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모든 참고문헌을 찢어버린 인간의 고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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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비교에 의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헐뜯고, 그들의 성공을 방해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다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진정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자기 방어를 위해 취한 행동은 대부분 원래 의도와는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 (……) 사회적 비교 기준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는 행동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상호작용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앨렌 랭어, 이모영 역, <예술가가 되려면>, 학지사, 2008, 2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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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내쉬의 MIT 재직 시절, 칠판에는 이런 낙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존 내쉬를 미워하는 날!” 존 내쉬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고 ‘나 몰라라’한다는 소문에 휩싸였고, ‘좋은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았다. 그의 수업은 바람직한 교육이라기보다는 도박성 짙은 게임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쉬는 스티븐슨과 이이젠하워의 대통령 선거전을 놓고 학생들과 ‘내기’를 했는데 결국 선거에서 누가 승리해도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고안하여 학생들을 골탕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정하고 친절한 교사만이 좋은 스승은 아니었다. 괴짜 스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학생들이 많아 수강생 수는 날로 줄어들었지만 내쉬의 존재 자체가 학생들에게 빛나는 영감을 선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MIT 신입생 시절 존에게 수학을 배웠던 하버드 대학교수 배리 마주르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가 들려준 수학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을 때면 시간이 영원히 멈춘 듯 느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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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은 고전적인 문제를 출제하는 것도 내쉬가 즐겨 사용한 수법이었다. 로버트 오만은 이렇게 회상했다. “학생들에게 π가 무리수임을 증명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어요. 그건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나중에 학과장에서 질책을 당한 내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려운 문제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어쩌면, 그 문제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면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실비아 네이사, <뷰티풀 마인드>, 승산, 2002,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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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수 있는 것’과 ‘풀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사고의 경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미해결 난제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 때마다 존이 내세운 변명은 그런 논리였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내쉬 자신을 향한 메시지였다. 그는 ‘난제’가 발견될 때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참고문헌부터 뒤지는 보통 연구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어떤 위대한 참고문헌보다 자신의 두뇌를 믿었다. 그는 모두가 포기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난제와 만날 때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그 문제에 매달리는 뚝심으로 유명했다. 그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놀라운 사람’임에는 분명했다.
내쉬는 스스로의 업적을 유치하게 자랑하는 것을 좋아했고, 주변 사람들을 대놓고 깔보곤 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의 괴팍한 성격을 눈감아주었다. 그의 동료 도널드 스펜서는 내쉬가 신변 잡담을 전혀 하지 않는 것, 어떤 순간에도 칭얼거리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스스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쉬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연구 테마는 누가 정해준 주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남이 주제를 정해준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는 더없이 독창적이었어요.”
내쉬가 문제를 발견하는 수단은 바로 ‘적들’을 통해서였다. 그에게는 자신의 천재성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적이었으므로 주로 ‘친밀한 적’은 그의 동료들이었다. 프린스턴에서 공부하고 MIT에서 재직하던 동안 만났던 수많은 천재 소년들, 랜드 코퍼레이션에서 일하는 동안 만났던 수많은 동료들은 각각 그들의 고향에서는 유일무이한 천재들이었다. 적의 존재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았던 존 내쉬는 자신을 자극하는 동료를 만날 때마다 더욱 ‘업그레이드’되는 스타일이었다. 수없이 동료들과 불화하고 유치찬란한 말싸움과 도를 넘는 경쟁으로 말썽을 일으킨 내쉬. 그러나 바로 그 떠들썩한 경쟁과 쓸데없는 말다툼이야말로 존 내쉬의 ‘자가 학습 장치’였다.
“자네가 그토록 우수하다면, 다양체 매장 문제를 직접 풀어보지 그래?”라는 동료 앰브로스의 비난 섞인 야유와 농담은 내쉬의 승부 근성을 자극했다. 내쉬 못지않게 경쟁심이 강했던 동료 앰브로스와의 유치한 ‘내기’ 덕분에, 리만이 제기한 이래 풀리지 않고 있던 악명 높은 문제를, 누구도 20대의 풋내기 수학 강사가 풀 것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내쉬는 풀어버리기도 했다.
