수를 채우는 ‘국민’으로 호출된다. 

    제이슨 본이 지우고 싶은 것은 바로 CIA산하 비밀요원 양성 프로그램 트레드스톤에 입력된 자신의 기록이었다. 그는 과거를 찾으려는 ‘단순한’ 희망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고,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과거의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지금-여기 내가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 여자와 살아갈 수만 있다면, 잃어버린 과거 따윈 되찾지 않아도 좋다. 마리를 찾아낸 제이슨은 하얀 셔츠를 입고 나타나 이제야 자신이 모든 어둠의 기억에서 ‘깨끗하게’ 해방된 듯한 가뿐한 표정을 짓는다.
    “멋진 가게군요, 찾아내기는 좀 힘들었지만……. 스쿠터를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마리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반가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애써 억누르고 새침하게 대꾸한다. “신분증 있어요?” 제이슨은 이제 난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것 없는데요.” 그들은 그렇게 모든 ‘신분증’을 지운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시작하려 했다. 내 모든 것을 버리고 너에게 왔어. 이제 나는 내가 아니냐. 그러나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가 될 수 있어.   

   현대인은 자유의지의 힘을 믿도록 교육된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이 세상의 기회는 균등하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그 패기만만한 자유의지의 환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인종, 국적, 가족, 유전자 등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들) 우리의 선택은 철저히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행동했다고 해서 모두 나의 욕망이었는가, 내가 선택한 것이 진정 나의 의지였는가, 그렇게 의심되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정말 자율적이고 자발적인가.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일지 진정 알고 있는가.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 본은 그렇게 ‘자유로운 나의 선택’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천 봉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과거는 그가 도망치거나 삭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꼭 제이슨 본처럼 무시무시한 비밀요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없고, 우리 자신의 모든 행동의 기원을 밝힐 수 없으며, 우리가 ‘난 이제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장기간의 ‘무의식적 부자유’가 축적된 치밀한 과정의 결과였음을 깨닫곤 한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자로 몰려 추격당하게 되고, 이제 스스로 저지르지 않은 행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자 했던 그 숨 가쁜 여정 속에서, 자신을 추격하던 요원의 총격으로 의해 마리를 잃고 만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끔찍한 죄책감까지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

   마리를 눈앞에서 잃자 제이슨은 더 이상 숨어서만은 살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환상. 내가 죽인 사람들. 내가 ‘처리’한 사람들의 끔찍한 환영들.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속죄. <본 슈프리머시>에서 제이슨은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첫번째 ‘임무대상’이었던 러시아 정치인 네스키의 딸을 찾아간다. 네스키의 딸은 엄마가 아버지를 직접 살해한 것이라는, 언론의 조작된 보도를 믿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를 한날한시에 잃은 것도 모자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기사’를 ‘사실’로 믿고 살아온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제이슨 앞에 앉아 있다.

