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⑦

   

7.  기억을 지배하는 인간  vs  인간을 지배하는 기억 (2)

   
 

 내 상처는 나 이전에 존재했으며, 나는 그것을 체현하려고 태어났다.
 - 조 부스케(Joe Bousquet)

 
   

   영혼의 타임 리프는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기억하고 싶은 것’을 더 명료하게 인지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압하거나 삭제하면서 비공인 타임 리프를 하고 있다. 어떤 시간에 분명히 그곳에 있었는데 완전히 그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 듯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A와 B가 함께 있었는데, A는 그 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B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B는 일종의 타임 리프를 한 셈이다. A에게는 분명히 일어났던 사건이 B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이다.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함께 했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옛사랑, 함께 나눈 우정의 순간을 깡그리 잊어버린 친구들, 자신이 분명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하여 타인을 상처 입히는 그 수많은 순간. 
    

   문제는 타임 리프의 가능성 자체가 아니라 기억의 삭제나 리와인드, 리플레이가 아무리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기억을 ‘편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의도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은 매 순간 우리의 의도를 뛰어넘는 곳에서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발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잊은 줄만 알고 있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당황하기도 하고, 그토록 기억이 나지 않던 무언가를 엉뚱한 계기로 갑자기 기억해내기도 한다. 우리 의식에 완전히 기입되지 않은 기억들은 무의식에 슬며시 기록되어 언젠가 도래할 ‘비자발적 기억’을 기다린다.
    이 비자발적 기억이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지금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 연대기적 시간의 믿음이 깨지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사건의 재해석’이 가능해진다. 한때는 그토록 부끄러웠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비자발적 기억이 꿈틀대는 무의식의 카오스에서 진행된다. 즉 영혼의 타임 리프는 우리 명료한 의식의 등 뒤에서, 즉 무의식의 그림자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신발과 할머니에 대한 추억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 그러나 이 추억은 우리에게 되찾는 시간의 풍족함을 주는 대신에 고통스러운 소멸을 느끼게 하고,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의 기호를 이룬다. 자기의 신발 쪽으로 몸을 굽혔다가 주인공은 무엇인가 성스러운 것을 느낀다. 그런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며, 비자발적인 기억이 죽은 자기 할머니에 대한 비통한 추억을 불러온다. (……) 할머니를 묻은 후 일 년 이상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할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할머니를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 들뢰즈, 서동욱 ·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45쪽.

 
   



   프루스트는 ‘감정의 달력’과 ‘시간의 달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응시한다. 상실에 직면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상실을 깨닫는 인간의 ‘비자발적 기억’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고통. 마코토 또한 치아키를 잃고 나서야 치아키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빠진 스스로를 응시한다. 마코토는 유리와 데이트 중인 치아키로 인해 마음이 복잡해져 멍한 표정으로 기계적인 캐치볼을 하고, 도무지 어떤 일에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마코토가 그토록 유지하고 싶었던 우정의 삼각형은 흔들리고 있다. 고스케는 치아키 없이 마코토와 둘이서 심드렁하게 캐치볼을 하며 불쑥 마코토의 허를 찌른다. “치아키, 너한테 차여서 유리랑 사귀는 거 아냐?” 고스케는 목격하지도 않은 사건을, 게다가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어버린 ‘사라진 사건’을 귀신같이 포착해낸다. 어쩌면 고스케의 무의식에도 마코토를 향한 치아키의 마음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사건화’되지 않는 우리의 욕망이 너의 무의식, 나의 무의식 안에서 꿈틀거리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이모는 마코토의 외로움을 걱정해주는 고스케의 마음을 알아채고 이젠 고스케와 사귀지 그러냐고 너스레를 떤다. “마코토 넌 고스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려울 때 도와주는 건 늘 고스케였잖아. 사귀지 그래?” 마코토는 어이없다는 듯 이모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모는 빙그레 웃으며 마코토의 ‘시간 놀이’를 살짝 풍자한다. “어차피 아니다 싶으면 시간을 돌려버리면 되니까!” 마코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그런 짓은 절대 안 해. 사람 마음을 갖고 노는 거잖아.”
   이모는 마코토에게 질문한다. “그런 나쁜 일은 못하겠니? 일이 잘 안 풀리면 과거를 되돌려버릴 생각으로 지금까지 신나게 놀았잖아.”  마코토는 허를 찔린 듯 깜짝 놀라 이모를 노려본다. “날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어? 이모는 마녀가 확실해. 우리 이모는 진짜 마녀야.” 이모는 깔깔 웃고 마코토는 상처 입은 듯 씩씩거리며 이모를 흘겨보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이제 ‘타임 리프로 인해 매일매일 행복한’ 철없는 마코토 또한 ‘기억 속의 마코토’로 사라져가고 있음을. 더 이상 마코토에게 타임 리프는 매력만점의 놀이기구가 아님을.

