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1 - 조선과 일본의 7년전쟁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1
이이화 지음 / 한길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연달아 부고 소식을 접하는 마음은 착잡하다. 빨강머리 앤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신지식 선생에 이어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오늘 84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대구에서 열일곱 살 먹은 학생이 바이러스로 사망한 뉴스까지 들어 더욱 울적하다. 


이이화 선생은 예전에 강연에서 뵌 적이 있다.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그가 꽤 유머스러우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하셨다는 거다. 오늘날로 치면 설민석 같았다고나 할까?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우리 역사기록의 대부분이 한자이니 아무래도 유리한 처지였다. 그러나 한문 좀 안다고 유세떠는 학자들이 꼴 보기 싫어 혼자만의 길을 걸었다. 이른바 민중역사다. 사실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이들의 기록은 매우 제한적인 자신들의 이야기일게 뻔하다. 백성은 들러리 정도다. 실제로 민중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글로는 확인인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글을 토대로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고 그 가운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과감하게 추론해야 한다. 이른바 역사는 끊임없는 대화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이이화 선생의 업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학자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통사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을 기술한 부분은 역사서로도 충실하지만 이야깃감으로도 박진감이 넘쳐 서너 번 넘게 읽은 기억이 있다. 


아무쪼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수상한 시절에 생을 마쳐 그를 기리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지 않은 것이 안타깝지만 언제고 그의 작업은 다시 빛을 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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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을 만화로 혹은 책으로 추억하는 이들 모두에게 앤은 늘 사랑스러운 아이다.  


삼가 신지식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이 온통 바이러스 이야기뿐이라 다른 소식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분명 다른 일들도 복잡다단하게 돌아가고 있을 텐데. 오늘 (2020년 3월 18일) 아침 신문을 보다 신지식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향년 90세. 정직하게 말해 전혀 모르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빨강머리 앤을 처음 소개한 분이라는 내용을 보고 살짝 심장이 뛰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인터넷을 보니 추억에 젖는 이들도 많고 신문도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전문 번역가는 아니다. 일어로 된 빨강머리 앤을 보고 우리말로 중역하여 신문에 실었다. 워낙 읽을거리가 귀하고 가난한 우리 사정에 딱 맞는 스토리라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게 된 다음에도 앤을 찾는 손길을 줄어들지 않았다. 나 같은 세대는 책보다는 만화가 더 인기를 끌었다. 수다쟁이에 주근깨 가득한 앤은 발칙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예전에는 띄엄띄엄 보다 몇 년 전 마음먹고 전편을 다 감상한 적도 있다. 내친 김에 책 전집까지 구했다. 비록 1권만 다 읽은 상태지만. 참고로 만화의 내용은 1권이 전부다. 곧 고아로 입양되어 모교의 선생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희한한 건 우리나라에서만 앤의 인기가 높은 게 아니다. 원작자의 고향인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더 나아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빨강머리 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랑받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생은 힘들고 그럼에도 애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대해야 한다는 교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삼가 신지식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말


신지식 선생의 본래 직업은 작가다.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여 직접 번역까지 했지만 정직하게 말해 부끄러웠다고 한다. 직접 옮긴 것도 아니고 일본어 번역을 다시 중역했기 때문이다. 이해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고 저작권 개념조차 희미한 때였으니까. 참고로 내가 읽은 번역본은 김유경 옮김이다. 원서를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앤의 특징인 수다를 매우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묘사하여 만족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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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자 댄스 


대중문화에서 영상이 글자를 대신한 본격적인 시대는 1980년대 초반이다. 구체적으로 뮤직 텔레비전의 출범과 궤도를 같이 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가수는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들려주는 이였다. 곧 가창력 내지 연주력이 최고의 평가기준이었다. 그러나 엠티비가 나오면서 음악은 듣기와 보기가 동시에 요구되는 장르가 되었다. 다양한 가수와 그룹이 이 붐을 타고 인기를 구가했다. 그 중에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포인터 시스터스가 그랬다. 1973년부터 인기를 끌어오던 이들은 점차 열기가 사그러들고 있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세련된 무대매너가 돋보였지만 그래도 한창 어린 친구들과 경쟁하기에는 뒤쳐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를 깨부수는 전대미문의 음악을 연이어 발표했다. '점프'를 필두로 '난 매우 흥분상태야I'm so excited‘, ’중성자 댄스Neutron dancd‘가 빅히트를 이어갔다. 특히 이 중에서 나는 '중성자 댄스'를 매우 좋아한다. 우연히 보게 된 무직 비디오 때문이다. 극장 안내원으로 분장한 자매는 엉망진창인 관객들 매너에 지쳐 아예 이들과 함께 광란의 댄스를 추게 된다. 이 광경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언제나 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Neutron Dance 

https://www.youtube.com/watch?v=i-jdhorGtQI


Jump

https://www.youtube.com/watch?v=uyTVyCp7xrw&list=RDi-jdhorGtQI&index=3

I'm So Excited 

https://www.youtube.com/watch?v=8iwBM_YB1sE&list=RDi-jdhorGtQI&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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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19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반가운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강제로라도 접촉을 피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예측 때문에 불안감도 커진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사실 살아가는데 큰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집세와 관리비. 각종 공과금, 식비, 조금의 여가비 정도. 아, 자녀 교육비는 간단하지 않구나. 아무튼. 