    소녀 : 난 돈도 없고 마약도 없어요. 원하는 게 그거 아닌가요?  
    제이슨 : (러시아어로) 좀 앉지. 그 의자에 앉아.  
    소녀 : 영어 할 줄 알아요.
    제이슨 : 난 널 해치지 않아. 겁낼 것 없어. 생각보다 많이 컸구나. 더 어릴 줄 알았는데. (자신이 죽인 네스키 부부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 너에게 소중한 거겠지?  
    소녀 :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별로요, 그냥 사진일 뿐이에요.
    제이슨 : 아니. 그건 네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야.
    소녀 : 알아요.
    제이슨 : 아니, 넌 몰라. 나라면, 알고 싶을 거야. 나라면, 엄마가 아버지를 죽이고 자살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싶을 거야.
    소녀 : 네?
    제이슨 : 네 부모님은 그렇게 돌아가신 게 아니야……. 내가…… 죽였다. 내가 죽였어. 그게 내 임무였어. 내 첫 임무였지. 네 아버지가 혼자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네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셨지. 난 계획을 수정해야 했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지지. 안 그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는데…… 진실을 알아야지. 미안해…….  
   소녀 :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제이슨은 국경을 몇 번이나 넘고 넘어 온갖 정보기관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결국 자신의 과오가 시작된 맨 처음 그 자리로 찾아간다. 그는 마치 잘 훈련된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내가 왜 죽여야 되는지도 모르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암살대상을 처리하곤 했다. 그러나 그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시간의 단절’이 일어나자, 결국 그들의 교정 프로그램이 결코 바꾸지 못했던 한 인간의 내면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행동(doing)’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모든 행적을 지우는 ‘원상복귀(undoing)’임을 알게 된다. 발설된 것은 철회될 수 없고, 시행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죽은 네스키 부부는 결코 살아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속죄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다. 적어도 네스키의 딸은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끔찍한 오명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소녀는 엄마가 아빠를 죽이는 소름 끼치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드디어 제이슨은 자신을 만든 권력의 실체와 정면승부하게 된다. 인간 병기 제조 기획 ‘트레드스톤’을 만든 사람들. 트레드스톤이 실패하자 ‘블랙 브라이어’라는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 그들은 제이슨 본처럼 ‘우수한 인간병기’를 만들어, 그들이 ‘애국’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대단한 권력의 게임을 완수하기 위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숨은 희생양’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 성공적인 인간병기들은 그들이 배운 기술을 단지 그들의 ‘상사’를 위해서만 쓰지는 않는다는 것을. 제이슨 본은 자신을 만든 바로 그 창조주들을 향해, 그들로부터 습득한 모든 지식과 능력과 기술을 실험한다. 그들이 살해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가르친 프로그램은 정확히 그들의 조직 자체를 뒤흔드는 ‘역습의 무기’로 사용된다. 지식은 권력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쓰이는 용법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비로소 제이슨 본은 자신을 인간병기로 만든 사람들로부터 배운 모든 지식을, 자신을 파괴한 바로 그들을 향해 눈부시게 휘두른다.    


   
 

 소송 절차는(……) 필연적으로 자백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 피고인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진실이 완전히 힘을 발휘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란,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증거 조사에 의해 교묘하면서 애매하게 조립된 사항에 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악인이 정당하게 처벌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가능하다면 악인은 스스로를 재판하고, 스스로에게 유죄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백은 피고인 없이 행해지는 증거 조사를 자발적인 의사표현으로 변화시킨다. 자백에 의해서 피고인은 형사상의 진실을 생산하는 의식 속에 참여하게 된다. (……) 자백에 의해서 피고인은 소송 절차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증거 조사에 의해 만들어진 진실에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74~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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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0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다행. 계속되는 군요^^* 서서히, 뭉클 상쾌한 결말이 기대됩니다.

friends 2009-12-02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 시리즈가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본 얼티메이텀 뒤에 또 속편이 나와도 좋을 것 같은데. 본 시리즈는 첩보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감각적인 요소들이 많은 듯^^

둥이 2009-12-0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뭐야?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아니 생각들 아무튼 모든것!)이
다 내가 아닐수도 있다는?
나도 이 사회에서 훈련된 한 개체일 뿐인가?
어렵다 그래서 난 떠난다....

훈남 2009-12-04 00: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동감이요. 어렵네요;;

니모 2009-12-0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둥이님, 저번에도 떠난다고 하시더니 또 오셨군요ㅋㅋㅋ

doingnow12 2009-12-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얼른떠나세요 둥이님..크흣..
점점 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되는 세상과의 괴리감은 결국 배운것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건가봐요..그래서 저는 오늘도 그 사이에 낑겨서 허우적대는가봅네다..흐흑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⑪

 

11. 모두 너였어! 널 만든 건 너야! (2)

   
 

우리는 진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그것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결국 잃어버린 나를 깡그리 지우는 것이었다. 제이슨 본이 잃어버린 기억의 창고를 열기 위한 열쇠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나를 버리는 것이 나를 찾는 유일한 길임을. 과거의 나를 모조리 삭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만든 자들’의 게임 프로그램 속에서 그들의 통제를 받는 인간병기로 머물게 될 것이다. 콩클린의 말처럼, 제이슨은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었으므로.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 빌어먹을 실패작이었으므로. 
 