 

   
 

모든 사건은 나를 기다린다! (……) 도덕이란 결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좋던 싫던 네게 도래하는 것을 네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시인 조 부스케는 가장 위대한 모럴리스트의 한 사람이다. 부스케는 끔찍한 부상을 입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말하고 설명하려 한 것은, “이 사건, 나는 그것을 체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문제는 말하자면, 사건에 걸맞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었다.  


 - 들뢰즈, 조 부스케의 <달몰이>에 대한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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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나 2009-10-15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내게 일어난 사건에 어울리는 사람일까...가끔 어떤 사건은 내게 일어나기엔 너무 커다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에 걸맞게 존재하기, 흐흠....그것이 존재의 윤리라는?^^

맨손체조 2009-10-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루스트, 마들렌, 기억. 타임 리프를 한다고 그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마들렌을 먹던 느낌을 복원할 수는 없겠죠^^*

sotkfkd 2009-10-16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것을 체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내 전생이 궁금해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⑥

  

6.  기억을 지배하는 인간  vs  인간을 지배하는 기억 (1)

   
 

 호글런드는 아내를 간병하다가 잠시 침대를 떠나 휴식을 취했다. 침대로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서 오랫동안 어디에 가 있었느냐는 심한 불평을 들었다. 사실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아주 짧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경과한 시간은 그보다 아내에게 더 길게, 그것도 실제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그러잖아도 생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호글런드는 ‘화학적 시계’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두뇌나 신체 속에서 시간의 경과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모종의 화학적 과정을 가리킨다. 물리화학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화학적 과정은 열을 받을 경우 속도가 증가하게 마련이므로 호글런드는 아내의 시계가 높은 체온에 의해 열을 받아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감으로써 그가 비운  시간을 아내가 실제보다 더 길게 생각했던 것이라고 추론했다.  
   

- 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남경태 역, <시간의 발견>, 휴머니스트, 2002, 259쪽.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앓고 있던 아내를 두고 별생각 없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돌아오니, 아내는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쳐, 남편에게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렇듯 한 침대를 쓰는 부부에게도 시간은 완전히 다른 속도와 다른 뉘앙스로 흘러가고 있다. 아내의 ‘높은 체온’이라는 물리적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몸이 아프고 힘들어 잠시도 남편과 떨어져 있기 싫었던 아내의 절박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빈방에서 홀로 끙끙 앓을 때처럼 더디고 고통스럽게 가는 시간이 있는가.
   우리는 주관적 시간 · 객관적 시간, 심리적 시간 · 물리적 시간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을 지닌 인간에게 시간은 늘 주관적이고 늘 심리적일 수밖에 없다. 마코토가 온몸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몸 구석구석에 타박상을 입어가면서 깨달았던 시간도 바로 이런 시간, ‘우리 몸과 마음의 연금술이 빚어낸 시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마코토는 내 맘대로 리와인드하고 리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 덕분에 쪽지 시험도 잘 보고, 가정 시간에 자리를 바꿔 ‘망신살’도 면하고(마코토가 피한 재난은 엉뚱한 남학생이 대신 뒤집어쓰게 되었다), 노래방 러닝타임도 늘이고, 동생이 먹어버린 푸딩도 ‘새것’으로 되찾았지만, ‘내가 바꿔버린 기억’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 입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마코토는 ‘사소한’ 일에만 타임 리프를 활용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가정 시간에 자신의 실수를 떠넘긴 바로 그 ‘어벙한’ 남학생이 마코토에 대한 복수심으로 소화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마코토의 실수를 대신 뒤집어쓴 그 남학생은 (미리 일어날 사건을 예견하고) ‘자리를 바꿔달라’라고 요구한 마코토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마코토, 너 왜 그때 나한테 튀김을 하라고 한 거야?” “아니, 그게……. 설마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줄 알았기 때문에’ 그 남학생과 자리를 바꿔치기했던 것이다. 마코토는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잔뜩 주눅이 든다. 게다가 치아키가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리저리 치아키를 피해 다니다가 어느새 치아키와 소원해질 기미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내 맘대로 맘껏 오려붙일 수 있는 기억’에 대한 마코토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타임 리프의 최대 장점은 ‘기억을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었는데, 마코토는 ‘완전한 나만의 기억’도 ‘현재로 고정할 수 있는 기억’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시간을 지배함으로써 기억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코토의 상큼한 계산은 들어맞지 않는다. 늘 마코토의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던 이모는 웃으며 말한다. “일단 사귀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사귀기 전으로 돌아가지? 너라면 할 수 있잖아.” 그런 일 절대 없을 거라며 얼굴을 붉히는 마코토. 이모는 아쉽다는 듯 치아키의 편을 들어준다. “그래? 없던 일로 해버렸구나. 치아키 너무 불쌍하다. 힘들게 고백했을 텐데. 하긴 본인은 눈치도 못 채고 있겠네.” 이모가 치아키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마코토는 ‘치아키와 별로 안 친하다’며 자기도 모르게 시치미를 뚝 뗀다. 치아키로 인해 생긴 미묘한 감정의 혼돈 때문에 치아키랑 그토록 매일 붙어 다니면서도 ‘안 친하다’고 둘러대는 마코토.  

