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독은 천재의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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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은(……) 여느 사람보다 더 차갑고, 더 거칠고, 주저하는 일이 더 적고, 남들의 생각에 겁내지 않는다. 그는 존경과 체통을 따지는 미덕, 곧 ‘떼거리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결여하고 있다. 그는 앞장설 수 없으면 혼자 간다. (……) 그는 남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길든다는 것의 비속함을 안다. (……) 자신에게 말할 때가 아니면 가면을 쓴다. 그의 내면에는 칭찬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고독이 자리 잡고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에의 의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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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느라 ‘바깥세상’의 아우성이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외부의 사건보다 내면의 사건이 중요한 사람들, 오직 내면의 서사만으로 자서전 1,000페이지를 채우고도 모자라는 사람들, 지나치는 모든 것에서 무의식의 계시를 읽어내는 사람들. 칼 구스타프 융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는 한 문장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압축했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운동, 그 예측불허의 가변성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간의 존재는 ‘의식의 통제’만이 아니라 ‘발현되지 않은 무의식’을 얼마나 의식의 장으로 이끌어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러한 견해는 칼 구스타프 융의 시대에는 매우 도발적이고도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융은 자기 생에서 외적 사실에 대한 기억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무의식과의 충돌’이야말로 인생의 결정적인 체험이었다고 말한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의 삶은 ‘인물-사건-배경’으로 정리되는 외부적 사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융은 자신의 행적을 정리한 ‘연보’가 아니라 무의식의 체험, 내면의 사건들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수학의 천재 존 내쉬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혼자 놀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기만의 방에서 책과 씨름하거나 혼자만의 실험을 하면서 놀기를 좋아했고 이런 그를 부모는 끊임없이 사교적인 공간으로 끌어내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단짝 하나 없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지적 성취를 과시하여 부모의 질책을 피해가는 법을 배웠다. 또래들이 그를 따돌릴 때마다 ‘무관심’이라는 견고한 내면의 갑옷을 입어 상처받지 않는 법을 터득했으며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강력한 존재’가 되어 남들의 공격을 피해가는 법을 익혔다. 항상 오빠와 티격태격하며 자랐던 여동생 마사는 존 내쉬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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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항상 남달랐어요. 부모님도 그걸 아셨죠. 총명하다는 것도 알았고요. 오빠는 뭐든 자기 식대로만 하려고 했어요. 어머니는 나더러 오빠를 위로해주라고 강요하다시피 했어요. 친구들과 놀 때도 같이 끼워주라고 하셨고요. 데이트까지 시켜주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그러실 만했죠. 하지만 나는 괴짜 오빠를 누구한테 소개해준다는 게 내키지가 않았어요.
- 실비아 네이사, 신현용 외 역, <뷰티풀 마인드>, 승산, 2002,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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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내쉬는 공중에 손을 뻗었다가 오므리기만 하면 손바닥에서 수학이 꿈틀거릴 것만 같다던 프린스턴 대학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공기조차도 ‘수학적’으로 꿈틀거렸던 프린스턴의 파인홀은 세계 수학의 메카였다. 지나치는 모든 곳에서 수학적 계시를 읽어냈던 존 내쉬처럼 젊은 시절 칼 융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편지’로 해독했다. 칼 융에게 스스로의 신체는 우주가 보내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영혼의 안테나였다.
내면의 서사가 외부의 서사를 압도하는 인간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거의 항상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받는 존재들’이라는 점이었다. 존 내쉬처럼 천재적이지만 친구가 없는 아이, 칼 융처럼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지만 언제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 그것은 ‘늘 오해받으면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 것’이었고, 또래집단으로부터 항상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더욱 맹렬하게 내면의 동굴로 칩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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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대부분 나를 어리석고 교활한 아이로 여겼다. 학교에서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우선 나에게 혐의를 두었다. 어디선가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면 내가 충동질을 했다고 추측했다. (……) 물론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하나는 부모의 아들로서 학교에 다니고 다른 많은 아이보다 그렇게 썩 영리하거나 주의 깊지도 않으며 근면하거나 단정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아이였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 정말 늙고 의심이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인간 세상에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그 대신 그는 자연과는 친밀하게 지냈다. 대지, 태양, 달 기후, 살아 있는 피조물, 그중에서도 특히 밤과 꿈, 그리고 ‘하느님’이 내 마음속에 직접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과 가까웠다. (……)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88~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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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은 아직 ‘무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1870년대에 태어나 누구보다도 의식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생생히 경험했다. 모두가 ‘의식’만이 주역인 삶을 추구할 때 그는 이미 홀로 ‘의식을 압도하는 무의식’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칼 융과 존 내쉬의 때 아닌 접속을 시도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세계를 뒤흔든 ‘천재’이기 때문만도, 풍부한 심리학적 요소들로 인생을 채우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으로 존 내쉬의 삶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기 위함도 아니다. 두 사람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바로 ‘무의식의 의식화’를 누구보다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무의식의 카오스를 의식의 전면으로 불러내어 자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실험했고 그 결과는 양극단으로 나타났다. 존 내쉬는 무의식이 의식을 습격하는 강도가 해일이나 행성충돌의 충격에 육박하자, 의식의 활동 자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정신분열증은 무의식에 습격당한 의식의 처절한 실패처럼 보였다. 칼 구스타프 융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기 무의식의 분열적 측면, 은밀한 광기를 차분하게 사유의 재료로 삼아 무의식이 뿜어내는 예측불허의 율동 자체를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연구 주제로 삼아 평생을 밀고 나갔던 칼 구스타프 융과 존 내쉬가 만났다면 얼마나 풍요로운 밤샘 토론이 벌어졌을까.