   제이슨은 이제 ‘이런 일’은 그만 하고 싶다고, 더 이상 살인의 게임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다. 콩클린은 코웃음을 친다. “그건 네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야!” 천하무적의 인간 살인병기, 제이슨 본을 탄생시킨 것은 미국의 국방부 산하 트레드스톤 프로젝트였지만 제이슨 본이라는 ‘대 실패작’으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들이 창조한 인간병기 제이슨 본으로 인해 거꾸로 그들의 조직이 역습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이슨 본이 원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조직의 소탕작전이 아니라 그저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일 뿐이다. 이제 그가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삭제하는 길뿐이다. 제이슨은 콩클린에게 총구를 겨누고 마지막 다짐을 받으려 한다. 모두에게 내가 죽었다고 말해줘. 아무도 날 찾지 않게.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게. 



   제이슨 : 이제 제이슨 본은 죽었어, 내 말 알겠어? 그는 2주 전에 익사했어. 사람들에게 제이슨 본은 죽었다고 발표해, 알아듣겠지?
   콩클린 : 그러면 넌 어디로 갈 건데? 
   제이슨 : 몰라. 하지만 만약 누구든 내 뒤를 미행하면, 난 하늘에 맹세코, 너에게 복수할 거야. 난 이제 내 편일 뿐이야.

   하지만 제이슨이 ‘나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홀로 굳게 결심한다고 해서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될 수는 없다. 제이슨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이 일에 연루된 사람은 엄청나게 많고 투자된 자본은 엄청나다. 제이슨 제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콩클린은 결국 ‘조직의 논리’에 따라 제거당하고, 제이슨은 이제 더 강력한 추격자와 맞서게 된다. “트레드스톤의 작전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애초에 그것은 고도의 지능 훈련프로그램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훌륭한 기반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 막대한 투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관련 작전을 철회합니다.”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는 국방부에 트레드스톤 작전의 종료를 선언한다. 그러나 트레드스톤의 종언은 곧 더욱더 ‘업그레이드’된 트레드스톤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럼 다른 작전은 준비 됐습니까?” “네, 바로 블랙 브라이어 작전입니다. 국방부와 합작하여 계획된 이 작전은 성공적인 장기 훈련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제이슨 본이라는 실패작으로 인해 좌절된 트레드스톤은 결국 블랙 브라이어라는 대체제로 바뀐다. 블랙 브라이어 프로젝트는 제이슨의 실패를 통해 ‘오류 가능성’을 대폭 줄인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간병기 제작 기획이 될 것이다.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유롭고 유연한 두뇌를 장착한, 기계-인간을 만들어내는 것. 아마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을, 저마다 사연이 파란만장한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그의 원래 삶을 빼앗고 외관상 매우 멋진 비밀요원의 임무를 맡기는 것. 결국 트레드스톤이나 블랙 브라이어나 동시에 한 인간이 가진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제거해 ‘국가장치’의 아이덴티티를 이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그들은 언제든 ‘제이슨 2, 제이슨 3’를 만들어낼 것이고 트레드스톤보다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대체 제를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세계’의 밑그림을 차곡차곡 완성해나갈 것이다.   


   트레드스톤으로부터 도피하느라 아직 블랙 브라이어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제이슨은 일단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로 한다. 내가 무엇이었든, 내가 누구였든, 이제 상관하지 않겠다. 그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과거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는 트레드스톤을 가까스로 따돌린 후, 굳이 곳곳의 서류와 증인을 찾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굳이 나를 찾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나의 육체가 이미 나의 과거를 말하고 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 나의 육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나를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굴레도 육체지만, 내가 이 삼엄한 권력의 감시망을 뚫고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내 육체 위에 나 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이자 희망, ‘내 몸’이라는 최고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로 떠나기로 한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 그녀에게로.  