   무슨 일이든 이모에게 다 털어놓고, 굳이 털어놓지 않아도 얼굴에 온통 감정이 낱낱이 ‘필기’되어 있는 투명 소녀 마코토에게, 이제 비밀이 생겼다. 내가 타임 리프를 했다고 해서 나에게 고백한 치아키의 진심까지도 사라져버린 걸까. 치아키의 마음을 받아주지도 못했는데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이 기묘한 상실감은 뭘까. 도대체 타임 리프란 무엇일까.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노력은 헛수고일까. 시간을 되돌려도 내 기억이 축적되는 한 그렇게 남몰래 쌓인 기억은 내 영혼에 날카로운 흔적을 남긴다.
   저장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들은 애초의 내 의도와 달리 내 등 뒤에서 배회하며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들고 있다. 타임 리프로 인해 나는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하여 내가 감독한 나만의 ‘UCC형 기억’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되돌리고 싶었던 바로 그 과거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버린 나의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 삶을 응시하고 있다.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의 등 뒤에서, 내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다.  

   
 

나는 (……)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 기억은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에게 찾아온다. 여기서 주체는 바로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이 이와 같이 갑자기 도래하는 것에 대해 ‘나’는 철저하게 무력하며 수동적이게 된다. 바꿔 말하면 ‘기억’이란 때때로 나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의 신체에 습격해 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건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현재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기억의 회귀란 근원적인 폭력성을 숨기고 있는 게 된다.   


 - 오카마리, 김병구 역, <기억 서사>, 소명출판, 2004, 48~49쪽.

 
   

   치아키가 혹시나 고백을 할까 봐, 아니 이미 ‘나의 기억’ 속에서는 고백해버린 치아키를 피하느라, 치아키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대하는 마코토. 마코토는 타임 리프를 하게 되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동떨어져 고립된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시간적 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갑자기 ‘마코토스러운’ 명랑함과 천진함이 사라지자 치아키는 마코토를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들이 잠시 멀어진 틈을 타 마코토의 친구 유리는 치아키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상하다. 분명히 치아키와는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는데, 막상 치아키가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자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든다.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잃어버리고, 사귀지도 못한 채 이별하는, 시작조차 없이 끝나버리는 이상한 감정.
   정말 치아키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몇 번이나 나에게 사귀자고, 진심이라고 고백하던 그 진지한 표정은 그럼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치아키의 고백을 한사코 듣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나 자신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마코토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실감에 비틀거리고,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에 난입하는 기억들의 난투극으로 인해 그토록 단순하던 그녀의 ‘뇌 구조’가 복잡하게 흐트러진다.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려던 노력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에 소중하게 둥지를 틀어버린 바로 그 시간을 잃어버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와버렸다.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 채 흘려버린, 아니 억지로 삭제해버린 그 시간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로 인해 시간을 도둑맞은 그 남학생의 상처받은 시간은 또 어떻게 되돌려야 할까. 

 

   
 

잃어버린 시간,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 존재들의 변화에 대해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기호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와 친숙했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는 뜻밖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윌에게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린 그 사람들의 얼굴은 시간의 기호들과 시간의 영향을 순수한 상태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람들의 얼굴 특성을 변질시키고 다른 특성들을 늘리거나 또 무르게 하고 부숴버린다. 시간은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우리 앞에 나타나기 위해 육체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육체들을 만나기만 하면 어디서든 그들을 붙잡아 그 위에 자신의 환등기를 비춘다. 
  

- 들뢰즈, 서동욱 ·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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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hurts 2009-10-1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져보지도 못한 걸 잃어버리고, 만나지도 못했는데 헤어지고,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끝나버리는 첫사랑. 가질 수 없어서 되찾을 수도 없는 시간들. 맞아요, 그땐 그랬지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⑤

  

4.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 (2)

   
 

 신들은 시간을 구별하는 법을 처음 알아낸 사람을 저주한다.
 또한 이곳에 해시계를 세운 사람도 저주한다.
 나의 하루를 마구 깎고 쪼개어
 작은 조각들로 만들었다고!
 어렸을 때 나의 배는 나의 해시계였다.
 어느 누구의 배보다 확실하고 올바르고 정확한 시계였다.
 이 시계는 내게
 밥 먹을 때를 말해줬다.
 하지만 지금은 태양이 허락하지 않으면
 왜, 언제 밥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시내에는 이런 저주스런 해시계들이 가득하다. 


