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투박하게 쓴 글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할 뿐이다
방송인 박지윤씨가 소설네트워크에 남긴 말로 곤욕을 치렀다. 가족끼리 조용히 여행을 다녀온 듯 한데 그 사실을 개인계정에 올린 것이다. 누군가 사회적 거리를 실천해야 할 공인께서 이런 글과 사진을 올리는 건 자제해야 하지 않냐고 하자 그만 박 씨가 폭발하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내용이다. 혹시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개인적인 영역과 사회적인 부분을 헷갈리고나 말과 글을 혼동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곧 자신은 개인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회적인 글로 전달된다. 인스타그램을 일기장이나 낙서장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모두가 보는 공개노트임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알더라도 깜빡하거나. 아무리 비밀계정을 걸어 소수가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해킹 한방이면 바로 뚫린다. 굳이 비밀로 하지 않더라도 혼자 있는 계정이 아닌 이상 누군가는 볼 것이고 그 사람이 과연 퍼뜨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나는 에스엔에스를 포함한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일절 이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카톡마저. 오로지 휴대전화의 문자 기능과 인터넷 이메일만 활용한다.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그중 으뜸은 허비하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곧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일뿐만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해야 하는 긴장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불편을 겪지 않고 살아간다.
글은 남는다. 이곳에 남기는 글도 사실은 바로 적는 게 아니다. 우선 한글에서 초벌을 쓰고 기본 맞춤법 검사를 한다. 그러고 나서도 어색한 표현이나 미처 보지 못했던 에러를 찾아내 서너 번 정도 수정하고 최종본을 올린다. 물론 잘못된 내용이나 적절한 지적을 받으면 언제든 고친다. 왜 이런 수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은 말과 달리 언제나 남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우리가 조선시대 왕들의 행태를 알 수 있는 이유도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곧 글자로 남아있어 가능했다. 만약 글 없이 말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부풀리거나 왜곡되어 전달되었을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건 글이다.
내 글에도 댓글이 달린다. 무조건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의 글에 자신의 의견을 표력하는 건 꽤 수고스러운 일이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문제는 표현이다. 답글을 쓰기 전에 그 글을 자신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심한 말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곁에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럴 수 있겠는가? 글은 익명의 그늘에 숨어 마구 뿜어내라고 있는 게 아니다. 문자로 전송되는 순간 그 글은 영원히 남는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하고 얼버무릴 수도 없다. 거칠고 투박하게 쓴 글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