   
 

푸코는 생전에 깊은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고, 다만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은 그의 스타일이 지닌 독창성에서 비롯되었는데, 덕분에 <말과 사물>처럼 어려운 저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철학 수업에 관계하는 내 여자 친구 한 명은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사르트르 한 페이지, 레비스트로스 한 페이지, 그리고 푸코 한 페이지를 읽어준다. 그런데 푸코의 페이지를 들을 때만 학생들은(……) 그의 글쓰기 때문에 깜짝 놀라 침묵 속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그의 강의가 거둔 성공(강의실이 꽉 차서 청중들은 바닥이나 통로에 앉기도 했고, 일부는 다른 강의실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또한 그 강의의 내용보다는 그 스타일에 기인하는 바가 더 컸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 산책자, 2009,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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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dltkdtm 2009-11-30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언이 가슴을 후벼파네요.ㅋㅋ 애써 진실을 직접 찾아내어 믿기보다는 내가 믿는 것이 곧 진실이라 믿는 것이 속 편하기에....

맨손체조 2009-11-30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 벌써 끝나는 건가요??? 이제 본과 이별하는 건가요?? 2탄, 3탄은요? 음, 여하튼 다음 영화를 기대할랍니다.....

someday 2009-12-0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요? 마지막회 표시가 없는 듯^^ 슈프리머시와 얼티메이텀도 이야기해주셔야죠!!

doingnow12 2009-12-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럼 모두 버려야, 모두 가지게 되는 건가..?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⑩

 

10. 모두 너였어! 널 만든 건 너야! (1)

   
 

그러니까 그렇게 멀고도 높은 곳에서 다른 이들의 담론을 기술하고자 하는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말하고 있다고 자처하십니까? 


 - 미셸 푸코

 
   

   감옥 아닌 곳에서 인간을 감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은 ‘신이(혹은 카메라가) 언제나 너를 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체의 무의식에 기입하는 것이다. 특히 카메라가 제이슨 본의 ‘등 뒤’를 비출 때, 관객은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제이슨 본의 목숨을 노리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신처럼 전지전능하여 언제든 바로 그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총구를 들이댈 것만 같다. 제이슨의 기억을 상실하게 한 사건도 바로 그의 등 뒤를 쏜 두 발의 총성 때문이지 않았는가.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격인 콩클린을 직접 독대함으로써 제이슨은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에 한층 가까이 가게 된다. 제이슨은 콩클린과의 섬뜩한 조우로 인해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제이슨 스스로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나는 트레드스톤 요원이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든, 내가 누구였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임을.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부터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내가 누구였든 지금부터의 결정 하나하나에 따라 나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구였는가’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고, 그 진실의 참혹함이 나를 평생 추격할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는 콩클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실’의 파편에 맞아 휘청거린다. 그제야 ‘내가 한 짓이 무엇이었는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누구였는가’라는 필생의 화두는 ‘나의 과거로부터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바뀐 것이다. 
  

   “케인이란 존재를 만든 건 너야! 움보시와의 미팅을 주선한 것도 경비 회사를 찾은 것도 너야! 사무실에 침입한 것도 너지! 젠장맞을, 암살 장소를 그의 요트로 정한 것도 바로 너잖아!” 이제야 생각난다. 모두 나였다. 모두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고 내가 실패한 것이었다.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일부러 지우려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세상 속에서 삭제한 것도 나 자신이었다. 더욱 훌륭한 암살 기계가 되기 위해, 그 모든 ‘자아의 삭제’ 프로그램 또한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트레드스톤의 임무는 ‘살인의 주체’를 철저히 영원한 비밀에 부친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대상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제이슨 본은 이 비밀 임무 수행에 가장 적합한 최고의 ‘인간병기’였던 것이다. 