 - 기원전 3세기 후반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 스튜어트 매크리디 엮음, 남경태 역, <시간의 발견>, 휴머니스트, 2002, 145~146쪽.

 
   

   시간이 ‘의식’되는 순간, 시간을 ‘훈련’해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은 ‘내 몸이 느끼는 시간’의 고유성이 파괴되는 경험을 했다. 인간은 시계를 발명하여 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꾸로 그 ‘발명된 시간’으로 인해 시간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시간표를 지켜야 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끝내야 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경험하는 셈이다.
   아이온의 시간에서 ‘고정된 현재’란 존재할 수 없다.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줄 세우는 일도 불가능하다. 아이온의 시간은 ‘상태(being)’가 아니라 ‘과정(becoming)’, 고정된 상황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건의 생성 속에서 꿈틀대는 존재의 운동을 가정한다. 시간이 ‘고정된 현재’로 얼어붙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과거와 미래로 무한히 열어놓는 시간. 그것이 아이온의 시간이다. 

   근대적 시간관은 개개인의 이질적이고 상이한 시간을 국가의 시간, 학교의 시간, 군대의 시간, 교회의 시간, 회사의 시간, 병원의 시간 등 무수한 ‘집단의 시간’으로 포획하려 한다. 그러나 이 크로노스적 시간에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길들이지 못하는 인간은 매 순간 ‘집단의 시간’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생체 시간을, 심리적 시간을 느낀다. 우리는 권태를 느낄수록,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수록, 참을 수 없이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느낀다. 직선적 시간의 중력으로 인간을 빨아들이려는 모든 권력, 그것이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을 구성한다.
   반대로 영원히 이 순간에 빠져들고 싶은 희열의 시간, 예를 들면 연인과 키스할 때, 우리는 이 순간이 곧 영원으로, 무한한 시간으로 확장되는 듯한 열락에 들뜬다. 굳이 무한을 가정할 필요도 없이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만한 시간. 지금이 몇 시인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망아(忘我)의 상태.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아이온의 시간이 깃든다.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인생의 모든 필름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듯한 느낌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현재-미래를 가르는 인위적 ․ 관습적 경계가 사라지고,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불가해한 시간이 이제야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좌’를 그릴 때. 우리는 아이온의 시간에 진입한다. 

  

   
 

무한일 필요가 없는 이 시간, 단지 “무한히 분할될 수만” 있으면 되는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그것은 바로 아이온이다. (……)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동일한 시간성의 세 부분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가 완전하고 독자적인, 또 시간에서 읽어낼 수 있는 두 측면이다. 한편으로 언제나 한계 지어지는, 원인들로서의 물체들의 활동과 이들의 혼합 상태를 측정하는 현재(크로노스)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한계지어지지 않으며, 효과들로서의 비물체적 사건들을 표면에 모으는 과거와 미래(아이온)가 존재하는 것이다. 


-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136쪽. 

 
   

   타임 리프가 마코토의 삶에 던져준 메시지는 ‘네 맘대로 시간을 요리해보라!’는 단순명료한 계시가 아니라, 시간 자체를 한없이 낯설게 만들어 ‘시간 속의 나’를 사유해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코토가 그토록 엄청난 타임 리프 능력을 저토록 ‘사소한 곳’에 써먹는 이유는 그녀의 천진무구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그만큼 시간에 대한 ‘무개념’ 상태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
   태어나서부터 정해진 인종, 국가, 성별 따위의 기계적 정체성처럼 ‘시간’ 또한 그녀 자신에게 당연하고도 선험적인 ‘초기 조건’으로 세팅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코토는 자신의 타임 리프로 인해 온통 ‘똘똘 말리는’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바라보며 그제야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가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난생처음 시도하게 된다. 시간이 단지 조건이나 전제가 아닌 일종의 난해한 기호처럼 사유의 재료로서 마코토 앞에 내던져진 것이다. 

