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바르트: 풍크툼, 세계와 나는 ‘상처의 틈새’로만 만난다
1.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깨닫는다. 그토록 완고하게 닫혀 있던 이 세계가,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휘청,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깨닫는다. 바닷물에 잉크를 떨어뜨린 듯, 아무리 애를 써도 꿈쩍하지 않던 세상이,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만으로도 완전히 헝클어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김광석의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이라는 치명적인 가사로, 안 그래도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멍든 가슴을 다시 한 번 살뜰하게 할퀴어 주었다.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작사 유준열 노래 김광석
창유리 새로 스미는 햇살이 빛바랜 사진 위를 스칠 때
오래된 예감처럼 일렁이는 마당에 키 작은 나무들
빗물이 되어 다가온 시간이 굽이쳐 나의 곁을 떠나면
빗물에 꽃씨 하나 흘러가듯 마음에 서린 설움도 떠나
지친 회색 그늘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파도처럼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은 비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유리처럼 굳어 잠겨 있는 시간보다 진한 아픔을 느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저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웠던 세상이,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었을 때야, 비로소 조금씩 그 투명한 속살을 보여준다.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은 상처, 그렇게 지독한 상처의 틈새로만 간신히 보이는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 그것을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풍크툼’이라고 불렀다. 명쾌하게 분석될 것만 같은 세계가 어느 순간 전혀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로 바뀌어 버릴 때.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풍크툼’과 만나는 순간이다. 풍크툼(punctum, 점点)은 라틴어로 뾰족한 물체로 인해 받은 상처, 흔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사진의 풍크툼은 평온했던 나의 의식을 찌르는,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극을 주는 우연하고 돌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풍크툼의 특징은 물론 예리한 ‘아픔’이지만, 풍크툼의 더욱 중요한 특징은 그 상처가 이해할 수 없고 분석할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예비하거나 대처할 수도 없고, 정리해서 요약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이 세계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토록 이해되지 않았던 세상이,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투명하게 만져지는 느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을 명징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 고통에 딱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줄 수도 없다. 사진 읽기를 통해 세계의 울퉁불퉁한 상처를 맹렬하게 더듬었던 롤랑 바르트. 그는 사진의 이미지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스투디움과 풍크툼. 스투디움(studium)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일반화된 상징이라면, 풍크툼은 좀처럼 해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아픔을 낳는 상징이다. 스투디움이 소통 가능한 획일적인 상징이라면 풍크툼은 소통 불가능한, 그리하여 더욱 소중한 비밀을 간직한 상징이다.
견고하게만 보이던 이 세계의 피부가 찢어질 때, 우리가 그 속살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가장 평등한(?) 경험은 바로 연애가 아닐까. 중국의 작가 장아이링은 소설 『색, 계』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남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위장으로 통해 있고, 여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자의 음도(陰道, 질)를 통해 나 있다고. 남자는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해주는 여자를 만나면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말이니, 남자 쪽의 사정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정말 여성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도 비좁고 은밀한 그곳, 성기를 통해야 하는 걸까. 소설 『색, 계』의 주인공 장 지아즈는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그따위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저명한 학자였기 때문에, 그런 대단한 학자가 여자의 심리에 대해 그토록 저속한 비유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연애를 하거나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던 장 지아즈는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할 대상과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4년에 걸쳐 공들여 쌓아온 탑이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이 일로 인해 그녀와 조직원들 모두가 죽음의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위태로운 사랑에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와의 잠자리는 분명히 철저한 ‘연극’에 불과했다. 그녀의 두뇌는 완벽히 임무에 충실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녀의 두뇌가 아니라 그녀의 성기를 통해 몰래 잠입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를 결코 찾지 못했다.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감독 리안은 영화 〈색, 계〉를 통해 21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슬픈 섹스 장면을 연출해냈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울 것 같은 한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울 것 같은 한 여자가 만났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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