   트레드스톤의 시스템은 마치 한 명의 암살대상을 죽이기 위해 수십 명의 저격수에게 총을 쏘게 하는, 그리하여 ‘누가 쏘았나’라는 질문에서 모두를 회피시키는 ‘주체의 삭제’ 전략과 비슷하다. 저격수는 ‘설마 내 총에 맞아 죽은 것은 아니겠지’라는 위안 속에 죄책감을 씻어버리는 것이다. 모두 ‘조직의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단지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죄도 죄책감도 책임도 조직에 돌아간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벌거벗은 자아와 만나고 나서야 제이슨은 깨닫는다. 살인의 죄책감은 온전히 자신의 ‘개별적인’ 육체로 쏟아지는 고문임을. 과거의 그가 트레드스톤을 스스로 택한 것이라 해도 지금의 그는 그 고통스러운 살인의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제이슨은 콩클린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런 일은 이제 그만 두고 싶어.” 제이슨은 이제야 기억났다. 왜 움보시를 쏘지 못했는지를. 5일씩이나 움보시가 타고 있던 배에 잠복하고도 움보시를 차마 쏠 수 없었던 이유. 그를 쏘려고 했던 순간 그의 가슴 속에서 꼬물거리던 아이들의 눈빛 때문이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제이슨을 바라보던 그 아이들의 눈빛. 제이슨은 아이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차마 아빠를 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 뼛속 깊이 속속들이 조직의 기계부품이 되지 못한 제이슨이라는 한 인간의 아킬레스건. 악명 높은 트레드스톤의 훈육 프로그램도 미처 길들이지 못한 제이슨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듯 너무도 나약해서 더욱 아름다운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말한 모든 것들의 무게 아래에서 신(神)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이, 당신들이 말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서, 신보다 더 오래 살 한 인간은 만들어내리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 미셸 푸코, 이정우 역,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1994, 290~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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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1-2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티비 드라마 보다가 다음 날 지각하기, 멍때리기!!!

둥이 2009-11-2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이의 눈빛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져,
전 매일 매일 그 위력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자 그럼 한번 빠져~~봅시다~~~

니모 2009-11-2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의외였죠. 천하의 제이슨 본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아이들의 그 까만 눈 앞에서 무너지던 그 모습!^^

doingnow12 2009-12-0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시리즈 안봤었는데 꼭 봐야겠어요.. 이상하게 손이 안가는 영화들이 있자나요ㅋ 이제 손이 갈것 같아요 ㅋㄷ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⑨

 

9.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2)

   
 

푸코는 주먹다짐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용기란 육체적인 것 말고는 없다”고 규정했다. 용기, 그것은 용기 있는 육체다. (……) 노동자 계급의 노동이 아니라, 육체가 착취당한다. 시민들은 군대식 규율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육체는 훈육되고 길들여지며 그 위에 권력이 행사된다. 감금 체계는 육체들을 가둔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222쪽. 

 
   

   자신을 죽이러 온 요원을 살해한 후, 제이슨 본은 비로소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나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내 곁의 그녀, 마리다. 그는 마리의 가족들을 대피시키면서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돈을 마리에게 주기로 작정한다. 트레드스톤의 보이지 않는 원형 감옥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돈이니까. “모두 가져가요. 끝없는 싸움이에요, 마리. 당신은 빠져요, 나한테서 떠나요.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들었어요. 마음껏 쓰면서 살아요.” 마리는 자신을 향한 제이슨의 진심을 읽어내고 망설이지만,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일단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기억을 찾았을 때, 비로소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그렇게 찾은 내가 결코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차라리 나를 찾지 않는 것만 못하다면,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나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제이슨은 아직 자신을 완전히 되찾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이름도 가족도 출생지도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분명 나 자신의 인생보다 조직의 목표를 위해 훈련된 인간일 것이다.
   마리를 떠나보낸 후, 제이슨은 트레드스톤과 직접 교섭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나를 찾기 위한 수동적인 대처가 아니라,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싸움을 걸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인연을 끊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과거의 나’가 결코 되찾고 싶지 않은 나라는 것만은 알 것 같다. 제이슨은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서 마리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 