   
 

심리적으로 중요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중대한 의미를 갖는 시간, 이런 시간들을 현상학적 시간, 또는 아이온(Aion)의 시간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간 안에서 시간 단위들의 선적인 연결은 중요하지 않으며, 사건의 의미들은 항상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느림이나 한가로움, 느긋함 등은 이제 낭비와 게으름, 무능력과 동일한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은 이제 ‘속도는 돈이다’라는 말로 변형되어 우리들의 발걸음과 손놀림, 눈의 움직임과 마음의 움직임을 미덕이 된 속도를 향해 몰아붙이고 있다. (……) 뭔가를 기다리며 하늘 가운데 멈추어 서 있는 매를 본 적이 있는가? (……) 날아보려 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보다 훨씬 힘든 ‘내공’을 요한다는 것을. 떨어지는 것은 속도가 없으며, 단지 중력에 끌려갈 뿐이다. 반면 이렇게 멈추어선 매의 느림은 중력을 이기고, 관성을 이기는 어떤 절대적인 속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 노동이나 이동, 소비, 생활 등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 속도를 갖는 것, 속도의 중력에서 벗어난 외부를 창조하는 것, 강요된 속도나 시간에 벗어난 자율적인 속도와 리듬을 갖는 것, 그리하여 자율주의적인 삶의 리듬, 일의 리듬, 사유의 리듬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낡은 시간적 형식을 변형시키는 일이며, 자율주의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의 시간, 새로운 리듬의 시간을 창안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푸른숲, 2002, 76~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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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2009-10-13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배꼽시계만큼 정확한 시계도 없죠~ㅋㅋ 우리 몸속에 저마다 저장되어 있는 멋진 시계들의 입을 틀어막는 못된 자본의 시계들!

sotkfkd 2009-10-1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형식 속으로 잠식되어지는 우리네의 삶! 참 안쓰럽지요. 다만 자, 이제부터라도 최소한의 잠식에 그칠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할 것. 즉 나름대로 살아낼 것. 남을 의식하지 말 것, 남에게 보이는 나를 의식하지 말 것.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④

  

4.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 (1)

   
 

 시간은 스승이 없는 자의 스승이 될 것이다.
  - 아라비아 속담

 
   

   고스케와 치아키와 마코토. 세 사람은 방과 후 매일 캐치볼을 하고 함께 집에 돌아가는, 그들만의 우정이 창조하는 시간의 리듬을 즐긴다. 마코토의 일과는 크게 세 가지 시간의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의 시간표로 분절되는 기계적 반복의 시간,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자유로운 유희적 시간,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휴식과 몽상의 일상적 시간. 이 시간의 삼각형은 마코토의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축이었다. ‘타임 리프’의 능력을 이용해 시간의 퍼즐 놀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지금, 마코토는 하루하루가 날아갈 듯 행복하다. 그런데 아무리 기상천외한 타임 리프를 구사한다 할지라도, 아직 마코토의 시간 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기계적 시간, 유희적 시간, 일상적 시간으로 구성된 ‘마코토식’ 시간의 모자이크는 여전히 동일한 분류 체계 위에서 작동한다. 

   게다가 마코토는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를 바꿔치기할 수 있는 법을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과거’에서 찾는다. 과거를 수정하고 윤색할 수 있다면 현재도 마음에 드는 방향을 향해 자유자재로 ‘리모델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순차적 흐름을 전제로 한 타임 리프라는 점에서, 마코토는 여전히 직선적 시간의 흐름 안에서 사유하는 셈이다. 이러한 시간관을 들뢰즈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철저히 ‘현재’를 중심으로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로서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앞선 시간일 뿐이며 미래 또한 ‘현재’를 기준으로 나중에 오는 시간에 불과하다. 현재에 종속된 시간의 리듬 속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의 상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시간의 변화는 오직 ‘현재’라는 말뚝에 고정된 한계 내에서 진행된다. 

   
 

크로노스의 관점에서 보면, 오로지 현재만이 시간 속에 실존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시간의 세 차원들인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만이 시간을 채우며, 과거와 미래는 시간 안에서 현재에 상대적인 두 차원이다. (……) 과거와 미래를 흡수하는 보다 큰 현재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279쪽.

 
   


   현재라는 이름의 말뚝으로 고정된 시간 위에서 마코토는 스스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타임 리프는 그녀에게 이 평화로운 시간을 더욱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매력 만점의 놀이기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안의 내밀한 평화는 언제든 외부의 사건으로 인해 깨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불안한 평화다. 고스케가 어떤 수줍은 소녀로부터 사랑 고백을 들은 날, 마코토는 처음으로 지금까지 누려온 평화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스케가 그녀의 고백을 거절하고 치아키가 마코토를 자신의 자전거 뒤에 태운 날, 마코토는 처음으로 ‘현재의 삶’을 향해 자신이 가진 애착을 깨닫는다. 그 애착은 아직은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너무 오래, 너무 강하게 지속된다면 집착이나 소유욕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삶에 대한 애착의 강화는 ‘아직 오지 않은, 미결정 상태의’ 미래를 현재의 관점에서 현재와 동일한 모습으로 고착시키는 행위이기에.
    고스케가 소녀의 고백을 거절하자, 치아키는 그 좋은 기회를 왜 놓쳤냐고 핀잔을 주고,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은 안심이 된다’라고 말한다. 고스케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매일매일 ‘셋이서’ 캐치볼을 하는 현재의 일상이 깨질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스케는 여자친구와 지내느라 ‘우정의 삼각형’에서 튕겨 나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평화로운 현재’의 안정성이 깨지게 될 것이니까. 고스케에게 여자친구가 ‘생길 뻔한’ 사건이 생기자, 마코토는 그제야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것들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상실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혹은 상실에 직면했을 때야 존재의 절실함을 깨닫게 되는 우리들. 그런데 고스케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동시에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치아키가 불현듯 마코토를 자전거에 태운 그 순간부터 이 사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까.  


