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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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스승이 없는 자의 스승이 될 것이다.
- 아라비아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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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케와 치아키와 마코토. 세 사람은 방과 후 매일 캐치볼을 하고 함께 집에 돌아가는, 그들만의 우정이 창조하는 시간의 리듬을 즐긴다. 마코토의 일과는 크게 세 가지 시간의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의 시간표로 분절되는 기계적 반복의 시간,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자유로운 유희적 시간,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휴식과 몽상의 일상적 시간. 이 시간의 삼각형은 마코토의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축이었다. ‘타임 리프’의 능력을 이용해 시간의 퍼즐 놀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지금, 마코토는 하루하루가 날아갈 듯 행복하다. 그런데 아무리 기상천외한 타임 리프를 구사한다 할지라도, 아직 마코토의 시간 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기계적 시간, 유희적 시간, 일상적 시간으로 구성된 ‘마코토식’ 시간의 모자이크는 여전히 동일한 분류 체계 위에서 작동한다.
게다가 마코토는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를 바꿔치기할 수 있는 법을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과거’에서 찾는다. 과거를 수정하고 윤색할 수 있다면 현재도 마음에 드는 방향을 향해 자유자재로 ‘리모델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순차적 흐름을 전제로 한 타임 리프라는 점에서, 마코토는 여전히 직선적 시간의 흐름 안에서 사유하는 셈이다. 이러한 시간관을 들뢰즈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철저히 ‘현재’를 중심으로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로서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앞선 시간일 뿐이며 미래 또한 ‘현재’를 기준으로 나중에 오는 시간에 불과하다. 현재에 종속된 시간의 리듬 속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의 상태’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시간의 변화는 오직 ‘현재’라는 말뚝에 고정된 한계 내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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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의 관점에서 보면, 오로지 현재만이 시간 속에 실존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시간의 세 차원들인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만이 시간을 채우며, 과거와 미래는 시간 안에서 현재에 상대적인 두 차원이다. (……) 과거와 미래를 흡수하는 보다 큰 현재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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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라는 이름의 말뚝으로 고정된 시간 위에서 마코토는 스스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타임 리프는 그녀에게 이 평화로운 시간을 더욱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매력 만점의 놀이기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안의 내밀한 평화는 언제든 외부의 사건으로 인해 깨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불안한 평화다. 고스케가 어떤 수줍은 소녀로부터 사랑 고백을 들은 날, 마코토는 처음으로 지금까지 누려온 평화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스케가 그녀의 고백을 거절하고 치아키가 마코토를 자신의 자전거 뒤에 태운 날, 마코토는 처음으로 ‘현재의 삶’을 향해 자신이 가진 애착을 깨닫는다. 그 애착은 아직은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너무 오래, 너무 강하게 지속된다면 집착이나 소유욕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삶에 대한 애착의 강화는 ‘아직 오지 않은, 미결정 상태의’ 미래를 현재의 관점에서 현재와 동일한 모습으로 고착시키는 행위이기에.
고스케가 소녀의 고백을 거절하자, 치아키는 그 좋은 기회를 왜 놓쳤냐고 핀잔을 주고, 마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은 안심이 된다’라고 말한다. 고스케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매일매일 ‘셋이서’ 캐치볼을 하는 현재의 일상이 깨질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스케는 여자친구와 지내느라 ‘우정의 삼각형’에서 튕겨 나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평화로운 현재’의 안정성이 깨지게 될 것이니까. 고스케에게 여자친구가 ‘생길 뻔한’ 사건이 생기자, 마코토는 그제야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것들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상실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혹은 상실에 직면했을 때야 존재의 절실함을 깨닫게 되는 우리들. 그런데 고스케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동시에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치아키가 불현듯 마코토를 자전거에 태운 그 순간부터 이 사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까.
마코토: 고스케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잘 챙겨주겠지?
치아키: 그럴 녀석이지.