   제이슨 : 네가 보낸 사내는 죽었다. 그러니 어서 대화를 시작하자. 
   콩클린 : 그 여자는?
   제이슨 : 그녀는 죽었어.
   콩클린 : 안됐군, 어쩌다 죽었어?
   제이슨 : 방해가 되더군. (……) 파리에서 5시 반에 만나. 오늘, 퐁네프에서. 혼자 와, 다리 한가운데까지 혼자 와서 거기서 재킷을 벗고 동쪽을 봐.

   그러나 콩클린은 약속 장소에 혼자 오지 않는다. 그는 조직의 기동력과 조직의 권력 없이는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직의 허물을 벗기고 나면 한없이 나약하고 겁 많은 존재일 것만 같다. 조직의 권력이 곧 나 자신의 권력이라 착각하는 인물의 전형인 것이다. 반면 제이슨 본은 조직의 허물을 벗겼을 때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나는 인간이다. 비록 엄청난 사건 뒤의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제이슨의 등에 두 발의 총을 쏜 움보시 덕분(?)에 제이슨은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이슨은 결코 조직의 논리로 자신의 삶을 덮어버릴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제이슨은 결국 콩클린의 숙소에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조직의 견고한 탈을 벗긴 인간 콩클린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가 잠들기 직전일 테니. 제이슨의 갑작스런 등장에 겁에 질린 콩클린, 이제 그의 입에서 제이슨의 비밀이 누설될 차례다. 

    제이슨 : (겁에 질린 콩클린을 향해 총을 겨누며) 총 버려!
    콩클린 :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그러지,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제이슨 : (……) 네가 트레드스톤이야?
    콩클린 : 내가 트레드스톤이냐구? 무슨 얼어 죽을 소리람? 아주 미쳤군.
    제이슨 : 당장 설명하란 말이야!
    콩클린 : 우린 한편이었잖아.  
    제이슨 : 어떻게 한편이었지?
    콩클린 :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단 말이야?
    제이슨 :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난 누구지?
    콩클린 : 넌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야!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지! 넌 빌어먹을 대 실패작이야! 하지만 이 지경이 돼버렸어도, 넌 나에게 경과보고를 해야 해. 대놓고 죽이라고 널 보낸 게 아니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라고 널 보낸 거야. 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널 보낸 거야!

   
 

요컨대, 범죄의 존재는 다행스럽게도 ‘인간성의 강인함’을 나타내며, 그런 만큼 실제의 범죄에서 보아야할 것은 유약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굽힘없이 솟구치는 에너지, 즉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매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인간 개인의 강력한 저항’이다. (……) 범죄는 흑인해방의 경우처럼, 때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의 해방을 위해서도 소중한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흑인 해방이 범죄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독약, 방화, 그리고 때때로 폭동까지도 사회적 조건의 극단적인 비참을 입증하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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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1-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용기 있는 육체"와 세 번째 사진이 연결되면.....음.....

둥이 2009-11-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손체조님 무슨 상상을...
우리 마눌님은 나에게 "용기 있는 육체"이길 바라는건가^^
난 겁쟁이^^

starsailor 2009-11-2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용기 있는 육체, 아, 그것만 있다면 마치 만능열쇠를 얻은 듯 할 텐데. 이노무 귀차니즘에다가 먹고사니즘 때문에^^

doingnow12 2009-12-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있는육체가 되려고 이렇게 살이 찌는걸까요? ㅠ_ㅠ아 괴롭다..ㅋㅋㅋ 저도 귀차니즘에 먹고자기즘..ㅋㅋㅋ

love hurts 2009-12-1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자기즘! ㅋㅎㅎ 완전 웃겨요^^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⑧

 

8.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1)

   
 

날마다 응접실에서 ‘상벌수여’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사소한 반항에도 징벌이 가해지는데, 중대한 위반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리 가벼운 과실이라도 매우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메트래에서는 심지어 쓸데없는 말 한마디까지도 처벌된다. 부과되는 처벌 가운데 주된 것은 독방 수감이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6쪽.