     마코토: 고스케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잘 챙겨주겠지? 
     치아키: 그럴 녀석이지.
    마코토: 그럼 같이 야구 못하잖아.
    치아키: 캐치볼을 야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
    마코토: 왠지 쭉 셋이서 같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지각해서 고스케한테 잔소리 듣고, 공 못 잡는다고 치아키한테 놀림 받고…….
    치아키: 마코토…….
    마코토: 응? 
    치아키: 나랑……. 사귈래?

   마코토는 생각지도 못한 치아키의 고백에 당황한다. 왠지 쭉 셋이서 같이 있을 것만 같았던 그 느낌, 고스케의 잔소리와 치아키의 핀잔 속에서 은근히 보호받는 듯한 그 행복한 느낌. 그것은 ‘커플’이라는 성숙한 관계,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와는 거리가 먼, 규정되지 않은 모호한 관계의 기쁨이었다. 마코토는 이 미묘한 우정의 감정을 언제까지나 즐기고 싶었는데, 치아키의 고백은 이 내밀한 평화를 깨뜨리는 직격탄이 되어버린다. 마코토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 앞에 어쩔 줄 모르다가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여 타임 리프를 요긴하게 써먹기로 한다. 마코토는 치아키가 마음을 고백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든 치아키의 고백을 막아보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타임 리프를 한 번 시도해서 우여곡절 끝에 치아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 했는데도, 몇 분이 지나자 치아키는 또 다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마코토, 나랑 사귈래?”

   마코토는 어떻게든 치아키의 고백을 ‘무화’시키기 위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천진한 잔머리를 굴려보지만 몇 번이나 그 힘겨운 타임 리프를 반복해도 치아키의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웃음이 멈추지 않는 즐거운 나날들이었는데, 고스케를 좋아한다는 소녀가 생기고 설상가상으로 치아키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코토는 아직 완전한 ‘여성’도 완전한 ‘어른’도 아닌 아이와 어른의 사이에 있는 존재다. 친구들과 캐치볼을 할 때는 영락없는 선머슴 같고 혼자 샤워를 하며 비누거품놀이를 할 때는 영락없는 어린애 같다. 이미 ‘여성’의 몸으로 다 자란 그녀의 육체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천진한 표정은 매혹적인 언밸런스 효과를 발휘한다.
    그녀는 무언가 ‘결정된’ 삶을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다. 이대로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한없이 유유자적하게, 언제까지나 캐치볼을 하면서 셋이서 소풍 나온 기분으로 살고 싶은데. 아, 이렇게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다니, 갑자기 치아키가 미워지는 마코토. 세상에, ‘타임 리프’라는 마법의 지팡이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있단 말인가. 마코토는 깨닫는다. 시계 속의 시간이 같다 해도, 똑같은 7월 13일 오후 해질 무렵으로 돌아갈 수는 있어도, 치아키의 고백을 듣기 이전의 마음으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치아키는 자신의 고백을 잊을 수 있어도 이미 미래에서 치아키의 고백을 들은 마코토는 그 고백의 이상한 설렘을, 알 수 없는 혼돈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내 영혼에 새겨진 그 고백의 흔적을 깔끔히 도려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타임 리프는 불가능한 걸까.

 

   
 

물리학자 볼츠만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의 화살은 개별적인 세계들/계(系)들 내에서만, 그리고 이 계들 내에서 규정되는 현재에 관련해서만 유효하다고 말한다. “우주 전체에 있어, 시간의 두 방향은 공간에서처럼 구분할 수 없다. 위도 아래도 없다” (즉, 높이도 깊이도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크로노스와 아이온의 대립을 다시 발견한다. 크로노스는 유일하게 실존하는 현재이며, 현재들이 부분적인 세계들/계들 내에서 이어지는 한에서, 언제나 과거에서 미래로 흐름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자신의 두 인도된 차원들로 간주하는 시간이다. 아이온은 추상적인 순간의 무한한 분할 내에서의 과거-미래이며, 언제까지나 현재를 피해가면서 끊임없이 두 방향으로 동시에 분해한다.   


