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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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는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은근히 자랑스럽게. 마치 창작의 원천인 것처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람은 무척 많다. 굳이 기억을 떠올려 좋을 일이 없기에 삭제한 것이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한 때 연인이었던. 동창회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유부녀이며 딸도 있다. 두 번 다시 눈길을 주면 안 되는 상대인데, 연락이 온다. 제발 내 부탁들 들어줘. 뭔가 불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뜻밖에도 이 둘은 기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고군분투할 때 쓴 책이다. 작가 식당을 개업했지만 그저 그런 성적으로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도 그 와중에 나왔다. 판매부수도 별로였고 평판도 낮았다. 냉정하게 말해 이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지금도. 등장인물은 단 둘이고 구성은 평면적이며 설정도 그저 그렇다. 무엇보다 글 솜씨가 매우 초보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훗날 대성공을 거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단초를 제공한다. 집을 소재로 그 안에 깃든 정서와 기억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 읽고 나서는 왜 첵 제목을 이렇게 거창하게 지었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 그래, 맞아, 이 집은 진짜 내가 죽었던 곳이지. 이 말이 궁금하시다면 참을성을 지니고 끝까지 읽으셔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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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편견과 정책 기회주의가 만들어 낸 완벽한 희생양?


뉴욕 타임스를 읽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신천지는 운 나쁜 희생자일 뿐인데 왜 욕을 먹고 있느냐는 거다. 글쓴이는 서울에 살고 있는 라시스 라파엘Raphael Rashid라는 프리랜서 기자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중동 계다. 2011년부터 한국에 살았고 고려대학교에서 공부까지 했으니 나름대로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신천지는 대중의 편견과 정책의 기회주의가 발견한 완벽한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신천지 신자가 대량 확산의 주범이고 그동안 기독교계의 사탄이라 불리며 문제를 일으킨 것은 맞지만 감염의 근원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얼핏 들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에 앞서 대구경북지역 감염의 주원인을 제공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만약 이 지역의 대규모 바이러스 전파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마스크나 병원 부족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마치 신천지가 그동안 핍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죄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식의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지금 감염 사태와 별도로 신천지는 제대로 된 조사를 받아 마땅하다. 오히려 그동안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천지는 작가에게 무궁무진한 글 소재를 제공한다. 어떻게 30여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종교에 빠져 인생을 걸 수 있을까? 이단이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신천지는 제대로 된 광고효과를 본 것은 아닐까? 당장은 공공의 적으로 매도당하겠지만.


기사 출처 : https://www.nytimes.com/2020/03/09/opinion/coronavirus-south-korea-church.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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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먹으며 딸기를 떠올린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이다. 상상력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자의반 타의반 갑갑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장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당분간은 서로 조심조심하며 지내야 한다. 문제는 일상이 붕괴되면서 심리가 흔들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확진판정을 받거나 자가 격리 조치에 취해진 사람들만이 아니다. 거의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가까이서 재채기를 하는 사람만 봐도 흠칫 놀라고 엘리베이터에 한 사람만 있어도 왠지 타기가 꺼려지고 마스크 찾아 삼만리를 한다. 처음엔 어이가 없다가 짜증이 스멀스멀 밀려오다가 급기야 화가 치민다. 대체 이게 다 웬일이냐? 정부는 뭐하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봤자 본인만 손해다.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 상상력을 펼칠 때다. 한낮의 따스한 햇살 아래 즐기는 커피 한잔이나 한 여름 파라솔 아래 선글라스를 끼고 바다를 바라보는 자신을 떠올려보시라. 현실감이 없다구요? 어차피 상상은 실제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순간 행복해진다는 거다. 비록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나 같은 경우는 꿈의 집으로 이사를 가는 상상을 매일 하고 있다. 단독에 마당이 있고 거실창이 넓고 시야가 탁 트인.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맞춤 책상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어떤 날은 절로 손가락이 자판을 분주히 움직이지만 또 다른 날은 멍하니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다 도저히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이곳저곳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운다. 그래도 좋다. 정해진 시간에 엉덩이를 의지에 붙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작가니까,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상상일 뿐이지만 그 자체로 흐뭇해진다. 일단 돈을 좀 번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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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주름 - 3단계 문지아이들 13
매들렌 렝글 지음, 오성봉 그림, 최순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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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점 사이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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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주름 - 3단계 문지아이들 13
매들렌 렝글 지음, 오성봉 그림, 최순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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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시간의 주름을 영화, 만화, 책 순서로 읽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약 반대로 했다면 혹은 섞었다면 감동은 한참이나 줄었을 것이다. 곧 완성도를 보면 책이 가장 앞섰으면 그 반대는 영화였다. 굳이 하나를 선택한다면 책, 그리고 덧붙인다면 만화 정도. 영화는 정말 별로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메그. 잘난척하는 동생 찰스, 그리고 엉뚱하지만 매력적인 학교 친구 캘빈과 함 시간여행을 떠난다. 사라져버린 메그와 찰스의 아빠를 찾기 위해. 이 셋은 우여곡절 끝에 아빠를 만나게 되지만 그 뒷면에는 무시무시한 비밀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시간의 주름은 시간 4부작의 출발이다. 사실 물리학에서 시간은 미스터리한 영역이다. 두 점 사이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직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고민이 되지 않겠지만 그 두 점을 접어 하나로 겹치는 방법을 아는 사람에게는 골칫거리가 된다. 곧 시간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뜻이다. 아인슈터인은 이 사실을 깨닫고 그 유명한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다.


아, 여기서 그만. 어려운 이론 따위 몰라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또한 감동적이다. 그저 풍덩 빠져 즐겁게 헤엄치듯 읽으시면 된다. 


덧붙이는 말 


어린이 책은 번역이 매우 중요하다. 그 맛을 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순희는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들은 알기 어려운 그 쪽 아이들의 심리를 맛깔스럽게 옮겼다. 또 하나 칭찬할 분은 삽화가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그림이 필요하다. 원작에 있다면 그대로 옮길 텐데 이 책은 새로 그렸다. 왠지 위화감이 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 그림만 따로 발췌하여 전시를 해도 좋을 만큼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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