 
   

   푸코는 근대적 감옥 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메트래(Mettray) 소년감화원에서 찾는다. 수도원과 감옥과 학교와 군대의 훈육 프로그램이 황금 비율로 결합되어 있는 곳. 수감된 아이들이 ‘매를 맞느니 차라리 독방 수감이 훨씬 좋다!’고 절규하던 곳. 메트래 소년감화원이 문을 연 1840년이야말로 푸코가 규정하는 ‘근대적 감옥의 탄생원년’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 현대인들은 ‘좀더 나은 감옥’을 갖게 되었는가. 마리와 크루츠를 추격하던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콩클린의 태도를 보면, 현대인은 언제든 감옥 바깥에서도 감옥 못지않게 철저히 감금될 수 있는 신체가 된 것 같다. 현대사회가 원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굳이 감옥의 각종 시설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인터넷만으로도 우리는 훌륭한 정보화 감옥의 죄수가 된다. 


    콩클린 : (지도 위의 노란 표적을 가리키며) 그래, 이 노란 표적은 뭐지?
   요원 : 그녀가 97년에 몇 개월 머문 곳입니다. 리옹 시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콩클린 : 이곳들이 표적이야!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 위반! 뭘 해도 좋아! 이 장소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게 보고할 수만 있다면 말이네.
 (……)
    요원 : 국제전화를 포함해, 그녀 가족들의 통화 내역을 모두 조회했습니다. 그들은 새벽 2시에 파리에 있었어요. 비행기는 못 탔을 거예요, 기차는 들킬 위험이 너무 많고 그는 추적당할 염려가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할 테죠. 우리의 추측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이슨과 마리를 찾기 위해 그들은 모든 악행을 정당화 한다.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위반.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어디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현대사회는 감옥 바깥조차 감옥의 시스템으로 통치되는 개방형 원형감옥일지도 모른다. 마리 가족들의 전화를 깡그리 도청하고 마리의 최근 행적을 조회해본 결과, 제이슨과 마리의 위치는 도주한 지 하루도 안 되어 발각되고 만다. 극도로 예민한 제이슨 또한 마리의 오빠 집에서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방문한 이 집에 마리의 오빠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있다니. 혹시 나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딜 가나 그들은 분명 곧 나를 찾아낼 텐데, 아무리 도망친들 뭐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꼭 밝혀야만 할까?

    마리 : 여기서 뭐해요?
    제이슨 : 애들 걱정이요, 잘 수가 없어요.  
    마리 : 애들 깨겠어요, 나갑시다.
    제이슨 : (전에 없이 흥분하여 평정을 잃고) 난 더 이상 내 존재가 궁금하지 않아요. 상관없어요, 알 필요 없다고요. 지금까지의 일은 다 잊겠어요. 내가 누구이든 무슨 짓을 했든 신경 안 써요! 우린 돈이 있어요! 숨어 살아요! 그럴 수 있겠어요? 당신도 그럴 수 있겠죠?
    마리 :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모르겠어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싶은, 그 길고도 긴 밤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제이슨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이 숨 막히는 추격전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자신의 신원을 알든 모르든 그는 지금 ‘제거 대상’일 뿐이다. 마리와 제이슨에게 세상에서 가장 기나긴 밤이 끝나고 드디어 아침이 밝아온다. 이른 아침부터 제이슨은 자신을 둘러싼 ‘포식자’의 기운을 예리하게 감지한다. 제이슨은 마리와 가족들을 재빨리 대피시키고 자신을 추격하는 침략자를 멀리 야외로 유인한다.
   이번에 제이슨을 죽이기 위해 파견된 트레드스톤 요원(클라이브 오웬)은 한층 현란한 사격솜씨와 화려한 액션으로 제이슨을 압박한다. 둘 사이의 숨 막히는 추격전과 총격전이 한바탕 끝나고. 어떤 언어도 없이 오직 총으로만 ‘의사소통’하는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총격전. 이제 총을 잡는 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의 제이슨 본은 마침내 요원을 죽음 직전으로까지 몰아간다. 죽어가는 요원에게 총신을 겨누고 마지막으로 질문하는 제이슨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누군지 모르는 신원 미상의 부랑자’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관객의 눈에 그는 최고의 첩보원으로 ‘완성’되었다. 