 -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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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e 2009-10-1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소한 일에 마구 타임 리프를 사용하다 결국 결정적인 일에서는 타임 리프를 사용할 수 없는 마코토의 슬픈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갓난아이처럼 엉엉 울던 귀여운 눈물방울.^^

맨손체조 2009-10-1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영혼의 타임 리프는 불가능한 걸까?" 네, 불가능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가능했으면 하는 오후^^*

sotkfkd 2009-10-13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적을 꿈꾸어 보는...... .

도란도란 2009-10-1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똑같은 7월13일 오후 해질무렵으로 돌아갈 수 있어도, 고백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뭔가 의미심장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 ③

  

3.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일까 

   타임 리프 능력을 갖게 된 마코토처럼 시간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똑같은 시간을 매일 반복하게 됨으로써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사랑의 블랙홀>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대표 에고이스트인 TV 기상 통보관 필 코너스(빌 머래이)다. 그는 매년 2월 2일에 개최되는 성촉절(Groundhog Day) 취재를 위해 펜실베니아의 펑추니아 마을을 방문한다. 성촉절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2월 2일에 마못(북미산 다람쥐)이 자기 그림자를 보면 겨울이 6주나 길어진단다. 함께 일하는 PD인 리타(앤디 맥도웰)의 눈에 비친 필은 출세와 성공에만 눈이 먼데다가 공격적인 시니컬함으로 무장하여 타인에게 상습적인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한마디로 ‘비호감’이다. 필은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는 데 방해되는 것은 모두 야멸치게 끊어낸다. 늘 그렇듯 형식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떠나려 했던 필은 폭설로 길이 막혀 펑추니아로 되돌아온다.

   성촉절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낡은 호텔에서 눈을 뜬  필은 어제와 똑같은 라디오 멘트를 듣게 되고, 분명히 성촉절 취재를 마쳤건만 마치 오늘이 축제인 양 부산하게 술렁이는 마을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그날부터 2월 2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몽이 시작된다. 자신에게만 시간이 반복되는 마법에 걸린 필. 전설처럼, 마못이 자기 그림자를 본 탓일까. 필은 건강진단을 받아보기도 하고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보지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어떻게 해도 반복되는 오늘을 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된 필은 결심한다. “내일이 없다면 어떨까? 내일이 없다면 인과응보가 없어지겠지. 그럼 책임을 안 져도 되니까 아무 짓이나 해도 되겠군! 그렇군, 원하는 건 무엇이나 해도 되는 거야.” 

   성격대로 가장 나쁜 상상만 골라 하는 필. 그는 ‘못된 투명 인간’처럼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어떤 책임도지지 않아도 좋다는 편의주의적 사고에 몸을 맡긴다. 자신에게만 왜 시간이 반복되는지에 대해 어떤 성찰도 시도하지 않는 필. 그는 닥치는 대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말갛게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체중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폭식을 하는가 하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청혼을 하기도 하고,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으며 초등학교 여자 동창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악한 투명인간 놀이’에도 금방 지쳐버린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했던 나날을 떠올리며 왜 그런 날이 반복되지 않고 하필이면 자신이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이 반복되는가를 자문한다.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시간을 건너뛰는 기상천외한 노하우를 습득하게 된 마코토도 처음에는 변화된 시간 개념에 대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시간 여행의 이점’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마코토는 ‘야호, 타임 리프 짱이야.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승리감에 도취된다. 그녀에게 제일 먼저 다가온 시간 여행의 행운은 동생에게 빼앗긴 푸딩을 되찾는 것이었다. 아니, 동생이 냉장고 안의 푸딩을 꺼내먹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는 이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운 나빴던 하루를 삭제하고 편집하고 윤색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며 좋아한다. 

   다시 시작된 7월 13일. 마코토는 그토록 좋아라 하던 늦잠도 팽개치고 일찍 일어나 부리나케 학교에 나가며 가족과 친구들을 놀래게 만들고, 가정 시간에 했던 실수도 ‘다른 남학생’에게 떠넘기고, 쪽지 시험도 무진장 잘 보며, 평소처럼 야구를 하지 않고 노래방에 가서 절친 치아키와 고스케에게 10시간도 넘는 ‘노래방 런닝타임’을 선사해준다. 온 힘을 다해 전력 질주하거나 온몸을 던져 곳곳에 충돌하는 행위를 통해 그녀는 타임 리프의 노하우를 체득하게 된다. 타임 리프 능력으로 그녀가 고안해낸 가장 ‘즐거운 일’들은 이렇게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을 바꿔치기하는, 거창한 시 간여행이 아닌 자잘한 시간의 소꿉놀이다. 