해답의 발견보다 문제의 발견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제도 교육은 학생들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라’고 가르치지 ‘네가 중요하다고 믿는 문제를 내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의 물꼬를 비틀어 역사의 물길 자체를 바꾼 사람들의 공통점, 그것은 바로 ‘문제 자체를 창조하는 능력’이었다. 주어진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풀어내는 ‘영재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일견 매우 단순해 보이는 문제를 가지고 사유의 극한까지 스스로를 몰아쳐가는 천재들의 공통점은 문제의 가치를 뒤바꿔버리거나(중요하지 않았던 문제를 중요하게 만들기), 아니면 문제 자체를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은 한 개인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결정적 사안이기도 하다.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바칠 화두를 발견하는 순간이야말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존 내쉬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던 논문은 그가 겨우 스물두 살 때 작성한 27페이지짜리 짧은 박사논문이었다. 처음에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의 아이디어는 너무 단순해서 학자들의 눈에 전혀 흥미로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너무 협소한 테마라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 이론의 가치는 너무 명백해서 내쉬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내쉬 균형의 엄청난 영향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 전략적 게임과 관련된 내쉬 균형 개념은 사회과학뿐 아니라 생물학에서조차 기본적인 패러다임이 되었다. <뉴 팔그레이브>는 내쉬 이론의 가치를 이렇게 묘사한다. “내쉬 균형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 주제를 논하는 아주 강력하고 우아한 방법이다. 뉴턴의 천체 역학이 고대인들의 원시적이고 임시적인 방법들을 일거에 대체했던 것에 비견된다.”
내쉬 이론의 진정한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그가 30년 이상의 정신분열을 앓고 난 이후, 1990년대가 되어서였다. 내쉬의 노벨상 수상은 한 개인의 ‘인간승리’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기다림’의 승리이기도 했다. 내쉬가 일했던 랜드 코퍼레이션의 경영 관리자였던 존 윌리엄스는 이 ‘기다림의 미학’을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수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한한 자유’임을 알고 있었고 그 무한한 자유를 위해 필요한 24시간 건물 개방권과 칠판과 커피를 수학자들에게 ‘무한 리필’로 제공함으로써 ‘자유’를 ‘물질화’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윌리엄스는 당시 미국 최고의 수학자였던 폰 노이만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제시하면서 이런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우리가 조직 차원에서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귀하의 많은 생각 가운데 그저 면도를 하시며 흘려보내는 것들만 건네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시다가 혹시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그것을 우리에게 넘겨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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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는 수학자들에게 시간의 자유를 주었고, 다음에는 커피와 칠판을 제공했다. 그런 것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 있는 것도 생산해내지 못할 거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오전 여덟시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만이 아니라 24시간 랜드 건물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수학자들에게 개인 사무실 건물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수학자들에게 개인사무실을 제공했다. 복도에는 여러 곳에 커피대를 마련해 24시간 관리인을 붙여 놓았다. 왜 수학자들에게 그토록 자유를 주어야 하는지 의아해하는 엔지니어와 미 공군 장성을 이해시킨 것도 그였다.
- 실비아 네이사, <뷰티풀 마인드>, 204~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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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체를 배팅할 만한 문제를 발견하는 천재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의 문제풀이를 채근하지 않고 어떤 압력도 가하지 않으며 다만 무조건 ‘기다리는’ 주변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빨리빨리 연구 결과를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결코 ‘향기 나는 아이디어의 전쟁’이 탄생할 수 없다.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문제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연구결과가 ‘실용화’될 수 있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영원히 정답이 나오지 않을지라도, 혹시 도중에 그 문제를 풀던 사람이 죽더라도, 그 문제에 도전하는 일 자체가 소중한 일이라는 것. 그것을 깨달은 ‘친구들’이 있을 때 천재의 ‘면벽 수행’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존 내쉬는 그런 희귀한 행운을 거머쥔 몇 안 되는 천재였다. 인류의 미래를 바꾼 획기적인 발명들은 대부분 ‘위대한 사람들의 비관적인 예측’을 벗어나는, 아이디어 제출시한도 마감시한도 없는 ‘기다림’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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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달에 가지 못할 것이다.
- 리 디 포레스트 박사, 진공관 발명자(1957)
인간이 원자력을 이용하게 될 가능성은 없다.
- 로버트 밀리컨,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1923)
컴퓨터는 전 세계를 통틀어 다섯 대 정도 팔릴 것이다.
- 토머스 왓슨, IBM 설립자(1943)
개인이 가정에 컴퓨터를 놓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 케네스 올센, 디지털 이큅먼트사 설립자 겸 회장(1977)
비행기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지만 군사적 가치는 전혀 없다.
- 페르디낭 포쉬 장군, 프랑스 군사 전문가, 제 1차 세계대전 사령관(1911)
6개월 후 텔레비전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곧 매일 밤 합판으로 만든 상자를 들여다보는 것에 싫증날 것이다. - 대릴 F. 자눅, 20세기 폭스사 회장(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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