   제이슨 :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누구야? 전부 몇이나 돼?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요원 : 난 혼자서 일해, 너처럼. 우린 늘 혼자 작업하잖아.
    제이슨 : (‘우리’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 무슨 말이야?
    요원 : 너나 나나 트레드스톤 소속이잖아.
    제이슨 : 트레드스톤?
 (……)
    요원 : 너, 늘 머리 아프지?
    제이슨 : 응.
    요원 : 나도 머리 아파 죽겠어. (……) 그가 널 죽이라고 했어. 나를 봐……. 그가 널 해치려는 것을 알겠지? 

   요원을 죽이고 제이슨은 살아남는다. 결국 그와 나는 같은 ‘훈육 프로그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훈육과 세뇌로, 기억을 상실했을 때조차 몸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 이 엄청난 살인기술의 흔적들. 자기가 누구인지는 깡그리 잊었어도 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이는지는 잊어버리지 않은 신체의 놀라운 기억. 제이슨은 정당방어의 논리로 상대방을 죽이긴 했지만, 마치 자신의 ‘형제’를 죽인 듯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죽어버린 그도 역시 제이슨처럼 특수요원 훈련을 받은 트레드스톤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를 훈련시킨 프로그램은 정확히 제이슨을 훈련시킨 바로 그 훈육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처참한 살육을 ‘프로그래밍’한 자들은 마치 두 사람을 ‘게임의 파이터 1, 2’처럼 취급하며 멀리서 그들의 격투를 ‘관람’할 것이다. 프랑스의 악명 높은 메트래(Mettray) 소년감화원의 교육 프로그램만큼이나 트레드스톤의 ‘훈육 프로그램’ 또한 고도의 ‘정신 성형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메트래에서 원장과 부원장은(……) 행동을 다루는 기술자, 다시 말해서 품행을 다루는 기술자이자, 개개인을 뜯어고치는 정형외과 의사이다. 그들은 순종적이고 동시에 유능한 신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컨대 그들은 하루 9~10시간의 노동을 통제하고, 분열식 · 체조  · 소대훈련 · 기상 · 취침, 그리고 나팔과 호각소리에 따른 행진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운동을 시키고, 청결을 검사하고 목욕을 감독한다. (……) 신체의 조립방법은 개인의 구체적 지식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고, 기술의 습득은 행동방식을 결정하고, 적성의 획득은 권력관계의 확립과 뒤얽힌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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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2009-11-2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어떤 기계의 부속품인지 문득 궁금해지는 날. 괜시리 뒷목이 쭈뼛 섭니다.^^

맨손체조 2009-11-2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한동안 머물렀던 <군대>나, 제가 그래도 오랬동안 다녔던 '국민학교'나 그리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손톱 길고, 때 꼈다고, 머리 감지 않았다고, 선생님께 30센티 자로 손톱을 맞았던.....

둥이 2009-11-2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날 아침 아무의미없이 출근하는 나도
누군가에게 훈련된 프로그램이 결과물인지...
그래서 난 떠 날 꺼 야!!를 늘 외침니다^^

doingnow12 2009-12-03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천리나만리나 어서 떠나세요 둥이님..ㅋㅋ
가끔 우리집 말고는 모든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보여지고'있다고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섬뜩!..하다못해 우린 운전을 할때도 보여지기 위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곤하자나요..ㅎㅎ 이런게 바로 21세기형 윤리와 감옥일까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