   이모를 만나 타임 리프의 이점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마코토의 표정은 도저히 어제, 아니 오늘 죽을 뻔한 사람이 겪었을 법한 천신만고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우에노박물관에서 일하는 이모에게 케이크를 선물하자 이모는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며 미소 짓는다. “용돈을 다 써도 다시 용돈 받는 날로 돌아가면 되는걸! 그럼 용돈이 다시 원래대로란 말씀! 이젠 시간을 왔다 갔다 내 맘대로! 마음 놓고 늦잠 잘 수 있고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으러 갈 필요 없고 뷔페도 90분 이상 먹을 수 있어! 맞아, 드라마 놓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내가 녹화해 둘게.” 이모는 귀여운 조카에 대한 애정과 철없는 조카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서린 복잡한 얼굴로 말한다. “다행이네. 별 거 아닌 일에만 타임 리프 능력을 쓰는 듯해서.” 타임 리프 놀이 때문에 매일매일 너무 즐거워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는 마코토를 보며 이모는 질문한다. “네가 이득을 본 만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천방지축 마코토는 잠시 골똘한 표정을 짓는다. “어? 그럴까? 글쎄? 에이, 설마 없겠지. 있어도 상관없어. 다시 돌아가면 되잖아! 얼마든 되돌릴 수 있으니!”
 
   마코토는 아, 혹시 ‘내 시간이니까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정말 ‘내 시간’이란 있는 걸까.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시간을 연출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지만 조작하면 조작할수록 그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시간’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내가 ‘내 시간’이라 생각했던 것이 실은 ‘타인의 시간’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 1분 1초도 완전히 ‘나에게만 귀속된 시간’이 없다는 것을 마코토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짱 신나는’ 타임 리프를 통해 깨닫게 된다. 타자의 시간이 없다면 자아의 시간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가 시간을 감각하는 것은 ‘시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들과의 얽힘,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사건’을 통해서라는 것을. 그리하여 시간의 단위는 시, 분, 초가 아니라 너와 나의 우정이 탄생하는 사건, 그와 그녀의 사랑이 발효되고 숙성되는 사건, 당신들과 우리들의 인연이 얽혀드는 그 모든 ‘사건’을 통해 정의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그녀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시계’로는 똑같이 측정되는 시간을 반복하면서 ‘감각’으로는 전혀 다른 시간을 감촉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녀가 시간을 위한 불굴의 뜀박질을 계속할수록 시간은 그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의에서 멀어지고, 그녀는 매번 달라지는 시간의 변덕스런 얼굴을 낱낱이 관찰하게 된다. 그녀는 시간을 ‘놀이터’ 혹은 ‘장난감’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의 발상이 너무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닐까 고민한다. 시간은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기호’가 아닐까. 알 수 없는 상형문자처럼 우리 앞에 주어진 시간은 어떤 해석의 현미경을, 어떤 창조의 손길을, 어떤 실천의 몸짓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바로 기호이다. 기호는 우연한 마주침의 대상이다. 그러나 마주친 것, 즉 사유의 재료의 필연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분명히 기호와의 그 마주침의 우연성이다. 사유활동은 단지 자연스러운 가능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사유활동은 단 하나의 진정한 창조이다. 창조란, 사유 그 자체 속에서의 사유 활동의 발생이다. 그런데 이 발생은 사유에 폭력을 행사하는 어떤 것, 처음의 혼미한 상태, 즉 단지 추상적일 뿐인 가능성들로부터 사유를 벗어나게 하는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다.
사유함이란 언제나 해석함이다. 다시 말해 한 기호를 설명하고 전개하고 해독하고 번역하는 것이다. 번역하고 해독하고 전개시키는 것이 순수한 창조의 형식이다. (……) 우리는 강요당해서, 시간 안에서만 진실을 찾는다. 진실을 찾는 자는 애인의 얼굴에서 거짓의 기호를 알아채는 질투에 빠진 남자이다. (……) 한 천재가 다른 천재를 부르듯 예술 작품이 그에게 창조하도록 강요하는 기호들을 방출하는 한, 그는 독자이며 청자이다. (……) 언제나 창조는 사유활동의 생성과 마찬가지로 기호에서 출발한다. 예술작품이 기호들을 탄생시키는 만큼 도한 예술 작품은 기호에서 태어난다. 질투에 빠진 남자와 마찬가지로 창조자는 기호를 감시하는 신성한 해석자이며 진실은 그 기호에서 누설된다.  


 - 들뢰즈, 서동욱· 이충민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2004, 145~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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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0-0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간이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인연이 얽혀드는 그 모든 '사건'을 통해 정의 된다!!! 오늘의 숙제네요^^*

to be with you 2009-10-0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 사랑의 블랙홀, 완전 멋진 영화죠. 앤디 맥도웰과 빌 머레이의 뽀송뽀송하던 시절ㅋㅋ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정말 궁합이 잘 맞는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