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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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타자 그의 전작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평론가들도 가담하여 거장의 면모가 일찌감치 보였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감독 스스로 망작이라고 평가하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도 저주받은 걸작 운운하는 소리를 들었다. 과연 그럴까?


<방과 후>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처음 쓴 소설이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면 엉성하기 그지없다. 문장은 변함없이 단조로우며 여자들이 많이 등장함에도 여성의 심리묘사는 여전히 빵점이다. 모든 게 주인공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전개도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 책에는 모든 단점들을 극복하는 장점이 모두 장착되어 있다. 학교 교정을 걷다 2층에서 화분 하나가 바로 내 앞으로 퍽하고 떨어진다. 사소해 보이지만 의미심장한 사건이 발생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첫 작품에서 바로 실현한 것이다. 마치 스티브 킹이 첫 장을 펼치자마자 아내를 총을 쏴서 죽이는 것과 같다. 곧 스토리에는 반드시 사건이 있어야 하고 그건 빠르면 빠를수록 동시에 극적이면 더욱 좋다. 불행하게도 이 사실을 모르는 작가들이 우리나라에는 드글드글하다. 신변잡기와 관념에 사로잡혀 특별한 사건 없이 넋두리를 끊임없이 늘어놓아 하품짓게 만든다. 작가를 가짜 지식인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특징은 동사를 잘 활용한다. 단조로운 문장은 역설적으로 생각 없이 바로 바로 움직이는 상황을 잘 묘사한다. 게이고의 소설이 술술 잘 읽히는 이유는 바로 등장인물들이 계속해서 이동하기 때문이다. 곧 머릿속의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토해내지 않고 인물들이 능동적으로 뛰어 다닌다.


마지막 장점은 미스터리 기법이다. 사소한 반전을 계속 시도해서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작가는 수학을 이용하여 이 장치를 활용한다. 그의 사념은 오로지 숫자를 다룰 때만 발휘된다. 이론에 기초한 설명은 소설에서는 매우 드물기에 더욱 참신하게 다가온다. 요컨대, 이 작품 하나로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의 작품 세상을 완성하는 진면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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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런 생도 기록해야 한다


뭔가 큰 사건이 터지면 당사자의 말 한마디에 뉴스는 주목하게 마련이다. 조주빈도 그랬다. 과연 신상을 공개하고 얼굴을 드러낸 채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게 온당한지 잘 모르겠다. 피의자 보호 원칙을 그토록 강조했던 법무부 아니었던가? 죄질이 무거워서, 이미 증거가 차고 넘쳐서 글쎄?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옳고 지난번에 틀렸다고 말한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법 논리가 아니다. 그가 한 말이다. 생뚱맞게 손석희에게 죄송하다하고 한 말은 일종의 전략 같았지만, 일종의 물귀신 작전?, '멈출 수 없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는 말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도 일이 이 정도까지 커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호기심이든 아니면 과장된 자신감이든 혹은 범죄라는 것을 알았을지 모르겠지만 시작은 아주 미미했음이 틀림없다. 주변의 관심과 호응,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이 들어오면서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갔다. 어느새 직업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조주빈 스스로도 자신의 삶이 악마 같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씩 그만두어야 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계속 그 더러운 짓을 한 이유는? 그건 나중에 작가들이 밝힐 부분이다. 왜 굳이 소설가가 이 일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카포네를 보라고 말할 것이다. 며칠도 되지 않아 그는 잊힐 것이다. 최소한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는 사그라져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차디찬 감옥에서 그가 견뎌야 하는 남은 삶이다. 누군가는 그런 생도 기록해야 한다. 


덧붙이는 말 


개인적으로 조주빈 관련 내용은 모른다. 뉴스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그가 얼마나 악랄하고 비열하여 집요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왜 하필이면 이 사건이 지금 이 시기에 강렬한 조명을 받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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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자 2020-03-2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자기가 당할 일 없다고 말 막 하는구나.
잘 모르면 어떤 일인지 알아보기나 하고 말하지 무책임하네.
˝어느새 직업이 되어버린˝ <-- 성범죄자들에겐 참 관대하기도 하지.

카이지 2020-03-2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 감사합니다. 제 표현 그대로 그에게는 직업이었을 겁니다. 이 말에는 어떠한 주관도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는 반드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인연이 없다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식도 예외가 아니다. 연일 폭락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부족분을 개미들이 떠받치고 있다. 증권시장의 오랜 격언인 폭락장세의 끝에는 개미무덤이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개인은 방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 뭉텅이로 사라지는 주식을 잽싸게 메우고 있다. 이는 단순히 투자자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대거 모여들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최근 신규로 주식을 구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폭락에 역으로 투자하는 이들이 늘어난 탓이다. 곧 지금의 폭락은 일시적인 것이며 언젠가는 반등하기 때문에 쌀 때 사두자는 것이다. 나름 일리 있는 논리다. 