자신의 무의식을 속속들이 의식의 영토로 불러낸 사람이라는 것이 존 내쉬와 칼 융의 결정적인 공통점이 아닐까. 존 내쉬가 할리우드식 감동의 자기 극복 스토리로 연마되기에는 훨씬 용이한 대상이지만, 한 존재로서 자신의 무의식과 만나는 데 조금 더 성공적이었던 사람은 오히려 칼 융 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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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학자는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산다. 그들은 완벽한 플라톤적 형태를 갖춘 수정(水晶)의 세계에 산다. 얼음 궁전에. 동시에 그들은 모든 것이 덧없고, 애매하고, 영고성쇠하는 속세에 산다. 수학자들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진퇴를 거듭한다. 그들은 수정 세계에 사는 어른이며 실세계에 사는 어린 아이이다.
- S. 캐펠, 쿠랑 수학 연구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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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내쉬는 수학의 세계 속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재능과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실생활 속에서는 ‘아이큐 12의 어린아이’라는 식의 혹평을 받으며 누구와도 지속적인 친밀함을 공유하지 못했으며 사랑도 우정도 동정심 비슷한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위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독이 천재의 ‘학교’인 것은 맞다. 그러나 천재도 인간이며, 인간은 고독을 위무해줄 친구와 연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천재도 비켜갈 수 없는 인간적 진실이다. 존 내쉬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들 수 없었던 진정한 인간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을까. 존 내쉬의 삶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단지 ‘천재-광기-노벨상’의 삼각 편대가 펼치는 화려한 휴먼 스토리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이 영화는 그저 순순히 ‘따라 읽기’에는 존 내쉬의 너무 많은 ‘잉여들’을 삭제해버렸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삭제된 잉여’야말로 존 내쉬를 ‘바로 그 한 사람’이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삭제해버린 어느 한 천재 수학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기이한 분열의 조짐들,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그의 각종 기행, 정신분열이라는 ‘장애물’을 뚫고 노벨상을 타냈다는 식의 할리우드적 감동의 휴먼 스토리에 미처 다 담지 못한 한 천재의 우울한 광기를 소중하게 다룰 것이다. 우리가 2주 동안 떠나볼 이번 여행은 한 천재의 머릿속, ‘수학적 논리’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인간의 무한한 ‘모호성’을 향해 천천히 항해할 것이다.
존 내쉬의 삶이 ‘뷰티풀 마인드’라는 멋진 제목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정신 질환의 위험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좀처럼 엿보기 힘든 무의식의 소우주를 속속들이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방랑하던 오디세우스가 ‘결국엔 집에 돌아왔음’을 강조하기 위해 오디세우스의 방황이 지닌 다채로운 이미지와 상징을 삭제하거나 왜곡해버렸다. 집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다 한복판을 헤매고 있을 오디세우스의 또 다른 자아, 바다 위에 버리고 와야만 했던 오디세우스의 방황과 분열이야말로 오디세우스가 실현하지 못한 오디세이의 백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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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일종의 악마 또는 돼지, 어떤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복음서에서 바리새인과 세리들에 관한 부분을 읽고는 그 타락한 자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소 만족감을 느꼈다. (……) 나는 뭔가 나쁜 것, 뭔가 악하고 음울한 것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동시에 어떤 영예와도 같았다. 나는 사실 무엇에 관해 말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말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자주 느꼈다. (……)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체험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는 파문되었거나 선택되었다는 느낌, 저주받았거나 축복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8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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