서울대 경제학과 변형윤 교수는 강제퇴직으로 학교를 나와야 했다. 주변에서 비분강개할 때 그는 전공을 살려 과연 그만두면 살아갈 수 있을지 수치를 계산했다. 수입은 퇴직금과 연금이 전부지만 자신의 생활패턴을 보니 별도의 돈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갈만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몇 년 후 복귀했지만. 퇴직 후 쓸데없는 조바심에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정확하게는 사장소리를 듣고 싶어, 사업을 시작하려는 분들은 새겨들으시라.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욕심 부리지 말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정부도 이제는 성장이 의미가 없다며 제로 글리를 선언했다. 생존전쟁에 접어들었음을 밝힌 셈이다. 어쩌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나아가 1997년 IMF때보다 더 혹독한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차분하게 자산과 현금 상황을 파악하고 생활비 내역을 확인하라. 당장 수입이 떨어진다는 가정 하에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알아보라. 짧게는 1년 적어도 2, 3년은 일체의 들어오는 돈 없이 살 각오를 해야 한다. 분모를 키우지 못하면 분자를 줄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경구를 기억하라.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넌 너답게 살면 되는 거야."_히가시노 게이고, <사소한 변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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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뽕의 진수는 언제나 그렇듯이 키스씬


이성경과 남주혁을 보는 재미 


1970년대 ‘소년 얄개’나 ‘진짜진짜미안해’를 포함한 청소년물이 폭풍몰이를 했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80년대 들어 드라마로 부활했다. ‘우리들의 청춘’이 대표적이다. 90년대는 농구 붐과 함께 ‘마지막 승부’가 그야말로 정점에 섰다. 마치 화려한 질주를 마무리하듯이. 실제로 이후 청춘물은 드문드문 나왔다. 물론 2000년대 초 ‘카이스트’ 같은 드라마도 있었지만 더 이상 청춘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렇게 저물어가던 대학생 드라마가 2016년 ‘역도요정 김복주’로 부활했다. 체육학과의 역도, 리듬체조, 수영 전공 학생들의 사랑, 우정, 고뇌를 그렸다. 운동을 하는 학생이라는 설정을 빼면 과거 드라마와 다를 바 없었다. 당연히 갈등이 있을 것이고 우정에 금이 가면서도 사랑이 꽃필 것이고 결국은 해피엔딩. 실제로 ‘역도요정 김복주’는 이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방영 당시에는 그런 저런 평가(최고시청율 5.4%)에 그쳤던 이 드라마가 새삼스레 달리 보인다. 우선 여주인공이 남달라 보인다. 김복주 역을 맡은 이성경은 인형 같은 외모와 달리 몸을 불려 진짜 체육대 학생 같은 연기를 한다. 모델 출신 배우가 드라마를 위해 10킬로그램 이상 찌운다는 건 보통 근성이 아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데 연기도 잘한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는, 남자 주인공 남주혁은 그야말로 만찢남 스타일이다. 그냥 얼굴과 몸매 하나로 드라마를 씹어 먹는다. 


그러나 정작 매력인 건 드라마가 지닌 건강함이다. 희한하게 여기에는 악역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 극적 재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갈등을 위해서는 나쁜 인간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 선하다. 나쁜 짓도 선을 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숙소에서 나가기 위해 창문으로 탈출하다 걸리자 친구를 버리고 도망가는 정도다. 어찌 보면 밋밋한 이야기인데 희한한 게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극본 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전적으로 이성경과 남주혁의 힘이다. 실제로 이 둘은 드라마 이후 연인이 되기도 했는데 현재는 ... ... .


사회 모두가 짜증과 피곤에 절어가고 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암울하니 공포나 스릴러에는 왠지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구 웃기는 걸 보자니 눈치도 보이고 정직하게 말해 그럴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럴 땐 잔잔하면서도 적절한 갈등을 가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희망을 주는 청춘 드라마가 최고다. 


덧붙이는 말 


이성경은 가진 능력에 비해 매우 낮게 평가받는 배우다. 단지 모델출신이라서 혹은 예쁘장하기만해서는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역을 잘 못찾는 느낌이다. <역도요정 김복주>야말로 적역이었다. 도도하며 새침하기 보다는 씩씩하고 주변을 잘 챙기는 수수한 역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까 앞으로 보다 폭넓은 연기활동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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