마코토: 그럼 같이 야구 못하잖아.
치아키: 캐치볼을 야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
마코토: 왠지 쭉 셋이서 같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지각해서 고스케한테 잔소리 듣고, 공 못 잡는다고 치아키한테 놀림 받고…….
치아키: 마코토…….
마코토: 응?
치아키: 나랑……. 사귈래?
마코토는 생각지도 못한 치아키의 고백에 당황한다. 왠지 쭉 셋이서 같이 있을 것만 같았던 그 느낌, 고스케의 잔소리와 치아키의 핀잔 속에서 은근히 보호받는 듯한 그 행복한 느낌. 그것은 ‘커플’이라는 성숙한 관계,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와는 거리가 먼, 규정되지 않은 모호한 관계의 기쁨이었다. 마코토는 이 미묘한 우정의 감정을 언제까지나 즐기고 싶었는데, 치아키의 고백은 이 내밀한 평화를 깨뜨리는 직격탄이 되어버린다. 마코토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 앞에 어쩔 줄 모르다가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여 타임 리프를 요긴하게 써먹기로 한다. 마코토는 치아키가 마음을 고백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든 치아키의 고백을 막아보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타임 리프를 한 번 시도해서 우여곡절 끝에 치아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 했는데도, 몇 분이 지나자 치아키는 또 다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마코토, 나랑 사귈래?”
마코토는 어떻게든 치아키의 고백을 ‘무화’시키기 위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천진한 잔머리를 굴려보지만 몇 번이나 그 힘겨운 타임 리프를 반복해도 치아키의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웃음이 멈추지 않는 즐거운 나날들이었는데, 고스케를 좋아한다는 소녀가 생기고 설상가상으로 치아키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코토는 아직 완전한 ‘여성’도 완전한 ‘어른’도 아닌 아이와 어른의 사이에 있는 존재다. 친구들과 캐치볼을 할 때는 영락없는 선머슴 같고 혼자 샤워를 하며 비누거품놀이를 할 때는 영락없는 어린애 같다. 이미 ‘여성’의 몸으로 다 자란 그녀의 육체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천진한 표정은 매혹적인 언밸런스 효과를 발휘한다.
그녀는 무언가 ‘결정된’ 삶을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다. 이대로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한없이 유유자적하게, 언제까지나 캐치볼을 하면서 셋이서 소풍 나온 기분으로 살고 싶은데. 아, 이렇게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다니, 갑자기 치아키가 미워지는 마코토. 세상에, ‘타임 리프’라는 마법의 지팡이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있단 말인가. 마코토는 깨닫는다. 시계 속의 시간이 같다 해도, 똑같은 7월 13일 오후 해질 무렵으로 돌아갈 수는 있어도, 치아키의 고백을 듣기 이전의 마음으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치아키는 자신의 고백을 잊을 수 있어도 이미 미래에서 치아키의 고백을 들은 마코토는 그 고백의 이상한 설렘을, 알 수 없는 혼돈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내 영혼에 새겨진 그 고백의 흔적을 깔끔히 도려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타임 리프는 불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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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볼츠만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의 화살은 개별적인 세계들/계(系)들 내에서만, 그리고 이 계들 내에서 규정되는 현재에 관련해서만 유효하다고 말한다. “우주 전체에 있어, 시간의 두 방향은 공간에서처럼 구분할 수 없다. 위도 아래도 없다” (즉, 높이도 깊이도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크로노스와 아이온의 대립을 다시 발견한다. 크로노스는 유일하게 실존하는 현재이며, 현재들이 부분적인 세계들/계들 내에서 이어지는 한에서, 언제나 과거에서 미래로 흐름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자신의 두 인도된 차원들로 간주하는 시간이다. 아이온은 추상적인 순간의 무한한 분할 내에서의 과거-미래이며, 언제까지나 현재를 피해가면서 끊임없이 두 방향으로 동시에 분해한다.
-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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