그러나 이 방식은 원초적인 함정이 있다. 등락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전체를 보지 못한다. 과연 현재의 주가가 밑바닥인지 아니면 더 내려갈 것인지 혹은 오르더라도 언제 상승할 것인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물론 자신의 자산범위 내에서 하는 투자라면 문제될 게 없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을 여윳돈으로 사둔다면 마치 장기저축을 든 셈치고 오랫동안 묵혀두면 반드시 오르게 마련이다. 문제는 빚을 내서 조급하게 단기간에 이득을 얻기 위해 올인하는 경우다. 매일같이 주식장세를 눈이 빨개질 때까지 보고 또 본다고 해서 자신이 사둔 주식이 오르는 건 아니다. 


핵심은 셀러리 캡이다. 자신이 동원 가능한 자산의 총액을 설정한 후 그 안에서 투자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주식투자에만 적용이 가능한 게 아니다. 소비에서도 마찬가지로 응용이 가능하다. 내 예를 들어보자. 꼭 사고 싶었던 클래시컬 음반 전집이 있었다. 10만 원대 초반이라 가격대도 부담이 없었는데 그만 품절이 되고 말았다. 서둘러 중고 음반이 있나 살폈지만 없었다. 한 가지 방법은 해외에서 직구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약 7만 원가량이 더 든다. 자 그렇다면 중고로 나오길 기다리느냐 아니면 돈이 더 들더라도 해외 배송비를 부담하고 구매하느냐 선택을 해야 한다. 과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절판 사인이 나자마자 서둘러 웃돈을 주고 중고를 구매했다. 구입한 지 삼일 만에 재입고가 되었다. 새제품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도 안타깝지만 각종 할인혜택을 받지 못한 게 아까웠다. 이번에는 그 경험을 살려 대기했는데 아뿔싸 국내 제품은 아예 재입고 계획이 없다는 알람을 받았고 설상가상 해외구매도 금지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음반을 구할 길이 사라진 것이다. 허망했다. 


그럼에도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 총 자산을 벗어난 지출은 용납할 수 없다. 인연이 없다고 여기면 그만이다. 내 마지노선은 15만원이었다. 마음을 내려놓자 뜻밖의 돌파구가 생겼다. 구글을 뒤져보니 용산 전자상가에서 같은 음반을 판매한다고 내놓았다. 하도 여러 곳에서 품절 표시를 보았기에 긴가민가하지만 아직은 판매하고 있다니 내일 당장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말


샐러리캡은 미국 프로농구 선수들의 연봉에 적용되어 크게 알려졌다. 한 구단의 연봉 총액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선수들이 월급을 나누어갖는 식이다. 특정 팀에 특출난 선수들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연맹의 결정이었다. 그 결과 구단 간 실력이 평준화되어 경기는 더욱 박진감이 넘쳤고 자연스레 입장료 및 다른 수익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 이익은 고스란히 구단에 투자되어 상한선을 올려 선수들의 대우도 더욱 좋아졌다. 요컨대 연봉총액에 모자를 씌움으로서 개인과 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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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와 함께 의문을 품은 채 행복을 찾는 여정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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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질문 하나. 맛있는 반찬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함께 있을 때 당신은 어느 것을 먼저 먹나요? 나는 맛없는 사이드 디시를 먼저 입에 넣는다. 어차피 다 먹어야 할 것이라면 일단 입에 맞지 않는 것을 치워버리고 진짜 마음에 드는 반찬은 최후에 천천히 음미하듯 먹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혀의 기억이란 마지막 맛만을 떠올린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1>은 내 최애 도서다. 시리즈 중에서도 이 첫 권을 가장 사랑한다. 만약 전집에 도전하기 망설여지신다면 1권만은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첫 문장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만약 당신이 '그래서 그들은 잘 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펴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은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될뿐더러 결말 역시 해피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 중간 행복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이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은 행복과는 영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아동문학에 대한 선전포고다. 마치 공산당 선언이 이전의 철학을 싹 다 갈아엎듯이. 더욱 놀라운 건 물론부터다. 행복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건 독자들이 상상하는 그런 류가 아닐 것이다. 감탄한다. 처음에는 책을 펼치지 말하고 하더니 이렇게 말하면 도저히 책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행복한 스토리이긴 한데 내 예상과는 다르다고. 그럼 그게 뭔데?


이 질문은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독자들도 삼남매와 함께 의문을 품은 채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 여러분들도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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