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의 함정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손석희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뉴스 진행방식이 매우 권위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앵커브리핑을 할 때 말하는 방식을 본다면 공감이 갈 것이다. 물론 달리 여기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 주관적인 감정을 말하자면 스스로를 매우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문제가 많다, 고 확신한다. 인간은 원래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급속하게 성장해 왔다. 원리를 곰곰이 따지기보다는 적용하기 바빴다. 어떤 때는 장점으로 혹은 약점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이 둘을 혼동하는 거다. 출발은 개인이다. 나를 둘러싼 관계는 양날의 칼이 되게 마련이다. 배제한다고 떨어져나가는게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라. 손석희도 이 함정에 빠졌다. 뉴스 진행 전 하루에 단 한 개피의 담배만을 피우는, 나라면 차라리 끊고 말겠다,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려고 무던 애를 썼지만 뜻밖의 트랩에 빠지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누군가 내게 내 잘못도 아닌데 협박을 한다. 경찰에 신고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손석희는 그러질 않았다. 상대의 요구대로 돈을 줬다. 겁박 내용의 사실유무를 따지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을 했다. 그가 뉴스에서 사건을 다룰 때 처한 방식과는 백발십도 달랐다. 남의 흠은 잘도 찾아내면서 제 눈 안의 티는 애써 외면했다.
인간은 실수를 한다. 누구나. 특히 이해관계가 묶여 있을 때는. 서양학문을 으뜸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지만 역사가 있으니 우리보다 안목이 높은 건 인정해야 한다. 이런 경우를 다룬 이론이 바로 이해관계자 분석Agent Analysys(Theory)이다. 곧 인간은 판단을 내릴 때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분리될 수 없다. 단지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대리인을 내세우거나 그럴듯한 명분을 찾는다. 예를 들어 정치인 황교안이 기독교 예배가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하거나 진중권이 교회 집회를 불법이라며 막으려는 이재명을 맹렬히 비난하거나 조국이 장관이 되고나서 첫 업무로 피의자 신분보장을 지시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객관성과 중립성은 이해관계 앞에서 꼬리를 내린다.
이 글은 손석희 개인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속성과 이해관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자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알게 되면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려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